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을 걸으며(6, 안양천코스)
(석수역∼가양역, 2017년 8월 31일)
瓦也 정유순
석수역은 서울 금천구와 접경에 있는 경부선의 수도권 전철 1호선 전철역으로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석수동은 관악산(冠岳山, 632m)과 삼성산(三聖山, 481m)에 둘러싸인 안양예술공원 일대에 석공(石工)이 많아 석수동(石手洞)으로 부르다가 계곡의 물을 이용하여 1932년 개설된 수영장을 석수동수영장(石水洞水泳場)이라고 하면서 석수(石手)가 석수(石水)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석수역>
석수역 2번 출구로 나가면 가까운 곳에 안양천 제방 길과 만난다. 안양천(安養川)은 수원의 광교산(光敎山, 582m) 북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안양시를 관통하고 광명시와 서울특별시 서부지역을 지나 한강으로 합류하는 한강 제1지천이다. 안양(安養)이란 뜻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세계로 모든 일이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의 세계를 말한다.
<서울둘레길(안양천코스) 지도>
<안양천>
제방에서 경기도 안양시와 경계지점을 막 지나면 안양천 위로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놓여있다. 남북으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있으며, 동서로는 기아대교와 호암대교가 놓여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단숨에 갈 수 있는 도로이면서 서울의 서부간선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서울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 기아대교는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기아자동차공장을 비롯한 광명시 지역과 이어주는 다리이며, 호암대교는 광명 소하IC에서 호암산과 관악산, 우면산을 터널로 관통하여 서울의 양재대로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호암대교와 기아대교 등>
기아대교는 기아자동차가 길이 305m, 폭 8.5m의 다리를 1974년 10월에 건설하여 정부에 기부체납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이후 인구의 증가와 교통량의 급증으로 2001년 12월 31일에 길이 245m, 폭 12.5m로 또 하나의 다리가 개통되어, 처음에 건설된 교량은 ‘기아대교(구)’라고 하며 나중에 건설된 다리는 ‘기아대교(신)’라고 부른다. 기아대교 아래 둔치(하천부지)에는 시민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안양천변 체육시설>
제방 위로는 당초에는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가 구분되어 있으나, 지금은 자전거는 둔치에 만들어 놓은 도로로 달리게 해놓았고, 제방 위로는 사람만 보행할 수 있도록 하여 걷기에 편하다. 경부선으로는 각종 기차들이 줄을 잇는다. 안양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는 불어난 물에 잠길 듯 돌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힘차다. 장미화원을 만들어 놓아 5∼6월이면 장미꽃으로 화려했던 제방 길에 장미가 피어나며 철 늦은 자태를 뽐낸다.
<보행자 도로>
<안양천 징검다리>
<경부선 열차>
<늦게 핀 장미>
지난 5월 양재시민의 숲을 지날 때 꽃대를 하늘로 솟구치며 활짝 피었던 서양칠엽수로도 불리는 마로니에가 지금은 안양천 제방 위에서는 열매로 화답한다. 원산지는 유럽 남부이며 세계 4대 가로수종의 하나이고, 수형이 웅장하고 잎이 좋아 가로수와 공원수 등으로 세계 각지에서 식재되고 있다. 프랑스의 마로니에 공원으로 유명해진 나무이며, 한국에서는 서울 동숭동 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정의 마로니에가 유명하다.
<마로니에 열매>
<잎이 말라붙은 마로니에>
금천구 지역은 1963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었으며, 1980년에는 영등포구에서 분리된 구로구로 속해 있다가 1995년 구로구에서 다시 분리되어 지금의 금천구(衿川區)가 되었다. 금천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에는 금주(衿州)라고 불리다가 조선 초기인 1413년(태조 13년)에 금천(衿川)으로 바뀌고 현(縣)을 설치하면서 이지역이 금천으로 되었다고 한다.
<금천구청>
보행로에는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라는 관문을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자기의 뱃살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나이가 어린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건강하다는 자신감을 나타난다. 그 옆에는 보관해 놓은 자전거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아마 이곳에 보관해 놓고 전철로 출근을 했거나 서울시내로 바쁜 일을 보러 갔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당신의 뱃살은 안녕~~?>
<자전거 보관소>
이곳의 벚꽃 길은 금천구청역∼가산디지털역까지 이어지는 가로수 벚나무가 약10리(4㎞)에 걸쳐 심어져 있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 봄날에 이 길을 걸어간다면 화창한 봄날의 정취에 흠뻑 젖을 것 같다. 길 양쪽으로 가지를 뻗어 터널을 만들어 놓은 자태도 좋으련만, 그늘을 만들어 숲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곳곳에 안양천으로 접근하기 쉽게 서울 쪽에서는 육교를 만들어 놓았으며, 경기도 광명시 쪽으로는 징검다리와 보행교(步行橋)를 만들어 놓았다.
<벚나무터널>
<서울 쪽 보행자 육교>
<광명으로 가는 보행자 다리>
<안양천 징검다리>
1970∼80년대만 해도 금천구지역은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 공업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와 오피스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정오가 지나자 근방의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의 짬을 이용하여 삼삼오오 짝을 이뤄 안양천으로 산책을 나온다. 가산동은 가리봉동의 ‘가’자와 독산동의 ‘산’자를 합성하여 만든 이름이다. 구로공단 제2단지와 제3단지가 있던 가리봉지역은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해 가면서 그 자리를 디지털산업이 차지하게 되어 전철역 이름도 ‘가리봉역’에서 ‘가산디지털역’으로 바뀌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산책>
금천구 가산동과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사이를 잇는 광명대교와 구로구 구로제1동과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사이를 잇는 안양교를 지나면 경인선 전철 구일역이 나온다. 1995년 2월 16일 개업한 구일역은 구로역에서 개봉역으로 연결하는 역으로 승강장은 안양천을 가로지르는 철교 위에 있고, 역사(驛舍)는 안양천변에 있다. 역 이름은 ‘구일동’ 동명에서 유래한 것 같고, ‘동양미래대학(구 동양공전)역’이라는 이름을 같이 사용한다.
