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성치산과 십이폭포
(2020년 8월 1일)
瓦也 정유순
충청남도 금산군! 전라북도 장수군 뜬봉샘에서 금강(錦江)이 발원하여 북으로 솟구쳐 산을 휘감아 비단 자락이 굽이치는 땅 금산(錦山). 1963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전라북도 동북지역의 무주·장수·진안을 아우르는 중심지였으나, 충청남도로 편입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1940년 읍(邑)으로 승격한 금산은 지금도 읍 그대로다.
장마가 계속되는 날.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인삼 주생산지로 유명한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성치산을 가기 위해 남이면 구석리 모치마을 앞에서 하차하여 봉황천을 건넌다. 오늘의 일정은 모치마을에서 시작하여 십이폭포 계곡을 지나 성치산 성봉과 신동봉에 올랐다가 다시 십이폭포 계곡을 거쳐 모치마을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다.
남이면(南二面)은 금산 남쪽의 두 번째 면이라는 뜻이다. 구석리는 마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석(龜石)리로 불리었다고 한다. 동쪽으로 200m 내외의 구릉에 의해 남일면(南一面), 서쪽으로 셋티재·선야봉(仙冶峰)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남쪽으로 선봉(仙峰)·성치산(城峙山)에 의해 전라북도 진안군, 북쪽으로 보티재·수리넘어재·진악산(進樂山)으로 진산면(珍山面)과 금산읍에 접한다.
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너야 했던 봉황천(鳳凰川)은 교량공사가 막바지다. 남이면 역평리 가오리골에서 발원하여 남일면과 부리면을 지나 제원면 대산리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봉황천은 금강의 제1지류로 지방하천이다. 조선 시대 지리지나 지도에서는 신천(新川)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천 상류를 금천(金川, 쇠내)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현재 남이면 상금리와 하금리 지역을 흐르는 봉황천 상류하천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봉황천이라는 이름은 봉황새가 많이 날아드는 하천이라 하여 후에 붙여진 이름 같다.
마을 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드는 길목의 하천은 물이 범람한다. 징검다리를 만들어 가며 신발을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건너갔으나 이미 물살은 발등을 적신다. 연일 내린 비로 골짜기마다 물이 넘친다. 약 5분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내를 건너고 도랑을 건너 당도한 곳이 <제일폭포>다.
폭포가 12개나 있다니 엄청난 계곡을 기대하였다. 혹시 십이지(十二支)를 상징하는 동물들의 폭포였으면 하는 기대감도 앞섰다. 그러나 사실 십이폭포라는 유래 중의 하나는 이 십이폭포골(무자치골)에 열두 개의 폭포가 있어서가 아니라 완벽과 완전함을 의미하는 절대의 수 <십이(12)>를 써서 죽포동천폭포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12폭포는 금산과 전북 진안(鎭安)의 접경지인 성치산 성봉(648m)에서 발원한 물이 무자치 계곡을 흐르며 만든 12개의 폭포다. 무자치는 물뱀이다. 아마 계곡에 물뱀이 많아 무자치골이라 불리었던 것 같다. 12폭포 가운데 처음 만나는 <제일폭포>는 잘생긴 바위 사이에 1m정도의 높이로 낙폭(落瀑) 하며 여울져 흘러가는 계곡물이다. 한곳으로 모이는 형세 때문인지 자못 웅장해 보이고 그 모양새가 구성지나 폭포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제2폭포는 <장군폭포>다. 이곳의 폭포들은 성봉계곡에서 흘러나오는데, 이 장군폭포만 유일하게 다른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사기소마을 감싸고 있는 장군대좌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장군의 고함처럼 거세고 힘차다고 하여 <장군폭포>라 하였으나 이 또한 폭포라고 칭하기엔 무리 같다. 사기소마을은 남일면 신동리 사기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던 곳이다.
제3폭포는 <일주문 폭포>라 한다. 잔잔한 못 위에 바위 두 개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어 신선계(神仙界)로 들어가는 일주문처럼 자리하여 <일주문 폭포>라 하였다. 왼쪽의 돌은 옆에서 보면 꼭 고인돌 같은 모양을 하고, 길에서 보면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나, 거의 낙차 없이 범상치 않은 큰 바위 위로 흐르는 계곡물이다.
제4폭포는 <삼단폭포>다. 일주문에서 신선계의 대문으로 통하는 계단처럼 자리하여 <삼단폭포>라 한다. 못 아래 드리워진 소나무 사이로 보면 풍광이 한 폭의 그림이다. 흐르는 물로 닦아진 바위 바닥은 유려하여 투명한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야말로 물뱀들이 탐을 낼 정도로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어 물놀이 하기 딱 좋은 곳이다.
한참을 더 올라가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청뢰(晴雷)] 치는 것처럼 떨어지는 물소리가 우람한 제5폭포는 <죽포동천폭포>다. 우거진 대나무가 맑은 물에 비추어져, 마치 수면이 대나무 숲처럼 보여 죽포(竹圃)이고, 골짜기 안의 신선이 사는 별천지인 동천(洞天)이라 하여 <죽포동천폭포>라고 하였다. 십이폭포를 대표하는 폭포 바위에 <晴雷(청뢰)>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물이 흐르는 사면에 竹圃洞天(죽포동천)이 새겨져 있다.
제5폭포 좌측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면 폭포 상단이다.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는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아래로 흘러간다. 물가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우선 장맛비 쏟아진다 해도 비 걱정 먼저 떠내려 보내고, 세상의 모든 근심 훌훌 털어버리면 하늘 아래 첫 동네에 사는 신선이 어디 따로 있다던가? 오늘은 내가 신선이로다. 죽포동천 폭포 위로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물웅덩이 2개가 여유롭다.
