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태안 해변 길을 걸으며(노을길)

와야 세상걷기 2017. 8. 25. 17:48

태안 해변 길을 걸으며(노을길)

(백사장항꽃지해변, 2017824)

瓦也 정유순

   태풍의 영향인지 밤새 쏟아지던 비가 새벽에 길을 나설 때는 빗방울이 그쳤다. 기상예보도 전국적으로 50100종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린 결정이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되도록이면 적게 맞으려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달리는 차창으로 빗방울은 쌔게 부딪히며 사방으로 튕긴다. 잠시 들렸던 고속도로휴게소에서는 빗방울이 그쳤고, 출발지로 달릴 때는 또 비가 내리다가 도착지인 안면도의 백사장 해변에서는 비가 그친다.

<안면도 지도-네이버캡쳐>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의 남쪽 끝으로 길게 뻗어 나와 천수만을 이룬 태안곶이었는데 조선 인조16(1638)에 이곳 감사였던 김유라는 사람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거둬들인 세곡(稅穀)을 한양으로 운송하는 뱃길을 새로 내어 지금 연육교가 들어선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창기리를 끊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되는 큰 섬이 되었다.

<태안해변길(노을길) 지도>


   이 안면 땅을 섬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고려 인종12(1134) 때부터 천수만과 가로림만 사이를 물길로 연결하여 백오십리가 넘는 뱃길을 7의 뱃길로 바꾸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4정도의 땅을 파고 나머지 3는 암반에 막혀 번 번히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1968년 연육교가 처음 개통되면서 다시 배를 타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하랑꽃게랑 다리>

   오늘 노을길 출발지점인 백사장항은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어항이다. 안면대교를 건너서 만나는 첫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포구에는 횟집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소규모 어선들이 때를 기다린다. 봄부터 여름까지 꽃게잡이가 한창이고, 가을부터는 대하(大蝦)잡이가 활발하여 10월부터 11월 초까지는 대하축제가 열린다. 포구 해변 북쪽 맞은편에는 드르니항 사이에 포구가 넓게 열리며, 그 위로 201311월에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길이 250m의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다리가 완성되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두 지역을 하나로 만들었다.

 <대하랑꽃게랑 다리>


   가볍게 몸을 풀고 바로 태안해변길 노을길로 접어든다. 긴장하며 기다렸던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매섭게 몰아친다. 턱 끈이 없는 모자들은 들썩이며 가끔은 바람에 날린다. 며칠 전까지만 했어도 피서객들로 북적거리던 해변에는 밀려오는 파도소리만 외롭게 맴돌고, 잔뜩 흐린 날씨에 백사장해수욕장을 지나가는 줄 모르게 지나치고, 삼봉을 맞이한다. 삼봉(三峰)은 소나무를 머리에 인 세 개의 산봉우리(22, 20, 18)가 큰 주먹밥을 뭉쳐 놓은 것처럼 서있다. 해당화로 유명하고, 썰물 때면 갯바위가 드러나 석화, 조개, 고동, , 말미잘 등 어패류 등이 많다고 한다.

 <태안해변길(노을길) 입구>


   삼봉이 바라보이는 산마루의 전망대에서 주변을 살펴본다. 바다 멀리에는 떠돌다 멈춘 섬들이 바람에 밀려 다가오는 것 같다. 날씨만 좋았다면 해변에 나가 물 위로 자박자박 걸어보겠지만 행여 매섭게 달려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가 앞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방풍림을 이룬 곰솔 밭길을 열심히 걸어 나간다. 삼봉해변은 갯벌과 갯바위 그리고 백사장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곰솔로 이루어진 솔밭에서 캠핑을 하면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삼봉>

 <삼봉해변>


   또 한 고개를 넘으면 기지포해변이 나온다. 기지포해변도 태안반도의 크고 작은 여느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울창한 곰솔 숲과 경사가 완만한 백사장이 일품이다. 태안해안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솔밭 바닥은 한 여름에 피서 온 사람들이 텐트를 친 자국이 남아 있으며, 몇 개의 텐트는 지금도 캠핑 중이고, 솔밭 사이로 마을의 민박집의 간판도 보인다.

 <태안해안국립공원 표지석>

 <기지포탐방지원센터>


   서해안 모래밭의 한 가지 공통점은 바닷가의 모래가 파도에 밀려와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 태안반도와 안면도의 해안은 바람과 파도에 밀려와 만들어진 모래언덕[사구(砂丘)]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사구는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해변으로 천연기념물(431, 2001)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것을 떠나서 자연이 만들어 준 해안사구는 모래와 지하수를 저장해 주고, 해안 동·식물들의 서식지와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만들어 준다.

