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과 크낙새
瓦也 정유순
광릉(光陵)은 조선조 제7대 임금 세조와 그 왕비 정희왕후 윤씨 능으로 숲의 보호를 위해 풀 한포기의 채취도 금지하라는 왕명으로 지금까지 잘 보호되어 왔으며, 산림은 울창하고 크낙새가 서식할 수 있는 노거수(老巨樹)가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많은 전란(戰亂)을 겪으면서 우리 강토가 많은 전화(戰禍)를 입었으나 이곳 광릉은 전쟁 피해가 거의 없이 보존되어 왔고 산림이 풍부해 자생식물만 900여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릉 숲>
광릉 숲은 경기도 포천시와 남양주시, 의정부시가 연접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1468년부터 세조임금 능의 부속림으로 지정되어 약 550여 년간 잘 보존되어 온 온대지역의 대표적 숲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숲에 산림생물의 연구와 보전, 산림문화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수목원을 198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87년에 ‘광릉수목원’이 개원하였고, 이후 보다 체계적인 산림생물의 연구와 수목원 관리를 위하여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확대 발전하였다고 한다.
<광릉 숲 안내도>
특히 천연기념물 제197호로 지정된 ‘광릉크낙새’는 ‘딱따구리과’에 속하는 새로 우는소리가 ‘크낙크낙(또는 클락클락)’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경기도 광릉에 국한하여 잔존하는 매우 희귀한 품종의 하나라고 하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자연’과목의 시험문제로 출제되기도 한 이 새가 1980년대 중반부터 종적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광릉 크낙새 - 정인옥 컷>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때부터 광릉 숲속으로 들어오면 사람에게만 필요한 시설이 자꾸 늘어나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크낙새가 사라진 이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광릉 숲속에 지금의 ‘국립수목원조성공사’기간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참으로 묘한 오비이락(烏飛梨落)이다.
<광릉 후면>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先寺)’는 조선 제8대 임금 예종이 부왕(父王)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의 위업을 받들고, 능침을 보호’하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름인데, 고려조 제4대 임금 광종 때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한다.
<봉선사 전경>
이곳에서 시무 중인 삼진스님의 안내를 받아 절 뒤편으로 이어지는 숲속을 거닐며 크낙새의 흔적을 찾으려고 요리저리 기웃 거렸으나 아주 귀한 새라 그런지 종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크낙새가 있었을만한 노거수나 고사목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포장이 잘 된 임도가 숲속을 가로질러 나있다.
<광릉 봉선사 숲>
<광릉 봉선사 숲길>
세상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무시무종 無始無終)’라고 하는데, 노래공양으로 유명한 ‘삼진스님’의 노랫소리는 왜 이리 애절한가. 광릉크낙새의 한(恨)이 사랑으로 응축되어 다시 태어나는 양 가슴을 파고들어 뜨거운 눈물로 뚝 떨어진다.
<봉선사 삼진스님 노래공양>
광릉 숲속을 거닐면서 아직도 ‘사람들이 금강산을 만들 수 있고, 새들도 마음만 먹으면 불러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세조대왕의 어명(御命)으로 550여년 이상을 지켜온 광릉 숲이 지금에 와서 사람들의 손때가 너무 묻었고 사람 냄새가 너무 난다. 아무리 손재주가 뛰어나도 ‘자연의 조화’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봉선사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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