나의 이야기

모악산 마실길과 금산사

와야 정유순 2018. 4. 9. 13:00

모악산 마실길과 금산사

(201847)

瓦也 정유순

    지난겨울의 추위가 그렇게 혹독했던가? 4월 상춘(賞春)의 계절에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가끔 눈발을 뿌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봄의 향연은 김이 서려 볼 수 없어서 대신 얕은 잠을 자며 혹시 꿈속에서라도 만나볼까 기대했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탱자나무 꽃이 망울져 금방 터질 것 같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평저수지 제방 아래에서 내려 제방계단을 타고 둑으로 올라간다.

<탱자나무 꽃망울>


   금평저수지(金坪貯水池)19614월에 축조 준공되었으며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오리알 터로도 불리는데 풍수지리에 밝았던 도선(道詵, 827898)이 장차 오리가 알을 낳는 곳이 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모악산에서 흘러든 깨끗한 물들이 모여 김제만경(金堤萬頃)평야를 적시는 역할을 일부 담당 하고, 겨울에는 철새들이 많이 모여든다.

<금평저수지와 제비산>


   금평저수지를 따라 조금 들어가면 우측으로 증산법종교본부(甑山法宗敎本部)라는 큰 표지석이 나온다. 증산교파의 하나인 증산법종교는 증산교를 창설한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의 외동 딸 강순임(姜舜任)이 설립한 신흥종교이다. 강순임은 1904년 음력 115일 출생하여 6세 때 아버지 강일순을 잃고 34세 되던 193711월 전주 남고산성(南固山城)에서 성부(聖父)께서 주시는 불덩이를 받고 신력(神力)을 얻어 후 새로 증산법종교 교단을 세웠다고 한다.

<증산법종교본부>

<증산법종교 전각들>


   증산법종교본부 안에는 1949년에 지은 영대와 삼청전 등 여러 전각이 있다. 영대(靈臺)는 증산 강일순과 그의 부인 하동정씨(河東鄭氏)가 안치된 묘각(墓閣)이며, 삼청전(三淸殿)은 미륵불(彌勒佛)이 모셔져 있다. 이외에도 교당 안에는 태평전, 숭도묘, 전하전, 경춘대, 대령전 등 웅장한 건물이 같이 있다. 등록문화재(185, 2005. 6. 18)로 지정된 영대와 삼청전은 2층의 목조 건물로 내부는 통층(通層)이다.

<영대>


   금평저수지의 상류(中上流)인 동쪽 제비산(帝妃山, 308) 아래에는 20131025일에 개원한 증산교의 또 다른 교파인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상생교육원이 자리한다.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증산교(甑山敎) 계통의 종단으로 다른 분파들 가운데 가장 교세를 확장시켜 19923월 경기도 포천에 대진대학교를 개교하였다. 이밖에 5개의 대진계열 고등학교와 19988월 분당제생병원을 개원한 이래 동두천제생병원·고성제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순진리회 상생교육원>


   다시 길을 따라 금산사 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우리나라 초기교회인 금산교회가 나온다.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과 서양식 교회의 특징을 조화시킨 초기교회 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축으로서 오늘날 자 집 교회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은 남북 방향 5칸과 동쪽 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은 남자석, 동쪽은 여자석으로 분리하였다.

<초기 금산교회>

<초기 금산교회 예배당>


   이는 한국 초기교회 건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로 한국 전통 사회의 남녀유별의 유교적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산교회의 옛 건물은 1997718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136)로 지정되었다. 현재 금산교회는 교회의 안쪽에 2010년 새로 지은 붉은 벽돌을 이용한 신식 건물에서 예배나 행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의 금산교회>


   모악산금산사 입구 주차장 옆 마당에서는 자연이 그려낸 어머니의 산이라는 주제로 <11회 김제 모악산축제>가 한창이다. 김제의 토산품과 특산품을 판매하는 장이 개설되어 점포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특설무대에서는 초청가수의 열창과 흥겨운 주민들의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점포를 순회하며 맛보기로 건네주는 물건과 음식을 맛보며 점심시간을 즐겁게 보낸 후 <예향천리 모악산 마실 길>로 접어든다.

<김제 모악산 축제 포스터>

<모악산 축제 특설무대>


   모악산(母岳山, 794m)은 전주에서 남서쪽으로 약12km지점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김제만경평야가 펼쳐져 지평선을 이루고, 정상에는 어미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하여 모악(母岳)’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금산(金山)으로 불리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서쪽 아래로 금산사(金山寺)란 절이 있고, 예로부터 금()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동남쪽의 완주군 구이면은 금광(金鑛)이 많았고, 서쪽의 김제시 금산면(金山面)과 금구면(金溝面)에서는 지금도 사금(砂金)을 캐고 있다.

