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지여우길
(2021년 6월 1일)
瓦也 정유순
양평 지여우길! 용문산을 지붕 삼아 천혜의 자연 속에 환경생태계가 옛날처럼 복원되어 여우들이 나타나 여우길이라도 생겨난 것일까? 그러나 여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지금, 여기, 우리 숲길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참으로 정겨운 단어다. 기왕에 지여우길을 용문산 자락에 만들어 놓았으니 여우를 포함한 많은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용문산이 되었으면 한다.
<양평 지여우길 안내도>
옛 이름이 미지산(彌智山)인 용문산(龍門山, 1157m)은 산세(山勢)가 웅대하여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치고, 용문산을 주봉으로 하여 동북동 5.5km의 도일봉(道一峰, 864m), 동쪽 4.5km의 중원산(中元山, 800m), 남서 3.5km의 백운봉(白雲峰) 등 지봉(支峰)이 우뚝 솟아 연봉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특히 지여우길은 백운봉 남쪽으로 자리 잡은 <쉬자파크>에서 출발하여 <용문산상원사>까지 연결되는 숲길이다.
<용문산 설경-2020년2월18일 촬영>
제6호 국도를 타고 국수역에서 양평읍 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양평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턱하니 버티고 있는 백운봉(940m)은 용문산의 남쪽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로 서쪽 함왕봉(咸王峰, 947m)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서쪽에는 함왕골, 동쪽에는 연수리계곡이 있으며 정상과 주능선에는 암봉이 많은 산이다. 양평읍 신애리 쪽으로 있는 공군사격장이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과녁모양의 동그라미가 멀리서도 보인다.
<백운봉 설경-2020년2월18일 촬영>
<백운봉의 과녁표지>
2018년에 개원한 양평쉬자파크는 용문산자락 아늑한 품 안에 자리 잡은 공원으로 공원 안에 조성된 나무와 정원은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꽤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쉬자파크는 양평군에서 운영하는 공원으로 청정한 공기, 푸른 숲과 맑은 물을 배경으로 숙박과 치유, 체험과 교육이 함께하는 전국 최초의 산림문화 휴양단지다. 우리는 뜻 밖에 이곳에서 산림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숲해설사님의 도움으로 설명과 안내에 따라 야외무대 쪽 후문을 통해 양평읍 백안리에서 용문면 연수리 지여우길 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쉬자파크 안내도>
<쉬자파크 입구>
지금, 여기, 우리 숲길은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한 길이 아니라, 우리가 힐링할 수 있는 최적고지인 해발 400m 높이에서 수평으로 걷는 숲길이다. 들어서자마자 약간의 내리막길이 오늘의 순한 길을 예고해 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어디 산속의 길이 평탄한 길만 있으랴 마는 오르내리막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산책 나오셨다 마주친 연수리마을 주민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구름이 끼어 흐린 하늘을 나뭇잎 사이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지여우길>
숲길은 용문산의 명성답게 오지 숲길처럼 깊다. 그러나 길 만들기 위해 억지로 깎은 산허리가 아파 보인다. 야생 복숭아가 열매를 맺어 익기만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숲해설사께서 “이곳은 예전에는 화전민(火田民)들이 화전을 일구어 생활하였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의 화전농업은 작물의 재배와 더불어 시작되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1968년 <화전정리법>으로 산간지방에 남아 있던 화전민을 다른 지방에 정착시키면서 1976년에 화전정리가 종결되었다.
<지여우길 야자메트>
개복숭아는 장미과 벚나무속에 해당하는 야생복숭아나무의 열매로, 우리나라와 중국 산간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일이다. 돌복숭아, 산복숭아, 약복숭아 등으로 불리며, 그 생김새와 텁텁한 맛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았으나, 지금은 천식, 기침, 기관지염 등의 약용과, 효소로 만들어져 식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길은 야생복사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무릉도원(武陵桃源) 길이 될 것 같다. 중국에서는 마오타오[毛桃(Maotao)], 영어로는 차이니스 와일드 피치(Chinese wild peach)라고 부른다.
