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둘레길과 경춘선 숲길
(2018년3월14일)
瓦也 정유순
지하철 4호선 종착역인 당고개역에서 불암산 길을 출발한다. 당고개역은 1993년 4월 21일 개업했으며, 역명은 '당고개'란 지명이 인근에 있어 붙여졌다. 지명에 당(堂)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대개 성황당(城隍堂)이나 유명한 굿을 하는 집이 있었던 곳으로 지명의 앞이나 뒤에 부쳐지는데 당고개와 팔당이 좋은 예이다.
<당고개역>
팔당(八堂)도 여덟 개의 당집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고, 당고개도 옛날 성황당과 미륵당이 있었던 고개라 하여 한자이름으로 당현(堂峴)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미륵당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조선 영조 때 궁에서 사도세자를 모셔온 궁녀 이 씨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자 내의원 봉사 한 사람이 죽었다고 거짓 진단하여 노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몸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당고개역사>
이에 이 씨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봉사의 조카 남매를 수양아이로 삼았다. 그런데 이 씨의 신분을 안 동네사람이 어느 날 일하고 돌아오는 이 씨를 고개 밑에서 겁탈하려 하자 갑자기 사도세자가 나타나 구했으나, 이 씨는 곧 기절하였다. 효성이 지극한 수양남매는 마을사람들과 고개에서 기절한 이 씨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미륵불이 이 씨를 안고 있었다. 그 후 마을사람들은 이 고개에 미륵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서울지명사전에서 발췌) 이 고개에 세워진 지하철4호선 역이 당고개역이다.
<당고개지구 공원 소나무 숲>
당고개역 1번 출구 쪽으로 하여 철쭉동산 입구에서 여장을 점검하고 화살표 방향을 따라 길을 재촉한다. 이 구간은 서울시 테마산책길인 <불암산 설화길>로 지정된 구간이다. “중계동의 신령스런 두 은행나무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대승을 거두었던 노원평 전투이야기, 학도암에 얽힌 명성왕후의 이야기 등 역사와 삶의 이야기로 가득 찬 구간이며, 불암산 전망대에서 탁 트인 조망과 소나무 숲 쉼터에서의 휴식,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마나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라고 안내판에 나와 있다.
<철쭉동산에서 본 불암산 암봉>
그러나 몇 구비 돌아 나와도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 ‘은행나무 이야기’는 중계동 은행나무사거리를 이야기 하는 것 같고, 임진왜란 당시 대승을 거둔 ‘노원평이야기’도 유정 사명당(惟政 四溟堂)의 승군(僧軍)과 관군(官軍)이 합동으로 왜군을 향해 대승을 거둔 마들평야 전투를 가리키는 것 같다.
<도암샘(생성)약수터>
시설을 제법 그럴듯하게 갖춰 놓은 도암샘(생성)약수터는 물줄기가 병아리 눈물만큼 아주 적은 양의 물이 떨어진다. 길을 따라 봄기운을 밟으며 걸어가는데 근육질이 단단한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나온다. 안내판에는 남근석(男根石)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남근석은 오래된 우리의 토속신앙의 하나로 풍년과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남근숭배의 직접적인 신앙물이다.
<남근석>
몇 마장 앞으로 더 나아가니 불암산 자락길이 나온다. 자락길은 서울둘레길에서부터 불암산생태학습관까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 약자를 비롯한 모든 계층이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경사가 완만하게 데크로 만든 팔자(8)자형 순환 숲길이다. 그냥 버려두었으면 보통 숲 일진데, 자연을 보호하면서 생태학습관과 연계하여 친환경적으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은 발상이 좋아 보였다.
<불암산자락길 안내도>
불암산 자락 길을 걸으면서 좀처럼 불암산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불암산(佛巖山, 509.7m)은 큰 바위로 된 정상의 봉우리가 마치 납의(衲衣)를 입은 승려의 송낙(松蘿)을 쓴 부처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또한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시 별내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원래 ‘필암산(筆巖山)’이라고도 하였으며, 먹골[墨洞]∙벼루말[硯村]과 함께 필(筆)·묵(墨)·현(硯)으로 지기(地氣)를 꺾는다는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불암산>
또 다른 전설은 금강산에 있던 산이 한양에는 남산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남산이 되고 싶어 금강산을 떠나 지금의 자리에 도착하여 바라보니 이미 한양에는 남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실망한 불암산은 다시 금강산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한번 떠난 금강산에 돌아 갈 수 없었기에 돌아선 채로 머물고 말았다. 그래서 불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태이다.
<불암산 계곡>
길옆에는 공룡을 닮은 공룡바위가 나오고, <불암산횡단형건강산책로>를 따라 학도암(鶴倒庵) 가는 길옆에는 여근석(女根石)이 서있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를 ‘밑바위’ 또는 넓적바위라고도 부르는데, 이 바위에 “돌멩이 하나라도 끼어 있으면 마을남자들이 바람을 피워 과부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고, “처녀들이 모두 바람이 나 미혼모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바위 둘레에 가시나무를 겹겹이 심어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은 일종의 토템으로 잉태와 다산을 상징한다.
