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두 번째-2)

와야 정유순 2018. 3. 28. 09:12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두 번째-2)

(법전면 눌산리안동 가송리, 2018325)

瓦也 정유순

   강행군은 깊은 잠을 자게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현동천 옆에 자리한 무진랜드는 봉화군 소천면 고진리 주민들이 협동으로 숙박시설 등 편의시설과 농산물과 산나물 등을 판매하여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조반을 마치고 여장을 꾸려 나오는데 곧 씨앗으로 사용할 옥수수 두름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해마다 우리 고유의 종자(種子)들이 외국에 잠식되어 안타까웠는데, 씨앗을 스스로 확보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현동천과 무진랜드 전경>

<옥수수>

 

   버스로 법전면 눌산리를 거쳐 명호면 삼동1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다. 삼동(三洞)은 환동(環洞) 학동(鶴洞) 추동(楸洞)을 합하여 일컫는 지명이다. 환동은 마을모양이 떡고리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고, 추동은 옛날에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골이라고도 한다. 학동은 말 그대로 학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 같다. 농업이 주이며 벼와 고추농사를 많이 하는 마을이다.

<삼동1리 마을>

<삼동1리회관>


   이 외에도 삼동1리는 잎담배농사도 경작하는지 연초(煙草)건조장이 있으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석(守護石)이 마을 앞 논두렁에 서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낙동강 변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데 몇 번인가 가던 길이 끊기다가 겨우 길을 찾아 취수보 앞에 당도한다. 무엇을 하는 취수보인지는 설명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주변의 시설 등을 볼 때 삼동리 소수력발전소로 추정된다.

<연초건조장>

<수호석>

<소수력발전용 취수보>


   강물은 계곡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강을 에워싼 산들은 병풍을 두른다. 병풍 산마루에는 전망대 같은 시설이 멀리 가물거리고, 강물 위로는 누에 형상을 한 바위가 강물 따라 기어가는 것 같다. 휘도는 강물을 무심코 따라 가다보니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이 있는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 당도한다. 지역마다 자기지역이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정부의 공식적인 낙동강시발점은 태백의 황지이다.

<산으로 둘러 싸인 낙동강>

<누에(?)바위>


   이곳도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 안내판에는 낙동강의 발원지를 황지라고 명기는 안 되었지만 태백산의 동쪽으로 표시하고 있어서 이곳을 발원지로 주장하지는 아니하는 것 같으나 嶺南(영남)의 젖줄 洛東江(낙동강)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비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한다.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

<낙동강시발점 비>

<낙동강시발점테마공원 지도>


   봉화군 명호면(明湖面)은 만리산(萬里山, 792m)·청량산(, 870m)·문명산(文明山, 894m) 등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평야의 발달이 거의 없고, 면의 중앙을 낙동강 상류가 남북으로 관류하여 산간계곡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대부분 밭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산간지대에 비하여 경작지가 넓어 보리 외에 대추·마늘·잎담배·고추 등의 주산지로서 소득이 높은 편이다.

<명호의 장승>


   춘양에서 흘러들어오는 운곡천(雲谷川)을 낙동강으로 받아들이는 명호구간은 낙동강 천 삼 백리 구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닌 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명호는 산이 높으며 물이 비단결 같고(山高水麗) 밝은 달이 비치는 강물은 마치 호수 같다()”는 글귀가 너무 자연스럽다. 아마 명호(明湖)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산고수려 명월강호>


   그리고 시발점테마공원부터 청량산 입구까지 9.1는 봉화의 예던길로 명명되었다. 원래 예던길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이 숙부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가면서 처음 걸었던 길로 녀던길, 예던길, 퇴계오솔길이 모두 같은 길이다. 그러나 봉화구간의 예던길은 퇴계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봉화구간 예던길 안내판>

<청량사 입구의 낙동강 예던길 표지석>


   호수 같이 조용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는 소용돌이치며 여울져 흐르는 물 위에 고무보트를 띄워 래프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강변을 따라 곳곳에 래프팅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봄기운과 함께 기지개를 편다. 부산강릉을 연결하는 제35호국도도 낙동강을 따라 같이 흐른다. 그러나 흐르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거품은 바위에 부딪치며 생겼다 바로 사라지는 기포가 아닌 것 같다.

