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울둘레길을 걸으며(7-1, 봉산코스)

와야 정유순 2017. 9. 16. 00:00

서울둘레길을 걸으며(7-1, 봉산코스)

(가양역봉산(구산역), 2017914)

瓦也 정유순

   가양역은 서울지하철 9호선 역으로 강서구 가양동(加陽洞)에 있어서 얻어진 이름으로 20097월에 개업하였다. 가양동은 조선 때 양천현(陽川縣)의 가마동(加麻洞)()’와 고양리 고양리(古陽里)()’자를 따서 가양리가 되었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가양동이 되었으며, 1977년 강서구가 신설되면서 편입되었다. 가양동은 양천 허 씨(陽川 許 氏)의 발상지이고, 조선의 명의 허준(許浚, 15391615)의 생가 터와 허준공원이 있으며 양천향교(陽川鄕校)가 있다.

<가양역>


   오늘 코스의 출발지인 가양대교 입구에서 스템핑을 한 후 강양대교를 건너간다. 강양대교는 강서구 가양동과 마포구 상암동을 잇는 다리로 길이는 1700m이며, 너비는 1629m(4차선·6차선)이다.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가 최대 180m, 강상판 상자형교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한강하구가 넓게 펼쳐져 있고, 강변 우측으로는 덕양산이 우뚝하다.

<가양대교 입구>

<가양대교>


   덕양산(德陽山, 125)은 낮은 산이지만 서울의 외사산(外四山)이다. 한양도성은 좌청룡(左靑龍)인 낙산(),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 전주작(前朱雀)인 남산(), 후현무(後玄武)인 북악산()을 잇는 성으로 되어 이를 내사산(內四山)이라 하였고, 외사산은 내사산을 에워 싼 외곽의 산으로 동쪽의 용마산, 서쪽의 덕양산, 남쪽의 관악산, 북쪽의 북한산을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둘레길은 이 산들의 연결점이며, 서울의 경계를 거의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양 외곽의 방어기지로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덕양산과 방화대교>


   또한 덕양산은 일명 행주산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행주대첩(幸州大捷)이 있었던 곳으로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당시 부녀자들이 앞치마를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석전(石戰)으로 왜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며, 이때부터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산에는 대첩비가 세워져 있으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라는 이름도 이 산에서 따왔다.

<행주대첩비-2015년11월29일 촬영>


   가양대교 북단 교각 아래에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고, 자전거 주행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가양대교 북단에서 우측으로는 월드컵공원이 바로 펼쳐진다. 월드컵공원은 쓰레기매립장으로 쓰이던 난지도를 개발하여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난지도(蘭芝島)는 옛날부터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자라고, 맑고 깨끗한 물에 고기들이 풍부해 가을이면 고니 등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오던 자연의 보고였으며,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평지의 밭이었다.

<가양대교 북단 운동시설>


   그러다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 동안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쓰레기를 비위생적으로 매립하면서 꽃도 사라지고 철새도 외면하는 죽음의 땅이 되고 말았으며, 높이도 국제규격인 45까지 계획했으나 마땅한 매립지가 없어 계속 매립하다보니 해발 100에 이르는 두 개의 쓰레기 산으로 변하였다. 쓰레기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침출수와 악취, 유해가스가 난무하여 사람이 접근하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88서울올림픽 때 외국인 관광객들은 강 건너 올림픽도로를 달릴 때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였다.

<난지생태습지원>


   이렇게 영원히 버려질 것 같았던 난지도가 되살아나고 친환경적공원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것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치밀한 계획으로 안정화공사 등 환경복구 노력을 해온 결과와 함께 수풀이 스스로 자라면서 각종 동·식물이 자리를 잡아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 덕분에 월드컵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안정화공사는 2020년까지 계속된다. 월드컵공원에는 노을공원하늘공원난지한강공원난지천공원평화의 공원이 있으며, 이중 난지도 매립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다.

<노을공원-2017년4월5일 촬영>

<하늘공원-2017년4월5일 촬영>


   난지생태습지원 구간을 지나면 좌측으로 노을공원 가는 길이다. 노을공원은 난지도 제1매립지에 들어선 공원으로 9홀 규모의 골프장이 들어섰으나 반대여론에 밀려 다시 가족공원으로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다른 공원보다 개장이 3년 정도 늦었다고 한다. 노을공원으로 난 길은 길옆의 나무들이 많아도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땡볕 길이지만 길섶 좀작살나무의 붉은 열매는 한창 제철이다.

<노을공원 가는 길>

<좀작살나무열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사이에는 한국지역난방공사 중앙지사가 있다. 이곳은 난지도쓰레기매립장에서 발생하는 매립지가스(매탄가스)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난방열을 만들어 상암택지개발지구와 월드컵 주경기장 등에 냉·난방을 공급하는 시설로, 매립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원을 다시 받아 사용하는 신재생에너지 이다.

<지역난방공사 위치도>

<지역난방공사 중앙지사-2017년4월5일 촬영>


   월드컵공원 중 가장 하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하늘공원은 난지도 제2매립지에 들어선 초지(草地)공원으로 난지도 중에서 토양이 가장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 자연천이현상으로 생태적 환경을 갖추기 보다는 으로 인공적으로 척박한 땅에서 자연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노을공원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늘공원도 공원 안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공원 밑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메타세콰이어길로 접어든다.

