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첫 번째-2)

와야 정유순 2018. 2. 28. 19:20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첫 번째-2)

(황지석포분천, 201822425)

瓦也 정유순

   ‘백두대간의 중심석포면은 봉화군의 북동쪽에 위치한 오지로 원래 소천면에 속한 리()였으나 1963년에 설치된 석포출장소가 1983년 울진군 서면의 전곡리 일부를 포함하여 석포면(石浦面)으로 승격 독립하였다. 석포역은 1956년 영암선(영주철암)이 개통되면서 보통역으로 업무를 개시 하였고, 1970년대 아연제련소가 생기면서 돌이 많은 마을 석포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다.

<백두대간의 중심 희망석포>


   옛날에는 이 지역에 100여 개의 아연 등 비철금속 광산과 제련소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영풍 석포제련소 한 곳 뿐으로, 마땅한 먹거리가 없는 이곳 사람들은 석포제련소에 생계를 의탁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생산량이 36만 톤으로 단일사업장 생산능력은 세계4위이며, 계열회사인 온산 고려아연제련소는 연산 55만 톤으로 세계1위다.

<석포 아연제련소>


   제련소 주변에는 하얗게 뿜어 나오는 것은 수증기라고 유난히도 크게 표시해 놓았다. 아마 제련소의 특성상 연기가 많이 배출되고, 그 속에는 분진과 매연, 그리고 독극물인 비소(As), 중금속인 카드뮴(Cd) (Pb) 수은(Hg) 등이 함께 한다. 이를 잡아내기 위해 집진시설(集塵施設)을 가동하면서 뜨거운 연기에 물을 분사해서 생기는 것이 수증기이며 연기 대신 밖으로 나온다.

<석포제련소의 수증기>


   낙동강은 석포역과 제련소 사이를 감싸고돌아 아래로 흐른다. 주변 산에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지 못하고 심한 열병을 앓은 사람 머리처럼 나무가 듬성듬성 하거나 아예 말라죽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제련소구역을 빠져나가면 깊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잠든 영혼을 조용히 깨우는 것 같다. 계곡의 고요함은 석가모니나 공자나 예수가 현세에 강림하신다면 꼭 이 길을 걸으면서 세상의 모든 근심을 생각했으리라.

<제련소와 낙동강과 산>

<석포의 낙동강>


   길옆의 잘 자란 자작나무 분가루로 얼굴에 분칠도 해본다. 자작나무는 섭씨 영하 2030도의 혹한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표피에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들이 겹겹이 쌓이고 기름기가 하얀 분가루처럼 축적이 되어 추위를 이겨낸다.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난다고 하여 자작나무라고 한단다. 또한 결혼식 때 쓰는 화혼(華婚)도 자작나무 불꽃같다고 하여 얻어졌다. 그리고 목질이 좋아 가구 등 목재로 널리 사용하며, 표피는 종이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낙동강변의 자작나무>


   굴현교 아래로 잔설(殘雪)을 녹이며 흐르는 물소리는 걷는 걸음에 박자를 맞추고 작은 여울도 만든다. 강 건너 영동선에는 V트레일 기차가 기적을 울리고, 강물도 좁은 협곡을 어렵게 빠져나간다. 결둔교 부근에는 산비탈을 일궈 만든 밭만 보이고 한 평의 논도 안 보이는 협곡에 구두들이라는 지명이 정겹다. V는 이곳 지역이 협곡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낙도강의 기암괴석>

<낙동강의 잔설>

<철교와 터널>


   언제 지었는지 오래된 원두막에는 고장 난 벽시계가 말이 없고, 천정선풍기도 날개만 기둥에 매달려 있다. 강바닥에는 자연이 빚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일교차가 심해 꿀 사과가 열린다는 사과 밭은 전지작업이 끝난 것으로 보아 벌써 봄맞이가 끝났나 보다. 가지가 뻗어 꽃피고 열매가 맺으면 붙들어 맬 철사로 만든 둥근 지지대도 준비가 끝났다.

