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종댕이길과 활옥동굴
(2020년 7월 25일)
瓦也 정유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충주호를 끼고 오밀조밀 오르내리는 오솔길 같은 종댕이길! 충주호 주변으로 2013년 10월에 조성된 종댕이길을 찾아가기 위해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길을 나섰다. 다행히 몇 방울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떨어져 비 걱정은 덜었고, 가는 길목인 충주시 목벌동에 있다는‘활옥(滑玉)동굴’을 먼저 찾아가 본다. 이 동굴은 활석 등을 채굴하다 폐광된 것을 2019년 7월에 새로 단장하여 개방한 곳이다. 지금은 20년 전 광산을 인수한 영우자원이 운영한다.
1900년에 처음 발견된 활석광산은 1912년 일제가 채굴권을 수탈하여 일본인에게 돌아갔고, 191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석·백옥·백운석 등 광산개발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이를 인수한 동양광산에서 활발하게 채굴하여 동양 최대의 활옥광산으로 뉴욕과 도쿄 등에 해외 지사까지 두었다. 1980년대부터 중국산 활석이 수입되면서 채산성이 떨어져, 채광을 중단하고 캐나다의 부차드(Butchart) 가든처럼 수목원을 꾸미려 했으나 광산을 그대로 살려 갱도 총길이 57㎞ 중 2.3㎞를 동굴 관광지로 만들었다.
활석은 석필(石筆) 또는 곱돌이라고도 하며 무른 재질에 양초처럼 매끄러운 촉감을 가진 돌로 돌솥 등을 만들거나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특히 베이비파우더(baby powder)의 주원료다. 이 밖에도 타일·도자기 등의 요업제품 재료, 페인트원료, 제지공업 재료, 고무·활석크레용·세면도구·윤활제·구두약 등의 원료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제지용(製紙用)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우선 공룡이 영접하는 입구에 도착하니 갱도에서 서늘한 바람이 품어 나온다. 미리 준비한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입장권을 구매한 후 지정된 시간에 맞춰 입장한다. 놀라운 것은 동굴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웬만한 자동차 한 대가 들어가도 넉넉할 것 같다. 그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 밖의 30℃ 삼복염천(三伏炎天)이 무색할 정도로 평균 11∼15℃의 천연냉장고다.
어두운 느낌의 천연동굴과는 달리 활옥동굴은 밝고 환하다. 동굴을 이룬 활석(滑石) 자체가 밝은색인 데다 조명등도 밝아 전체적으로 밝고 은은한 느낌으로 다양하게 꾸몄다. 채굴한 광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장치인 권양기(捲揚機)와 드릴로 막장채굴 장면을 재현한 전시공간을 비롯해 옛 광산의 흔적도 있고, 카페와 식당, 음악실과 와인창고, 건강치료요법시설도 눈에 띈다.
야광도료로 화려하게 꾸민 공간도 있고, 동물이나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을 만들어놓고 조명을 밝혀놓기도 했다. 투박하고 어설퍼 보이는 공간도 있지만, 독특한 공간의 새로운 느낌이 이런 부분을 덮어 버린다. 활옥동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유영(遊泳)하는 동굴 안 호수에서 즐기는 카약 체험이었다. 2∼3인용 투명한 아크릴 카약에 올라타는 순간 물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좀 아쉬운 것은 동굴 안팎으로 가장 한국의 토속적인 미(美)를 가미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환옥동굴을 나와 버스로 충주풍경길 5코스인 종댕이길로 가기 위해 마즈막재로 이동한다. 충주 풍경길은 비내길(1), 중원 문화길(2), 사래실 가는 길(3), 강변길(4), 종댕이길(5), 반기문 꿈 자람길(6), 대몽 항쟁길(7), 새재 넘어 소조령길(8), 하늘재길(9)로 아홉 개 코스로 되어 있으며, 5코스 종댕이길은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의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따라 힐링할 수 있도록 조성된 숲길로 충주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벗하며 걸을 수 있는 11.5㎞ 구간의 충주호와 심항산을 휘도는 오솔길이다.
종댕이길의 ‘종댕이’는 종당(宗堂)의 충청도식 발음이다. 예전 이곳 심항산 주위로 평강전씨(平康全氏) 집성촌을 이루었고 시조를 모신 사당이 있어 ‘종당마을’이라 했는데 ‘종댕이마을’로 불리었으며 심항산(心項山) 이름도 ‘종댕이산’이라 불렀다.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은 물속에 잠겨 사라지고 종당마을은 호반 위쪽으로 옮겨 상종마을과 하종마을로 나뉘었는데 옛 마을 이름을 따서 ‘종댕이길’을 조성하였다.
