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세계 지리산 칠선계곡
(2016. 7. 30)
瓦也 정유순
엊그제 중복이 지났지만 날씨는 삼복염천(三伏炎天)의 한 복판에 서 있어서 그런지 밤에는 열대야(熱帶夜)로 잠을 설치고, 낯에는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로 연일 뜨겁게 달군다. 아무리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고는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영향이 너무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
<금산인삼랜드휴게소(하) 조형물>
방송에서는 여름휴가의 절정으로 고속도로가 막히고 이름 난 계곡과 바다는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나온다. 그래서 오늘은 무더위를 잠시라도 잊을 생각으로 경남 함양에 있는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더위를 피해 떠나보기로 한다. 예상대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목은 자동차로 홍수를 이룬다. 밖은 무더워도 버스안의 냉방시설은 성능이 좋아 바람구멍을 닫아 놓아도 그리 덥지 않다.
<추성리마을 정자-두류정>
추성리 주차장에 11시쯤에 도착하여 계곡으로 올라 갈 준비를 마치고 포장된 오르막길을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복사열이 숨을 탁탁 막히게 한다. 포장길이 끝나고 다듬이 같은 돌로 질서정연하게 깔아놓는 길을 따라 고개 마루에 올라서서 숨을 고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숲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 짙은 움푹 파인 국골이 두류능선과 초암능선을 좌우로 갈라놓는다.
<두지고개 넘어가는 길>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땀방울은 모자 차양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데 그나마 멀리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칠선계곡 초입에 들어섰다는 신호 같이 들린다. 계곡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시원한 음료 등이 갖춰진 두지마을 가게에는 항암치료에 좋다는 말굽버섯이 바구니를 가득 메운다. 가게 뒤로는 민박 등을 할 수 있는 마을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마을골목에는 어린이와 같이 휴가 나온 가족들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자동차 몇 대가 주차해 있었는데 이곳 두지터(두지마을)에 피서차 온 사람들의 자동차 같다.
<말굽버섯>
두지터는 이곳 ‘지형이 쌀뒤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가까운 곳인 ‘국골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지터부터 본격적으로 칠선계곡(七仙溪谷)으로 들어선 것 같다. 지리산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 중의 하나로 지리산 원시림에 7개의 폭포수와 함께 33개의 소(沼)가 천왕봉에서 칠선폭포를 거쳐 용소까지 18㎞에 걸쳐 이어지는 곳으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이 깊고 험해 한때는 ‘죽음의 골자기’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국골>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 계곡 쪽으로 조금 나아가자 철망이 쳐지고 출입문이 나온다. 아마 입산통제 기간 중 출입을 막기 위해 만들었나 보다. 두지교를 건너 쇠줄로 만든 출렁다리를 지나면 가파른 오름길이 나온다. 계곡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푸른 숲을 가른다. 아마도 일곱 색 갈 무지개 선녀들이 한여름 밤에 내려와 유희(遊戱)하던 미리내라 칠선계곡인가 보다.
<칠선계곡 이정표>
칠선교(출렁다리)를 지나자 물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칠선교는 2011년 태풍 ‘무이파’의 집중호우 영향으로 유실된 교량을 새로 복구한 시설로 통과 폭이 1.2m이고 연장거리가 23.5m이다. 칠선교를 건너 자갈길과 계단을 한참을 올라가니 오전이 후딱 지난다. 비교적 비탈이 덜한 곳에 자리를 잡아 도시락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칠선교(출렁다리)>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자 비교적 평탄한 곳이 나오고,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길옆에는 “이 등산로는 집 마당을 통과합니다. 조용히! 앞뒤 100m”라는 푯말이 나온다. 아마 개인이 사는 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정온(靜穩)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같다. 그러나 지나치며 곁 눈짓으로 보아서는 사람이 사는지는 모르겠다.
<조용히! 안내문>
바위 틈새로 난 길을 오를 때는 발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나마 계단도 없고 다리도 없고 데크도 없었다면 ‘죽음의 계곡’이 딱 맞을 것 같다. 흐르는 물소리도 이곳에서는 천상의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뿐이다. 가지고 간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한참을 올라가니 선녀탕(해발 620m)이 나온다. 선녀가 놀던 선녀탕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니라 지상의 선남선녀들이 한가로이 목욕을 즐기는데 옷을 벗지 않아 감출 수가 없다.
<선녀탕 상류>
선녀탕에는 일곱 선녀와 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일곱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데 이를 훔쳐보던 곰이 선녀의 옷을 바위 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이 잘못하여 사향노루 뿔에 걸쳐 놓아 버렸다. 이때 옷을 찾아 헤매는 선녀들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린 옷을 가져다주었고, 옷을 찾은 선녀들은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으며, 선녀들은 자기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에게 칠선계곡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선녀탕>
선녀탕을 지나 미끄러운 바윗길을 조심스레 더 올라가면 더 크고 더 깊고 더 푸른 옥녀탕(해발 650m)이 기다린다. 그러나 규모의 아름다움 보다 누워 있는 바위를 미끄럼 타듯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이 일품이다. 땀이 너무 나와 내복은 물론 바지까지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되어 버려 시원한 옥녀탕에 몸을 한번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물이 흐르며 내는 바람에 시원함을 상상해 보며 데크를 따라 오르니 비선교가 나온다.
<옥녀탕>
옛날에는 양쪽 바위에 밧줄로 연결하여 건넜던 자리에 출렁다리인 비선교를 설치한 것 같다. 이 다리는 출렁다리이긴 하나 특이한 것은 다리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상판이 파도가 일렁이듯 상하로 움직인다. 다리 건너 좌측에는 ‘비선담지킴터’ 조그마한 건물이 있다. 그리고 다리 아래로는 목욕한 선녀들이 하늘로 올랐다는 비선담(飛仙潭, 해발 710m)이 있다. 규모는 옥녀탕과 비슷한 것 같다.
<비선교>
<비선담지킴터>
비선교를 지나면 한적한 숲길이 나온다. 소(沼)와 와폭(臥瀑)이 연속하여 어우러진다. 이름을 알리는 표지판 등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지만 이름 있는 선녀탕이나 옥녀탕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숨이 턱 밑으로 차오를 즈음 비선담통제소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통제된다. 그러니까 칠선계곡을 상시 출입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비선담통제소부근 계곡>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비선담에서 천왕봉 구간을 2027년까지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한시적으로 5월과 6월, 9월과 10월 등 연중 4개월만 ‘탐방예약 가이드 제도’를 운영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 7시에 추성리 주차장에서 칠선계곡을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가고, 화요일과 금요일은 천왕봉에서 반대로 추성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이를 위해서 매회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으로 구성된 4명의 안전지킴이가 동행하며 하루 참여인원을 60명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예약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www.knps.or.kr) 예약은 당월 1일부터는 당월 16일∼말일, 당월 15일부터는 익월 1일∼15일 예약가능하다.
<탐방예약 가이드제 운영>
<선녀탕 위 작은폭포>
욕심 같아서는 5㎞ 남짓한 천왕봉까지 단숨에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지금의 체력의 한계로는 무리라 생각하며 통제소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다시 되짚어 돌아오는데 올라갈 때 보다는 조금 여유롭지만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참으로 “올라갈 때는 용기가 더 필요하지만, 내려올 때는 지혜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도 모자라서 바지가랑이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천상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
<자연이 만든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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