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11-4)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11일-4> 고창 선운사
(2021년 9월 13일)
고창읍성에서 쫓기듯 선운사로 이동하여 <도솔산선운사(兜率山禪雲寺)> 편액이 걸린 일주문 앞에 당도한다. 일주문 당도하기 전에 있는 선운사 시비공원은 선운사 주변에 있는 시비들로 조성한 공원으로서, 시비를 중심으로 선운사의 역사와 지역 문화를 알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정확한 설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74년 5월에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의 <선운사 동구>가 시비(詩碑)로 세워지면서 공원이 조성된 것으로 추측한다.
<미당 서정주 시비>
시비공원 안에 있는 <선운산가비(禪雲山歌碑)>는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의하면 「선운산가(禪雲山歌)」라 하여 백제 시대에 이곳 장사인(長沙人)이 정역(征役)에 나가 만기가 지나도 돌아오지 아니하니 그 아내가 남편을 사모하여 선운산에 올라 남편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며 부른 노래라고 한다. 노래는 전하지 않고, 1981년 고창문화원이 주관으로 서정주(徐廷柱)의 글을 새겨 노래비를 세웠다.
<선운산가비>
일중 김충현의 글씨로 알려진 <도솔산선운사(兜率山禪雲寺)>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본당까지 이어지는 길목에는 동백꽃 대신 선홍빛 꽃무릇[석산(石蒜)] 꽃 잔치가 한창이다. 시냇물 졸졸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애기단풍나무도 선운사의 가을 풍경을 향해 함께 흐른다. 길옆 숲길을 들어서면 담을 둘러친 승탑(僧塔)밭이 나온다. 승탑은 고승들의 사리탑과 비를 모신 곳으로 흔히 부도라고 하지만, 부도(浮屠)는 정체불명 일본 용어여서 문화재청이 승탑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도솔산선운사 일주문>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선운사 고승 백파선사 긍선(白坡禪師 兢璇, 1767∼1852)을 기리는 비문이 있다. 그런데 추사는 초의선사와 막역한 친구로 초의와 이념적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백파선사를 <백파 망증(妄證) 15조>라는 글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사가 제주에서 해배 길에 이광사가 썼던 대흥사의 <대웅보전> 글씨를 비난했던 것을 참회했던 것처럼 백파선사를 미워했던 것을 후회하며 칭송하는 비문을 썼다고 한다.
<선운사 승탑군-네이버캡쳐>
천왕문을 지나야 선운사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선운사(禪雲寺)는 577년(백제 27대 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한 뒤 통일신라 후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른 설로는 검단선사가 평소 친하던 신라의 의운국사와 함께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창건했다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죽도포(竹島浦)에 돌배가 떠와서 사람들이 끌어올리려 했으나 자꾸 바다 쪽으로 떠나갔다는 소문을 들은 검단선사가 바닷가로 가니 배가 저절로 다가왔다.
<백파선사비(추사글씨) - 네이버캡쳐>
배 안에는 삼존불상과 탱화, 나한상, 옥돌부처, 금옷 입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품속에서 “이 배는 인도에서 왔으며 배 안의 부처님을 인연 있는 곳에 모시며 길이 중생을 제도하게 하라”고 씌어 있는 편지가 나와 검단선사는 본래 연못이던 곳을 메워 절을 세웠는데 바로 지금의 절터다. 그리고 이 연못에 살던 이무기가 다급하게 서해로 도망가느라고 뚫어놓은 것이 <용문굴>로 동불암 마애불 왼쪽 산길 위에 용문굴이라는 자연석굴이 있다.
<선운산용문굴 - 2017년 3월>
한편, 절을 세울 당시 선운산 계곡에는 도적들이 들끓었는데 검단선사는 이들을 교화하고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서 생계를 꾸리게 했다. 그때 반성한 도적들이 소금을 구우며 살던 마을을 검단리라고 하며 그들은 해마다 봄과 가을에 보은염이라는 이름으로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해방 전까지도 그 일대 염전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다.
