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서 이성산성까지
(2021년 6월 10일)
瓦也 정유순
남한산성을 가기 위해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종점까지 깊숙이 들어간다.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경기도에서 도립공원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등재번호:1439호)된 후 유물발굴과 사료발굴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이 많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하여 발굴과 보수가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이성산성까지>
청량산(淸凉山, 497m)을 서쪽 끝으로 하고, 벌봉(514m)을 동쪽 끝으로 하는 긴 장방형의 돌로 쌓았다. 서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높아서 험난하며, 다른 쪽은 능선이 긴 반면, 성안은 낮고 평평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키는 2대 산성이었다.
<남한산성 안내도>
남한산성은 천혜(天惠)의 요새지로 “백제 온조왕 13년에 산성을 쌓고 남한산성이라 부른 것이 처음”이라고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나,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당나라 군사를 방어하기 위해 지금의 남한산 주위에 성을 구축하였고 주장성이라고 불렀다. 그 후 조선 선조 때와 광해군 때 등 여러 차례 개축하였으며, 청나라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치르고 난 뒤 대대적으로 개수한 것이 오늘날의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그러나 유서 깊은 남한산성이 일제강점기 때에는 광주유수부가 폐지되고, 조선군대 해체로 군사중심기능을 잃어버렸으며, 항일운동의 거점도시가 되자 1917년에는 성안에 있던 광주군청을 경안동으로 이전한 후 등산이나 데이트장소로 바꿔 버렸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서울근교의 유원지로 아예 개발하였다. 그러다가 1971년 3월 남한산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역사현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상은 정유순의 ‘남한산성을 거닐며’에서 인용>
<남한산성 안>
산성로타리에서 하차하여 북문 쪽으로 향하다가 서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는 중간 지점에는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였던 고 한경직 목사의 우거처(寓居處)가 있다. 이곳은 추양(秋陽) 한경직(韓景職, 1902∼2000) 목사가 서울 영락교회에서 은퇴해 2000년 4월 소천 할 때까지 27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한경직은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개신교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종교인이며, 반공주의 목사로서 서북 기독교 세력이 남한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경직 목사 우거처>
조금 더 올라가면 국청사가 있다. 국청사(國淸寺)는 1625년(인조 3)에 각성(覺性)을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都摠攝總節制中軍主將)에 임명하고, 팔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남한산성의 축조를 담당하게 할 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국청사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軍器)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국청사 입구>
그 뒤 한말에 의병의 군기창고로 사용되다가 비밀이 누설되자 일본군이 불태워서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1968년에 보운(普運)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성삼문(成三問)의 친필이라고 전하는 병풍 1점과 송시열(宋時烈)의 친필책자 3권이 전해오고 있다. 절 근처에는 국청사정(國淸寺井)이라고 하는 조그만 우물이 있는데, 금닭이 나와 홰를 치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국청사 대웅전>
국청사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서문이다. 서문은 우익문(右翼門)이라고도 부르는데, 경사가 급하여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려웠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인조15년(1637) 1월 23일 한밤중에 침입해 온 청병을 크게 물리치기도 했지만, 인조가 소현세자와 함께 서문을 통해 청나라 진영으로 가서 화의를 맺고 항복을 하기도 했다. 1636년 12월에 남문을 통해 들어와서 47일 간 항쟁하다가 1637년 1월 30일 서문을 통해 삼전도로 가는 <통곡의 문>이 되었다.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서문을 빠져나와 연주봉 옹성으로 간다. 연주봉 옹성은 남한산성에 설치된 5개 옹성 중의 하나로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연주봉에서 바라보면 아차산과 남양주 일대의 한강이 조망되고, 하남시의 이성산성과 춘궁동 일대가 한눈에 보이며 성 내부의 지역도 관측되는 중요지다. 최근 발굴조사 결과 옹성 끝에서 포대가 발굴되어 복원하였다.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연주봉 옹성을 둘러보고 암문 밖으로 나와 성벽을 따라 남한산성을 벗어나 이성산성으로 가는 경유지인 금암산으로 향한다. 금암산(金岩山, 322m)은 경기도 하남시 광암동과 춘궁동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淸凉山) 북쪽 줄기다. 이 산은 “바위가 많을 뿐 아니라 바위 색깔이 비단 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바위들이 많아 산 아래에서 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얼거산’이라 하기도 한다.
<금암산 정상>
금암산 자락에는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업은 형상의 어미 새 아기 새 바위’가 있고, 금암산 주봉 아래에 있는 바위에는 큰 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굴에서 호랑이가 살았다는 ‘범바위’, 사람의 얼굴을 닮은 ‘큰바위얼굴’등 기암괴석이 있다. 그리고 신복선사지·약정사지·자화사지 등 옛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춘궁리 3층·5층 석탑이 있는 동사지와 금암산 마애불이 있다. 금암사라는 사찰 이름에서 지명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금암산 어미 새 아기 새 바위>
금암산에서 내려와 이성산으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 아래로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광암터널이 뚫려 있고, 지상으로는 농익은 보리수열매가 발걸음을 늦춘다. 식용 가능한 보리수나무의 열매는 빨갛고 길쭉한 타원형으로 작은 대추방울토마토처럼 생겼으며, 머리 부분에는 꼭지가 달려 있다. 떫은맛과 신맛 등을 가지고 있으나, 약재로 쓸 만큼 각종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조리할 때는 주로 효소 등으로 담가 먹는다고 한다.
<보리수열매>
밀림을 이룬 보리수나무 군락을 뒤로하고 이성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다. 이성산(二聖山, 209m)은 경기도 하남시 광암동, 춘궁동과 초이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제 왕자 두 사람이 거주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이성산(二聖山)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와 관련된 유물과 건물지 등이 많이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성산성(二聖山城, 사적 제422호)이 있다.
<이성산 올라가는 길>
이성산성은 남한산성에서 북쪽방향으로 내려오는 금암산 줄기에 접해 있으며, 남쪽은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이 있으나 북쪽은 작은 구릉만 있어 한강 주변지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산성은 배후의 평야지역을 방어하고 강북의 적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성산 정상>
이성산성(총길이 1,925m)은 서쪽 5㎞지점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연계하여 백제왕성의 하나로 추측하여 왔으나, 1986년부터 1999년까지 7차에 걸쳐 한양대학교박물관 주관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시대 건물지(8각, 9각, 12각 장방형 등)와 부대시설(문지, 저수지. 배수구 등), 요고(腰鼓), 철제마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3차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목간(木簡) 전면의 명문기록「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戊辰年正月十二日 朋南漢城道使…>」 중 "무진년"은 60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성산성 장방형과 9각형 건물지>
<이성산성 9각형 건물지>
신라가 6세기 중엽 한강유역을 점령한 후 취약한 한강하류를 방어하기 위해 행주산성ㆍ아차산성ㆍ대모산성(양주)ㆍ호암산성ㆍ계양산성(인천)ㆍ이성산성(하남) 등이 이때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를 관할하는 치소(治所)가 이성산성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성산성의 성벽의 성돌은 마치 옥수수 알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이 되도록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이성산성 동문지 성벽>
출토된 토기들은 황룡사, 안압지 출토 토기들과 유사하여 후기신라 토기로 판명되었다.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하남역사박물관과 한양대학교박물관 등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하남문화재단 주관으로 <이성산성문화축제>가 열린다.
<이성산성 제1저수지>
<이성산성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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