<낙동강레포츠센터>

<낙동강 수면 위의 거품>


   도로를 따라 호안 우측으로 걷다가 고계삼거리에서 명호교를 건너 좌측 오솔길로 접어든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문명산(文明山, 894)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문명산은 남쪽으로 청량산(淸凉山, 870m)을 마주한다. 청량에는 문명의 예가 있어야 하므로 청량산이 있으면 문명산이 있어야 한다는 불교의 청량문명을 두고 각각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낙동강과 문명산>

<문명산>


   낙동강 동쪽의 문명산과 서쪽의 만리산(792)을 이어주는 출렁다리 봉화 선유교(仙遊橋)가 백용담 소() 위에 설치되어 있다. 2016년에 준공된 이 다리는 길이 120, 2.5, 높이 17(하천바닥부터) 규모로 세워진 현수교(懸垂橋)이다. 백용담은 협곡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푸른빛을 띠며 유유자적 한다. 정말 흰 용이 금방 물에서 솟아나와 하늘로 오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봉화 선유교-출렁다리>

<백용담>


   골이 깊은 문명산을 지나면 바로 청량산의 위용이 나타낸다.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淸凉山, 870)은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봉·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금탑봉·축융봉 등 12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으며, 봉우리마다 어풍대·밀성대·풍형대·학소대·금가대·원효대·반야대·만월대·자비대·청풍대·송풍대·의상대 등의 대()가 있다.

<청량산 전경>


   낙동강의 청량산 주변 구간은 퇴적암의 일종인 역암층이 주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약 1억 년 전에는 호수나 바다로 추정되며 그 증거로 퇴적암 지층에서 다수의 자갈과 모래가 발견된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 유리보전과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경북문화재자료 제244)라도 보고 갈 심산이었으나 들어가는 입구가 공사 중이라 다음 기회로 미룬다.

<퇴적암-역암층>

<청량지문-청량사 입구>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했다는 청량산을 뒤로하며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봉화군 구간이 끝나고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이다. 가송리(佳松里)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사리송오리가 통폐합 되면서 얻은 이름이다. 풍수적으로 천옥(天獄)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인 지형으로 청량산 줄기가 마을을 에워싸고 있으며, 한복판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특히 청량산이 빚어낸 가송협(佳松峽)은 안동 땅의 수많은 경승 가운데 첫째로 꼽을 만큼 산수가 아름답다.

<가송협>


   낙동강 건너 가송협(佳松峽) 자락에는 고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19921126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된 고산정(孤山亭)은 안동의 청량산(淸凉山) 암벽 옆에 금난수(琴蘭秀)가 지은 것이다. 이황(李滉)의 제자인 금난수는 당시 선성(宣城, 안동 예안현의 별칭)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가송협(佳松峽)에 이 정자를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라 불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다.

<고산정>


   금난수(琴蘭秀, 15301604)는 본관 봉화(奉化)이며, 호는 성재(惺齊)이다. 1561(명종 1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고향에 있다가 의병을 일으켰다. 1596(선조 29)에 성주판관(星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1599(선조 32) 봉화현감을 하루 만에 사임하고 귀가했다. 좌승지로 추증되었으며, 예안(禮安)의 동계정사(東溪精舍)에 배향되었다.

<고산정 전경>


   평소 금난수를 아낀 이황은 이 정자를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고산정에 보존된 이황의 시 <서고산벽(書孤山壁)>은 금난수를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日洞主人琴氏子(일동주인금씨자) 일동이라 그 주인 금씨란 이가   

隔水呼問今在否(격수호문금재부) 지금 있나 강 건너로 물어보았더니   

耕夫揮手語不聞(경부휘수어불문)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   

愴望雲山獨坐久(창망운산독좌구)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퇴계집> 2에서-

<가송협과 고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