<개복숭아>
숨 가쁘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 몇 굽이이던가? 숲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은 태고적 마고(麻姑)할멈의 부드러운 숨결이련가? 철 지난 용문산 나물들이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하늘거린다. 길가에 살모사는 나들이 나왔다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때문에 기겁하여 몸을 숨긴다. 예부터 용문산에서 유명한 것은 뱀과 산나물인데 용문산의 산나물을 시로 읊은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문신인 모재 김안국(慕齋 金安國)이다. 이 시는 용문산 산나물을 선물로 받고 모재가 이 시를 지어 사례한 것이다.
산나물 향기롭고 연하긴 용문(龍門)이 그만인데
그것으로 손님 대접하면 후의(厚意) 있음을 알리라
방장(方丈)의 고량진미를 어찌 부러워하리오
한 바구니 속에 부귀영화도 저버리라 하였다.
<지여우길 숲>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가 하늘을 찌르고 참나무 등 활엽수가 넓게 천막을 친다. 쌍떡잎식물 감나무목 때죽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쪽동백나무는 일찍 핀 꽃이 떨어져 길바닥에 밟히는데, 지금 핀 꽃망울은 더 찬란하다. 쪽동백과 꽃망울이 비슷한 때죽나무는 종 모양으로 아래로 향하고 있어 영어로 snow bell이라고 하는데, 쪽동백은 꽃대가 나와 20여 송이쯤 되는 예쁜 꽃들이 포도송이처럼 조롱조롱 매달린다.
<쪽동백나무 꽃>
어릴 적에 물고기를 잡을 때 이들의 푸른 열매를 곱게 빻아서 물에 풀어 넣으면 물고기들이 잠시 기절을 하여 손쉽게 잡기도 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들의 열매에서 기름을 짜내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머릿기름으로 사용한 동백기름이었고, 특히 신혼방의 등잔불로 화촉(華燭)을 밝히면 밤새 그을음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여 장기 알이나 얼레빗과 지팡이 등으로 사용하였다.
<때죽나무 꽃>
어느 길목에는 비가 조금만 와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을 주는 곳도 있다. 계곡마다 와폭(臥瀑)이 되어 흐르는 물소리는 삼라만상의 온갖 소리들이 모여 하나로 묶어 내리는 천상의 하모니다. 이러한 곳을 거닌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자연과 하나 되어 스스로 자연 속으로 함몰되어 간다.
<지여우길 계곡>
그래도 내 몸에 찌든 버릇은 어찌하지 못하는 가 보다. 땅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걷다가 어쩌다 한번 하늘을 쳐다보면 하얀 함박꽃나무 꽃이 수줍게 나를 유혹한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식물로 해발 산골짜기의 숲속에서 자라며 높이는 7m 정도까지 달하고 수형이 좋아 정원수로 심는다. 꽃모양 때문인지 함백이꽃, 함박이, 옥란, 천녀목란, 산목련, 천녀화(天女花) 등으로도 부른다.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꽃망울>
그래도 지여우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것은 다래넝쿨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끈으로 묶어 연결해 주고, 등 돌려 소원해진 갈등(葛藤) 사이를 좁혀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 같다. 다래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서 자라는 낙엽 덩굴나무다. 생육환경은 산지의 숲이나 등산로 반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꽃은 흰색으로 암수 딴 그루이며 아래로 향해 핀다. 열매는 7~8월경에 붉게 달리고, 어린잎은 나물로,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한다.
<다래 꽃>
<다래넝쿨>
짙푸른 녹음방초 속에 흠뻑 젖어들고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세상 시름 다 잊어버리고 지여우길에 빠져 잠시 선계(仙界)를 넘나들었나 보다. 상원사로 건너가는 나무다리 밑의 계곡 물소리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마지막 합창처럼 용문산 골짜기를 타고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움푹 페인 웅덩이는 선녀(仙女)탕이 되어 질펀한 춤판이라도 벌였으면 하는 유혹이다. 숲길을 빠져 나오면 상원사(上院寺)가 용문산을 배경 삼아 자리한다.
<지여우길 자작나무 숲>
<지여우길 계곡>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원사는 1330년대에 보우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했고, 1398년(태조 7)에 조안이 중창했으며, 무학이 왕사를 그만둔 뒤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1458년에는 해인사의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1462년(세조 8)에는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崔恒)이 그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463년(세조 8)에는 왕이 직접 거동하였으며 효령대군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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