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성백제의 발자취를 따라서(2)

와야 세상걷기 2018. 2. 20. 12:16

한성백제의 발자취를 따라서(2)

(몽촌토성, 2018217)

瓦也 정유순

   도심의 주택가 속에 파묻혀 관심이 없으면 전혀 볼 수 없는 풍납토성 남쪽으로 나오면 서울아산병원이 끝자락에 자리한다. 길바닥에 한성백제 문양을 새겨 놓아 이를 따라가면 올림픽대교교차로를 지나 성내천변 옆에는 서울올림픽기념관 건물이 우뚝하고 몽촌(夢村)의 순우리말인 곰말다리를 통해 성내천으로 흐르는 몽촌호수를 지나면 몽촌토성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봐선 몽촌토성이 풍납토성보다 훨씬 웅장해 보였다.

<풍납토성 남쪽 끝의 서울아산병원>

<길바닥에 표시된 한성백제 문양>

<곰말다리>


   몽촌해자(夢村垓字)88호수로 연결되어 몽촌토성 안으로 흐르는 성내천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변화하였다. 하천 바닥에는 줄, 부들 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생하면서 수질을 정화하고 있으며, 물의 흐름이 완만한 사행(蛇行)하여 퇴적층이 광범위하게 발달하여 습지화가 되어 있어 소생물권역(비오톱)이 되었다. 따라서 건전한 생태계가 복원되고 먹이사슬이 형성되면서 백로 왜가리 등 조류와 맹꽁이 등 파충류 등 종() 다양성을 이루며 집단으로 공존하는 서식처가 되었다.

<몽촌호수>

<성내천>


   사적 제297호인 몽촌토성(夢村土城)은 평지성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남한산에서 뻗어 내려온 낮은 자연 구릉 끝 부분에 쌓은 일종의 산성이었다고 한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285m이고, 높이는 640m로 지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성벽 바깥쪽에 목책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성내천이 토성을 감싸고돌아 성 주위를 둘러싼 해자 역할을 했다. 성벽 동북쪽 작은 구릉에는 둘레 270정도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무로 세운 보루가 있다고 한다.

<몽촌토성 지도>


   몽촌토성은 풍납토성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하남위례성으로 유력하게 지목되는 곳이었다. 88올림픽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에 9개 기관으로 조직된 공동발굴단의 6차에 걸친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진 결과 3세기 말엽부터 5세기 후반에 이르는 백제 토기와 고구려 토기, 동전무늬가 있는 서진(西晉)시대(265316)의 도기, 육조시대의 자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몽촌토성이 조사된 성곽 유적과 출토된 유물들이 한성백제시대와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몽촌토성을 하남위례성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성내교에서 바라본 몽촌토성>


  몽촌토성의 북쪽 산책로를 따라 몽촌역사관으로 먼저 간다. 1992년에 개관한 몽촌역사관은 백제문화의 대표적인 유물과 유적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몽촌토성은 한성시대 백제의 주요 거성 중 하나로 지난 83년부터 89년까지 6차례의 정밀조사를 거쳐 움집터와 저장구덩이, 토기 등 어마어마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이 때 나온 유물들을 전시하며 당시 조상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공간이다.

<몽촌역사관>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한강을 중심으로 하남위례성이 관할하는 도성의 모형이 눈길을 끈다. 한강 이남으로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군, 석촌동고분군이 1600년 이전의 화려했던 모습으로 부활하여 다가오는 것 같다. 한강 이북으로 아차산성이 코앞이고 북한산을 병풍삼아 옛 한성의 모습들이 한 눈에 다 보인다. 아니 2천년 도읍지의 서울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남위례성 도성>


   한강주변지도 모형에서 시계방향으로 이어져 암사동주거지 모형, 명일동주거지 모형, 역삼동주거지 모형 등 선사시대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석촌동고분 유물, 풍납토성 유물, 삼국시대 기와와 벽돌, 서울의 고구려문화, 서울의 신라문화, 백제후기 문화 등이 몽촌토성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전시관에는 백제가 일본에 불교, 문자, 유교, 건축, 조각, 조선(造船) 등 많은 분야에서 선진기술과 다양한 문물을 전해주어 고대 문화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몽촌역사관 내부전시실-네이버캡쳐>


   그 대표적인 것이 칠지도와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다. 칠지도(七支刀)는 현재 나라(奈良)현 텐리(天理)시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있다고 한다. 전체 길이가 74.9이고 몸통 좌우로 3개씩 가지가 뻗어있으며, 편편한 앞면에 34, 뒷면에 27자의 금상감 명문이 있다. 글자 외곽에는 금선이 상감기법으로 가늘게 둘러쳐져 있다. 몸체에 새긴 명문을 통해 백제와 왜와의 관계, 백제의 수준 높은 한자문화, 제철기술, 상감문화 등을 알 수 있다.

