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밑여행 곡성(谷城)

와야 정유순 2018. 1. 4. 04:13

세밑여행 곡성(谷城)

(20171230)

瓦也 정유순

   2017년 정유년(丁酉年) 세밑 섣달 30일에 경남 고성과 통영을 가는 길에 섬진강 물 따라 전남 동북부에 위치한 곡성에 들러 가는 해를 뒤돌아본다. 곡성(谷城)은 천혜의 자연과 순후한 인심을 바탕으로 예부터 ’()’()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의절(儀節)의 터로 불리고 있으며, 전형적 농촌과 산촌으로 구성된 곡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장수벨트인 구···(求谷淳潭 : 구례곡성순창담양)의 중심축에 자리 잡고 있다.

<곡성군 지도>

   어젯밤 늦게 내려와 남도 음식에 고향 맛을 더하는 곡성 터미널 부근 식당에서 해 뜨기 전 조반을 마치고 곡성읍의 서쪽에 자리한 동악산도림사(動樂山道林寺)를 찾아 간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안개로 세면하는 동악산(735)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골짜기가 깊고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산세는 범상치 않다. 동악산 계곡은 연중 마르지 않는 계곡 물로 바위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동악산 계곡>


   도림사는 신라 때 무열왕 7(660)에 원효대사가 사불산 화엄사로부터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헌강왕 2(876)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라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지환대사가 3창을 하였으며,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이 절을 후원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신덕사(神德寺)로 부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동악산도림사 일주문>

<도림사 중문>


   이 절을 세울 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하며, 곡성 고을 사람 중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기우제를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지내면서 술에 취해 흥겹게 가무를 해야 하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넓은 암반에는 조선시대 이래 근세에까지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흔적을 글씨로 새겨놓았다. 동악산도림사 계곡은 전라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도림사 보광전>

<동악산 계곡>

<음각된 주자의 시>

<구 한말의 선비들 이름>


   지난여름의 무거운 잎들을 다 떨어내고 까마귀 울음소리에 나목들은 소소한 바람결에 맞춰 춤을 추는 계곡을 따라 동악산 오솔길을 더듬는다. 흐르던 물도 가는 세월이 아쉬운지 잠시 소()를 이루어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구멍을 뚫었는지 사람이 뚫었는지 분간이 안 가는 확이 입을 딱 벌린다. 너럭바위 위로 펼쳐진 동악산 계곡은 하늘도 내려와 춤을 출 만하다. 자연의 풍악소리 뒤로하고 옥과면에 있는 설영산성륜사(雪靈山聖輪寺)로 이동한다.

<확 바위>

<하트바위>


   동악산이 곡성의 진산(鎭山)이라면 설영산으로도 불리는 설산(雪山 553)은 옥과(玉果)의 진산이다. 설산은 전북 순창과 전남 옥과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정상부에 있는 넓은 암벽이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설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옥과는 원래 독립된 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곡성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설영산 성륜사 일주문>


   성륜사는 1990년에 청화(淸華, 19242003)선사가 설영산 자락에 창건한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성륜불교문화재단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찰이다. 원래 옥과미술관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남종화(南宗畵)의 대가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62014)이 청화선사에게 10만평의 땅과 건물을 시주하면서 성륜사의 역사가 시작되어 2017년에는 전통사찰로 인증 받았다고 한다.

<성륜사 전경>


   1947년 불교에 귀의한 청화선사는 전남 무안출신으로 속명은 강호성(姜虎成)이고, 청화는 법명이다. 광주사범학교와 일본메이지(明治)대학에서 수학한 뒤 장성의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金陀)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한국 불교 사상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안거를 한 뒤, 1995년까지 미국 최초의 한국 사찰인 삼보사에 주석하면서 대중을 위한 법회를 열어 선 수행에 관한 도리를 설파하였다. 48년을 한 결 같이 토굴 속에서 묵언과 좌선으로 일관하는 등 구도의 삶을 실천한 당대의 선승으로 꼽힌다.

