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두 번째-1)

와야 정유순 2018. 3. 27. 11:34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두 번째-1)

(분천∼법전면 눌산리, 2018324)

瓦也 정유순

   ‘낙동강이 중앙으로 흘러마을이름이 된 분천(汾川)을 수년 전에 찾아와서 마을구경을 하며 주민 한 분에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살림에 많은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웬걸 반대로 말씀 하신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했었으나 열차의 도착과 출발시간이 밥 때와 서로 다르고, 머무는 시간이 짧아 마을경제에 도움이 안 됨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동네가 시끄럽고 쓰레기만 늘어나 쓸데없는 비용만 증가한다고 푸념 하신다.

<분천마을 풍차>


   풍차가 돌아가는 분천 산타마을에서 철길로 빨리 가려고 욕심을 부렸더니 마을주민이 철길로 가는 것은 위험해서 절대 안 되니 돌아가라며목이 터져라 고함을 친다. 철길에서 내려와 주민께서 알려 준대로 우회하니 낙동강 따라 아주 훌륭한 길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신 주민 목소리와 어우러져 영혼을 깨운다. 분천역 산등성이에 있는 성황당도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안전을 빌어준다.

<분천역 뒷산의 성황당>


   분천에서 춘양으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였다. 이 길을 우리네 옛 사람들은 머릿짐 또는 등짐을 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넜던 고된 삶의 현장으로 길 이름도 보부상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팍팍한 도시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위로하고 있어주니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한 것 같다. 보부상들이 험한 산길을 넘을 때 다리가 없는 바지개를 지고 넘었을 그 길을 우리는 배낭을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한발 한발 걸음을 띤다.

<낙동강 상류>


   수질오염 상시 감시 봉화측정소를 지나 풍애교를 건너 물길 따라 평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풍애마을 뒷산 데크가 설치된 벼릿길로 접어든다. 초기 낙동강 트레일 탐사 자들은 풍애 철도터널을 통과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이 길이 대신한다. 혹시 바람이 만든 벼랑이라 風崖(풍애)라 표시했는지 모르지만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길목은 세찬 바람만큼 숨이 차다. 높이 올라갈수록 강물은 멀리 보이고 가까이 갈수록 물여울은 봄노래를 부른다.

<수질오염자동측정소>

<풍애마을 뒷산>

<낙동강으로 내려가는 데크계단>
 

   휘돌아 가는 도호마을에는 최근에 꾸며 놓은 도호성이 나온다. 아마 이곳에도 고대 부족국가시대에 여러 소왕국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조선 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소라국은 춘양 옛 현의 남쪽에 있었고, 수구(水口)가 소라국 터에 남아 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로 구전되는 이곳 도호는 석포면의 섭계, 안동의 하회와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도호성>


   소라국(召羅國)은 신라6대 지마(祗摩)왕에 의해 멸망한 고대국가로 고려 때는 소라부곡이었으며 봉화현의 동쪽 경계로 넘어 들어가는 곳이라고 김정호의 대동여지지(大東輿地誌)에 전한다. 지금의 춘양면 법전면 소천면 일부가 소라국에 해당된다. 소라동천은 고대 소라왕국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동천(洞天)하늘에 잇닿음 또는 신선(神仙)이 사는 곳을 말한다.

<도호성 주변의 낙동강>


   “소라국은 신선이 사는 별천지(召羅洞天 소라동천), 사람을 살리는 마을(活人之洞 활인지동)이며, 세상에서 찾는 길한 땅(世求吉地 세구길지)으로, 이를 아는 사람들은 들어간다(有知可入 유지가입)” 신라 승려가 암각으로 글씨를 새겼다는 바위는 흐르는 물을 가로 막은 한여울소수력발전소 취수보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안내판만 확인한다.

<소라동천 안내판>

<소수력발전소 취수보>


   강변의 우뚝 솟은 바위는 소나무들의 동천이로다. 언제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지나간 긴 세월동안 바위와 때론 싸우고 때론 사랑하며 모진 세월을 부비며 지냈으리라. 그 옛날 화전을 일구었던 밭에는 사과나무가 열 지어 봄맞이를 한다. 철로변의 낙석을 막으려는 심산인지 현동역으로 이어지는 철길은 원형터널들이 줄 지어 서있다.

