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12-2)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12일-2> 공주 마곡사
(2021년 9월 14일)
요즈음은 도사가 아니라도 축지법(縮地法)을 자주 쓴다. 교통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논산의 사계종가에서 공주 마곡사까지 60㎞ 이상 거리를 단숨에 달려 왔다. 공주시 사곡면소재지까지는 그런대로 평탄한 길이었는데, 이곳을 벗어나 마곡사 가는 산길로 접어들면 금세 산굽이가 이어져 차창의 흔들림이 심해진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 불릴 만큼 봄의 경치가 으뜸인 마곡사의 가을 맛은 어떨까? 마곡사는 2018년 7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곱 개 사찰 중의 하나다.
<유네스코세계유산 마곡사>
태화산(泰華山, 614m) 동쪽의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기슭 맑은 계곡을 끼고 위치한 마곡사는 조계종의 충남지역 70여 사찰을 대표하는 대본산으로 643년(백제 의자왕 3)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172년(고려 명종 2)에 보조국사가 중창하여 크게 일어선 절이다.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寶撤和尙)이 법문을 열 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 같이 많았다’하여 마곡사(麻谷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태화산마곡사 일주문>
이곳은 가람배치가 좀 독특하다. 태극도형으로 흐르는 마곡천(麻谷川)을 중심으로 북측에는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및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등 부처님의 공간인 극락세계(極樂世界)를 상징하며, 하천 남쪽으로는 영산전(靈山殿) 및 명부전과 국사당이 있어 주로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전각들이 있다. 두 공간을 극락교(極樂橋)를 통하여 연결하고 있다.
<마곡사 지도>
마곡사의 정문인 해탈문을 지날 때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의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저승 세계로 대표적인 전각이 영산전이다. 절 한쪽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영산전(靈山殿)은 세조(世祖)가 ‘만세(萬世)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곳’이라 극찬하였을 정도로 풍수지리에서 천하의 대혈(大穴)자리로 태화산에 있는 군왕대(君王垈)의 맥이 흐르는 영험한 기도터로 알려졌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군왕대제 기간에는 입시와 고시 준비생과 영전(榮轉)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법회에 동참한다고 한다.
<마곡사 해탈문>
보물(제800호)로 지정된 영산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과거칠불이 모셔진 자리 뒤로 현겁천불이 봉안되어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한다. 과거칠불(過去七佛)은 석가모니불이 탄생하기 전의 일곱 부처이며, 현겁천불(現劫千佛)의 현겁(賢劫)은 ‘세상이 개벽하여 다시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앞은 겹처마이며 뒤는 홑처마인데 지붕의 길이도 같지 않은 매우 독특한 건축물이다.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靈山殿 편액만 써주었으며, 타고 온 가마도 놔두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
<마곡사 영산전>
영산전을 나와 천왕문으로 들어간다. 천왕문(天王門)은 해탈문에 이어 마곡사의 두 번째 대문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 안쪽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須彌山)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佛道)를 따라 사는지 살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곡사 천왕문>
명부전 등 저승세계의 전각들을 뒤로하고 극락교(極樂橋)를 건너면 우측으로 범종루가 우뚝하다. 범종루(梵鐘樓)는 불교의식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범음구(梵音具)로,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다. 부처님의 말씀에 비유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으며 소리를 듣는 순간 삼계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신앙적 의미와, 시간 또는 특별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실용적 의미로 종소리는 명부세계의 중생을, 북소리는 모든 축생들을, 목어소리는 물 속 생물을, 운판소리는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마곡사 극락교>
<마곡사 범종루>
범종루를 지나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오층석탑은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상륜부에 금속으로 된 라마식의 탑 모양을 얹고 있어서 특이하다. 이런 청동제의 보탑은 풍마동(風磨銅)이라고 하는데 원나라의 영향으로 라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물(제799호)로 지정되었다. 탑신이 8.7m로 홀쭉하게 뻗었고, 지붕돌의 처마가 좁아 상승감을 강조하였다. 1층 몸돌 남면에는 자물쇠 모양이, 2층 몸돌에는 네 면에 부처가 새겨져 있고, 5층 지붕돌에 풍탁(風鐸)이 달려 있다.
<마곡사 오층탑>
마곡사의 중앙에 위치한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호)은 1788년(조선 정조12)에 세워졌다. 건물 안에는 본존인 비로자나불이 법당의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모셔져 있다. 이런 배치는 대개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서처럼 서방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방식인데, 이곳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이렇게 앉아 있어 드문 예를 보인다. 또한 조선조 세조(世祖)가 김시습을 만나러 올 때 타고 온 가마가 보관되어 있으며, 大光寶殿 편액은 영·정조 시대 명필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글씨다.
<마곡사 대광보전>
대광보전 뒤편으로는 2층 누각으로 된 마곡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이 나온다.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대사(覺淳大師)에 의해 중수되었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통층이다. 내부 중심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내부의 아름다리 싸리기둥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마곡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 싸리나무 기둥>
다시 아래 대광보전 마당으로 내려와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백범당(白凡堂)이 있다. 마곡사(백련암)는 명성황후 살해에 가담한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23세의 김구(金九, 1876∼1949)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몸을 숨긴 후 승려가 되어 머물렀던 곳이다. 백범이 망국의 한을 씹으며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던 태화산 마곡사 솔바람길에는 백범명상길(1코스), 백범길(2코스), 송림숲길(3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마곡사 백범당>
<백범명상의길>은 백범이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했던 삭발바위에서 군왕대(君王垈)로 이어지는 길이다. 백범은 백범일지에서 “얼마 후에 나는 놋칼을 든 사제 호덕삼을 따라서 냇가로 나아가 쭈그리고 앉았다. 덕삼은 삭발진언을 송알송알 부르더니 머리가 선뜩하며 내 상투가 모래 위에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한 일이건마는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이 떨어짐을 금할 수 없었다.”라고 삭발당시를 회고한다.
<백범명상길 표지 - 2018년 5월>
백범(白凡)은 ‘가장 낮은 곳의 무리’를 뜻한다고 하는데, 그 당시 양반가문이 아닌 평민가정에서 태어나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人乃天)’라는 말에 감화되어 동학에 입문하였던 그가 삭발하고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삼 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심지를 굳게 다짐했던 그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어 반갑다. 그러나 완전히 통일된 조국을 그토록 염원했건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가버렸으니…
<백범 김구>
백범당(白凡堂)에는휴정 서산대사(休靜 西山大師)의 선시(禪詩)가 걸려 있다. 이는 백범께서 생전에 즐겨 쓰시던 휘호로 2009년 8월 당시 국가보훈처장이었던 친손자 김양(金揚)이 조부를 추모하기 위해 마곡사를 방문하여 기증한 것이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서산대사 선시>
백범당 바로 옆에는 백범께서 조국광복 후 1946년 환국하여 마곡사를 다시 찾아와 대광보전 주련(柱聯)의 <却來觀世間(각래관세관 :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보니)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 : 마치 꿈속의 일만 같구나)>라는 글귀를 보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가 청정한 하늘을 향해 푸른빛을 더해가고 있다.
<마곡사 향나무>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제12-3일차 <충청수영성→해미읍성→개심사>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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