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회초리
瓦也 정유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엄마 학교에 갔다올께”하며 인사를 하였더니, “네 이놈, 엄마가 뭐야, 이제 학생이 되었으면 어머니라고 해야지, 또 갔다 올게 가 뭐야.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하며 할아버지께서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때리신 적이 있다. 종아리에 회초리 자국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살짝 맞았지만 온 식구로부터 사랑만 받아 오던 어린나이에 종아리의 아픔보다 마음이 더 아팠던 일이 있었다.
<컷-정인옥>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고향은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 밑에서 숙제를 하고 나면 아침에 그을음으로 코 구멍이 새까맣게 막히던 벽촌으로,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열다섯 명 정도의 식구가 대가족을 이루고 있어 그 틈새에서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처지’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식구는 농사일에 여념이 없고 학교에 다녀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기 바쁘게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시절이었다.
<컷-정인옥>
지금처럼 ‘영어다 미술이다 음악이다’하며 개인의 특성을 찾아주는 과외수업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사회인이 되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의 회초리의 뜻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우선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다. ‘엄마’는 어머니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로 애기 때 어머니의 품안에서 사랑과 정으로 양육되어 질 때 부르는 호칭이고, ‘어머니’는 자식을 가진 여자를 자식에 대한 관계로 이르는 말로 어머니와 나를 엄격하게 구분 짓는 관계설정이다.
그때 할아버지의 회초리는 ‘엄마의 품속에서 응석을 부리며 자라던 애기가 아니라 이제 어미의 품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니 미리 준비하라’는 깊은 훈육(訓育)의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고마운 할아버지의 회초리였다.
언젠가 나는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탄자니아의 세계최대로 손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웅고롱고롱분화구 에 갔을 때 누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보기 힘든 광경으로 이것은 행운이다”라고 안내자는 열띤 소리로 말 하였다. 온몸에 힘을 집중하여 진통을 삼십 여분 하다가 예쁜 새끼 한 마리를 순산하였다.
아기 누는 눈을 뜨자마자 제 한 몸 버티기 힘든 서투른 걸음마로 젖을 본능적으로 찾았고 어미는 사타구니로 머리를 밀어 넣는 새끼를 뒷발로 멀리 떼어 놓았고 새끼는 죽을힘을 다하여 젖을 향해 또 다가가고 또 떼어놓고를 계속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뛸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미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것 이었다.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어미의 표정은 강하면서도 사랑이 듬뿍 담긴 모정(母情) 그 모습이었다. 매정하기만 했던 어미 누의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아니 자식을 사랑만할 줄 알지 세상사는 지혜를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보다 한 수 위이다.
사랑스러운 손자를 더 클 수 있도록 종아리에 회초리를 때리던 할아버지의 깊은 마음이나, 새끼에게 바로 젖을 물리지 않고 매정스러울 만큼 먼저 뛸 수 있는 훈련을 시킨 어미 누의 마음은 어떤 환경이 닥치더라도 그 환경에 적응하여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라는 큰 가르침 이었다.
우리교육의 목적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할아버지의 회초리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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