 <사구탐방로>

 <사구탐방로 쉼터>


   나무데크로 만든 길을 따라 약1쯤 사구를 관찰하며 걸어가면서 모래언덕에 뿌리를 내린 숲을 관찰할 수 있다. 아마 이맘때이면 목이 터져라 울어재낄 매미도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중간에 만들어 놓은 쉼터도 오늘은 한가롭다. 안면도 해안을 따라 만들어 놓은 안면관광로의 창정교를 건너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창정교 다리 아래로 흐르는 민물은 모래를 적시며 바다로 밀려들어간다.

 <창정교>

 <창정교 아래 민물이 흐르는 곳>


   해안의 풀밭에는 월견초(月見草)라고도 불리는 달맞이꽃이 구름이 끼어 밤 인줄 착각했는지 구름 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쑥 내민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상징하는 달맞이꽃은 누구를 기다린 것인가?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이 있다는 증거이다. 달맞이꽃은 누가 나를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것 보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려 준다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달맞이꽃>


   창정교를 건너와 달맞이꽃과 마주하다가 고개를 넘으면 바로 눈앞으로 물이 빠진 넓은 백사장과 바다, 바다 위의 섬들이 장관을 이룬다. 안면해수욕장과 두여해수욕장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백사장 남쪽 끝 왼쪽으로는 종주려라는 바위섬이 자리한다. 옛날부터 도인들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도를 닦던 마을이라 도여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사구를 보호하기 위해 바닷가에 대나무를 촘촘히 박아 놓았으며, 두여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갯바위들은 마치 쟁기로 밭을 갈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종주려-바위섬>

 <두여 해변>


   갈수록 높아지는 두여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밧개해변이 드넓은 멍석처럼 펼쳐진다. 밧개해변은 백사장이 넓기도 하지만 독살로도 유명하다. 독살은 석방렴(石防簾)이라고도 한다. 밀물 때 물의 흐름에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업방식이다. 밧개독살은 백사장이 좋아 찾아오는 해수욕객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원형을 잘 보존한 채로 조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독살>


   밧개해변에서 다시 고개를 넘으면 두에기해변이 나온다. 바닷가 풍광을 간직하고 있어 조용하게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고 하는데, 바람처럼 스치고 바로 방포해변으로 나온다.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방포해수욕장은 모래 질이 좋아 가족휴양지로 최적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다. 해변에는 이곳의 주산물인 꽃게와 주구미를 형상화한 급수대(給水臺)가 시선을 끌고, 멀리 할애비·할미바위가 보인다.

 <꽃게 급수대>

 <주구미 급수대>


   바람은 아침부터 꾸준하게 불어온다. 방포해변에서 노을길 마지막 고개를 넘어 방포항에 도착한다. 방포항은 한적하고 조용한 어항으로 일명 젓개항이라고도 부른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열리는 꽃지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수산물 집산지로 어선들이 꽃다리아래 어항에서 정박하며 조업을 기다린다.

 <꽃다리와 방포항>

 <방포항>


   주변에는 천연기념물(138, 19623)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모감주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다. 꽃은 황색으로 7월에 피며 꽈리 모양의 열매 속에 생기는 씨는 익은 후 승려들의 염주로도 쓴다. 안면도 모감주나무는 중국의 산동지방에서 종자가 해류를 타고 흘러와 이곳에서 싹이 터서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감주나무 군락지>

 <모감주나무>


   꽃다리를 건너와 물이 빠진 바닷길을 따라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할애비·할미바위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 바위의 전설은 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張保皐)는 서해안의 견승포(안면)에 전진기지를 두고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 장군을 임명했는데, 승언은 견승포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이곳을 지키다 진군 명령을 받고 출전한 뒤 돌아오지 않자, 일편단심으로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바위가 되는데, 이 바위가 할미바위이고, 그 후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옆에 할애비바위가 우뚝 솟았다고 한다. 이곳의 지명도 안면읍 승언리이다.

 <할매바위와 할애비바위>


   노을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노을은 보질 못했지만 비대신 바람을 뚫고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까지 걸어 온 모습은 더없는 붉은 노을이다. “사랑 그것은 정녕 그리움 노을빛처럼 타는가. 가슴 가득히 설레는 바람 잠들지 않는 물결박인수와 이수용이 부른 사랑의 테마중에서 처음 구절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포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