<공룡바위>
<여근석>
학도암 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경사가 가파른 길이다. 학도암(鶴倒庵)은 1624년 무공(無空)스님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이 암자에는 1870년(고종 7)에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높이 22.7m, 폭 7m로 조성한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鶴倒庵 磨崖觀音菩薩坐像)>이 있으나 그냥 지나친다.
<학도암의 마애관음보살 좌상>
학도암 입구에서 숲속으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서울둘레길 코스인 ‘공릉산백세문(孔陵山百歲門)’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불암산 정상으로 향하다가 삼육대학교 방향 숲길로 내려오면 ‘제명호’라는 아담한 호수가 나온다. 서어나무가 서식하는 숲길은 서울특별시와 삼육대학교가 지원하고 노원구가 조성한 주민 쉼터로 지역주민에게 명상과 산책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삼육대 산책길>
제명호의 제명은 James. M. Lee목사의 한국식 이름이다. 1912년에 부친이 선교사활동을 하고 있는 평남 순안 의명학교에서 태어났다. 평생 한국의 교육과 선교를 위해 봉사한 그는 1947년 현재의 삼육대학교 부지를 마련하는 등 학교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이 호수는 그의 교섭으로 미군장비가 동원되어 1953년에 만들어졌으므로 그의 이름을 따서 ‘제명호’라 하였다.
<삼육대 제명호>
<삼육대 제명정>
삼육대학교는 1906년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에서 평안남도 순안에 설립한 의명(義明)학교가 전신이다. 교훈은 진리·사랑·봉사이다.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었다가 1947년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조선합회신학교로 다시 개교하고 1951년 삼육신학원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정규 4년제 대학인 삼육신학대학으로, 1966년 삼육대학, 1992년 삼육대학교로 개칭하였다.
<삼육대학교 정문>
삼육대하교 정문으로 나오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릉(康陵)’이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재위 1545∼1567)과 명종 비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의 쌍분이다. 그리고 이 일대는 태릉(泰陵)이라고도 하는데, 태릉은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尹氏)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계비이며 명종의 생모로 명종 재위기간 중에 수렴청정으로 유명한데 명종은 죽어서도 어머니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것 같다.
<강릉-네이버캡쳐>
<태릉-네이버캡쳐>
왕릉보다 각종체육시설과 올림픽선수촌으로 더 유명한 태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바람에 더 이상 확장을 못하게 되자 충북 진천에 제2 선수촌을 건립하여 2011년 10월 27일 준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태릉일대가 개발되기 전에는 ‘먹골 배’가 유명하였고, 갈비집이 진을 치던 곳으로 젊은이들의 산책코스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태릉 앞으로 개설된 도로는 화랑로이다. 화랑로는 육군사관학교의 화랑대에서 따온 이름으로 태릉과 육사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1958년에 육사가 들어서기 전에는 태릉지역으로 불리었으나 육사의 교정이 <화랑대>로 명명되면서 경춘선의 태릉역 이름도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폐역이 된 화랑대역사는 근대건축양식의 목조건축물 등록문화재로 지정(제300호) 되었으며, 구 화랑대역을 중심으로 ‘경춘선 숲길’이 조성되었다.
<화랑대>
<화랑대역>
화랑(花郞)은 신라 진흥왕 때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취지 아래 수려한 용모와 교양이 탁월한 귀족의 자녀들을 선발하여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호연지기(浩然之氣)와 함께 실천하여 청소년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교육제도이다. 남자를 화랑(花郞), 여자를 원화(源花)라 불렀으며, 지인용(智仁勇)이 함축된 화랑정신을 육사생도들로 하여금 계승 발전하기 위한 것이 아닌 가 생각해 본다.
<화랑동상>
<지인용 탑>
경춘선 숲길은 2010년 12월 열차 운행이 중단된 경춘선 옛 기찻길과 구조물을 보존해 철길의 흔적을 살리고 단절된 지역들을 공동체 공간으로 연결하는 시민의 길이다. 경춘선 광운대역에서 서울-구리시 경계에 이르는 폐선 구간을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바탕으로 2013년에 시작하여 1단계로 공덕 제2철도건널목∼육사삼거리의 1.9km 구간이 2015년 5월에 열렸고, 경춘철교∼서울과기대 입구 1.2km 구간은 2016년 11월에, 마지막 3구간 육사삼거리∼서울-구리시 경계 2.5km은 2017년 11월에 개장을 하였다고 한다.
<옛 화랑대역과 전동차>
<옛 화랑대역 승강장>
<증기기관차>
<경춘선 숲길>
삼육대학교 정문으로 나와 구리시 방향 육교를 이용하여 화랑로를 건너 구리시 경계지점에서 경춘선 숲길로 접어들어 지하철 7호선 공릉역 부근까지 거닐어 본다. 공릉동(孔陵洞)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속한 동으로 자연마을인 공덕리의 ‘공’ 자와 태릉의 ‘릉’ 자를 따서 동 이름을 만들었다. 공릉동 도심을 가로지르는 숲길은 이곳을 찾는 많은 시민들과 지역주민들의 활동무대가 된 것 같다.
<삼육대 정문 옆 육교>
<경춘선 숲길-구리시계 방향>
<지하철 7호선 공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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