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530리를 걷다(세 번째)
(남원대강면→구례간전면, 2016. 3. 26∼3. 27)
瓦也 정유순
완연한 봄인데도 아침저녁으로 꽃샘추위가 제법 쌀쌀하다. 섬진강 걷기의 오늘 출발지인 남원대강면으로 이동하던 중 큰길 옆에 있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金朱烈 烈士, 1944. 10∼1960. 3)의 묘가 있는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잠깐 들러 56년 전의 그 때를 회상하며 머리를 숙인다. 고교 1학년이던 김주열 열사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소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27일 째인 1960년 4월 11일 경남 마산항 중앙부두 인근에서 최루탄이 두 눈에 박힌 채 떠오른 주검을 어부가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유당정권의 독재와 만행이 타도되었고, 마침내 4∙19혁명으로 마무리 되었다.
<열사 김주열의 묘>
남원시 대강면의 섬진강은 땅 속의 봄기운을 일궈내듯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수줍게 핀 꽃송이도 안개에 세수하면서 봉오리를 활짝 피고, 강 건너 곡성의 진산(鎭山)인 동악산(動樂山, 735m)이 안개에 싸여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동악산은 곡성 고을 사람 중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기우제를 남자들 대신 여자들이 지내면서 “술에 취해 흥겹게 가무를 해야 하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개에 싸인 動樂山>
<물안개 피어나는 섬진강>
시간이 지나 기온이 상승하면서 수면 위에 가득했던 물안개는 차츰 자취를 감추고 흐르는 물살위로 햇빛도 물비늘을 만들어 반짝이는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봄의 소리로 변주된다. 아울러 안개에 감춰졌던 동악산 모습도 환하게 드리운다. 양지 바른 곳의 진달래도 방긋하고, 섬진강에서는 꽃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개나리도 무리를 지어 봄 길을 환하게 밝힌다.
<섬진강의 물비늘>
<動樂山>
<섬진강 개나리>
넓은 들을 가진 남원시 금지면 어느 주택은 주먹만 한 자갈로 정성들여 기둥을 쌓아 대문을 만든 강변 집은 아름다운데, 가까운 낮은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동묘지는 포화상태로 비만 조금 내려도 무너질 것 같다. 전라선 철교 위로 기차는 간간히 기적을 울리며 달리고, 고수부지(高水敷地)에 만든 야구장을 바라보며 금곡교를 남으로 건너오니 전남 곡성군 곡성읍으로 섬진강 기차마을이 기다린다.
<자갈로 만든 대문기둥>
<섬진강변 공동묘지>
섬진강 기차마을은 옛 곡성역을 활용하여 만든 체험마을로 칙칙폭폭 기적소리 들려오는 향수를 불러오는 테마마을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익산에서 여수를 연결하던 전라선 구 철길에 1960년대 까지 운행하였던 증기기관차를 옛날 모습 그대로 투입하여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섬진강 변을 운행하고 있으며, 또한 침곡역부터 가정역까지 레일바이크도 즐길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섬진강 기차마을 이야기>
신금곡교 상판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하류로 더 내려오니 하천에 넓은 습지가 펼쳐진다. 입구에는 ‘섬진강변 자연생태공원 종합안내도’가 서있고 강둑 밑으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너 습지 길로 접어드니 봄의 전령 개나리가 무리지어 있고, 물기 가득 머금은 버드나무는 하얀 뭉게구름을 하늘에 띠우고 연한 순을 키운다.
<물오른 버들>
남원 금지 들을 적시는 요천이 남원시내에서 춘향이의 봄바람을 안고 섬진강으로 합수한다. 요천(蓼川)은 전북 장수군에 있는 백운산(白雲山:1,278m)에서 발원하여 장수군 번암면 동암댐에 잠시 담수되었다가 남쪽방향으로 남원시를 가로질러 곡성군 접경지역에서 섬진강으로 비집고 들어와 하천의 유지용수에도 부족한 본류의 유량(流量)을 늘려준다. 그리고 그네 타는 춘향이의 치마폭이 바람에 날려서 그런지 합수지역도 넓게 펼쳐진다.
