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바람의 언덕에 추억을 띄우고
(두문동재∼삼수령, 2017년 9월 2일)
瓦也 정유순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고개 백두대간두문동재를 장마기간에 비를 피해 찾아왔다가 오늘은 금대봉과 매봉산을 지나 삼수령까지 가기 위해 47일 만에 다시 들렸다. 변한 것이라고는 세월이 흘렀으며 활짝 폈던 꽃들은 사랑의 결실이 맺어 영글어 간다.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에서 출입확인을 한 후 숲속으로 꼬리를 감춘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들어가는 숲속은 어둠의 터널 같지만 푸른색이 우러나는 빛은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백두대간두문동재>
백두대간두문동재(1268m)는 ‘싸리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다. 두문동재는 정선 땅의 두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싸리재는 정선의 고한에서 태백의 싸리마을로 가는 고개라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가는 고개 정상에는 태고적 마고할멈이 앞치마에 돌을 한가득 담아와 쏟아 놓았다는 마고할멈 탑이 있고, 그 옆에는 백두대간두문동재 표지석과 태백산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가 있다.<정유순의 ‘검룡소 가는 길’에서>
<두문동재탐방지원센터>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용어는 고려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나오고 있으나 1770년경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년∼1781년)이 그의 저서 ‘산경표(山經表)’에서 체계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태백산·소백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국토의 척추이자 4대강을 포함한 많은 강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많은 생명들이 태동하고 이어져 왔다. 따라서 자연환경과 생물들이 어우러지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 지도>
전에 나무를 심어 조림(造林)한 흔적도 있지만 주목(朱木)을 비롯한 원시림 숲길을 걸어서 당도한 곳은 금대봉이다. 금대봉(金臺峰, 1418m)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및 삼척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으로 금대라는 말은 ‘검대’에서 유래되어 ‘신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고,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대봉>
또한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1.2㎞의 능선을 ‘불바래기 능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예전 화전민들이 산 아래에서 놓은 불을 이 능선에서 맞불을 놓아 진화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금대봉에서 좌측으로 가면 대덕산을 거쳐 검룡소로 가는 길이지만,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길가를 가득 매운 개미취 꽃의 안내를 받으며 매봉산 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백두대간탐방안내도>
<개미취>
백두대간 마루금을 밟으며 비교적 평탄한 길을 따라 숲 터널을 지난다. 이 능선의 북쪽 아래로는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가 있고, 남쪽 아래로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가 있어 양대강(兩大江)의 발원지의 정수리를 밟고 가는 형국이다.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과 눈인사를 맞추고, 귀찮은 불청객이 찾아와서 그런지 까마귀는 까악∼ 까악∼ 울어댄다. 세상 근심 잊어버리고 길바닥에 흩어진 돌들을 발로 치우며 걸어가 도착한 곳은 ‘수아밭령’이다.
<수아밭령 가는 길>
수아밭령[수화전령(水禾田嶺)]은 한강 최상류마을인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마을인 ‘화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이다. 옛날 화전에서 밭벼[산도(山稻)]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水禾田)이란 지명이 생겼다가 다시 줄여서 禾田(벼화 밭전)이 되었다. 주민들은 ‘수아밭’이라 불렀으며, 오늘날 태백시에는 벼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다고 한다.
<수아밭령>
수아밭령 정상의 피나무는 어깨를 활짝 펴고 백두대간을 지키고, 피나무가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 아래서 점심을 한다. 피나무 높이는 20m에 달하고 중부 이북부터 만주를 거쳐 러시아까지 분포한다고 한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난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목재의 탄력성이 좋아 바둑판으로는 상급으로 쳐주고, 껍질은 질겨서 밧줄제조 등에 쓰이는 섬유자원이다.