<고물상? 원두막>


   강변을 굽이돌아 나오니 멀리 빨간 승부현수교가 보인다. 달리던 기차가 속도를 줄이며 서는 것으로 보아 승부역이 가까워 진 것 같다. 현수교를 건너 철길을 따라 들어가니 플랫폼에는 승부역은시비가 서있다. “승부역은/하늘도 세평이요/꽃밭도 세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맥이다

<승부 현수교 원경>

<승부 현수교>


   이 시는 1963년부터 19년간 승부역에서 근무한 김찬빈씨가 1965년 철도변 옹벽에 흰 페인트로 써 놓은 것을 역 앞마당의 새로 만든 비석에 적어 놓은 시다. 첩첩산중 오지마을의 자그만 역에서 느끼는 고독하고 쓸쓸한 서정만 읊은 것이 아니라 보람과 자긍심도 읽을 수 있다. 그때의 승부역은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였었다.

<승부역 시비>


   이렇게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하늘 세평만 보인다는 승부역(承富驛)구내에는 백설공주에 나오는 이야기를 형상화하여 만든 공원에는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 독이 든 사과로 공주를 유혹하는 마귀할멈도 조형물에 들어 있는데 백마 탄 왕자님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그리고 협곡열차를 타고 찾아오는 길손이 많아서 그런지 승부역에는 간이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지역 특산물도 선을 보이고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미리 이야기가 되었는지 마을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가마솥으로 끓여대는 육개장은 풍성한 오찬을 만들어 준다.

<승부역 시장>


   승부역 건너에는 용관(龍冠)바위가 있고 그 아래 깊은 물은 굴통소(窟筒沼)라고 한다. 어느 장군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이곳 재를 넘어 귀향을 오는데, 꿈에 용이 나타나 나는 굴통소에 사는 용인데 이 재는 나의 등이고 저 넘어 바위는 나의 갓이니 감히 이 재를 넘어 바위를 만지고 넘는 자는 모두 살아남지 못할지니 낙동강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그대로 행하여 무사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용관바위>


   전에는 분천역까지 배바위고개를 넘어 가는 산길이었는데, 지금은 낙동강 변으로 새로 길을 낸 것 같다. 새로운 길을 나설 때는 항상 약간의 흥분이 뒤따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강가를 따라가는 몸도 마음도 한 결 가볍다. 웬만하면 자연 그대로 길이 되었고, 걷기가 힘이 드는 곳은 나무데크로, 절벽 같은 곳은 잔도(棧道)로 또는 철길 옆으로 길을 내었고, 중간 중간에는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아 걷는 재미도 한층 흥을 더한다.

<낙동강변 길>

<낙동강변 숲길>

<철길 벼랑의 잔도>


   가끔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V자로 펼쳐지는 협곡이 마음을 빼앗는다. 벼랑길 같은 오솔길을 걸을 때는 봄을 싣고 오는 물소리에 맞춰 봄노래가 입술 안에서 흥얼거린다. 강물은 심한 S자로 굽이쳐 흐르는데 얄미운 철마는 물을 건너고 산을 뚫으며 직선을 긋는다. 작년 여름 장마에 떠내려 왔던 나무는 늑목(肋木)이 되어 바위 위에 걸려 누워 있다.

<낙동강 V계곡>

<바위 위에 걸린 늑목>


   어느 소나무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밑 둥부터 땅으로 굽다가 겨우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향한다. 땅으로 굽은 곳에 그네라도 매달았으면 하는 마음도 생긴다. 자연에 흠뻑 취해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게 양원역(兩院驛)에 도착한다. 본래는 원곡(院谷)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강을 경계로 원곡마을을 봉화와 울진으로 나누어서 양쪽의 원곡이라 하여 양원이라 한 것이다.

<밑 둥이 굽은 소나무>

<양원역 전경>
 

   양원역은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이라 주민들의 요구로 임시승강장으로 된 역으로 시설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승강장 주변으로는 주민들이 손수 가꾸고 거둔 농·특산물간이판매장이 들어 서있다. 승부역처럼 조 껍데기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다. 협곡열차를 타고 온 손님들도 양원역의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잠시 눈과 입을 즐긴다.