<요천 합수부 지도>
<섬진강과 요천의 합수부, 우측이 요천>
목재데크로 단장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이름 없는 정자가 섬진강을 굽어본다. 소나무와 신우대가 우거진 언덕을 돌아 만나는 곳에는 1560년경에 선산김씨(善山金氏) 김성손(金姓孫)이라는 사람이 전국을 유람하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뛰어난 산수와 넓은 들에 반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여 설촌(設村)했다는 동산리(東山里)마을이 있고 뒷산에는 ‘동산정’이란 정자가 있다. 오래된 마을답게 170여년이 되는 보호수 느티나무가 담벼락 밖으로 서있다.
<동산리 이름 없는 정자>
<170여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
오후에는 오곡면 침곡리 섬진강보(洑)를 건너 곡성군 고달면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강 건너 전라선 구 철길에는 증기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추억 속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심청의 고향 곡성’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고달면 호곡나루에는 강안 양쪽에 줄을 달아 놓고 배를 이용하던 ‘줄배’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두둥실 떠있다. 그리고 호곡마을에는 마천목장군의 도깨비 전설이 하얀 목련꽃 마냥 봉오리진다.
<고달면으로 건너가는 수중 보(洑)>
<추억 속으로 달리는 증기기관차>
<도깨비 상>
두곡교를 지나는 길에는 ‘남도 이순신 길 조선수군 재건로’란 표지판이 나온다.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백의종군하던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 등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역사테마 길로 조성했다고 한다.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
두가세월교는 차량과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잠수교 형이고, 옆에 높이 솟은 두가교는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는 가정역(폐역)으로 사람만 통행할 수 있는 현수교(懸垂橋)이다. 그리고 압록에는 고려 때 강감찬장군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하다가 머물게 되었는데 모기가 극성을 부리자 “썩 물러가거라” 하며 고함을 치자 모기의 입이 봉해졌다는 ‘모기의 전설이 전해온다.
<섬진강두가교-메버릭님 사진>
<압록 모기전설 이야기>
오늘의 팁으로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있는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로 이동한다. 태안사는 한 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화엄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 1년(742년)에 하허삼위신승(何許三位神僧)이 창건하였고, 고려 태조 2년(919년)에 윤다(允多)가 132칸을 중창했으며, 개산조(開山祖)인 혜철국사(慧徹國師)가 이 절에서 법회(法會)를 열어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중심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동리산태안사 일주문>
<태안사 대웅전>
<태안사 부도-명조님 사진>
동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 양 언덕에 기둥을 걸치고 다리역할을 하는 능파각(凌波閣)이 인상적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계곡 양축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통나무로 보를 만들어 바닥을 깔았다. 그리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그 흔한 석탑이나 석등이 보이질 않고, 절 밖 연못 가운데에 3층 석탑을 세워 놓았다. 광자대사 윤다와 적인선사 혜철의 부도비가 화강암을 손으로 떡을 주무른 것처럼 정교한 손놀림이 눈길을 끈다. 능파각 아래 길옆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핀 엘리지꽃은 보랏빛이다. 또한 주차장 옆에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이 있지만 먼발치로만 바라본다.
<태안사 능파각>
<태안사 삼층석탑>
<태안사 엘리지 꽃>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온 유곡나루 입구에는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아침부터 물안개 자욱한 꽃길을 하루 종일 걸으며 소나무 사이로 얼굴을 가린 채 석양빛이 물드는 모습은 힘찬 내일을 약속한다. 유곡나루는 곽재구 시인이 일본의 수도 도쿄도 가보지 못한 일본인들이 신칸센(신간선) 기차표 값으로 섬진강으로 기생관광을 온다는 내용을 풍자한 시를 정태춘이 “나의 살던 고향∼”으로 개사해 불러 더 유명하다.