<모악산>


   그리고 예로부터 모악산 주변은 계룡산 신도안(新都安), 소백산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명당(名堂)이라 하여 난리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앙의 본거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또한 미륵신앙이나 풍수지리설 등의 영향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집회소가 있는데, 특히 금산면 백운동은 모악산이 후천세계(後天世界)의 중심지라 믿으며 신도들이 집단 이주하여 증산교(甑山敎)의 종교취락을 이루었다. 모악산은 197112월에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증산교 본부 표지석>


   모악산 마실길은 모악산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총 연장 72.2에 이른다. 모악산의 경관을 즐기며 주변 고찰과 한적한 시골 마을, 도시 근교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코스다. 김제시 2개 코스, 전주시 2개 코스, 완주군 3개 코스가 뚫려 있다. 우리는 정해진 코스를 참고하여 주차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 닭지붕쉼터와 백운정을 지나 연리지 길을 거쳐 금산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모악산 마실길 표지>

<모악산 마실길 초입>


   금산사주차장에서 모악산마실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고갯길로 약700쯤 올라가면 닭지붕쉼터가 나온다. 올라가며 가끔 뒤 돌아보면 금평저수지와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김제만경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금산사 전각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닭지붕쉼터에서 북으로는 계곡사이로 전주 시내가 들어온다.

<닭지붕 쉼터>

<금평저수지>

<금산사 전경>


   능선을 따라 계곡을 오르내리다가 한30여 분 쯤에는 백운정에 당도한다. 모악산의 벚꽃들은 막 만개하여 흐드러지고 덩달아 돌배나무도 활짝 핀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꽃샘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봄의 전령과 함께 봄의 교향악을 연주한다. 무리를 이룬 편백나무 숲도 피톤치드를 맘껏 내 품으며 이곳을 찾는 나그네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백운정>

<모악산 벚꽃>

<모악산 계곡>


   금산사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변함없이 사랑을 주는 나무 연리지(連理枝)’가 반겨준다. 이 연리지는 2006년 등산객에 의하여 발견되고, 2007년도에는 김제시에서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탐방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으나, 20127월의 카눈, 8월의 볼라밴과 덴빈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태풍으로 몸이 부러지는 아픔을 겪는다. 이 나무는 약100여 년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반면교사 같다.

<모악산 연리지>


   승려의 무덤으로도 일컬어지는 부도전(浮屠殿) 주변 울타리에는 어느새 명자나무가 붉은 꽃이 만발하였다. 명자나무는 요란스럽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속이 깊은 아낙의 마음 마냥 은은하면서도 고결한 느낌을 주어 아가씨나무라고도 한다. 열매는 작은 사과처럼 생겼으며 표면은 모과와 비슷한 느낌이 나고 달콤한 향기가 강하여 방향제로서 가치가 있으며 약용과 식용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금산사 부도전>

<명자나무 꽃>


   부도전을 돌아 사천왕문을 지나면 일대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된 금산사 본당으로 들어선다. 모악산 서쪽에 위치한 금산사(金山寺)는 원래는 백제시대에 지어지고 신라 후기 혜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절의 기틀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교종 계통 법상종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했는데, 법상종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종파라 이곳 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는 대신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국보 제26)이 절의 중심이다. 

<금산사 미륵전>


   절의 본당이라 할 수 있는 미륵전은 목조(木造) 3층 건물로 각 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모두 미륵불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미륵전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가 12m에 이르는 미륵입상이 서 있다. 원래는 진표율사가 절을 세울 때 철불(鐵佛)로 미륵장륙상을 세웠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절이 불타면서 철불은 없어졌다고 한다.

<미륵전 미륵장육상-네이버캡쳐>


   미륵전 뒤로하여 계단을 올라가면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이곳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진 방등계단(方等戒壇)에 참배하기 위하여 특별히 건립된 예배전(禮拜殿)이다. 따라서 이 적멸보궁에는 법당 내에 불상(佛像)을 따로 봉안하지 않았다. 보물(26)로 지정된 금산사 방등계단은 부처의 사리를 종 모양의 석조물에 모신 곳이며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계단(戒壇)으로 고려 시대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통도사 금강계단(국보 제290)이 있다.

<금산사 적멸보궁>

<금산사 방등계단>


   방등계단을 장엄(莊嚴)하는 정중탑(庭中塔)인 오층석탑(보물 제25)은 해체하여 보수 중으로 볼 수 없어서 그냥 내려온다. 그리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사이에 석련대(石蓮臺)가 나온다. 보물(23)로 지정된 석련대는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만든 불상의 좌대(座臺)로 높이 1.52, 둘레 10에 달하는 거대한 연화대(蓮花臺) 형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언뜻 보아서는 마치 여러 개의 돌로 상대 중대 하대를 따로 만들어 맞추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금산사 석련대>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수계(受戒), 설계(說戒), 설법(說法) 등 사원의 중요한 의식을 집행하는 곳이다. 대적광전은 본래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名殿)으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등 삼신불(三身佛)만을 봉안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완전소실 되어 1635(인조 13)에 복원할 때 대웅대광전과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5여래(如來) 6보살(菩薩) 500나한(羅漢)을 한 자리에 봉안하면서 이름이 대적광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476) 지정이 해제되었으나 1990년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금산사 대적광전>


   당간지주와 성보박물관 등 살펴볼 곳이 많은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일주문을 통해 돌아 나온다.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던 후백제왕 견훤도 금산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중수(重修)했을 터인데, 후계문제로 아들들에게 이곳으로 유폐 당했다가 겨우 왕건에게 투항하여 노구를 의탁한다. 왕건으로 하여금 후백제를 치게 하여 후삼국을 통일하게 한 다음 번민과 울화로 등창이 나서 죽는다. 그는 유언대로 전주와 가까운 논산시 연무읍에 묻혀 있다. 지금 견훤왕릉 옆을 가까이 지나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돌이켜 본다.

<금산사 일주문>

<용화종찰 미륵성지 표지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