<양원역 승강장과 장터>

<양원역의 열차>


   바람만 쉬어 간다던 양원역에서 막걸리 선술 한 잔에 다시 힘을 충전하고 강 따라 발을 옮긴다. 강 너머 언덕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벼락을 맞았는지 하늘로 솟아야 할 윗부분이 부러지고 가지는 하늘이 두려워 모진 세상을 한탄하며 아예 땅으로 향한다. 이곳은 흐르는 물소리도 더 크게 들린다. 휘돌아 가는 강을 가로지르기 위해 숨 가쁘게 높은 재를 넘고 철교 옆길을 따라 당도한 곳은 비동역이다.

<벼락? 맞은 소나무>


   비동역((肥洞驛)은 옛날 화전민들이 정착한 마을로 땅이 기름지다하여 마을이름이 비동(肥洞)이 되었으며 역 이름으로 따왔다. 이역은 16회 정차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이용객을 위해 만들어진 임시승강장이다. 따라서 승하차는 가능하지만 승차권 발매는 불가능하다. 역 시설은 승강장 외에 다른 시설이 전혀 없다.

<비동역>

<비동역 승강장>


   비동역을 돌아 철교 밑으로 나오면 낙동강을 따라가는 포장된 길이 나온다. 물이 꽁꽁 얼은 낙동강을 배짱 좋은 어느 한 분이 얼음 위로 걸어가도 끄떡없다. 그 아래쪽 콘크리트로 포장된 섶다리 아래 얼지 않은 강물은 물비늘이 반짝인다. 섶다리를 건너면 승부역에서 배바위고개를 넘어와서 만나는 지점이다.

<낙동강의 얼음>

<낙동강의 섶다리>

 

   이곳 봉화지역을 가르는 낙동강은 울창한 숲과 강가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신비함을 더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아름다운 호수라는 뜻의 가호(佳湖)라고 부른다. 바위를 차곡차곡 쌓 놓은 적석총(積石塚) 닮은 바위는 옛 고구려 땅 통구에 있는 장군총(將軍塚) 같은 위용을 안긴다.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아소리가 절로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낙동강의 돌무지>

<낙동강의 佳湖>


   강변의 하천부지에 조성된 금강소나무 숲을 지나 한참을 걸으면 분천역에 다다른다. 분천역은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보통역으로, 역사(驛舍)의 주변이 온통 산타와 관련된 조형물들이다. 춘양목 벌채사업과 석탄 산업이 왕성하던 때는 열차의 통행량도, 모여드는 인구도 지금의 10배는 더 되었을 텐데, 이들 산업의 쇠퇴로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났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


   분천역 앞에는 호랑이를 닮은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는데, 1991년 지나가던 점쟁이가 이를 보며 저 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아 사람들이 무서워서 오지를 않는구나. 저 산을 깎아 내리면 이곳에 천호가 들어설 것이다라고 하였다는데, 때마침 자갈공장이 들어서 산을 깎아 자갈을 채취하자 호랑이 형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분천역> 

<분천역 구내>


   이것이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20여년이 지난 2013년에는 V트레인과 O트레인 협곡열차가 개통되었고, 2014년에는 산타마을과 산타열차가 생겨 전국의 유명관광지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곳이 산타마을로 변신한 것은 2013년 마테호른이 있는 스위스 체르마트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마을과 역을 산타마을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분천역에서 승부역으로 이어지는 길 이름도 체르마트 길로 명명되었다.

<산타할아버지와 함께>


   울창한 숲과 협곡이 어우러지고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혼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가호(佳湖)임에는 틀림없지만, 청둥오리 등 철새나 텃새인 백로나 왜가리 등 새의 모습을 석포에서 분천까지 내려오는 동안 한 마리도 눈에 보인 적이 없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섶다리를 건널 때도 물속을 헤엄치며 놀아야 할 물고기도 눈에 띄질 않는다.

<낙동강 상류>


   “새들이 지저귀고 시끄러워야 할 봄에 적막한 기운만 감돈다면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세상의 모든 새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소리가 없다는 것, 숲속을 거닐며 내 귀를 간지럽힐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위용 있는 새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쓴 <침묵의 봄>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침묵의 봄 표지-네이버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