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길은 해피한 길(일곱 번째)
<망양정 옛터→삼척노곡항, 2017. 8. 26∼27>
瓦也 정유순
아침 일찍 백암온천 숙소에서 나오는 도로 변에는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늦여름을 불태운다. 녹음이 농익어 쪽빛 바다와 자웅을 이루는 현종산(懸鍾山, 416.7m)자락의 망양정 옛터는 수호송(守護松) 세 그루와 정자가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40여일 전과 변함없다. 철석이며 밀려오는 파도소리도 그 때와 다름없다. 그 사이 한 여름의 피서 철이 지나갔고, 장마전선이 온 나라를 휘 감다가 지나갔다.
<백암온천 길>
<망양정 옛터>
망양정 옛터 아래 마을 앞 도로변에는 요즘 어획량이 적어 귀하디귀하다는 오징어가 아침햇살에 맛이 익어간다. 오징어는 생물이든 건어물이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종이지만, 물속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낯에는 수심이 200∼300m 정도의 심해에서 머물다가 밤이 되면 20m 안팎의 얕은 수심으로 올라오고,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오징어의 성질 때문에 오징어 배는 밤에 밝은 집어등을 내걸고 촘촘한 낚시 바늘에 형광물질의 인공 미끼를 매달아 잡는다고 한다.
<오징어 건조>
하늘과 바다는 저 끝에서 수평선을 이루며 밤새 잠들지 못한 물결이 너울댄다. 바닷가의 기암(奇巖)들도 물결이 토닥거려준 모양대로 아침햇살에 더 빛난다. 눈이 부시게 더 푸르른 소나무 뒤에는 동해안을 지키던 초병(哨兵)들이 떠난 초소가 외롭다. 자연이 만들어진 바위의 모양에 이름 하나라도 붙여준다면 덜 외로울 텐데 불러주는 사람 없어 더 고독하다. 그래도 해안 쪽 절벽에 자리 잡은 망양휴게소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절경(絶景)이다.
<기암>
<해안초소>
<망양휴게소>
망양휴게소를 지나 도로 옆 넓은 공터에서는 주민들이 나와 고기잡이를 나가기 위해 그물 등 어구손질에 바쁘다. 해녀들도 목 좋은 곳에서 물질을 하느라 두 다리가 하늘로 솟구친다. 인적이 드문 어느 집 마당에도 붉은 고추가 햇볕으로 매운 맛을 키운다. 뜨거웠던 여름날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 같던 매화면 덕신리 해수욕장도 인적이 없다. 인근의 국가어항인 매화면 오산리 어항도 햇살만 내려쬘 뿐 고요하기만 하다.
<그물 손질>
<고추 건조>
<오산리 어항>
봄철에는 매실과 두릅나물이 많이 나고, 가을에는 송이버섯이 많이 나며, 인근 바다에서는 오징어·고등어·광어·문어 등의 해산물과 전복 등이 잡힌다는 매화면 바닷가도 실바람에 살랑거리는 파도 앞에 갈매기들이 조용하게 도열한다. 파도의 속삼임에 끌려 터덕터덕 걷다보니 울진군 근남면 진복리 방파제를 뒤로한다. 무어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 준 바위들이 고아처럼 서있다.
<갈매기들의 망중한>
<무명바위>
<무명바위>
<무명바위>
근남면 산포리에 접어들면 917호 지방도로 상에 하늘로 솟은 바위 정수리 위에는 소나무가 촛불의 불꽃처럼 서있다고 해서 ‘촛대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바위는 해안도로 건설 초기에 도로의 장애가 된다하여 폭파될 위기에 처했었는데, 당시 울진부군수인 장학중이라는 사람이 보존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공사 중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형대로 남겼다고 한다. 이 바위 때문에 도로는 약간 ‘S’자로 굽어 시야를 가렸으나 주변 풍광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모습은 일품이다.
<촛대바위-前>
<촛대바위-後>
필자의 욕심 같아서는 안내판을 세워 보존경위를 알려주고 싶고, 촛대바위와 함께 일명 ‘장학중바위’라고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다. 따뜻한 햇볕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은 개구리는 도로의 높은 턱에 걸려 갈 곳을 몰라 어쩔 줄 모른다. 도로 밖으로 나가게 조금만 도움을 줬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스럽다. 개구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무사하기를 빌면서 망양정에 도착한다.
