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겨울이 더 좋은 덕유산(德裕山)

와야 정유순 2022. 1. 20. 23:17

겨울이 더 좋은 덕유산(德裕山)

(2022 1 18)

瓦也 정유순

  2004년 어느 겨울 날.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강원도 평창과 함께 전라북도 무주가 경쟁을 할 때 세계올림픽위원회(IOC) 심사위원들이 무주를 방문하여 설경(雪景)에 감탄했던 곳이었으나 후보지로는 강원도 평창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그 무주 설경의 중심에는 덕유산이 있었고, 후보지에서 탈락한 이유는 자연생태계가 잘 발달된 곳으로 자연환경파괴가 우려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스키장 등 <무주리조트>란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무주리조트 숙박시설>

 

  동 트기 전에 서울을 나선 발길은 오전 11시가 되어서 무주리조트 곤돌라 매표소에 도착한다. 이미 사람들은 길게 늘어서 있고 스키장에서는 많은 스키어들이 줄을 잇는다. 무주리조트는 덕유산국립공원 무주구천동 안에 1990년 개장한 종합휴양지로 스키장 등 동계스포츠 시설을 위주로 한 대단위 레저오락 시설 단지다. 1997년에는 이곳에서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렸고, 1998년에는 아놀드 파머가 설계한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개장했다

<곤돌라 매표소>

 

<곤돌라>
 

  1975 2 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덕유산은 약 20km에 걸친 긴 능선을 포함하는 산이다. 북동부의 향적봉을 주봉으로 남동부의 남덕유산까지 이어지고, 무룡산(舞龍山, 1,492m) 및 동엽령(冬葉嶺, 1,328m) 등 산봉과 안부(鞍部)가 이어진 백두대간의 주맥이 덕유산의 주능선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의 주목군락과 고산식물 및 산체를 뒤덮은 숲의 경관이 뛰어나고, 그 중에서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경승지는 역시 무주구천동이다

<무주스키장 슬로프>
 

  순번을 기다려 곤돌라를 약 15여분 동안 타고 설천봉에서 내린다. 설천봉 마당에는 어제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눈이 부시다. 설천봉(1520) 정상에는 식사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레스토랑이 있으며, 덕유산 주변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상제루>라는 누각이 맑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또 설천봉에는 장장 6.1k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장 스키슬로프 코스인 무주스키장의 실크로드 슬로프의 출발점이 있는 곳이다

<설천봉 정상>

 

<설천봉 상제루>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香積峰, 1614m) 까지는 약 600로 오고가는 길은 거의 산책길이다. 신발에 아이젠을 부착하고 입구 계단을 오르는데, 향적봉을 향하는 인파는 줄을 잇는다. 겨울에는 상고대와 설경,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군락이 아름다우며 다양한 아고산대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고산대(亞高山帶)는 공간적으로 고산대와 산지림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형으로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은 지대다

<향적봉을 향해>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눈 꽃 터널이다. 어제 내린 눈들은 나뭇가지에 엉키어 쪽빛 하늘을 가린다. 눈 꽃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급해 서둘러 향적봉에 올라 덕유산의 황홀한 설경이 보고 싶어 한다. 특히 날이 맑아 눈꽃이 제대로 핀 날은 더욱 그렇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인파에 밀려 앞으로 나아가는데, 향적봉이 바로 보이는 지점에서 갑자기 뒤에서는 길을 비키라며 구급대원들이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겨우 두 사람이 교행(交行) 할 수 있는 좁은 길에서 발길이 멈춰진다

<목전의 향적봉>
 

  조금 있으니까 소방헬기 1대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배회한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신호다. 여러 번 공중을 배회하던 헬기에서는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들것과 소방관 한 명이 내려오고 한참 있다 들것에 실린 물체가 헬기로 옮겨진다. 분명 덕유산 눈꽃여행 왔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가까이에 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체온증으로 이승을 달리 했다는 전언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구조용 소방헬기>
 

  약 한 시간 가량 지체 된 산행은 다시 시작하여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른다. 향적봉(1614m)은 남한에서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네 번째 높다. 덕유산(德裕山)이 왜덕이 많고 너그러운 산이라 불리는지는 정상에 서서 사방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사방이 탁 트인 향적봉은 별도의 덕유세상(德裕世上)을 만든다. 추풍령에서 중봉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근육질은 힘이 불끈불끈 솟아 장쾌하다