<금타스님(좌)과 청화스님(우)의 승탑과 비>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을 모신 금강문을 지나면 안심당(安心堂)과 육화당(六和)이란 한옥 건물이 나온다. 금강문은 미국에서 수입한 홍송(紅松)을 사용해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인 목조각장 박찬수께서 지었으며, 안심당과 육화당은 1920년대 건축물로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 마당에는 비석 같은 돌 조각품이 있는데, 가운데에는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문양의 뜻은 삼라만상을 구성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은 모두 공()’이라는 뜻이란다.(아래에서부터 위로)

<성륜사 금강문>

<지수화풍공 비석>


   어느 마을 고샅길 같은 길을 따라가면 문살이 예쁜 대웅전이 나오고 대웅전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청화스님이 주석하던 조선당(祖禪堂)이 나온다. 청화스님이 떠난 조선당은 큰 스님을 그리워하는 발길만 뜸할 뿐 마당의 연못은 한가롭다. 조사당 옆의 청화스님과 스승인 금타스님의 승탑과 탑비는 웅장하고 화려하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게 부조화를 이룬다. 더욱이 청화스님이 일본유학을 해서 심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금송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

<성륜사 대웅전>

<대웅전 문살 무늬>

<조선당>

<조선당 연못>

<일본 금송>


   이런 염려를 미리 알아채신 것인지 돌아 나오는 금강문 앞에는 삼가 청정 대중에게 고함[謹告淸衆(근고청중)]”이란 알림판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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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淸衆(근고청중 : 삼가 청정 대중에게 고함)


生死事大(생사사대 :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無常迅速(무상신속 : 덧없는 세월은 빨리 가버리니)

寸陰可惜(촌음가석 :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愼勿放逸(신물방일 :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


 <근고청중>

오전을 마무리하기 전에 옥과향교(玉果鄕校)에 들러본다. 향교는 성균관(成均館)의 하급 관학(官學)으로서 유학(儒學)을 가르치는 지방 교육기관이다. 옥과향교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392(태조 1)으로 추측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55(영조 31) 풍수설에 따라 당시 현감인 송명흠에 의해서 설산(雪山) 아래로 옮겼다고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明倫堂)을 앞에다 두고 공자와 선현(先賢)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을 뒤쪽의 높은 곳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옥과향교>

<명륜당>


   오후에는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있는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로 이동한다. 태안사 주차장 아래에는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 죽형 조태일(竹兄 趙泰一, 19411999)시문학기념관이 있다. 조태일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船舶)>이 당선되어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등단 초기부터 <나의 처녀막(15)> <국토(130)> 등 연작시를 발표하여 현실의식이 강한 시를 써 오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노래하고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안내> 

<조태일 약력>


   특히 삶의 순결성을 파괴하는 제도적인 폭력에 맞서서 쓴 <식칼론>은 시대적 삶에 대응하는 시인의 자세와 역사의식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여기서 식칼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도구로서,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남과 공유하는 무기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밖에 평론과 평론집 <살아 있는 시와 고여 있는 시(1979)> 등을 발간하여 편운문학상, 전라남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태안사는 한 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화엄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 1(742)에 하허삼위신승(何許三位神僧)이 창건하였고, 고려 태조 2(919)에 윤다(允多)132칸을 중창했으며, 개산조(開山祖)인 혜철국사(慧徹國師)가 이 절에서 법회(法會)를 열어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중심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동리산문>


   동리산의 지금 이름은 봉두산(鳳頭山, 754)으로 정상을 경계로 하여 동쪽으로는 순천시 황전면이고, 태안사가 있는 서쪽은 곡성군 죽곡면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에는 동리산(桐裏山 도는 桐裡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산세의 정상이 봉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두산으로 불렀다는 설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봉두산으로 변화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봉황이 오동나무 숲속에서 서식하는데 태안사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또는 ]처럼 아늑해서 동리산(桐裏山)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동리산 계곡>

<동리산 태안사 가는 길>


   동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양 언덕에 기둥을 걸치고 다리역할을 하는 능파각(凌波閣)이 인상적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계곡 양축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통나무로 보를 만들어 바닥을 깔았다. 그리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그 흔한 석탑이나 석등이 보이질 않고, 절 밖 연못 가운데에 3층 석탑을 세워 놓았다. 광자대사 윤다와 적인선사 혜철의 부도비가 화강암을 손으로 떡을 주무른 것처럼 정교한 손놀림이 눈길을 끈다.