<광명대교>
<구일역 승강장과 고척스카이돔>
구일역 건너편에는 국내 유일의 실내야구장인 ‘고척스카이돔’구장이 보인다. 구로구 고척동에 위치한 고척스카이돔은 2007년 동대문운동장의 철거로 대체 구장으로 건설됐으며 2015년 9월에 완공되었다. 총면적은 8만 3,476m2, 지붕까지의 높이는 도쿄돔보다 5m 높은 67.59m이다. 은색 유선형 외관에 내부는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까지 연결돼 있으며 시민들을 위한 농구장, 수영장, 축구장, 헬스장 등이 설치돼 있다. 관중석은 1만 8,076석에 달하고 콘서트 등 문화 행사 때는 2만 5,000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고척스카이돔>
구로구 구로동 쪽으로는 외벽을 세계지도로 모자이크한 어느 빌딩이 눈길을 끈다. 구로동은 옛날 이곳에서 노인 아홉 사람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중국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백거이(白居易)가 낙양(洛陽) 용문산(龍門山) 동쪽에 석루(石樓)를 짓고 시인 8명과 함께 시회인 ‘향산구노회(香山九老會)’를 만들어 즐긴 것을 아름답게 여긴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도 초기에는 공업지역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을 견인하던 지역이다.
<세계지도를 모자이크한 빌딩>
<맥문동>
안양천 건너에는 양천구 목동이 보인다. 목동은 옛날 이 지역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 목초가 많아 말을 방목하는 목장이 있었는데, 목동과 그들의 가족이 모여 살던 동네라고 하여 목동(牧童)이라고 하다가 표기가 달라져 목동(木洞)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작은 마을 단위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1970년대부터 대규모 주택단지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1983년 목동지구 신시가지로 지정되어 목동종합경기장, 서울국제우체국, 서울세관출장소, 기독교방송국, SBS 등이 들어섰다.
<목동종합운동장>
<목동의 아파트촌>
<목동의 빌딩 숲>
안양천 우측인 영등포구 양평동은 한강 나루터인 양화진(楊花津) 근처 벌판에 형성된 마을이라 양화진의 ‘양’ 자와 벌을 뜻하는 한자 ‘평(坪)’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안양천과 한강을 끼고 있어 여름철이면 홍수 피해가 잦은 지역이었다. 일제는 1928년 경성부 도시계획(京城府都市計劃)에 의거 영등포동을 비롯해 양평동, 당산동, 도림동 등지의 평탄한 지역을 공업지대로 지정하였으나, 현재는 소규모 섬유 및 식품을 중심으로 규모가 작아지고 있으며 점차 주거지역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永登浦)는 원래 경기도 시흥군에 속한 곳이었으나 한강 이남에서는 제일 먼저 서울로 편입된 지역으로 서울의 부도심(副都心)역할을 톡톡히 해온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최대공업지역인 경인공업지대의 핵심을 이루었다. 산업화가 발전하면서 인구의 급증으로 영등포구는 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양천구 강서구 등이 분구되어 나갔다.
<영등포구 안양천생태운영센터>
높게 하늘로 솟은 목동열병합발전소의 굴뚝 사이로 뭉게구름 두둥실 떠있다. 열병합발전소는 가연성쓰레기를 소각할 때 나오는 열(熱)로 발전도하고 아파트 등 주거지에 난방을 공급하는 곳이다.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뒤로하며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염창교에 도착한다. 안양천 하류로 내려올수록 외래종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가시박’이 천변을 덮는다.
<목동열병합발전소>
<가시박>
태백시 금대봉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오늘의 모든 역사를 안은 채 묵묵히 흐른다. 월드컵운동장과 양화교로 연결되는 월드컵대교가 교각을 높이 세우며 공사가 한창이며 성산대교는 자동차들로 바쁘다. 한강변에는 ‘낚시금지’푯말이 보이지만 강태공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낚시 여러 대를 늘어뜨린다. 낚인 고기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낚시도 환경문제를 고려하여 ‘내수면어업허가’처럼 허가제를 도입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안양천과 한강의 합류지점>
<염창교>
<한강-공사중인 월드컵대교와 성산대교>
염창교를 지나 한강 하류를 방향을 잡으니 가양대교가 눈에 보인다. 시원한 강바람을 안으며 한강공원 염강나들목을 통해 가양동 ‘황금내 근린공원’을 지난다. 가양동(加陽洞)은 삼밭이 많았던 가마동(加麻洞)의 ‘가’자와 고양리(古陽里)의 ‘양’자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가마동은 조선시대에는 양천군(陽川郡)의 중심지역이었다. 양천군은 양천 허 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허가바위가 있다고 하며, 조선시대의 명의 허준(許浚)의 생가 터와 양천향교도 가양지구 옆에 있다고 한다.
<한강공원 염강나들목>
<황금내 근린공원>
<허준박물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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