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민족의 영산 태백산(太白山)

와야 정유순 2018. 1. 8. 04:25

민족의 영산 태백산(太白山)
(2018년1월6일)

瓦也 정유순

  태백산(太白山)∼! 민족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태백산을 찾기 위해 태백산국립공원 유일사주차장에서 장구(裝具)를 점검하고 태백산 천제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산 입구부터 전에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 하얀 밝은 세상을 눈이 부시게 보여준다. 큰 밝은 세상이 이곳에 있어서 새해 벽두부터 많은 사람들이 정기(精氣)를 받고자 경향 각지에서 산악인들이 다 몰려온 것 같다. 

<태백산 유일사 탐방로 입구>

 

  태백산은 1989년 5월 1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다가 2016년 8월 우리나라 22번째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수천 년간 제천의식을 지내던 천제단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등 풍부한 문화자원과 야생화 군락지인 금대봉∼대덕산 구간, 장군봉 주변의 주목 군락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 등 다양하고 뛰어난 생태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0m)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1,567m) 동쪽에 문수봉(1,517m)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최고봉은 함백산(1,572m)이다.

<태백산으로 연결되는 연봉들>


  뽀드득 눈 밟히는 산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치달아 숨이 가빠진다. 다행이 습기가 적은 눈이라 발바닥에 들어붙지 않아 아이젠을 부착한 신발이 덜 불편하다. 많은 인파에 휩쓸려서 그런지 속도가 좀 더디기는 하지만 오늘의 산행은 비교적 기운이 솟는다. 한참을 정신없이 올라가다보니 유일사 앞을 지나고 있으나 대열에서 낙오(落伍)될까봐 유일사는 들르지 못했다.

<태백산 올라가는 길>


  유일사(柳一寺)는 태백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사찰로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란 사람이 백일기도를 하던 중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아 창건하게 되었다. 시설물로는 법당, 인법당,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고 하며, 1889년(고종 26) 제작된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의 초본(草本; 밑그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태백산 유일사 전경-네이버캡쳐>


  유일사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주목군락지가 나온다. 주목(朱木)은 높은 산의 숲 속에 자라는 키 큰 침엽수로 태백산과 소백산의 양백산(兩白山)에 많이 분포하여 군락을 이룬다. 가지는 넓게 퍼지며 굵은 가지와 줄기가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주목(朱木)이라고 부른다. 정원수로 많이 사용되며 목재 재질의 탄력성이 좋아 바둑판이나 가구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붉은 열매는 씨가 한가운데에 움푹 페인 연한 과육(果肉)에 둘러싸여 있다.

<태백산 주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지낸다는 주목군락지의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점을 골라 앉아 미리 준비한 김밥으로 성대한 오찬을 한다. 흰 눈이 쌓인 태백산에서 주목이 병풍을 친 풍경은 틀림없는 성찬(聖餐)의 모습이다. 겨울 찬바람도 조용히 잦아든다. 화석(化石) 같은 단단한 재질의 주목의 모습은 이곳의 전설과 신화를 모두 가슴에 담아두고 말이 없다.

<태백산 주목>


  더 위로 올라갈수록 찬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그러나 센 바람이 아니고 겨울바람치고는 아주 부드러운 바람이다. 마지막 고개를 넘어 오르니 태백산 장군봉이다. 태백산(太白山, 1,567m)에는 천제단(天祭壇)이 있다. 천재단은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제단이다. 만들어진 시기나 유래 등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 등 옛 서적들은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삼산오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 등으로 보아 태백산을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진 것 같다.

<태백산 장군봉>


  태백산 정상에는 3기의 천제단이 있는데, 정상 아래에 위치한 천왕단(해발 1,560m)을 중심으로 북쪽 정상에 장군단(해발 1,567m), 남쪽에는 규모가 보다 작은 하단(下壇)이 있으며 돌을 쌓아 신역(神域)을 이루고 있다. 장군봉에 있는 장군단(將軍壇)은 둘레 20m, 높이 2m의 타원형으로 천왕단에 비해 규모가 조금 작으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태백산 장군봉 장군단>


  장군봉 장군단에서 태백산 표지석이 있는 천왕단까지는 남쪽으로 약300m의 지점에 비교적 평탄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천왕단(天王壇)은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폭 7.36m, 앞뒤 폭 8.26m의 타원형 계단을 자연석으로 쌓았다. 돌로 만든 단이 아홉 단이라 하여 9단 탑이라고도 불린다. 매년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드는데 중앙에는 한배검이라고 붉은색으로 음각된 비석이 있다.

