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숲과 응봉산 그리고 저자도
(2018년 3월 29일)
瓦也 정유순
매년 봄마다 겪는 일이지만 동장군이 시샘하여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春來不似春)” 봄을 지내다가 언제 온지 모르게 휙 지나가는 게 봄이 아닌 가 생각해 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석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들더니만 지금은 간지럼을 태우며 어느 새 여름 문턱으로 달려가는 기분이다.
<버들강아지>
봄의 전령 개나리가 만발하는 서울 응봉산을 가기 위해 분당선 서울숲역에서 내려 먼저 서울 숲을 둘러본다. 서울 숲이 있는 곳은 우리가 소위 ‘뚝섬’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조선 태조 때부터 성종까지 약100여 년간 151차례나 왕이 직접 사냥을 나온 사냥터였다.
<뚝섬 서울숲 전경>
그리고 매년 음력2월 경칩과 음력9월 상강에 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하면서 독기(纛旗, 소꼬리나 꿩 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를 세우고 독제(纛祭)를 지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강과 중랑천에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독기를 꽂은 섬’으로 독도(纛島)로 불리다가 ‘뚝도 또는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서울숲 이정표>
서울 숲 공원은 당초 골프장과 경마장 등이 있던 공간에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대규모 도시 숲으로 만들기 위해 약35만평에 2,500억 원을 들여 2004년 4월부터 1여 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5년 6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공원이 부족한 서울 동북부 지역의 시민들에게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울숲 경마조형물>
공원은 5개의 테마로 조성되어 있는데, 제1테마는 ‘뚝섬 문화예술공원’으로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제2테마는 ‘뚝섬 생태 숲’으로 야생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 숲을 재현하였으며 472m의 보행다리는 한강선착장과 연결된다. 제3테마는 ‘습지생태원’으로 친환경적인 체험학습공간으로, 제4테마는 ‘자연체험학습원’으로, 제5테마는 ‘한강수변공원공원’으로 선착장과 자전거도로 등이 설치되었다.
<서울숲 입구>
스케이트파크 옆 공터에서 가볍게 몸을 푼 후 가족마당 쪽으로 하여 야외무대를 경유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 밑으로 빠져나와 바람의 언덕을 넘어 꽃사슴먹이주기 길에서 꽃사슴과 얼굴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눈다. 보행자 다리를 따라 생태 숲을 통과하여 한강선착장으로 연결된 보행다리를 따라 나온다. 생태 숲의 능수버들은 치렁치렁 긴 머리 결을 늘어뜨리며 푸르른 봄의 물을 힘껏 빨아올린다.
<서울숲 꽃사슴>
<서울숲 생태공원의 능수버들>
<서울숲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인도교>
한강 쪽으로 나오면 바로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당도한다. 한강 건너 압구정 아파트 숲 아래 강물은 오전 햇살에 물비늘이 반짝이고, 용비교 쪽으로 우회전하여 중랑천 초입으로 들어서면 ‘살곶이 벌’이 나온다. 살곶이 벌은 조선조 초기 왕자의 난으로 보위에 오른 태종(이방원)이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이성계)가 만났던 곳으로 태종을 보자 화가 치민 태조가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이 피해나가자 태조는 “하늘이 뜻”이라며 태종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로 이곳을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 하여 ‘살곶이 벌’이라고 한다.
<중랑천(우)과 합류하는 한강>
서울숲에서 금호동 두무개길로 연결하는 용비교(龍飛橋) 아래로 난 자전거 길과 인도를 따라 중랑천 하구를 지날 때는 삼단으로 설치된 보(洑)위로 흐르는 물살에 팔뚝만한 잉어들이 상류로 오르려고 용을 쓴다. 황하의 잉어들이 용이 되기 위해서 등용문(登龍門)으로 뛰어 오르듯이 한강의 잉어들도 중랑천 하구의 보를 등용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용비교란 이름도 다리 밑이 여울목을 이루어 옛날에 용이 승천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비교>
<중랑천하구의 삼단보>
<물살을 거슬러 올라오는 잉어>
경의·중앙선 응봉역 아래 지하통로를 지나 응봉동 독서당 길로 접어들어 응봉산으로 올라간다. 독서당(讀書堂)은 조선 초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문신들을 위한 연구시설로, 세종 8년(1426)에 세워졌다. 1517년(중종 12)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玉水洞) 한강 연안의 두뭇개[豆毛浦]에 독서당을 신축하고 ‘동호(東湖)독서당’이라 하였다. 그래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독서당고개라고 하며, 주요 통과지역은 성동구 행당동·응봉동·금호동·옥수동, 용산구 한남동이다.