<선운산마애미륵불 - 2017년 3월>
그 후 1318년(고려 충숙왕 5)과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선사가 중수했으나 폐찰 되었으며, 1483년(조선 성종 14)에는 행호선사(幸浩禪師)가 쑥대밭이 된 절터에 서 있는 구층석탑을 보고 분발하여 대대적으로 중창했지만 정유재란을 맞아 다시 잿더미가 되었다. 다시 1613년(광해군 5)에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원준대덕(元俊大德)과 함께 3년에 걸쳐 절을 재건한 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선운산 진흥굴 - 2017년 3월>
가을 단풍이 내장산에 버금가는 선운산 단풍은 잎이 작고 또렷한 애기단풍들로, 절 입구에서부터 절 앞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거슬러 오르는 숲길을 따라붙으며, 봄이면 봄대로 또 가을이면 가을대로 맑고 선명한 색을 뿌린다. 일주문에서 1㎞남짓 걸으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天王門)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맞배지붕으로 1970년에 새로 지었다. <천왕문> 편액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의 글씨로 이곳에서도 해남 대흥사처럼 추사와 원교의 두 명필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선운사 천왕문(원교글씨)>
천왕문을 지나면 만세루가 나온다. 만세루(萬歲樓)는 ‘부처님 진리가 만세가 되도록 오래 간다는 뜻’으로 선운사가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추정된다. 전란과 화재로 여러 차례 고치거나 새로 지었고 지금 건물은 조선 후기 19세기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면 아홉 칸, 측면 두 칸, 일자형으로 긴 일층 누각에 지붕선이 반듯하고 좌우에 풍판을 단 맞배지붕이다. 대웅전 마당 들어서는 누각은 보통 이층으로 누각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일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양쪽으로 우회해야 대웅전으로 갈 수 있다.
<선운사 만세루)>
만세루를 비켜 마당에 들어서면 넉넉하게 비워둔 절 마당이 마음에 든다. 도솔천을 건너와 천왕문을 들어서 만세루, 대웅전까지 일자로 가람배치가 되어 있다. 백제(百濟)식 평지 사찰에 가까운 구조이지만 대웅전과 주변 전각들은 낮은 비탈에 석축을 쌓은 위에 높이 올렸다. <선운사>란 이름은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해 큰 뜻을 깨우친다.’는 말로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운사 대웅전>
대웅전은 창건 때 세워 여러 차례 다시 지었고 병자호란 때 절이 모두 불탄 뒤 1614년 광해군 때 다시 지었다. 불단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 주존 불의 수인(手印)이 석가모니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 아니다. 양 손바닥을 맞대고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오른손 집게를 감싸고 있는 게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주불전은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이라고 하는데, 왜 대웅전으로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속리산 법주사와 구례 화엄사도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법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 비로나자불>
대웅전 정면 중앙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비껴난 곳에 전북 유형문화재(제29호) 육층석탑이 서 있다. 고려 전기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원래는 구층 석탑이었다가 여섯 층만 남았다. 선운사는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89개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 승려가 머물렀던 큰 절이었다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사된 뒤 성종(成宗) 때 행호선사(幸浩禪師)가 빈 절 마당에 홀로 선 구층석탑을 보고 선운사 중창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는 그 탑이다.
<선운사 육층석탑>
선운사를 말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약 3천 여 그루의 동백나무들은 수령이 500년 가량 되며 봄이면 저마다 복스러운 꽃을 내민다. 피었을 때 고운 동백꽃은 질 때도 송이 째 뚝뚝 떨어져, 가슴을 치는 서운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곳의 동백나무 군락은 동백나무 자생지로는 최북단에 위치하여 천연기념물(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 군락지와 상사화>
대충 둘러보고 선운사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일주문 밖 도솔천변 바위에 달라붙어 자라는 천연기념물(367호) 송악이 있다. 이 송악은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80㎝에 이르고 나무의 높이도 약15m나 되는 거목이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송악은 원래 따뜻한 섬이나 해변에서 자라는 넝쿨식물로 동해는 울릉도까지, 서해는 인천 앞 바다의 섬들까지 퍼져 있으나 내륙으로는 여기가 최북단이라고 한다.
<고창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그 옛날 어느 선배가 선운산에 가거든 송악과 장사송을 보고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이 붉게 피거든, 그 아래 주막에 들러 풍천장어에 복분자 술을 곁들이고 선운산에서 나는 작설차(雀舌茶)로 입가심을 하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고 자랑하더니만, 우린 시간에 쫓겨 다른 전각들은 뒤로 미루고 선홍색 꽃무릇처럼 상사병 환자가 되어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린다.
<선운사 배롱나무>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제11-5일차 <정읍 무성서원>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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