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첫 번째-1)

와야 정유순 2018. 2. 27. 11:47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첫 번째-1)

(황지∼석포분천, 201822425)

瓦也 정유순

  낙동강(洛東江)낙양(洛陽, 상주의 옛 이름)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하여 얻은 이름이었고, 또한 상주에 있었던 가락국(駕洛國, 또는 고령가야)의 동쪽이란 뜻으로 낙동강이라고 부른다. 상주(尙州)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낙동강이다. 그래서 상주에서는 낙동강 칠백리라고 하는데 이는 상주에서부터 낙동강의 시발점이라 하고, 상류지역의 하천은 강()이 아니고 내성천, 반변천 등 내()로 표현했다고 한다.

<낙동강 전도>


   낙동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황지(黃池)를 비롯하여 태백시 함백산 천의봉 북동쪽 계곡의 너덜샘과 그 아래쪽의 용소(龍沼), 태백산 아래의 용정(龍井)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공식기록은 황지연못을 발원지로 인정한다. 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는 황지연못이 발원지라고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편에 따르면, 태백산 황지와 문경의 초점(草岾),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 동쪽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했다.

<태백산 용정>


   이른 조반을 하고 그래도 황지보다 상류에 있는 너덜샘을 보기 위해 기차역 추전역(杻田驛)을 경유한다. 싸리 밭이 많아 지명이 된 추전역은 태백시 화전동 해발 855의 고원지대에 위치하며 19731016일 태백선 철도가 개통되자 그해 1110일 역사(驛舍)가 신축되어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951월 여객 취급을 중지하였으며, 199812월 철도청이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환상선(環狀線) 눈꽃순환열차가 이 역에서 장시간 정차하면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추전역>

<추전역 철도>


   너덜샘은 함백산(1573) 천의봉(天衣峯)에서 발원하는데, 그 물이 지나가면서 황지의 연못을 이룬다고 주장을 하며 낙동강의 발원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태백시는 2003년부터 주민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너덜샘물을 관으로 연결하여 샘터로 활용하고 있었으나 2009년부터 물길이 끊겨 지금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강의 발원지(發源地)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멀고 일정량의 물이 일정한 온도로 항상 솟아나는 곳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너덜샘 표지석>


   서둘러 낙동강의 발원지로 공인된 연못 황지로 이동한다. 황지는 태백시 황지동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면서 낙동강 13백리 길의 물코를 터 드넓은 영남평야를 살찌우며 도도히 흐른다. 연못의 둘레가 약100인 상지(上池)와 중지(中池), 하지(下池)로 구분되며 1일 약 5,000톤의 물이 용출된다. 이곳에 살던 황부자가 시주를 청하는 노승에게 쇠똥시주를 하여 이에 천지가 진동하면서 집터가 연못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황지 표지석>

<낙동강 시작점>


   황부자의 집터가 있던 상지(上池) 앞에서 천지신명님께 낙동강 천 삼백리 길의 무운을 비는 고사(告祀)를 지낸다. “삼라만상을 두루 살피시는 천지신명님께 엎드려 삼가 고하나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낙동강을 찾는 우리에게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늘 강건한 힘을 주시옵소서. 오늘, 정성을 다해 음식과 술을 올리옵고 엎드려 고하오니 저희 모두의 뜻 부디 받아 주시옵고 흠향(歆饗)하시옵소서.”

<상지>

<고사>


   음복(飮福)을 마치고 황부자의 방앗간 터인 중지(中池), 통시 터인 하지(下池)를 돌아보며 연연세세 영원토록 맑은 물이 넘쳐나도록 기원하고, 태백 시가지를 빠져나와 황지연못이 흘러 내를 이루는 황지천을 따라 낙동강의 장도를 시작한다.