<>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壁百兵宜供供候王△△△△() (4516일 병오일에 이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왕세자 기()가 성스러운 소리를 내었으므로 일부러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이는 백제가 제작하여 제후왕(諸侯王)인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한다.

<칠지도 모형>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미륵보살반가상(木造彌勒菩薩半跏像)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과 쌍둥이처럼 닮은 불상이다. 불상을 조각한 나무가 일본에서는 자라지 않는 적송(赤松)이므로 한반도에서 만들었거나 왜로 건너간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왜가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6세기(538)로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전 등을 전한 것으로 보아 목조미륵보살반가상도 이 때 또는 그 이후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미륵보살반가상>


   금동신발과 관모, 귀걸이 등 귀한 유물을 보고 밖으로 나와 몽촌토성의 산책로를 따라 길을 나선다. 한쪽에서는 아직도 발굴조사가 끝나지 않았는지 철조망으로 경계를 설치해 놓고 개복된 땅을 가림 막으로 덮어 놓았다. 아마 2022년까지 계획된 발굴 작업의 일환 같다. 기왕에 시작한 것 꼼꼼하고 세밀하게 발굴하여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한성백제의 비밀이 확 풀렸으면 한다.

<금동관모와 귀걸이>

<금동신발>

<몽촌토성 발굴현장>


   산책로는 토성 마루로 이어지는 길이다. 휴일이라 가족끼리 산책도 할 겸 바람 쐬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능수버드나무를 좌로 돌아 꺾어지면 토성 정상부근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당산을 지키는 당산목(堂山木)처럼 고고하게 서있다. 또 그 밑으로는 너른 잔디 위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높이 10쯤 되는 측백나무도 나 홀로 서있다. 소위 다른 나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는지 이름이 나홀로나무라고 한다.

<몽촌토성의 보호수-느티나무>

<나홀로나무-측백나무>


   토성의 비탈진 면에 서있는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올림픽공원의 정문인 세계평화의 문이 빼꼼하게 보인다. 숲을 만들기 위해 심어 논 자작나무들을 둘러보고 한성백제박물관으로 급히 이동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지역에 건립된 서울시립박물관으로서 2천년 왕도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알리기 위해 20124월 개관한 고대사 및 고고학 전문 박물관이다.

<몽촌토성의 소나무>

<세계평화의 문>

<몽촌토성 안의 자작나무 숲>

<한성백제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서울역사의 기반인 선사시대(1전시실)를 비롯하여 한강과 서해를 무대로 해상강국으로 활약했던 한성백제시대(2전시실) 및 백제에 이어 한강을 차지한 고구려와 신라시대(3전시실) 역사와 문화를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로비로 들어가면 풍납토성의 실제크기의 단면과 축성장면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풍납토성 축성모형>

<풍납토성 단면>

<전시 중인 비파형 동검모형>


   그리고 이곳에서는 마침 영산강 옹관의 한성나들이전시가 20171221일부터 2018225일까지 열리고 있었다. 영산강유역은 역사적이나 지리적으로 매우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고대문화는 나주 반남고분군에서 확인된 대형옹관과 그 껴묻거리가 확인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대형옹관 고분은 영산강유역의 독특한 문화이다. 이번 전시는 옹관의 출현부터 변화하는 과정과 완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옹관의 라이프사이클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는 것 같다.

<광주광역시 운남동유적>

<영암 와우리유적>

<영암 옥아리 방대형 고분 1호분>


   한성백제박물관을 나와 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 옆으로 하여 세계평화의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온다. 세계평화의 문은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와 감리로 지어진 조형물로 한민족의 저력과 역량을 한껏 펼친 88서울올림픽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작품은 한민족의 우수성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처마형태의 지붕, 사신도(四神圖)와 청··백색의 단청은 우리민족의 정서다. 특히 청룡과 백호, 주작과 현무의 사신은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신으로 상징된다.

<세계평화의 문>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