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을 걸으며(8-2코스)
(정릉∼북한산생태공원, 2017년 11월 9일)
瓦也 정유순
일기예보에는 갑자기 한파가 몰려온다는 예보에 긴장이 된다. 더 두꺼운 옷으로 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으나 생각보다는 그리 춥지 않았다. 당초 계획은 8-2코스 구간을 불광동 북한산자연생태공원에서 출발해야 하나 접근성이 용이한 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버스로 정릉에 있는 북한산탐방지원센터로 이동하여 가볍게 몸을 풀고 가을 물이 듬뿍 들은 북한산둘레길 5구간 ‘명상길’로 접어든다.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
<북한산 명상길 입구>
옛날 ‘청수장’으로 더 유명했던 정릉은 건물과 가옥들로 꽉 들어차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1396) 강씨(康氏)의 능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 능지(陵地)는 서울 중구 정동(貞洞)이었으나, 세자 책봉 문제로 태종 이방원과 사이가 아주 나빠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져 지금의 동명(洞名)이 되었다. 그리고 홍수로 허물어진 청계천의 광교를 복원할 때 능의 석물들을 사용하여 피폐해 있다가 1669년(현종10년) 송시열의 주청으로 종묘에 배향되었다고 한다.
<정릉-네이버캡쳐>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6.922㎢로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나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화강암 지반이 침식되고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곳곳에 깎아지른 바위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이루고 있다.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이 위치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역사·문화에 대한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북한산 능선>
북한산둘레길 남쪽구간은 서울둘레길 8코스와 겹쳐 있어 이정표가 동시에 표시되어 있다. 명상길로 접어들자 가파른 계단이 처음부터 힘이 들어가게 한다. 낙엽이 진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 형제봉이 종종 얼굴을 내미는데, 나무에 가려 사진은 찍지 못했다. 형제봉은 두 봉우리의 높이가 엇비슷하고 연이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큰 형제봉(463m)의 높이가 작은 형제봉(461m) 보다 조금 높으나 전망은 작은 형제봉이 더 좋다고 한다.
<명상길 올라가는 계단>
군사보호시설로 엄격하게 보호되다 개방된 북악하늘길과 연결되는 형제봉삼거리에서 평창동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작은 암자 하나가 있고, 그 앞에는 ‘나무미륵대불’이라고 한글로 음각된 큰 바위가 나온다. 그리고 그 글씨 옆에는 십자가 표시가 그려져 있다. 바위는 그 자리에서 내내 말이 없는데 미륵대불과 십자가가 애꿎은 자연에 상처만 안겨 준 것은 아닌지…?
<나무미륵대불 바위>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들은 익을 대로 익은 만추(晩秋)의 맛을 만끽 하며 미륵대불 아래로 내려오면 스탬프부스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탕춘대 성암문 입구까지 이어지는 평창마을길이다. 평창동(平倉洞)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속하는 동으로, 동 이름은 조선시대에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1914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恩平面) 평창리(平倉里)에 속하였고, 1949년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 1950년 평창리에서 평창동으로 바뀌었으며, 1975년 서대문구에서 종로구 관할로 되었다.
<평창마을길 입구>
오르막길을 따라 막 돌아서면 대승불교 본원종 삼각산연화정사(三角山蓮花精舍)가 나온다. 대승불교는 만인의 구제를 내세우는 불교로 석가모니를 초월자로 신격화하였으며 부처의 자비에 의한 중생의 구제를 강조한다. 본원종은 불교의 한 종파로 1989년 9월에 창종(創宗)하였다고 한다. 연화정사에 관한 설명문이나 안내문을 찾으려고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갔으나 안의 문은 닫혀 있어 찾지 못하고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평창동의 마을이 한가롭다.
<삼각산 연화정사>
<연화정사 극락보전>
평창동 윗길을 돌아 구기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옆에는 청련사(靑蓮寺)라는 절이 있다. 청련사는 1989년 5월에 창종된 대한불교조동종(大韓佛敎曹洞宗)의 소속이다. 대한불교조동종의 종조는 당나라에서 조동종 개산조사인 동산양개(洞山良价) 선사이며, 중흥조는 이엄진철(利嚴眞徹) 선사이다. 수행법은 묵조선(黙照禪)으로 묵묵히 좌선(坐禪)하여 영묘(靈妙)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선풍(禪風)으로 하는 수행법이다.
<조동종 청련사>
평창동마을 높은 곳으로 길이 나있어 아래로 굽어보는 시각적인 효과는 만점이다. 가끔 한옥 와가(瓦家)도 보이지만 주로 서양식 건물로 들어차 마치 어느 외국의 부자(富者)마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건물 형태도 각 가옥마다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종교건물도 불교와 기독교의 문화가 혼재하는 마을이며, 보현산신각 등 우리 토속신앙도 함께 한다. 이 지역은 별도로 시간을 내어 꼼꼼히 살펴보았으면 한다.
<평창동 전경>
<평창동 갤러리>
<평창동 카페>
<평창동 주택>
<평창동 주택>
평창동을 지나면 바로 종로구 구기동이다. 구기동(舊基洞)은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 상평방 내 구텃굴이었으나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마을이름이 구기동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기(舊基)’는 무엇에 대한 옛터인지 그 연원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이북5도청사로 들어가는 비봉로 입구에서는 북한산 비봉(碑峰, 560m)이 바로 눈앞이다. 그리고 구기터널 입구에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있다.
<북한산 비봉>
한국고전번역원(韓國古典飜譯院)은 고전문헌을 수집·정리·번역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1965년 서울에서 교육부 산하 고전국역단체로 설립되었으며, 2007년 11월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문과 예술로 민족 얼을 부흥시켜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게 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크게 민족문화를 앙양시킨다”는 취지 아래 발족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연보호캠페인을 왔던 구기천은 이미 복개가 되어 자동차가 왕래한다. 구기천길을 따라 조금 가면 북한산둘레길 7코스인 옛성길 입구가 나온다. 옛성길 입구에서 다시 가파른 계단을 타고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달랜다. 능선 마루에는 탕춘대성(蕩春臺城)이 이어지고 성벽 중간에는 성암문이 나온다.
<옛성길 입구>
탕춘대성은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서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성을 탕춘대성으로 부르게 된 것은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지금의 세검정에서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산봉우리(현 세검정초등학교)에 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한 탕춘대성은 북한산 비봉까지 약5.1㎞에 달하였으나 홍수 등으로 일부 구간이 무너지고 방치되다가 1977년 홍지문과 함께 일부 구간이 복원되었다.
<탕춘대성 성암문>
성암문을 빠져나와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보현봉·문수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시야를 환하게 한다. 이 전망대는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로 선정된 곳이다. 눈으로 보이는 봉우리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이름도 한번 불러본다. 능선에서 불광동 장미공원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다. 진흥로 길 건너 북한산생태공원 뒷산의 족두리봉은 오후의 햇살에 가을이 물씬 여물어간다.
<조망명소에서 본 북한산 능선>
<쪽두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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