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걷는다는 것

와야 정유순 2020. 9. 29. 00:14

걷는다는 것

瓦也 정유순

   걷는다는 것. 세상에 태어나서 두 발로 일어서고 걷는 것은 맨 먼저 배우는 생존수단이다. 네발로 기다가 두 발로 서서 걸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더 넓은 바깥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둥지를 틀고 살아가야 할 곳을 찾아 안주하며 평생을 걸으며 생활한다. 그래서 걷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확실히 증명하는 수단이다.

<명자나무꽃망울>

   나의 성장 시기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였다.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마을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이 따로 없어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야산이 놀이터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북서풍을 가슴에 안고 시오리 떨어진 학교를 걸어 다녀야 했는데, 책가방 가운데에 넣은 도시락은 겨울에는 꽁꽁 얼어 교실 난로 위에 탑을 쌓듯 올려놓아 데워 먹었다.

<안양찬 상류 대나무길>

   그래서 걷는 것은 일상화된 버릇이었고, 조부님이나 선친의 심부름으로 십리 길 뛰어갔다오는 것도 다반사(茶飯事)였다. 청년기에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웬만한 거리는 대중교통에 의지하는 빈도가 갈수록 늘어났고, 마이카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문밖에 나서면 자동차 열쇠를 먼저 들고 나가고 몸은 이미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걷는 습성은 줄어들고 체중은 점점 비대해진다. 수 십리 길을 단숨에 걸었던 패기는 사라지고 발 대신 자동차가 대신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몸에 나이만 쌓인다. 은퇴 후 집으로 돌아와 이제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선 걷기부터 몸에 시동을 걸어보니 불과 수백 미터 걷기가 숨이 차다. 그래도 걷는 게 가장 경제적이고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이라 어릴 적 걷던 모습을 끄집어낸다.

<두물머리 나룻터>

   인생의 전반기도 훌쩍 지나고 이제는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되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나온 과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딴에는 그래도 바르고 곧게 살아왔노라고 자부했는데, 그 궤적을 이어보니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아 살며시 낯짝이 붉어진다. 아마 시대에 따라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많이 굴절되었나 보다.

<동강 한반도지형>

   그래도 이렇게 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본다는 것> 참으로 너무나 소중한 성찰의 기회이고, 이런 기회가 나한테 왔다는 것이 행운이다. 아장아장 걸음마 배울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끌려 재롱을 피웠을 것이고, 어머니 손 잡고 고개 넘어 외갓집 갈 때는 조금 걷다가 다리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시나브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몰두하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북한산>

   세상을 걸으면서 목적지에 다 왔나 싶어 뒤돌아보면 그곳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도 해보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겪었지만, 돌이켜 보면 보이는 것은 하얀 백지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려고 오늘도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지만 본 것도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진안 마이산에서>

언젠가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는 곳마다 동물의 왕국이다. 넓은 초원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TV에서 보는 것처럼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성행하는 살벌한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케냐 암보셀리공원(킬리만자로산을 배경)>

   탄자니아의 웅고롱고로 국립공원에 갔을 때는 <누>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하는 광경을 보았다. 온몸에 힘을 집중하여 진통을 삼십 여분 하다가 예쁜 새끼 한 마리를 순산하였다. 새끼는 눈을 뜨자마자 제 한 몸 버티기 힘든 서투른 걸음마로 어미의 젖을 본능적으로 찾았으나 어미는 젖을 찾는 새끼를 뒷발로 멀리 떼어 놓았고 새끼는 죽을힘을 다하여 어미의 젖을 향해 또 다가간다. 여러 번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뛸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미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었다.

<누 출산1>
<누 출산2>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어미의 표정은 강하면서도 사랑이 듬뿍 담긴 모정(母情) 그 모습이었다. 매정하기만 했던 어미의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아니 자식을 사랑만 할 줄 알지 세상사는 지혜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보다 한 수 위였다.

<탄자니아 웅고롱고로 국립공원>
<사자의 허니문-탄자니아 세링게티 국립공원>

2019년 4월 협심증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시술을 받고 퇴원한 후 5월부터 젖 먹던 힘까지 다 끄집어내어 걸음마를 다시 시작했다. 연속해서 며칠을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충실한 자세가 더 필요했다. 그리고 과연 하루에 만 보 이상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진주 남강에서>

   그래서 내가 사는 마을을 중심으로 약 7∼8㎞쯤 되는 2∼3개 정도의 산책코스를 정해 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돌아가면서 걸었고, 명산이나 유적지를 찾아서 도보여행도 병행하였다. 이렇게 걷다 보니 연속 500일 이상을 달성하였다. 참고로 만 보는 평지 기준 약 7㎞쯤 된다.

<매일 만 보 이상 걷기 500일 달성>

기분 좋아서 걸은 게 아니라 걸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같은 해가 뜨고 매일 찾아오는 하루지만 길을 나설 때는 항상 새로웠다. 자연이란 큰 스승이 함께한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항상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걸어와서 어디로 걸어가는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어떤 길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안양천 비둘기 비상>

이렇게 자문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여기에 대한 답을 알 수 없다. 아니 영원히 그 답은 안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답이 나올 때까지 걸을 수밖에 없다. 그래 걷자. 가슴이 설렐 때 더 많이 걷자. 이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내가 걸어갈 세상이고 답이다. 세상을 걷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여물게 하는 양서(良書)이자 스승이며 양식(糧食)이다.

<안양 만안교>
<백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