종댕이길 출발은 마즈막재를 조금 지나 <충주호종댕이길안내소> 앞에서 여장을 다시 꾸리고 걷기를 시작한다. 마즈막재는 ‘옛날 죄수들이 사형장으로 갈 때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충주시에서 충주호 관광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오솔길진입로까지는 도로가 나 있는 큰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옆은 데크로 난간이 있고 바닥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
호젓하고 한적한 오솔길로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숲이 시작된다. 숲은 생각보다 깊다. 인공적인 손질을 최대한 자제하고 자연 그대로의 숲의 모습을 살렸다. 도로를 벗어나 금방 들어 왔는데 숲속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의 나무들이 무성하게 가지를 위로 뻗어 올려 지붕을 만들고, 다양한 잡목이 섞인 숲은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한다.
숲이 무성한 오솔길을 벗어나면 아래로 호수 위에 별이 떠있는 수초섬이 보인다. 이곳은 수초섬을 보면서 일상의 잡념을 버리고 사색에 잠긴다는 주제를 신경림(申庚林)의 시 <별을 찾아서>를 모티브로하여 만들었다. 섬 중앙에는 1433년(세종 15)에 만들어 천체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던 혼천의(渾天儀)를 배치하여 조화를 이룬다. 시의 내용처럼“별을 보러 간다/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을 찾아서/낮아서 들리지 않는 그들 얘기를 듣기 위해서(이하 생략)”
제1조망대에서 바라보는 충주호는 넓고 시원하다. 그리고 여전히 뜨겁다. 여기서부터 둘레길의 멋진 풍광을 하나하나 담을 수 있다. 심통난 천하대장군과 신바람 난 지하여장군 장승 사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종댕이길 중간쯤에 있는 나지막한 고개로 한번 넘을 때마다 건강 수명이 한 달씩 늘어난다는 종댕이고개다. 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드넓은 호수가 새로운 세상을 펼친다.
무더운 날에도 호수를 품고 있는 종댕이길 숲속은 시원하다. 삼복더위 속에서도 숲은 상쾌한 숲 향을 내 뿜으며 찾아온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맑게 일깨운다. 나뭇잎 사이로 시원하게 내려 보이는 충주호는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실바람에 잎이 나부낄 때마다 숲속 이야기는 나근나근 속삭인다. 숲을 걸으며 물을 만나고 물소리까지 들으니 더 시원하다. 충주호를 미끄러져 갈라놓는 수상스키도 보이고 순시선이 지나갈 때는 호수의 잔잔함이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제2조망대에 올라서니 멀리 충주댐이 아른거린다. 충주댐은 북쪽의 관모봉(628m)과 남쪽의 계명산(774m) 사이의 협곡을 콘크리트로 막은 다목적댐으로 길이 464m, 높이 97.5m로 1978년 6월 착공하여 1985년 10월 완공되었다. 소양강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27억 5000만t의 저수 능력을 갖추었고 홍수 조절기능도 하고 있다. 이 댐으로 인하여 거대한 내륙호수인 충주호가 만들어져 호반 관광지가 되었다.
이리저리 해찰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혼자다. 같이 온 일행들과 너무 떨어졌나 싶어 서두르니 이내 출렁다리 앞이다. 약한 흔들림으로 느낌만 받으라는 건지 출렁거림은 둔하다. 호수를 한 바퀴 휘돌아 출렁다리를 건너 상종마을 쪽으로 나가거나 출렁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르막 숲길을 올라 숲 해설안내소를 거쳐 다시 오솔길로 나갈 수도 있다. 호수를 돌아 걷는 길을 빠져나가면 계명산자연휴양림과도 쉽게 만난다.
계명산(鷄鳴山, 774m)은 서쪽으로 목행동에, 동쪽으로 동량면에 접한다. 충주시 북동쪽과 충주호 사이에 초승달처럼 능선이 뻗어 있으며, 충주호 건너편 북쪽에 지등산(535m)과 마주한다. 산 이름의 유래는 백제 시대에 이 산의 남쪽 마고성(麻姑城)에 왕족이 성주로 있었다. 당시 산에는 지네가 많이 살았는데 성주의 딸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죽게 되어 성주는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다.
그러자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길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산에 닭을 풀어놓으라 하였다. 성주가 그 말에 따라 닭을 방목하자 지네가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지네가 들끓을 것을 염려하여 계속 닭을 풀어놓아 길러 곳곳에 닭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 오동산 또는 심항산이라 부르던 산의 이름을 이때부터 계족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1958년 충주시에서 ‘여명을 알리는 뜻’의 계명산으로 개칭하였다. 계명산자연휴양림을 지나 충주댐으로 가지 않고 다시 마즈막재로 회귀한다.
심항산을 휘도는 종댕이길 핵심코스는 얼핏 보면 길이 하트모양으로 생겼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이 길을 걸으면 연인들의 사랑이 깊어진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종댕이길에는 출산의 고통과 성장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모자나무가 있고, 두 나무가 사랑에 이끌리듯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연인처럼 사랑을 나누는 키스나무도 있다. 또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소망을 담아 글을 적어 매달거나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원바위도 재미를 더해주는 길의 양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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