<개구리>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정(望洋亭)은 고려시대에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517년(중종 12) 거센 비바람에 파손된 것을 1518년 중수하였고, 1590년(선조 23)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또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이상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발췌>
<망양정>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이 이축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여러 해 동안 재정을 마련하지 못하여 추진하지 못하다가 1858년(철종 9)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퇴락하여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하였다. <이상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발췌> 일설에는 관동팔경 중 두 곳이 평해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망양정을 울진지역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망양정>
조선조 숙종은 망양정에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시면서 ‘산골짜기들이 겹겹이 이어오다 탁 트이니/놀랍게도 거대한 파도가 하늘에 닿아 있네/저 바다가 장차 술로 변한다면/내 어찌 300잔만 마실 수 있으랴’라고 아름다움을 노래했다.¹<붙임1 참조> 정조는 ‘태초의 기운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흡사 문선왕이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종묘와 궁궐의 담장 하나하나 훑어보네’라고 노래한다.²<붙임2 참조>
<망양정에서 본 울진해변>
망양정과 가까운 곳에는 가보고 싶었던 천연석회암 동굴인 성류굴(聖留窟, 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있지만, 왕피천 하구를 지나 연호정(蓮湖亭)으로 바로 이동한다.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서 발원하여 근남면 수산리의 동해바다로 흐르는 왕피천은 옛날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피난을 왔다고 해서 마을이름이 왕피리가 되었고,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왕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왕피천 하구>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연호정은 자연호수인 연호(蓮湖)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 언덕 위에 있는 정자다. 1815년(순조15) 이 자리에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작은 누각을 세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하자 1922년 옛 동헌(東軒)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워 연호정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연호(蓮湖)는 원래 고씨(高氏)들이 살던 마을이었으나, 이 마을의 땅이 꺼져 늪이 되었다고 하여 ‘고성 늪’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호수주변으로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였다.
<연호정>
<연호>
연호공원에서 울진읍 연지리 해변으로 나와 데나리항 쪽으로 향한다. 데나리항 부두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뛰어 내리기도 하면서 물장난으로 여름의 끝물을 즐긴다. 시설의 규모로 보아서는 가끔 임시적으로 이용되는 어항 같다. 울진읍 온양리를 지나 죽변면 봉평리로 접어든다. 온양리는 충남 아산의 온양과, 봉평리는 강원도 평창의 봉평과 부르는 이름이 같아 더 친근해 진다.
<연지리 해변>
<데나리항 부두>
봉평리 앞바다에서는 ‘로켓추진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 같은 공중부양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즉 물을 밑으로 쏘아서 발생하는 힘을 이용하여 기구를 타고 공중으로 솟아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 같다. 기구를 탄 두 남녀는 행여 떨어질까 봐 힘껏 껴안고 수직상승한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거늘 매사에 오르고 내릴 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인생이 사는 재미이다.
<수직상승 물놀이>
시외버스정류장을 나와 죽변항으로 들어서기 전인 후정리에는 500년이 넘은 향나무가 도로변에 서있다. 향나무는 중부 이남을 비롯한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며, 강한 향을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하고 정원수나 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이 향나무는 밑에서 두 기둥으로 나온 이간수(二幹樹)로 나무높이 11m(가슴높이 지름1.25m)와 10m(가슴높이 지름0.94m)이다. 향나무 옆에는 성황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천연기념물)제158호, 1964년1월)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울릉도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한다.
<향나무와 서낭당>
향나무 옆 이웃집의 사과나무도 볼테기를 붉게 물들이며 햇빛에 기댄다.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죽변항에는 야간조업을 나가려는지 오징어 배들이 정박해 있다. 옛날부터 다른 어족자원도 풍부했지만 특히 오징어가 많이 잡혔는데, 요즈음은 기후변화영향인지 이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오징어가 동해 대신 서해로 동선이 바뀌었다고도 하나 최근에는 이것마저 보기 힘들어 오징어 잡기가 무척 힘들다고 한다.
<사과나무>
<죽변항의 오징어 어선>
죽변항을 지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죽변등대 밑으로 난 해안 언덕길 입구에는 눈을 밝게 해준다는 결명자(決明子)가 야생에서 영글어 간다. 밀림을 이룬 등대언덕 신우대 숲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주둔하여 왜구를 막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옛날에 용이 노닐면서 승천한 곳으로 여겨 ‘용추곶(龍湫串)으로도 불렀으며,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전해온다.
