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태안 해변 길을 걸으며(솔모랫길)

와야 세상걷기 2018. 2. 12. 12:10

태안 해변 길을 걸으며(솔모랫길)

(몽산포드르니항, 2018210)

瓦也 정유순

몽산포는 태안군의 남면 몽산리(夢山里)에 있는 포구로 몽대리(夢垈里)와 동산리(東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 같이 길을 걷기로 한 도반들을 몽산포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가 몽산포항은 찾지 못하고 몽대리항 푯말만 보고 헷갈렸던 추억이 떠올리며 태안해안국립 공원 몽산포탐방지원센터 앞에서 태안해안길 솔모랫길로 접어든다.

<솔모랫길 지도>

<몽산포탐방지원센터>


   태안읍에서 남쪽으로 9떨어져 있는 몽산포해수욕장은 깨끗한 모래밭으로 배후에는 곰솔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곰솔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송(海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잎이 곰 같이 억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수피(樹皮)가 검다고 하여 검은소나무, 먹솔, 흑송(黑松)이라는 여러 이름을 같이 가지고 있다. 초기의 성장속도는 일반소나무 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지만 나중에는 성장속도가 느려 일반소나무에 뒤진다고 한다.

<태안해변길 표지>

<몽산포캠핑장 입구> 


   해마다 모래조각경연대회가 열리는 몽산포는 해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태안8경으로 선정되었으며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거목이 된 소나무들은 바닷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몸을 뒤로 비스듬하게 비켜 서있다. 곰솔 숲을 가로질러 몽산포캠핌장을 지나 소나무 숲 사이로 일렁이는 파도를 눈 여겨 보며 지나친다. 아직 덜 녹은 눈은 파도가 토해 놓은 거품처럼 하얀 띠를 만들어 길게 아주 길게 늘어 서있다.

<곰솔 숲>

<몽산포해변>


   솔밭을 지나면 여기는 4코스 솔모랫길입니다라고 표시되어 있는 문주를 지나면서 솔모랫길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입구부터 해안사구는 여름 내내 푸르렀던 갯그렁풀은 뿌리를 땅 속으로 깊게 박고 모래를 끌어안는다. 태안반도는 신두리해안사구를 비롯하여 사구(砂丘)가 잘 발달된 지역으로 멸종위기야생생물(2)로 지정된 표범장지뱀이 서식하는 곳이다. 또한 수생식물로 멸종위기야생생물(2)인 매화마름도 이곳에 서식하여 태안해안국립공원 깃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솔바람길 입구>

<표범장지뱀-네이버캡쳐>


   깃대종(Flagship Species)1993UN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특정지역의 생태·지리·문화적으로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동·식물로서 사람들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종()이다. 강원도 홍천의 열목어, 김천시의 은행나무, 거제도의 고란초, 울산 태화강의 각시붕어 등이 한국의 대표적인 깃대종들이다.

<매화마름-네이버캡쳐>


   해안으로 늘어선 솔밭 길을 따라 몽산포와 달산포 해변을 지나친 후 청포대 해변에 당도한다. 세 곳의 해변은 하나의 해변으로 이어진 말 그대로 명사십리이다. 분가루처럼 보드라운 모래는 곱게 다져져 신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 해안 백사장에 길게 늘어선 하얀 눈처럼 해변에도 팬션 등 숙박과 위락시설 등이 길게 늘어 서있다.

<청포대해변>

<길게 늘어선 팬션>


   청포대해변 남단에는 머리에 소나무를 이고 외롭게 서있는 바위섬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반가움에 달려갔더니 토끼가 자라의 등에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조형물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 섬이 바로 별주부전(鼈主簿傳)의 무대가 되었던 자라바위이다. 별주부의 별()은 자라를 의미하고, 주부(主簿)는 조선시대 종6품쯤에 해당하는 벼슬로 약재를 담당하는 직책 같다. 따라서 용궁에서 근무하는 약재담당 종6품의 자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라바위>


   별주부전은 토생원전’ ‘수궁가등 판소리로 더 알려진 우화소설로 조선후기 당시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서민들의 외침이다. 내용은 용왕이 병에 걸리자 병을 낫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어의들의 처방이 나온다. 이에 자라가 육지에 나가 토끼를 유혹하여 대리고 와서 지극정성으로 대접한 후 용왕의 병에는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토끼는 나의 간은 육지에 빼놓고 왔다고 기지를 발휘하여 겨우 용궁을 빠져나온다.

<자라와 토끼 상>


   육지에 올라와서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안 자라는 바위에 올라 자살을 하려했는데 그의 충성심을 높게 산 산신령이 산삼을 내려주며 용왕을 살리라고 자라를 용궁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 용궁에 갔다 왔다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혹시 내용이 그렇다면 이곳이 용궁의 입구가 아닌가? 그리고 이곳 청포대해변을 찾는 사람들은 자라 같은 사람이 많을까? 토끼 같은 사람들이 많을까?