<덕유산 향적봉>

 

<덕유산 향적봉>
 

  덕유산은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安城面설천면(雪川面)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끝 지점에 남덕유산(1,507m)이 독수리 날개처럼 솟아 있다. 그 뒤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줄달음질 쳐 나간 지리산 능선이 선명하고, 다른 산들은 명암을 달리하며 수묵화처럼 겹치고 포갠 채로 이어져 한려수도의 섬까지 다다른다. 덕유산의 동·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는 낙동강 수계와 금강수계의 분수령 역할도 한다

<남덕유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향적봉대피소에서 준비한 행동식(行動食)으로 점심을 때우고, 향적봉에서 느끼지 못한 설경의 아쉬움을 중봉으로 가는 길에서 달래본다. 천년풍상을 견뎌낸 주목에 상고대는 맺혀지지 않았지만 한 자리를 지켜온 꿋꿋함은 지금의 덕유산을 존재케 하는 힘의 원천 같다. 주목(朱木)은 고산 지대에서 높이 17m 정도까지 자란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큰 가지와 원대는 홍갈색이며 껍질이 얕게 띠 모양으로 벗겨진다. 잎은 줄 모양으로 나선상으로 달리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처럼 2줄로 배열한다

<주목-살아 천 년>

 

<주목-죽어 천 년>
 

  덕유산의 또 하나의 자랑은 키가 20m에 이르는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덕유산의 깃대종으로 88서울올림픽 상징 나무로 지정되었다. 덕유산에는 현재 향적봉, 남덕유산, 서봉 등을 중심으로 한 북사면에 주로 분포한다.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준비를 위해 설천봉 일대에 스키 슬로프를 만들면서 그 안에 있던 구상나무를 모두 정상 부근으로 이식하였으나 거의 모두 고사시킨 사례도 있다. 구상나무는 수명도 길고, 죽은 뒤에도 쉽게 썩지 않아 주목과 함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구상나무>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수형이 아름다워 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공원수, 기념수, 크리스마스트리용 등으로 매우 인기 있는 수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상고대가 점점 사라지고 구상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림의 자생지가 사라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상나무는 식물학자 윌슨이 1920년에 한국 특산 식물임을 밝히고 학명에 ‘KOREA’를 명기하였다고 한다

<암벽에 자라는 구상나무>
 

  향적봉에서 1.3 거리의 중봉(1594m)은 향적봉과 함께 덕유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로 제이덕유산으로도 불린다. 중봉의 전망대에 서면 능선이 남쪽으로 갑자기 푹 꺼져버린 느낌이 든다. 전망대 아래 암벽에서는 사진을 담으려는 탐방객들이 줄을 잇는다. 중봉 전망대에 서면 동엽령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의 참맛을 찾기 위해 덕유산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는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다

<덕유산 중봉>
 

  중봉은 덕유산 산행의 갈림길이다. 덕유산의 깊은 품을 찾아 나선 이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중봉에서 오수자굴과 백련사를 거쳐 삼공리집단시설지구로 향하는 코스와, 중봉에서 동엽령으로 내려와 우측으로 꺾어 칠연폭포를 경유하여 안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코스다. 그리고 산 사나이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 자기 덩치보다 큰 배낭을 메고 남덕유산으로 가는 것이다. 이들은 덕유산 능선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머물 것으로 추측된다

<향적봉에서 본 안성들>
 

  우리들의 오늘 산행 코스는 설천봉에서 향적봉과 대피소를 경유하여 중봉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동엽령에서 안성탐방지원센타 까지 12 정도의 거리를 약 5시간여를 산행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중봉에서 다시 향적봉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였다. 그러나 중봉에서 발길을 돌린다고 해도 겨울 덕유산의 진면목은 중봉에서의 조망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중봉에서 본 향적봉>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만 보 이상 걷기 1,000일 달성  (0) 2022.02.03
가깝고도 먼 길 - 정릉  (0) 2022.01.29
가깝고도 먼 길-운현궁  (0) 2022.01.17
탄소(炭素)이야기  (0) 2022.01.13
고흥반도에서 새해를 품다(2)  (0)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