<결명자>
<신우대 숲길>
신우대 숲에서 해안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폭풍 속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나온다. 대나무 숲 옆에는 ‘ㄱ’자 모양의 2층 기와집이 있는데, 극중에서 남자주인공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집은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집이다. 집 뒤쪽에는 빨간색 성당 세트가 함께 세워져 있었다고 했었는데 철거되었는지 흔적이 보이지 않고, 대신 세트장 아래로는 하트해변이 석양과 함께 펼쳐진다.
<등대동산>
<드라마 세트장>
<하트해변>
백암온천 길의 배롱나무는 어제보다 더 붉게 물들이며 작별인사를 한다. 못내 아쉬워 버스에서 내려 가로수 밑을 걸어도 보고, 벼이삭이 나온 논두렁도 밟아본다. 어제 하트해변을 따라 계속 나가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날카로운 자갈과 바위들이 길을 막아 뒤로 돌아 나온 죽변시내의 죽변면도서관 앞에서 다시 오늘을 시작한다.
<배롱나무 꽃>
<죽변면도서관 입구>
동해의 아침은 볼 때마다 싱그럽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끝에는 물비늘이 유난히 반짝인다. 길가의 수세미도 넝쿨을 타고 올라온 노란 꽃은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다. 죽변면의 후정해변으로 나가보니 백사장 끝에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해파랑 길은 국가주요시설이 있는 곳은 보안상의 이유로 피해가게 되어 있나보다.
<동해바다>
<수세미 꽃>
<후정해변과 원자력발전소>
해안 이면도로로 하여 울진군 북면 부구리로 이동한다. 옛날에는 부구리(富邱里)를 마을에 거북모양의 신령스런 바위가 있어 영구리(靈龜里)라 하였으나, 1914년 일제가 토지측량을 할 때 일본인 기사가 ‘영구’의 한자표기가 어려워 부구천(富邱川) 건너 염전리의 ‘염(鹽)’자와 쓰기 어려운 구(龜)자 대신 ‘구(邱)’로 바꾸어 염구리(鹽邱里)가 되었다. 그 후 행정구역 개편 때 흥부동(興富洞)의 부(富)자와 염구동의 구(邱)자를 따서 부구리(富邱里)가 되었다고 한다.
<부구천 하구>
<부구리 해안>
울진군 북면 응봉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면서 덕구리, 주인리, 부구리를 지나 동해로 유입되는 부구천을 따라 석호항을 지나 나곡해안으로 나간다. 석호항은 나곡리에 있는 어촌정주어항으로 남쪽으로 울진원자력발전소가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부구리를 비롯한 이쪽지역은 토염(土鹽)과 돌미역, 건어물, 생선, 젓갈 등 해산물을 봉화와 안동 등 영남 내륙으로 유통시키던 ‘십이령보부상길’의 유통로이다.
<울진원자력발전소>
점심을 조금 일찍 하고 ‘고포미역’으로 유명한 고포항으로 이동한다. 고포미역마을은 가운데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경상북도 울진 고포로,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고포로 나누어져 40여 호도 안 되는 마을에 이장(里長)도 두 명이 있어야 하는 등 행정상으로는 불편한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이곳의 미역은 다른 지역의 미역보다도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는 최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고포미역은 현재까지도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대표적 특산물이다.