<자라바위 위의 소나무>

<자라바위 주변의 조개껍질>


   자라바위 앞에 요즘 생태체험어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원청리 노루미 독살이 있다. 청포대는 해수욕과 함께 독살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란다. 독살이란 남해의 죽방렴과 함께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엿보이는 전통 어업 방식 중의 하나로 바닷가에 활 모양으로 돌을 쌓아 놓은 후 물이 들어왔다 빠지면서 그 안에 갇힌 고기를 손이나 그물을 이용해 잡는 방법이다. 옛날에 독살 하나 가지고 있으면 부자 소리를 들었다는데, 새로 집을 짓고 길을 놓으면서 필요한 돌을 이곳에서 가져가 대부분의 독살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원청리(노루미)독살>


   솔모랫길은 해안길이면서도 해변으로 거의 들어가지 않는 길이다. 자라바위를 바다바람을 막아주는 병풍 삼아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곰솔이 우거진 숲속 산으로 들어간다. 수령이 오래된 노송과 해안사구를 따라 걸으며 몽산포해변까지 이어진 청포대해변을 다시 바라본다. 바람이 밀어대는 파도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진다. 곰솔 숲길을 넘으면 해풍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이 나와 여장을 풀고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전을 조금 일찍 마감한다.

<곰솔 숲길>


   마을 앞 도로에는 모래밭이나 산악을 달리는 사륜차들이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살기 좋은 마을 배나루꾸지를 지나면 신온리습지가 나온다. 신온리습지는 해안사구습지에 고인 물을 이용하여 주민들이 논으로 사용하다가 농촌일손 부족으로 논농사를 그만두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한다. 습지(濕地)는 홍수조절, 지하수함양, 오염물질 정화기능을 하며 큰잎피막이 큰기러기 황로 등의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그 가치가 높다.

<사륜차>

<배나루꾸지마을 표지석>

 <신온리 습지>


   습지를 지나면 신온리 염전이 나온다. 소금은 나트륨(Na)과 염소(Cl)가 결합된 화합물로서 무색무취하고 독특한 짠 맛이 있어 대부분 식품에 이용한다. 농경사회시절 농사지을 때 꼭 필요한 소[()]와 금()처럼 귀하다는 뜻에서 소금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외국에서는 소금이 아주 귀해서 소금(Salt)으로 월급을 대신 지불했다 해서 영어로 월급을 Salary라고 한다. 태양열과 바람 등 자연을 이용하여 생산하는 서해안 천일염은 다른 소금에 비해 미네랄 등 영양소가 훨씬 풍부하다.

 <신온리 염전-멀리 쥬라기공원이 보임>

 <신온리 염전>


   다시 길을 재촉하여 마검포해변으로 가지 않고 해발 20도 안 되는 산을 넘으니 멀리 드르니항과 안면도 백사장항을 연결하는 대하랑꽃게랑다리가 보인다. 마검포 남단에 위치한 한서대학교 태안캠퍼스에서는 경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이륙하고 착륙한다. 방조제 뚝방길을 지나 드르니해변에 당도한다. ‘드르니들르다의 순 우리말로 뱃길을 이용할 때 이곳에 오면 누구든 처음 들리는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온항으로 바뀌었다가 2003년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드르니해변>

 <드르니해변의 모래톱>

 <드르니항>


   드르니항은 규모가 작고 한적한 항구지만 운치 있는 바다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 같다. 부근에 새우 양식장이 많아 새우가 주산물이며 조개, 게 등 신선한 해산물과 호박고구마가 많이 난다. 바로 앞 건너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함께 백사장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201311월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잇는 250m 길이의 해상인도교가 건설되었다다리의 이름은 게와 새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하랑꽃게랑으로 정하였다.

 <대하랑꽃게랑다리> 


   백사장항이 있는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의 남쪽 끝으로 길게 뻗어 나와 천수만을 이룬 태안곶이었는데 조선 인조 때 이곳 감사였던 김유라는 사람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거둬들인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운송하는 뱃길을 새로 내어 지금 연육교가 들어선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창기리를 끊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되는 큰 섬이 되었다. 백사장항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대하(大蝦)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봄에는 드르니항의 쭈구미가 식욕을 돋구며 유혹한다.

<백사장항>


   오늘 여정이 조금 일찍 끝나 덤으로 서산시 간월도에 있는 간월암에 들러본다. 간월도(看月島)는 천수만 한 가운데에 있는 섬이었으나 천수만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화가 되었다. 간월도의 새끼섬에는 간월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간월암(看月庵)’달빛을 본다라는 뜻으로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빛을 보고 득도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크게 기여하였다. 어머니 등에 업혀 이곳에 들어오게 된 어린 무학은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공부를 하고 깨우침을 받았다고 한다.

<간월암>


   그래서 옛날에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로 불리다가 간월암이 되었고 섬 이름도 간월도로 되었다고 한다. 나옹스님은 그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하여 법명을 무학(無學)이라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이 새끼 섬은 하루 두 번씩 밀물과 썰물 때 30m 정도의 모래톱 길이 열려 섬과 육지가 된다. 바다 위의 작은 섬 간월도와 그 안에 있는 작은 절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간월도는 서산 어리굴젓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간월암 전경-2014년7월13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