<메타세콰이어 길>


   메타세콰이어길은 하늘공원 남측 산책로에 1999년도에 900여 미터로 조성되었다. 초입에는 옥잠화가 하얀 꽃을 활짝 피어 맞이해 주고, 빠져 나갈 때는 꽃범의꼬리가 인사를 한다. 길 아래로는 일산방향으로 달리는 강변도로가 통일로를 향해 내달린다. 교통소음으로 조금 시끄러운 하늘공원 입구를 지나 꽃다리를 건너면 평화의공원 앞으로 하여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나온다.

<메타세콰이어 길의 옥잠화>

<꽃범의꼬리>

<하늘공원에서 평화공원쪽으로>


   2002년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를 목적으로 200111월 개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하1, 지상6층의 타원형 건물로 약67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전용경기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경기장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방패연 모습인데, 경기장 이미지를 한강의 상징인 황포돛배가 모여 있는 형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월드컵공원 입구>

<서울월드컵경기장-서문쪽>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때 개회식과 프랑스 대 세네갈의 개막전 외에 조별 리그전인 터키 대 중국(613) 경기와 준결승전인 한국 대 독일(625) 경기가 열려 월드컵축구 4강 신화를 썼.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축구 전용 경기장의 기능뿐 아니라 일반·전문 상가, 체육·문화시설, 월드컵 기념관 등을 세워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4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에 속한 FC 서울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월드컵스타디움>

<서울월드컵경기장-북문쪽>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북한산 비봉(碑峰)에서 발원하여 홍제천으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불광천(佛光川)이 나온다. 불광천은 은평구의 중심을 가로질러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태하천이다. 사철 물이 흘러 붕어, 피라미 등이 서식하고 천둥오리와 두루미도 날아든다. 걷고 싶은 길과 자전거길이 한강까지 이어져 있고 곳곳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북한산 비봉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던 곳으로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그 자리에는 모조품이 자리를 지킨다.

<불광천>


   북한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불광동천 길을 걸어가다가 은평구 증산동 쪽으로 올라간다. 증산동은 시루뫼라는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마을 뒷산인 반홍산이 시루를 엎어놓은 모양 같다하여 나온 지명이다. 원래 한자로는 甑山(증산)이었으나 시루는 밑이 뚫려 있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 하여 갑오경장 무렵부터 繒山(증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증산체육공원 올라가는 길>


   증산동 주택 골목을 지나 봉산으로 올라가는 상당히 가파른 입구로 들어선다. 봉산(烽山, 209)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 무악봉수(毋岳烽燧)로 이어지는 봉수대가 있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봉산의 또 하나의 이름인 봉령산은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평화롭게 앉아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초입에는 서울둘레길 스탬프 대가 있고, 축구장과 농구장, 풋샬경기장 등이 갖춰진 증산체육공원이 넓게 자리한다.

<증산체육공원>


   숲 터널을 통해 봉산 정상을 향한다. 곳곳에 봉산공원(烽山公園)을 조성하여 시인들의 시도 게시해 놓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가는 여름이 아쉬워서 울어 재끼는 매미소리도 잦아들었다. “더위를 먹은 햇볕이/그늘을 찾아/해매는 여름날 오후/느닷없는 매미소리에/자지라지게 놀란/대추나무 잎/파랗게 질렸다//어스름 달밤에 논에서 우는 맹꽁이 소리에/요 포대기 속/애기가/깜작 놀라/매미소리를 낸다.(김중위의 매미소리에서)” 지난여름 매미소리에 놀라 잎이 파랗게 질렸던 대추나무에도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김중위의 매미소리>


   또한 봉산에는 유달리 팥배나무가 많아 대규모로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물앵두나무라고도 불리는 팥배나무는 봄에 배꽃처럼 화사하게 피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팥알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잎과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빈혈과 허약체질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아직 팥배나무는 덜 익어 붉은색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대신 추위에 강한 가막살나무열매만 얼굴을 붉힌다.

<가막살나무열매>


   봉산 능선을 오르내리며 숲 터널을 지나다가 왼쪽 나뭇가지가 열린 틈새로 고양향동개발지구의 공사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불광동 등 은평지역 건물들이 발 아래로 보인다. 아마 숨이 가빠오는 것을 보니 봉산 정상에 가까워 오는 것 같다. 산을 가든 길을 가든 내 경험으로 보아 목표지점의 8090% 지점에 다다르면 힘이 더 드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도중에 그만두려는 유혹도 느꼈으나, 이것이 마지막 고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돌파를 해왔다.

<고양향동개발지구>

<불광동 방향>


   봉산 정상에서는 봉수대 두 기가 기다린다.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로써 변방의 긴급한 군사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통신제도의 하나이다. 이곳의 봉수는 고려조에서 조선 중기까지 국가적인 기간통신망으로 운영되었던 곳이다. 서쪽의 고양시 고봉산(高峰山)봉수를 받아 남쪽의 한양 안산(鞍山)의 서봉수(西烽燧)로 연결하는 직통노선이었다. 은평구에서는 2011봉산 해맞이공원조성할 때 과거 봉수 터인 봉산을 정비하고 여러 고증을 거쳐 지금과 같은 봉수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봉산 봉수대>

<봉산에서 본 안산>


   봉수를 복원할 때 같이 세워진 봉산정에서 북한산과 그 주변을 바라보며 가보았던 곳을 손으로 짚어본다.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들이 비좁게 들어선 불광동 쪽을 바라보며 옛날 근무했던 사무실도 어림짐작해 보고 서오능 입구로 내려와 오늘을 마무리 하고 지하철 6호선 구산역으로 향한다. 욕심 같아서는 1459(세조5)에 세조의 명으로 창건하고 단청이 수려하다는 수국사(守國寺)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봉산정>

<봉산정 포토뷰>

<수국사-네이버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