<낙동강변 절벽>

<절벽 위의 소나무>

<사과밭>


   19561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현동역(縣洞驛)은 영동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임기역과 분천역 사이에 있다. 한때는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 승차권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도 했지만 현재는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말끔하게 정돈된 플랫폼에 걸터앉아 다리를 쭉 펴본다. 현동역은 코레일(Korail) 경북본부 소속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현동3리에 있다.

<현동역>

<현동역 프랫폼>


   현동천과 만나는 학소삼거리를 지나 현동교를 건너 제36호 국도 아래로 난 데크를 따라 걷는다. 옛날 나루가 있었다는 배나들이마을에는 한여울소수력발전소가 있다. 산 넘어 도호마을에 있는 취수보에서 물을 이곳으로 퍼 올려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2,400kw급 사설발전소로 1987년에 완공된 한여울소수력발전소는 봉화군 가정용전기의 1/3정도를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라고 한다. 소천면 임기리까지 걷고 춘양으로 이동하여 오전을 마감한다.

<한여울소수력발전소 표지석>

<한여울소수력발전소>


   춘양(春陽)은 말 그대로 봄볕이다. 춘양목으로 유명한 금강소나무의 집산지이고, 인근에는 금정광산(金井鑛山)이 있다.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이 개설될 때 법정역에서 녹동역(폐역)으로 바로 연결되는 노선을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 모 국회의원이 억지로 우겨서 철로를 춘양시내로 우회시켰다고 하여 억지춘양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춘향이 변 사또의 수청을 억지로 든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나,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다.

<춘양역 지도>

<억지춘양시장>


   엄나무 순 비빔밥으로 봄 냄새를 물씬 맛 보고는 봉화한수정(奉化寒水亭)으로 간다. 한수정은 선조41(1608) 충재 권벌(冲齋 權橃, 14781548)을 추모하기 위해 손자인 석천 권래(石泉 權來, 15621617)가 세운 정자이다. 충재는 중종(中宗)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충재가 세운 거연헌(居然軒)이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없어지자 이 정자를 세우고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寒水亭)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한수정>


   이 건물은 ‘T’자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1991년 화재로 인해 건물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원상대로 복구하였다. 주변에는 와룡연(臥龍淵)이라는 연못과 초연대(超然臺)라는 넓은 주변에는 바위와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수령의 회나무가 있다고 하나, 출입문을 잠가놓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다만 수령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밑 둥만 실하게 커서 담장의 역할을 하는 모습이 이력을 말한다.

<한수정 느티나무>


   다시 임기리로 돌아와 두음교를 건너 낙동강변 산골물굽이길로 들어선다. 소천초등학교 임기분교장을 지나면 옛길이 분명한 이 길은 차는 물론 경운기도 잘 다니지 않아 풀과 나무의 세상이 되었다. 호젓한 숲길이 무척 상큼하다. 낙동강 물에 비치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 마을 이름이 담월(淡月)이라고 했는가? 섭다리 같은 콘크리트 잠수교를 건너 물굽이길로 휘돌아 가면 멀리 또 하나의 소수력발전소가 보이고, 건너야 할 징검다리 길은 수위가 올라 물에 잠겨 내 몸도 물에 맡겨야 한다.

<두음교>

<낙동강변길>

<임기리 취수보>

<임기리소수력발전소>


   일행 중에는 물길이 두려워 뒤돌아서는 사람도 있지만 이끼가 끼어 미끈미끈한 바위에 몸을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물을 건넌다. 어찌나 물이 차갑고 흐르는 속도가 빠른지 행진곡 같던 물소리는 금방 경고소리로 바뀐다. 물 건너고 산 넘어서 힘겹게 당도한 법전면 눌산리 아람마을에서 눌산리 늘미마을 5구간은 아람옛길로 월암산 솔 내음과 낙동강 굽이치는 물소리가 어우러지는 가파른 오솔길을 거닐며 옛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거친 숨소리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낙동강 맨발 도하>

<낙동강 맨발 도하>


   아람옛길을 지나 당도한 곳은 법전면 눌산리(訥山里)에 있는 늘미마을된장은행앞이다. 늘미마을된장은행은 폐교돼 방치된 법전초등학교 눌산분교를 리모델링하여 콩을 제조·가공해 농촌소득을 창출하자는 취지로 마련하였으며, 마을회관과 함께 2017228일 준공됐다. 이곳의 지명은 감보개라는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고 눌렸다하여 이름이 눌산(訥山)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도 길게 뻗는 그림자에 눌려 이곳 눌산리에서 오늘을 마감한다.

<늘미마을 된장은행>

<아람옛길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