제6폭포는 <구지소유천폭포>다. ‘눈을 뿜어 숲 나무 끝과 벽에 푸른 안개 피어오르고(噴雪林梢壁起煙 분설임초벽기연)/층층이 열두 개의 신령스런 발이 걸려 있으니(層層十二靈簾県 층층십이영염현)/석문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네(石門一點空間處 석문일점공간처)/이것이 구지봉과 소유천이라는 것을 알겠네(認是仇池小有天 인시구지소유천)’라는 시가 있어 <구지소유천폭포>라 한다. 폭포에는 ‘시원한 바람을 차고 있다’는 風佩(풍패)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제7폭포는 <고래폭포>다. 폭포수가 바위의 빗살 같은 홈을 타고 가닥가닥 흘러내리는 모양이 꼭 수염고래입처럼 생겨 <고래폭포>다. 고래폭포가 입이라면 구지소유천폭포는 고래의 입에서 뿜어나오는 물줄기처럼 보인다.
제8폭포는 <명설폭포>다. 하얀 물보라가 눈(雪)이고, 폭포수가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명(鳴)이라는 뜻으로 <명설(鳴雪)>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명설폭포>라 한다. 잘 다듬어져 있는 하얀 못에 지금도 선녀가 어디선가 옷을 추스르고 있는 것 같다.
제9폭포는 <운옥폭포>다. 물방울은 은하수를 이루고 구름 위로 그 은하수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 <운옥(雲玉)>이라 새겨져 있어 <운옥폭포>라 한다. 높이로는 죽포동천에 비해 작지만 넓이로 치면 12폭포 중에서 제일이어서 모두 여섯 개의 못을 거느리고 있다. 등용문(登龍門)과 관련된 뜻을 품고 있는 어대원(魚大原)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제10폭포는 <거북폭포>다. 폭포 밑에 있는 오른쪽 바위가 거북이 머리고, 왼쪽의 푸른 못이 거북이 등껍질이 되어 바위와 못이 하나로 합쳐져 거북이 전체 모습이 되니 <거북폭포>라고 한다. 십이폭포에 맺힌 은하수를 북두칠성을 향하여 실어 나르는 느낌이다.
제11폭포는 <금룡폭포>다. 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황갈색 용이 땅으로 흘러 내리는 듯하고, 그 끝자락에 금룡(錦龍)이라는 아름다운 글자가 있어 <금룡폭포>라 한다. 폭포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폭포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다.
제12폭포는 <산학폭포>다. 폭포 왼쪽에 산학(山鶴)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어 <산학폭포>라고 한다. 십이폭포가 신선이 사는 계곡이라, 신선이 하늘이나 계곡의 정상인 선봉(仙峰)으로 오르기 위해 타고 다니는 학처럼 보인다고 한다. 금산8경으로 손꼽히는 12개 폭포는 무자치골 내에서도 1㎞구간에 몰려 있고, 폭포 중 으뜸은 5번째인 죽포동천폭포다.
제12폭포를 지나 성봉을 향해 산길로 오른다. 폭우가 휩쓸고 간 계곡의 물은 평소보다 소리가 크다. 발아래 어느 이름 없는 폭포는 무명(無名)의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듯 물살이 솟구친다. 그러나 물은 스스로 성내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다투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형체를 만들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낮은 곳으로 찾아간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는 더 겸손 하라고 타이른다. 갈수록 급해지는 경사를 오를 때는 땀이 더 흐르고 막바지에 도달할수록 숨이 더 가빠진다. 인생사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마지막 순간이 더 힘들고 가끔은 왜∼? 하며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 어려움을 조금만 참고 극복하면 최종 성취의 행복감을 맛보듯 오늘의 목적지인 성치산(城峙山) 성봉에 다다른다.
성치산 성봉(648m)은 금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금산군과 전북 진안군의 경계를 이루며 성치산∼성봉∼봉화산으로 이어진다. 금남정맥(錦南正脈)은 전라북도 무주의 주화산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까지 약 118km에 이르는 산줄기다.
맑은 날 동쪽으로는 적상산과 덕유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천태산, 월영산, 민주지산이 선명하며, 남쪽으로는 금강 물줄기를 막아서 생겨난 용담호가 발아래이고, 북쪽으로는 봉황천으로 흐르는 무자치골 아래 십이폭포를 가슴에 품고 있다. 성치산 성봉 전체가 바위와 흐르는 물이 풍류를 불러오는 자연과 어우러져 금산을 대표하는 8경 중의 하나다.
성봉에서 성치산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신동봉으로 향한다. 급하게 경사를 오르내리며 도착한 신동봉(605m)은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와 남이면 구석리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의 우거진 숲속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장마 날씨로 습(濕)한 영향도 있겠지만, 자연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자연 속에 무수한 생명체들이 명멸하여도 우리는 그 수나 이름을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 20가지 정도만 확실히 알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내려오는 도중에 흐르는 폭포수에 몸을 담그고 지금까지 찌든 때를 모두 씻겨 낸다. 개성·풍기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인삼 재배지로 유명한 금산인삼답게 꽃망울 맺히는 삼포(蔘圃)가 정연하고, 울타리 기둥에는 사삼·백삼이라고도 부르는 더덕이 휘감고 꽃을 피운다. 그 꽃을 마주 보며 금산 인삼으로 담근 인삼막걸리 한 사발에 성치산 성봉은 추억의 보고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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