<한마을 두 개의 도-고포마을>
<울진고포미역과 삼척고포미역>
이곳은 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한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침투사건’의 중심지이다. 무장공비들은 15명씩 8개 조로 편성되어 10월 30일, 11월 1일, 11월 2일의 3일간 야음을 타고 고포해안에 상륙, 울진·삼척·봉화·강릉·정선 등으로 침투하였다. 삼척군 하장면의 한 산간마을에서는 80세노인, 52세의 며느리, 15세의 손자 등 일가 세 사람이 난자당하였으며, 평창군 산간마을에서는 10세의 이승복(李承福)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절규와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울진고포의 군시설보호지역>
처참했던 고포미역마을의 과거는 세월 속에 묻히고 도계(道界)를 넘어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로 진입한다. 우리의 산야 어느 곳이든 지천으로 자생하는 칡이 고포마을 언덕에도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운다. 칡은 오래전부터 구황작물로 식용되었고 자양강장제 등 건강식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갈등(葛藤)의 주인공인 칡과 등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기 때문에 이들 두 식물이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갈등’이란 말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칡꽃>
해안을 따라 계속가면 원덕읍 월천리 해변이 나오고 그 위에는 가곡천(柯谷川) 하구와 마주친다. 가곡천은 울진·삼척지역의 궁궐용 소나무(경복궁 삼척목)인 황장목(黃腸木)을 바다까지 운반할 때 중요한 수로였다고 한다. 가곡천 하구 북쪽에는 LNG생산기지가 자리한다. 월천교를 따라 가곡천을 건너면 원덕읍 호산리의 호산천(湖山川)을 건너간다. 호산천 주변에는 머루가 송이송이 영글어 가고 개두릅으로도 불리는 엄나무도 꽃을 피워 가을을 재촉한다.
<가곡천 하구>
<머루>
<엄나무 꽃>
호산천을 징검다리로 건너 안으로 들어가면 해망산이 나온다. 해망산은 일명 부용산이라고도 하는데 해변에 우뚝 솟은 산이다. 남서쪽에 부용(또는 부신당)이라는 호수가 있었다 하며, 고려 때 부용이라는 선녀가 와서 놀던 곳이라 한다. 조선 태조2년(1394) 당시 기록에 이 산의 이름이 알려졌는데 ‘옥원 동쪽에 부신당이 있고, 연못 앞에는 해망산, 남쪽에는 죽현이 있다'고 하였다.
<호산천 징검다리>
<해망산 안내>
계단을 타고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경관들이 환하게 보인다. 물론 동쪽으로는 바다가 훤하고, 남쪽으로는 LNG생산기지 탱크들이 지척이며, 북쪽으로는 호산항과 시멘트 하역을 위한 컨베어벨트 시설이 길게 늘어서 있고, 멀리 ‘삼척일반공업단지조성공사장’까지 보인다. 정상부근에 성황당(城隍堂)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내는 곳 같다. 서낭제의 연속인지 성황당 아래에는 새끼에 백지를 꽂아 금줄을 쳐 놓았다.
<시멘트 컨베어벨트시스템>
<해망산 성황당>
<성황당 금줄>
해망산에서 내려와 호산항 쪽으로 길을 잡아 나가는데 시멘트공장 앞에서 길이 막혀 원덕읍 시가지를 가로질러 ‘원덕119 안전센터’까지 돌아 나와 공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느 집 울안에는 손질하지 않은 향나무의 모습이 ‘백제금동향로’를 연상시킨다. 주변의 밭에서는 조[속(粟)] 이삭이 나와 막 고개를 숙인다.
<원덕119 안전센터>
<향나무>
<조>
옥원1리(沃原一里) 마을 표지석 뒤로는 관동대로의 능선들이 아득하게 보이고, 삼척로를 따라 옥원삼거리∼수릉삼거리∼노곡교차로∼작진삼거리를 지나 노곡항 입구인 노곡삼거리에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길을 걷다보면 가끔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나그네에게는 아주 지극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투덜대지 말고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이번 여정에서 다시 터득한 행로였다.
<옥원1리 표지석>
<노곡항 입구>
<붙임> 1. 숙종어제(肅宗御製)
列壑重重逶迤開(열학중중위이개)
산골짜기들이 겹겹이 이어오다 탁 트이니
驚濤巨浪接天來(경도거랑접천래)
놀랍게도 거대한 파도가 하늘에 닿아 있네
如將此海變成酒(여장차해변성주)
저 바다가 장차 술로 변한다면
奚但只傾三百盃(해단지경삼백배)
내 어찌 300잔만 마실 수 있으랴.
<숙종대왕 어제>
<붙임> 2. 정조어제(正祖御製)
元氣蒼茫放海溟(원기창망방해명)
태초의 기운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誰人辨此望洋亭(수인변차망양정)
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恰如縱目宣尼宅(흡여종목선니택)
흡사 문선왕이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
宗廟宮墻歷歷經(종묘궁장역역경)
종묘와 궁궐의 담장 하나하나 훑어보네.
<정조대왕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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