<응봉역>
바위가 많은 산이지만 사방(砂防)용으로 개나리를 심어 개나리동산이 된 응봉산(鷹峰山, 95m)은 성동구 금호동 주택가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이며 예로부터 주변의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 왕이 이곳에 매를 풀어 사냥을 즐기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매봉산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황화정, 유하정 등의 정자들이 있었다. 응봉 남쪽에는 얼음을 보관하는 빙고(氷庫)를 설치했는데 이를 동빙고(東氷庫)라고 불렀으며, 응봉산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응봉산 가는 길>
<서울숲에서 본 응봉산>
<응봉산 개나리>
금호동 동명은 옛 지명인 수철리(水鐵里)의 철(鐵)에서 금(金), 수(水)에서 호(湖)를 각 글자의 뜻과 통하게 자의로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예전에 이 마을을 ‘무쇠막’, ‘무시막’ 또는 ‘무수막’이라 하였는데, 한자명으로 수철리(水鐵里)라고 하였다. ‘무수막’은 조선시대에 무쇠 즉 선철을 녹여 무쇠솥·농기구 등을 주조해서 국가에 바치거나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과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자연 마을인 데서 유래된 지명이었다.
<중랑천 하구>
응봉산 주변에는 수락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청계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중랑천이 있고, 이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살곶이다리(보물 제1738호)이다. 살곶이다리는 세종의 지시로 착공해 성종 때 완공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조선시대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긴 다리(78m)이다. 또한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아들을 고종으로 앉힌 풍운의 여걸 조대비(趙大妃, 1808∼1890)의 생가가 1958년까지 있었고, 조대비가 태어날 때 두 마리의 호랑이가 정자를 지켰다는 쌍호정(雙虎亭)이 있었다고 한다.
<응봉산정>
그리고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섬이 하나 있었다. 중랑천이 한강으로 치고 들어올 때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삼각주(三角洲). 두 물이 부딪히는 곳에 섬이 있어 물살이 유유하며 섬 안에는 구릉과 연못과 모래밭이 펼쳐지는 저자도!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楮子島)로 불리는 이 섬은 속칭 ‘옥수동 섬’이라고도 한다.
<1966년도 서울시 지도(저자도)-다음캡쳐>
조선시대에는 서울 앞을 흐르는 한강구간을 따로 경강(京江)이라 불렀는데 옥수동과 금호동 일대의 강을 경강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호(東湖)’라 했다. 저자도는 동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대표하는 자연자산이었다. 세조 때 권신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저자도 남쪽 대안(對岸)에 압구정(鴨鷗亭)을 지은 것도 그곳에서 보는 한강 풍광이 으뜸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압구정도-네이버캡쳐>
고려 때에는 한종유(韓宗愈)란 사람이 여기에 별장을 두었고, 조선 때에는 세종이 이 섬을 정의공주(貞懿公主)에게 하사하여 그의 아들 안빈세(安貧世)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소유하였다고 한다. 겸제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진경산수화를 그릴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으나, 1970년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은 현대건설이 저자도의 흙과 모래를 파내어 지금의 압구정동 택지를 조성하는데 사용하였다. 이로써 저자도는 한강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겸재 정선의 압구정과 저자도-다음캡쳐>
개나리꽃이 만발한 응봉산을 내려오면서 사라진 저자도 자리를 어림으로 짐작하며 달맞이봉공원으로 이동한다. 예전부터 정월 보름에 주민들이 이곳에 올라가 달을 맞이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강변에 우뚝 선 바위산으로 한강을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돌산이다.
<달맞이봉 가는 길>
달맞이봉공원은 이름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도시근린공원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휴식공간인 동시에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경관을 바라보는 공원이다. 가까이는 달맞이 봉을 끼고 흘러가는 한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멀리 하남의 검단산과 잠실 쪽을 전망하고, 남쪽으로는 강남의 도시경관을 바라보며 서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멋진 공원이다. 발아래 보이는 옥수동역으로 이동하여 여정을 마친다.
<성수대교와 잠실>
<옥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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