<능파각>

<태안사 대웅전>

<승탑 군>

<적인선사탑>

<태안사 연못과 3층 석탑>


    태안사 경내에는 한국전쟁 때 순천에 주둔 중인 북한군 603기갑연대를 압록교 부근에 매복하여 섬멸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으나, 195086일 새벽 작전지휘부가 있는 태안사를 북한군이 기습공격 하여 우리 경찰관 48명이 격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태안사도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때 순국한 경찰관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5년에 세운 충혼탑이 우뚝 서있다.


<경찰 충혼탑>


   태안사에서 조태일시문학기념관 까지 연결되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와 840호 지방도로 옆에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927)의 것으로 보이는 <壯節公太師申先生靈蹟碑(장절공태사신선생영적비)>가 있는 비각이 어느 가게 뒤편에 초라하게 서있다. 신숭겸은 곡성출신으로 아명은 능산(能山)이며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개국의 대업을 이뤘으며, 대구의 팔공산에서 견훤의 군대에게 왕건이 포위되자 그를 구하고 전사했다. 평산 신 씨(平山申氏)의 사성(賜姓)을 받고 시조가 되었으며 묘는 강원도 춘천에 있다.

<신숭겸 비각>

<장절공태사신선생영적비>


   태안사에서 곡성군 죽곡면 고치리로 나와 보성강변을 걷는다. 보성강(寶城江)은 보성군에 있는 일림산(溢林山, 664m)에서 발원하여 동북으로 흐르다가 곡성의 압록(鴨綠)에서 섬진강과 합류하여 물살이 센 여울을 만들어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섬진강의 제1지천이다. 유로연장 120.3로 상류에는 보성강댐이 있어 수력발전과 득량만(得粮灣) 연안 간척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중류에는 주암다목적댐을 조성하여 광주 여수 광양 등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보성강>

<보성강 하류>


  강변에 일손이 모자라 미처 따지 못한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인을 기다리는데 너무 많아 까치도 외면하는지 서리 맞은 채 세월이 그 자리에 그냥 서있다. 손을 뻗어 닿는 곳의 감을 따서 한 입 물었더니 꿀이 따로 없었다. 홍시 되어 말랑말랑할 것 같아도 입안에서 씹히는 맛은 쫄깃하다. 잠시 동심에 젖어 가볍게 걷는 동안 몸은 벌써 압록(鴨綠)의 섬진강 합류지점에 다다른다.

<서리 맞은 감>

<보성강 하류 징검다리> 


   섬진강변 압록지역은 넓은 백사장과 맑고 수심이 얕은 깨끗한 강물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보성강 하류에서는 붕어와 잉어, 메기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의 손맛을 자극하고, 섬진강에서는 참게와 은어가 많이 잡혀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는 입맛을 자극한다. 압록유원지가 있는 합수부 위로는 압록교와 전라선 철교가 나란히 강을 가로지른다.

<섬진강-보성강 합수부, 다리 밑이 보성강>


   압록사거리에서 구례읍 계산리로 연결되는 예성교를 통해 섬진강을 가로 질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해는 서산마루로 얼굴을 감추고 곡성섬진강천문대 간판에는 이미 불빛이 밝았다. 가정 기차마을로 연결되는 출렁다리에도 세밑 불빛이 반짝인다. 진안군 대미샘에서 발원하여 임실군의 옥정호에 잠시 머물다가 순창과 남원을 거쳐 세월의 여울을 만들어 섬진강 530리길 여정은 쉼 없이 계속 흐른다.

<섬진강 출렁다리 전경>

<섬진강 출렁다리>

<섬진강의 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