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구와우마을과 구문소
(2016년 7월 23일)
瓦也 정유순
아홉 마리 소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는 지형이라 불리었다는 구와우(九臥牛)마을은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에 있는 마을로 매년 이맘때면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요즈음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영향 때문인지 봄부터 피는 꽃이나 열리는 열매가 평년보다 보름정도 빨라진 것 같고, 7월부터 된장잠자리가 때를 지어 날아다니고 매미가 극성을 부리며 울어대는 것이 전 지구적인 환경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축제 현수막>
강원도 정선군 고한과 태백시 등 고원지대를 거쳐 해발 850m 이상에 위치한 구와우마을은 1970년대 목장으로 개발된 곳을 고랭지 채소재배지로 이용하다가 2002년부터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기 시작하여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해바라기 밭”으로 지금의 면적은 약16만㎡(약5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해바라기 밭>
버스에서 내려 해바라기축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별로 해바라기가 보이질 않아 긴가민가해진다. 주차장을 건너 상점 앞을 지나 조금 언덕진 곳에 오르니 조그마한 밭에 코스모스와 어울려 해바라기가 보인다. 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생각하며 한 계단 언덕으로 더 올라가니 넓은 밭에 노란 해바라기들이 뒤통수만 보인다.
<코스모스>
<돌아선 해바라기>
태양신 헬리오스를 애타게 짝사랑한 클리티아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으로만 좇다가 꽃이 되었다는 해바라기는 일편단심 태양만 바라보겠다는 의지인지 하나 같이 해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뒤돌아 서있는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꽃송이가 무려 백 만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초입에 약1만평이 조성되어 있고, 그 위에 약4만평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측 산책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온통 세상은 노란바다로 변한다.
<해바라기 꽃>
해바라기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국화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이며 양지 바른 곳에 심는다. 꽃이 해를 따라 도는 것으로 잘못 인식이 돼 해바라기가 되었다는 오해도 있다. 적응력이 강해서 양지바른 곳이면 자생이 가능하다. 종자를 식용하거나 기름으로 짜서 사용하며, 한방에서는 줄기 속을 이뇨제 등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양지만을 좇는 출세지향형의 사람을 ‘해바라기성 인간’이라 하듯, 이 또한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적응력이 강하다.
<해바라기 꽃>
해바라기 밭 오른쪽으로 난 길은 잣나무 생태숲길이 나 있어서 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나무 밑으로 몇 개의 평상이 마련되어 있고, 외줄타기와 해먹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탐방로를 따라 다시 해바라기 밭으로 내려오니 원두막 비슷한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좁고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해바라기를 바라보니 갑자기 황홀감이 온몸으로 엄습한다. 마치 장군이 된 나를 향해 100만 대군이 도열하여 ‘받들어 총!’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만약에 이처럼 많은 해바라기 군상들이 나를 따라준다면 나도 틀림없이 ‘해바라기 장군’이 되겠지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100만송이 해바라기 도열>
전망대에서 내려와 마치 장군이 대군을 열병(閱兵)하듯 산책로를 따라 가로와 세로로 밭을 누비며 헤집고 다닌다. 지금 딛고 다니는 이 땅이 1970년 이전에는 어떤 땅이었을까? 고원지대에 아주 경사가 완만한 지역이면 어김없이 화전민들이 화전(火田)을 일구어 생활했을 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전망대에서 본 해바라기 밭>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때가 되어 미리 봐둔 잣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 앉아 점심을 한다. 산새소리 끊임없이 들리고 어린 메뚜기들은 풀밭을 향해 뜀박질 한다. 푹푹 찌는 삼복염천에 한줄기 물이라도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 가 생각하며 준비한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다.
<점심시간>
오후에는 임도처럼 조성해 놓은 생태숲길을 따라 도보를 시작하는데 생태숲길 치고는 숲이 없는 길이다. 아마 사람보다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아닌 가 싶다. 자연생태를 위한 시설이라면 자연이 알아서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사람이 인위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공간은 자연적 관리의 보조수단으로 최소화해야 된다고 강하게 주장해 본다.
<생태숲길>
잣나무 숲을 벗어나자 일본잎갈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풀 섶에는 동자꽃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미역줄나무는 예쁜 나비들이 달라붙은 모양으로 열매를 맺어간다.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 계곡 건너 산마루 풍력발전기는 너무 더워 힘에 겨운지 바람개비 날개가 오수를 즐긴다.
<동자꽃>
<미역줄나무>
<자작나무>
<풍력발전기>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골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나온다. 골재가 필요해서 들어섰겠지만 고원자연식물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물건을 나르기 위한 자동차의 미세먼지와 소음 등은 자연생태계에 해를 끼치면 끼쳤지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산속의 골재공장>
더군다나 이 공장의 진입로를 포장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콘크리트로 한참 포장공사를 하며 땅바닥의 숨구멍을 아예 막아버린다. 무더워서 땀도 나고 숨도 막히지만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모든 것이 사람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단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자연 속에 살면서 다른 생명들과 공존하며 상생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콘크리트 포장공사>
그래도 숲길이 아닌 숲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꽃밭으로 내려오니 해바라기가 환하게 반겨준다. 도열해 있는 해바라기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아래로 내려와 상점에서 산야초와 산나물 등을 바구니에 담으며 구문소로 이동한다.
<해바라기 밭>
구문소(求門沼)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솟아난 황지천이 이곳의 암반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을 만들고 소(沼)를 이루었다 하여 ‘구멍소’ 또는 구문소라 부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헌에는 구멍이 뚫린 하천이라는 뜻으로 천천(穿川)으로 기록 되었다 하며,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 내(뚫은 내)’라는 이름도 있다.
<구문소>
조선조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산경표(山經表)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하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되어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지 못 한다”는 원리처럼 비록 산은 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산 밑으로 구멍을 뚫어 낙동강의 약1,300리 길을 열어준다.
<구문소로 흘러 들어가는 황지천(낙동강)>
구문소의 생성원리는 황지천과 철암천이 만나는 이곳의 단층선을 따라 활발한 침식작용을 진행시키던 중 지하에 생성되어 있던 동굴과 관통되어 물이 흘러들면서 동굴을 점차 확장시켜 하천이 산을 뚫고 흘러가는 자연동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황지천으로 흐르던 물이 자연동굴 속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사군드리’마을로 흐르던 곡류하천은 퇴각되어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구하도(舊河道)가 되었다고 한다.
<사군드리 구하도 설명문>
구문소 안쪽 절벽에는 ‘五福洞天子開門(오복동천자개문)’이라는 글이 암각 되어 있다. 이는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갈 때 구문소 석문이 나오는데, “자시(子時, 오후11시∼오전1시)에 열렸다가 축시(丑時, 오전1시∼3시)에 닫히므로 열린 시간에 통과하면 흉과 화가 없고 재난과 병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이상향이 태백이라 표시한 것이란다.
<동굴안 수면 위로 "오복동천자개문" 암각>
일제강점기 때 지하자원의 수탈을 위해 뚫은 자동차 굴을 통해 낙동강 상류 쪽으로 하여 고생대자연사박물관 앞을 지난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자개루(子開樓)에 올라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이상향을 꿈꿔본다. 비록 나의 욕심이지만 시간이 없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와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에 들르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남긴 채…
<좌측이 자동차 동굴, 우측이 구문소>
<자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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