<중지>

<하지>


   태백시는 강원 남부 내륙에 있는 도시로 삼척시의 읍면으로 있다가 1930년대 이후 무연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작은 시골마을이 우리나라 최대 탄광도시로 발전하여 1981년 황지읍과 장성읍을 합하여 태백시로 승격하였다. 주 연료를 무연탄으로 사용하던 주탄종유(主炭從油) 시절에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부자도시였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석유나 천연가스로 연료정책이 주유종탄(主油從炭)으로 바뀌면서 석탄 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15만 명에 이르던 인구도 5만 명을 밑도는 도시로 되었다.

<태백시 황지동>

<황지천>


   고원관광도시로 새로 발돋움 하는 태백시에는 천제단(天祭壇)이 있는 태백산(1567m)과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가 있는 금대봉(金臺峰, 1418), 동쪽의 삼방산(三芳山, 1175m)과 연화봉(蓮花峰,1053m), 서쪽의 함백산(咸白山, 1573m) 등 연봉으로 둘러싸인 고원산지이다. 하천은 검룡소가 처음 내를 이루는 골지천(骨只川), 낙동강의 최상류인 황지천, 그리고 이곳에서 발원하여 삼척으로 흐르는 오십천이 있다. 그래서 빗물이 떨어져 튕기는 방향에 따라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운명이 바뀌는 삼수령(三水嶺)이 태백시에 있다.

<태백산>

<태백산 천제단>


   천변을 따라 나란히 나있는 제35호 국도를 걸어 남으로 향한다. 덜 녹은 얼음 위로 아이들은 얼음을 지치고 태백선 철도는 산을 뚫고 내를 건넌다. 겨울이 가는 소리인지 봄이 오는 소리인지 다리 밑의 고드름은 큰 기둥을 만들어 하늘로 솟는다. 마을을 지키던 서낭당(?) 같은 당집도 봄을 맞으려 기지개를 편다. 쉼 없이 걸어 도착한 곳은 탄광근로자들의 진폐증(塵肺症)환자를 주로 돌보는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앞이다.

<동심>

<위로 솟은 얼음>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언젠가 막장 TV드라마가 판을 친다고 사회적으로 여론이 비등할 때 이곳에 왔더니, ‘막장이란 말을 말도 안 되는 불륜이나 퇴폐적인 것에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당시 탄광근로자는 열을 올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막장이란 갱도(坑道)의 가장 막다른 곳을 가리키는데 그곳은 생과 사가 한 순간에 넘나드는 공간으로 가장 신성해야 할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막장이란 말을 함부로 쓴 다는 것은 막장근로자들을 모욕하는 언사란다.

<황지천 나무다리>

<태백시 고원체육관>


   태백시 장성동 재래시장은 오늘이 장날인 가 보다. 전방 앞에는 각종 봄나물 등이 봄소식을 전한다. 의외로 산중의 깊은 고원도시임에도 싱싱한 미역 등 수산물이 눈에 많이 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그 화려했을 시장골목은 나이 드신 아낙들이 대부분이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서 자리를 잡고 맛있게 오전을 마무리 한다.

<황지천과 나란히 가는 35호 국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 19342월호 <문학>지에 발표된 김상용(金尙鎔)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다. 배낭을 짊어지고 산도 아니고 강 따라 걷는 형색을 보고 장성시장의 노파는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낙동강 따라 남으로 떠나는 나그네는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태백선 철교 밑으로 행군>


   옛날에 석탄을 운반하던 산 공중의 케이블은 새롭게 곤드라로 변신하여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한참 후에 구문소 앞에 당도한다. 구문소 지역은 한반도 고생대(5억 년 전3억 년 전)의 지질사를 잘 알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고생대의 바다에서 생성된 석회암층에 나타나는 다양한 퇴적구조와 삼엽충(三葉蟲) 등의 화석들이 잘 보전되어 있어 당시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 지역으로 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지질과학 체험현장이다.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

<구문소 입구 층리대>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을 비켜서 구문소 위에 있는 자개루(子開樓)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 구문소로 내려온다. 구문소(求門沼)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솟아난 황지천이 이곳의 암반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을 만들고 소()를 이루었다 하여 구멍소또는 구문소라 부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헌에는 구멍이 뚫린 하천이라는 뜻으로 천천(穿川)으로 기록 되었다 하며,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 내(뚫은 내)’라는 이름도 있다.