<섬진강의 낙조>
곤한 잠을 자고 여명이 밝아올 때 바삐 서둘러 구례 산수유마을인 상위마을로 꽃구경을 간다. 음력 열아흐레 새벽달은 하늘을 더 높게 하고, 꽃들은 만개하여 온 계곡이 노랗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오천 석의 부유한 터”라 하여 홍씨와 구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지리산자락 500m에 자리한 이 마을은 더덕, 오미자 등 산약초와 산수유가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으며, 지리산 맑은 물이 마을을 감고 돌아 흐르는 하천은 한여름에도 발이 시릴 정도라고 한다.
<구례 산수유마을의 아침>
<상위마을 유래>
<산수유>
조반을 마치고 다시 유곡마을로 와서 하류로 내려간다. 예부터 느릅나무가 많아 유곡리라 불리었고, 곡성군 죽곡면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어 유곡나루라고도 한다. 강변의 매화는 마지막 끝물을 향해가고 벚꽃은 꽃망울을 부풀린다. 강 가운데 바위들은 흐르는 물살에 얼마나 마모되었는지 강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구례구역 다리 건너에는 철이 조금 이른 벚꽃이 만개하고, 사성암이 있는 구례 오산(鰲山, 531m)이 가까이 보인다.
<유곡마을 유래비>
<섬진강 매화>
<섬진강의 바위>
<섬진강의 조금 일찍핀 벚꽃>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죽연(竹淵)마을로 가서 섬진강변 길을 통해 하류로 계속 걷는다. 죽연마을은 고려말인 1392년에 제주고씨 숭례가 음성현감을 지내던 중,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 이곳으로 피신하여 마을을 만들었고, 이후 다른 성씨들이 차례로 입향하여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자목련봉오리는 동백과 조화를 이루고, 단감나무 밭은 퇴비를 뿌리기 위한 준비가 바쁘다. 오전 내내 섬진강을 걸었는데, 구례오산을 가운데에 두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빙 도는 꼴이 되었다.
<죽연마을 유래비>
<자목련과 동백>
<섬단감나무 밭>
<구례 오산>
점심을 하기 위해 피아골로 가는 길목은 봄나들이 나온 차들로 붐빈다. '피아골아가씨'들의 발효식품으로 꽤 알려진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연곡사에 잠시 들른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연곡사는 화엄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신라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수선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으며 임진왜란 때에 전소되었다가 1981년에 현재의 대웅전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연곡사 일주문>
연곡사 경내에는 국보 제53호인 동부도(東浮屠)와 국보 제54호인 북부도(北浮屠)를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제151호),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제152호), 동부도비(보물 제153호), 서부도(西浮屠 보물 제154호)등의 문화재가 있고, 대한제국 때 의병장으로 순절한 고광순(高光洵)의 순절비가 동백나무숲 아래 있다. 이곳의 부도도 태안사 부도 못지않게 돌을 떡 주무르듯 빚어낸 솜씨가 예술의 극치로 신심이 없이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북부도 탑신>
<북부도>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다시 버스로 구례군 간전면 양천리에 있는 섬진강어류생태관 앞으로 이동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강변으로 나오는 길에 ‘수질오염 상시 감시 측정소’가 반갑게 눈에 들어오고, 공중화장실은 소리의 고장답게 장구모형으로 건축하여 운치를 더한다. 하천생태계가 우수한 섬진강에는 모래톱이 잘 발달되어 있고, 양지 바른 곳의 진달래와 개나리는 활짝 피었다. 기둥 몸체를 뚫고 나온 벚꽃 가지도 꽃을 피기 위해 마지막으로 물을 힘껏 빨아들인다.
<섬진강 어류생태관-메버릭님 사진>
<수질오염상시측정소>
<섬진강 공중화장실>
<섬진강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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