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축만제(서호)에서 의왕왕송호까지
(2017년8월17일)
瓦也 정유순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수원의 축만제(祝萬堤, 일명 서호)와 일월저수지를 거쳐 의왕시에 있는 왕송저수지를 둘러보기 위해 전철 1호선 수원 화서역에서 출발하여 서호꽃뫼공원을 가로질러 농민회관 마당으로 들어선다. 화서역 주변에는 이 외에도 서호공원이 서호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고, 여기산(麗妓山, 104.8m)공원이 있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간다면 충분한 볼거리가 될 것 같다.
<축만제(서호)주변 지도>
농민회관은 1970년대 농업인 및 농업공무원들의 성금과 정부보조금으로 신축하여 새마을운동 훈련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초기에 이곳에서 새마을교육을 받은 고위공직자들은 훈련의 강도가 쌔서 나이 들어 군대경험을 다시 해봤다는 뒷얘기도 있었다. 그 서슬 파랗던 농민회관도 농촌지도자회관으로 바뀌었고, 결혼예식장을 부대사업으로 하면서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린다.
<농민회관>
축만제(祝萬堤)는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있는 저수지로 1799년(정조23) 수원화성을 건설할 때 정조의 내탕금(內帑金) 3만 냥을 들여 여기산 밑에 축조한 호수이다. 축만제의 규모는 문헌상 제방의 길이가 1,246척(尺),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낙락장송(落落長松)들이 서있다.
<축만제 표지석>
<축만제(서호)의 낙락장송>
보수관리는 축제 후 4년만에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도감관(都監官)∙감관(監官)∙농감(農監) 등을 두어 관수와 전장관리를 맡게 하고, 이에서 생기는 도조는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하였다는 것을 보면 제방 아래 몽리구역의 농지는 국둔전(國屯田)이었던 것 같다. 현재는 농촌진흥청 및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시험답(試驗畓)과 인근 논의 관개용 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축만제(祝萬堤)는 ‘만석의 꿈을 축원’하는 뜻을 내포한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시험답>
둔전(屯田)은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하에 부근의 한광지(閑曠地)를 개간, 경작해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함으로써 군량운반의 수고를 덜고 국방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후대에는 관청의 경비를 보충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도 둔전이라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전자를 국둔전(國屯田), 후자를 관둔전(官屯田)이라 하여 서로 구별하였다. 지금의 서둔동(西屯洞)도 ‘화성의 서쪽에 있는 둔전(屯田)’이라는 뜻이다.
<축만제(서호)의 동쪽-팔달산이 보임>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축조하였다. 북지(北池)는 수원성 북문 북쪽에 위치한 일명 만석거(萬石渠)를 말하는 것으로 1795년에 완성한 속칭 ‘조기정방죽’을 가리킨다. 또한 남지(南池)는 원명 ‘만년제(萬年堤)’라 하여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시설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는 수원시 지동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형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축만제(서호) 전경>
2016년 11월에는 축만제가 전북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함께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에서 선정한 <세계관개시설물 유산(Haritage Irrigation Structures>으로 선정되어 등재되었다.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는 1950년에 설립된 관개(灌漑)∙배수(排水)∙홍수조절∙하천개수 및 환경보전 등 농어촌정비사업에 관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과 국제교류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에 가입하여 사단법인 한국관개배수위원회(KICID)가 ICID의 한국지부로 활동한다.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 등재 현수막>
<축만제(서호) 전경>
서호의 남쪽 물이 흘러나가는 수문 우측부근에는 항미정(杭眉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1831년(순조31) 당시 화성유수(華城留守)였던 박기수라는 사람이 정자를 세웠고, 그 뒤 유수 신석희와 관찰사 오익영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홑처마 목조건물로 'L'자형 납도리집 구조이며 건축 면적은 43.64m²이다. 화강암제의 2단 기단을 쌓은 다음 초석 위에 각주를 세웠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정자의 이름은 ‘항주(杭州)의 미목(眉目)’이라는 소동파의 시(詩)에서 따왔다고 한다.
<항미정>
<항미정에서 본 축만제(서호)>
축만제(祝萬堤, 일명 서호)를 제방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농민회관 입구로 하여 서호천 길로 접어든다. 서호천(西湖川)은 수원시의 북쪽 파장동의 광교산(光敎山, 582m)에서 발원하여 파장저수지와 서호를 거쳐 장지동에서 황구지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서호천 주변에는 많은 농경지가 있었으나 인구의 증가로 지금은 대부분 시가지나 주거지로 바뀌었다. 원래 명칭은 고문헌 등에 의해 사근천(沙近川)으로 추정되나 서호로 유입되는 하천이라 ‘서호천’으로 된 것 같다.
<서호천 전경>
서호천은 11.5㎞의 길이로 본래 물이 맑은 하천이었으나 생활하수와 각종 오폐수로 오염되고 집중호우 시 가옥과 농경지가 상습적으로 침수되자, 1998년부터 체계적인 하천정비사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하천가에 갯버들과 갈대를 심고 산책로를 만드는 등 생태도심하천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수초가 잘 발달된 하천 길을 따라가다가 화산교 옆으로 하여 일월공원으로 접어든다.
<서호천 징검다리>
일월공원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과 장안구 천천동에 걸쳐 있는 공원으로 총면적 38만㎡의 부지에 잔디 광장·야외 음악당·생태 공원을 갖춘 대규모 문화 공간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가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주민들의 휴식 터로 이용되어 온 일월저수지를 끼고 있다. 저수지를 빙 둘러 산책로가 나 있고, 체력 단련 기구와 벤치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2007년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과 수원시가 공원 내 670㎡의 부지에 보리∙밀∙귀리 등을 심어 자연 학습장을 조성하였다.