<자개루>


   조선조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산경표(山經表)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하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되어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지 못 한다는 원리처럼 비록 산은 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산 밑으로 구멍이 뚫려 낙동강의 1,300리 길을 열어준다.

<구문소>


  구문소의 생성원리는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이곳의 단층선을 따라 활발한 침식작용을 진행시키던 중 지하에 생성되어 있던 동굴과 관통되어 물이 흘러들면서 동굴을 점차 확장시켜 하천이 산을 뚫고 흘러가는 자연동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황지천으로 흐르던 물이 자연동굴 속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사군드리마을로 흐르던 곡류하천은 퇴각되어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구하도(舊河道)가 되었다.

<사군드리 구하도 설명문>


   구문소 안쪽 절벽에는 五福洞天子開門(오복동천자개문)’이라는 글이 암각 되어 있다. 이는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갈 때 구문소 석문이 나오는데, “자시(子時, 오후11오전1)에 열렸다가 축시(丑時, 오전13)에 닫히므로 열린 시간에 통과하면 흉과 화가 없고 재난과 병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상향이 태백이라 표시한 것이란다. 이 글씨는 무진(戊辰)년인 1988년 정월 초에 태백의 향토사학자인 김강산이라는 사람이 새겨 넣었다고 한다.

<구문소안의 '오복동천자개문'>


   김강산(68)이 글을 새기던 1988년 구문소 아래는 시커먼 탄천(炭川)이었다고 한다. 하수종말처리시설도 없던 시절에 탄광폐수도 함께 흘렀다. 그러나 그는 때가 되면 여기가 보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계당국이나 매스컴까지 구문소 석벽에 새겨진 글자를 태고 적부터 있던 신비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포장한다고 한다. 구문소 안내판 어디에도 김강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조선일보 2018. 1. 31A18면 박종인의 땅의 역사 태백 구문소의 비밀과 오복동(五福洞)’에서 인용>

<구문소 안의 얼음>


   정감록(鄭鑑錄)에서 정한 십승지 중의 한 곳인 태백의 구문소 안에서 빠져나와 다시 낙동강 따라 남으로 길을 나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점역(銅店驛)이 나온다. 석탄가루 날릴 때는 영주역과 동해역으로 가는 무궁화열차가 정차할 정도로 꽤나 북적거렸을 동점역이 지금은 여객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으로 되었다. 이 역은 철암역에서 내려오는 급경사지역으로 유사시 기차가 피할 수 있는 피난선과 안전측선이 설치된 우리나라 유일한 역이라고 한다.

<동점역>


   물 따라 몇 구비 돌고 돌아 강원도 태백시 구소문동과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이 만나는 경계지점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큰 장승이 반긴다. 그리고 비록 조형물이지만 반달곰 한 쌍이 앞발을 들어 인사도 한다. 경계를 금방 넘기가 아쉬워 숨을 고르고 한 10여 분 걸어가니 육송정(六松亭)이 나온다. 황지천과 송정리천이 만나는 육송정 삼거리까지가 황지천이고, 그 하류는 드디어 낙동강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장승>

<반달곰 조형물>

<강원-경북 도계>


   육송정의 여섯 그루 소나무는 뵈질 않는다. 몇 백 년 묵었을 금강소나무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 할 때 뗏목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고 그 자리는 썰렁하다. 지금은 경복궁 어느 전각 기둥이 되었는지송정리천의 이름도 육송정의 이름 영향인 것 같다. 낙동강변의 잔설이 녹으며 흐르는 물소리는 봄의 소리 왈츠다. 버들강아지 눈망울은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바람에 흔들린다. 봄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즐겁게 도착한 석포역은 동짓달 그림자보다 더 길게 늘어진다.

 <육송정>

  <석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