<태백산>


  한배검[天祖神]은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의 삼대권능을 두루 다 갖춘 대종교(大倧敎)의 신관(神觀)을 이루는 기본사상으로 우리 민족의 시조신이다. 한배검의 사상은 나누면 셋이요, 합하면 하나라는 신의 자리가 정해지고, 이들은 항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며, 불가분의 관계로 우주만물을 지배하게 된다. 즉, 1은 3의 몸이 되고, 3은 1의 작용이 된다는 것이다. 삼신을 섬기는 일, 단기(檀祈:댕기)드리는 일, 저고리에 동정을 다는 일 등은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된 풍습이라고 한다.

<태백산 천제단(천왕단)>


  즉,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삼신이 점지한 것이라고 하여 삼줄을 매달아 표시한다. 단기(댕기)는 아기가 난 지 사흘이면 머리털에 색실로써 매는 것인데, 한배검에게 명과 복을 비는 것이라 하여 단기를 ‘맨다’라고 하지 않고 ‘드린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한배검이 내려온 백두산(한울메)을 기리고자 누구나 웃옷의 깃 위에 흰 동정을 달아” 입는다.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

<태백산 천왕단의 한배검>


  3기의 천제단 중 남쪽에 있는 하단(下壇)을 보지 못하고 망경사 쪽으로 내려온다. 눈길을 더듬으며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단종비각이 바로 나온다.
  단종비각(端宗碑閣)은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전 한성부윤 추익한(秋益漢, 1383년∼1457년)이 머루 다래를 자주 진상하였는데, 어느 날 꿈에 산과일을 진상 차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 차림의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나 이상하게 여겨 영월에 도착하니 단종이 그날 세상을 떠났다. 추익한도 이를 애통히 여기다 절명하였다고 한다.

<태백산 단종비각>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 주민들이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여 산신령으로 모시기로 하여 매년 9월 3일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지금의 비각은 망경사 박묵암스님이 건립하였으며,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쓴 비문이 안치되어 있다. 비문과 현판은 오대산 월정사 탄허(呑虛)스님의 친필이다.

<태백산 단종대왕 비>


  그리고 바로 옆에는 망경사(望鏡寺)라는 절이 있고, 용정(龍井)이 있다. 망경사는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652년(진덕여왕 6)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에서 말년을 보내던 자장율사가 이곳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절을 짓고 석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뒤의 역사는 미상이며, 6·25 당시 불탄 것을 현 주지의 노력으로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샘이 있는 용왕각(龍王閣), 요사채·객사 등이 있다.

<문수보살과 망경사>

  용정은 옛날부터 천제(天祭)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70m)에 위치한 샘은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우리나라 100대 명수 중 으뜸에 속한다고 한다. 샘에다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게 제를 올린다고 해서 이름도 용정(龍井)이며, 이곳에서 용출하는 물은 낙동강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용정의 조형물은 ‘황하의 등용문을 거친 잉어가 용이 되듯, 낙동강의 잉어가 올라와 구문소를 거쳐 이곳에 이르러 용이 되어 모든 이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망경사 용정>


  반재를 지나 당골로 접어들면 단군성전(檀君聖殿)이 나온다. 전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 안에는 단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해마다 개천절에 단군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곳에 단군성전이 세워진 이유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 까지 천제단에서 천제를 올리지 못하게 되자 태백산 자락의 봉화군 물야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우성조선생이 태백시민과 봉화군민을 설득하여 방치된 천제단을 정비하고 천제를 봉행하였다고 한다.

<태백산 단군성전-네이버캡쳐>


  이후 우교장이 대종교에 입교하자 종교적인 갈등이 빚어졌고 대종교 중심의 국조단군봉사회(國祖檀君奉祀會)가 조직되어 성금으로 1982년 단군성전을 따로 짓고 개천절인 10월 3일 별도로 천제를 지내고 있으며, 태백산 천제는 1990년부터 태백시 단독으로 지낸다고 한다.

<단군영정-네이버캡쳐>


  단군성전 아래 당골광장에서는 눈꽃축제에 전시될 눈 조각 만들기가 한창이다. 태백산 여러 곳에 있는 토속신앙의 기도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은 태백시 소도동(所道洞) 속칭 당골에 있는 산신당으로 당골이라는 명칭도 신당이 있다는 데서 연유하여 생긴 것이다. 당집은 1970년대 태백산 내에 있는 토속신앙을 정화할 때 헐렸고, 신당자리에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새해 벽두부터 태백산의 정기를 제대로 받았는지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음도 몸도 가볍다.  

<당골광장>

<당골광장 눈 조각 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