<피나무>
잠시 숨을 고르고 비단봉(1281m)으로 향한다. 가을로 가는 문턱에서 곱게 물들어야 할 푸른 잎들은 엽록소(葉綠素)에 햇빛을 양껏 빨아들인다. 낮은 고개를 넘어 숲 터널을 빠져 나오면 가파른 길이 기다린다. 말 그대로 비단결 같은 산인 줄 알았는데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을 조금만 지체해도 줄이 길게 늘어선다. 오늘 행로 중에 가장 힘든 곳 같다.
<비단봉 가는 길>
<비단봉>
<매봉산에서 바라본 비단봉>
남쪽 멀리 함백산 아래에 있는 오투리조트가 보인다. 2008년 12월에 개장한 오투리조트는 스키장과 골프장 등이 갖춰진 종합레저단지이다. 동쪽으로는 수확이 끝난 고랭지 배추밭이 산비탈을 이루며 넓게 펼쳐진다. 1960년대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거지왕 김춘삼에게 매봉산에 밭을 일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단봉에서 매봉산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각시취가 군락을 이룬다. 여름에 꽃을 피웠던 당귀도 열매를 맺어 가을을 기다린다.
<오투리조트>
<각시취>
<당귀열매>
매봉산을 향하여 비단봉을 내려오면 ‘여름배추’로 불리는 고랭지채소 밭이 펼쳐지고 풍력발전기는 긴 팔을 늘어뜨리며 느리게 돌아간다. 몇 기의 발전기는 과부하가 걸렸는지 그냥 정지해 있다. 매봉산 풍력발전단지는 태백시 매봉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광활한 채소밭 사이로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곳이다. 수확이 끝난 배추밭은 갈색이지만 7∼8월의 초록색이 마음을 덮는다.
<고랭지배추밭>
<풍력발전기>
배추밭을 따라 반드시 올라가면 ‘백두대간 매봉산’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뒷면에는 ‘매봉산풍력발전단지’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바로 ‘바람의 언덕’이다. 2004년부터 태백시에서 설치한 8기의 발전기가 중앙에, 이후 민간사업자가 설치한 풍력단지가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정상아래 드넓은 경사면에 자리한 고랭지배추밭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아주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배추재배기인 7∼8월이면 경치가 절정일 것 같다.
<매봉산 표지석 전면>
<매봉산풍력발전단지 표지석 뒷면>
<풍력발전 단지>
<바람의 언덕>
매봉산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매봉산 정상인 천의봉(1303m)이 나온다. 매봉산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다. 낙동정맥(洛東正脈)은 태백의 매봉산에서 청송의 주왕산 울산 언양의 가지산 동래의 금정산으로 이어지다가 부산의 용두산을 넘어 다대포의 몰운대로 이어진다. 매봉산을 천의봉으로 부르는 이유는 1870년대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이 피난 중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매봉산 정상>
<천의봉-매봉산표지석 뒷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분기점>
<태백시 전경>
<두문동재로 가는 길>
고랭지채소밭의 가장자리 길을 따라 내려오면 삼수령(三水嶺, 935m)에 도착한다. 삼수령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도 삼해로 물길을 가르는 분수령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빗물이 떨어져 북으로 흐르면 골지천을 따라 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는 황지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겉보기에는 나지막한 언덕 같으나 정상 부근에서 동쪽으로 가파른 절벽과 확 트인 절경이 절로 발길을 멈추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삼수령 조형물>
<삼수정>
이곳의 또 하나의 이름은 피재이다.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理想鄕)으로 알려진 태백의 황지(黃池)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정감록(鄭鑑錄)에서 정한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인 이곳으로 오늘 하루 바람의 언덕에 추억을 띄우려고 피난을 온 것은 아닌지 조용히 생각하게 한다.
<삼수령에서>
이국(異國)적인 풍경과 확 트인 전경에 가슴도 후련하고 청정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기분은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나오는 소음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생물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 획으로 이어져 생물들의 통로가 되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사람의 통로로 만들어 놓았고, 고랭지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정상까지 파 해친 것은 ‘백두대간을 하나의 생태축으로 회복’하려는 정부의 계획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백두대간 정상의 풍력발전기 연결도로>
<백두대간 정상의 고랭지채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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