<일월저수지 전경>
<일월공원 수초>
<일월저수지 부초>
<일월저수지 시험제배?>
초입에 있는 일월도서관에서부터 물놀이 터를 비롯한 저수지 주변으로 설치된 나무다리를 따라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로 이동한다. 성균관대학교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과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캠퍼스가 있는 종합 사립대학교이다. 성균관대학교의 연원은 1398년(태조7)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성균관(成均館)에서 시작되어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으로서 국가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전통적인 유학(儒學)교육을 실시하였다.
<일월저수지와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지도>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설치된 3년제 경학과(經學科)가 성균관대학교의 근대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시작이다. 성균관은 제향(祭享)기능을 담당하고, 경학과는 교육기능을 담당하여 유학경전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역사학 지리학 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도 부과되었다. 그러나 국권이 상실된 뒤 일제에 의하여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기능만 수행한다.
<성균관 명륜당-네이버 캡쳐>
해방 후에는 친일파를 중심으로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국립대학으로 설립할 때, 유림(儒林)을 비롯한 민족진영에서는 성균관(成均館)을 국립대학으로 하자며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국대안(國大案) 반대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새 출발의 의미로 학교의 공식명칭을 국립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바꾸었다.
<성균관대 캠퍼스 내 능소화>
그 후 성균관은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이 발족하면서 같은 해 9월 정규 단과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인가되었다.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고, 초대 학장에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이 취임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태학(太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과 성균관, 조선의 성균관 등으로 맥(脈)을 이어오던 국가교육기관이 사설교육기관으로 전락하였고,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학이 국가교육기관으로 둔갑하였다.
<성균관대 캠퍼스 내 빅토리아수련>
그러나 비록 사설교육기관으로 되었지만 조선시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시(校是)인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유도정신(儒道精神)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갖고 글로벌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를 하고 있다. 유학의 본향인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학답게 유학동양학부와 유학대학원, 유학과(일반대학원)를 편성하고, 부속기관으로 유학동양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의 기숙사인 양현재(養賢齋)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균관대 삼성학술정보관>
수원캠퍼스는 교세(校勢)의 확장으로 1979년 1월 자연과학캠퍼스가 수원시 천천동으로 신축·이전함으로서 시작되었다. 1981년 8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이과대학·공과대학·농과대학·약학대학 등을 설치하였고, 1999년 3월 자연과학캠퍼스에 의과대학 건물 준공하였다. 기숙사는 현재 자연과학캠퍼스에만 있으며, 인(仁)관·의(義)관·예(禮)관·지(智)관·신(信)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3,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고, 특히 신관은 2009년 준공하여 1,9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이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성균관대학교 교정을 빠져나와 의왕시 왕송저수지로 가는 길목에 ‘밤나무동산’이 나온다. 밤나무동산은 원래 이곳이 밤나무가 울창하여 밤 밭이라 불렀던 율전동(栗田洞)은 도시화로 밤나무는 사라져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밤나무와 함께했던 주민들의 애환과 추억을 회상하고, 마을의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2011년 3월 21일 주민들의 헌수(獻樹)로 밤나무동산을 조성하게 되었다. 주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는지 밤나무마다 밤이 주렁주렁 열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향해 영글어 간다.
<밤나무동산>
<밤나무동산 길>
밤나무동산을 거쳐 왕송저수지로 가는 길목에는 해바라기도 활짝 피었지만 고개가 무거운지 살짝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한다. 멀리 수리산이 보이는데, 수리산은 안성의 칠현산에서 뻗어 나온 한남정맥(漢南正脈)이 수원의 광교산과 의왕의 오봉산과 김포의 문수산을 이어주는 산이다. 한남정맥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13개 정맥 중의 하나로 한강 남쪽의 산맥을 구성한다.
<한남정맥의 수리산>
왕송호수에 도착하여 조금 늦은 점심을 하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왕송호수를 돌아본다. 왕송호수는 경기도 의왕시 부곡동에 있는 저수지이다. 1948년 1월에 조성된 저수지로 수면이 넓어 호반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붕어와 잉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던 곳이다. 제방 길이 640 m, 높이 8.2 m, 만수면적 0.96㎢의 호수이다. 이름은 설치 당시 수원군일왕면의 ‘왕’과 매송면의 ‘송’자를 따서 붙여졌다.
<왕송호수 지도>
이 호수는 인공호수로 2014년까지는 공식 명칭이 왕송저수지였지만, 2014년 제3차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왕송호에 공원 시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현재의 명칭인 왕송호수로 바꾸었다. 또한 2016년 4월에 개장한 레일바이크는 서울근교에 위치한 국내최초 호수순환레일바이크를 탑승할 수 있는 곳이다. 포토존, 조류생태존, 스피드존 등으로 코스 구성이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에 자연학습공원, 조류생태과학관, 철도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의왕레일바이크 입간판>
<레일바이크와 레일>
<호수열차>
<왕송호수제방의 레일과 인도>
호수를 일주하는 동안 레일 위로는 레일바이크와 호수열차가 역동성을 배가시키고, 제방 쪽으로는 부레옥잠 같은 부초(浮草)들이 군락을 이룬다. 레일바이크 탑승장 반대편 호반에는 연꽃들이 가는 여름을 부둥켜안는다. 호수의 북쪽에 있는 연꽃습지에서도 연꽃과 빅토리아수련이 경쟁하듯 피어난다. 이웃의 논에서는 ‘사랑해요’ 모자이크한 벼들이 또한 늦여름 햇볕에 여물어 간다.
<왕송호수 부초>
<왕송호수 부초>
<왕송호수 연꽃습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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