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길(5코스)
(2020년 2월 7일, 용주사∼진위면사무소)
瓦也 정유순
용주사를 오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孝行 百行之本(효행 백행지본 : 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이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永祐園)을 1789년(정조 13)에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拜峰山, 110m,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화성의 화산(花山)으로 옮겼다. 그리고 ‘융성함을 드러낸다.’라는 의미의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쳐 불렀다. 당시 현륭원은 비록 세자의 묘소지만, 그 위용은 왕릉 못지않았다. 정조가 묘소를 쓴 화산은 원래 관아 자리였다.
<용주사 경내>
<용주사 효행문화원>
또 그 주변에 민가도 많았지만, 정조는 현륭원을 조성하기 위해 이들을 수원으로 옮기게 하고, 축만제(서호) 건설, 둔전(屯田) 설치, 시장 개설 등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1899년(고종 36년) 장조(莊祖)로 추존되고 무덤도 융릉(隆陵)이라는 능호(陵號)를 받았다. 1598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중도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세상천지에서 나 같은 일을 겪는 수도 있을까. 일찍이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한탄하면서 잠시 들러 성복(成服)을 하고 다시 남쪽으로 향하였다.
<융릉 장명등-네이버캡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願刹)로 삼았고 낙성식 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한다. 원래 이 절은 신라 854년(문성왕 16)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葛陽寺)였다. 고려 970(광종 21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水陸齋)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 융건릉과의 거리는 약 1.7㎞ 떨어져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네이버캡쳐>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어명을 하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 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이고 정조가 심었다는 대웅전 앞 회양목은 수령 200여 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64호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이고 역시 국보 제120호다.
<용주사 도종-네이버캡쳐>
용주사가 있는 송산동(松山洞)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수원군 안용면 송산리가 된 뒤, 1949년 화성군에 편입되어 1963년 태안면을 거쳐, 1985년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태안읍 관할(管轄)이 되었으며, 2006년 1월 태안읍이 6개 동으로 분동 되면서 황계동·안녕동과 함께 행정동인 화성시 화산동(花山洞)의 법정동이 되었다. 정조(正祖) 때 이곳에 조림사업을 해 소나무 숲이 울창해진 까닭에 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말로는 ‘솔뫼’로도 부른다.
<안녕동-화성현충공원>
송산교에서 황구지천(黃口池川)과 다시 조우(遭遇)한다. 송산교를 건너 한신대학교 쪽으로 가다가 오산시 양산동으로 접어든다. 한신대학교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설립한 사립대학교다. 이 학교의 전신은 1951년 개교한 한국신학대학이며, 그의 모태는 1940년 목사 양성을 위해 서울 인사동 승동교회에서 사설학원으로 출범한 조선신학교로 김대현(金大賢) 장로를 중심으로 김재준(金在俊) 목사 등이 설립했다. 1957년 서울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전하였고, 1979년 오산시 양산동 현재의 위치로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한신대학교와 황구지천>
오산시(烏山市)는 원래 수원군의 일부였으나 1949년 8월 수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수원군의 여타 지역은 화성군이 되었고, 이곳은 화성군 오산면이 되었으며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60년 1월 면세가 확장됨에 따라 오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0년 6월 화성군청사가 수원에서 오산읍으로 이전되었다. 1989년 1월 오산읍이 시로 승격되어 화성군에서 독립·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평택군 진위면의 고현리·청호리 및 갈곶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6개의 행정동과 24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산시행정구역도-위키백과캡쳐>
한신대학교가 있는 양산동(陽山洞)은 행정동인 세마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원래 이름은 양산봉리(洋傘峰里)였다. 마을 뒷산의 봉우리가 양산을 펴서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양산에 가려진 북쪽 마을이라, 양지(陽地)를 바라는 뜻에서 양산으로 지었다는 설도 있다. 양산봉을 끼고 있는 전원마을이었는데, 최근 아파트단지 등이 개발되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잣나무 조림지와 인근의 독산성 및 세마대 터(사적 제140호)를 연계하는 양산동 삼림욕장이 유명하다.
<양산동 아파트군>
지대가 비교적 높은 세교동의 세마교차로에서 동으로 고개를 돌리니 신도시 동탄의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오산시 북쪽으로 위치한 세교동(細橋洞)은 세마동(洗馬洞)의 동사무소가 있는 행정 중심으로 법정동이다. 세교는 작은 다리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잔다리로 부르기도 하는데, 옛 지명인 큰말·건너말[越村]·오리골 세 마을이 합쳐져 지금의 세교동이 되었다. 수도권 광역전철 1호선(경부선) 세마역이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잔다리아파트 단지를 따라 남북으로 조성된 은빛개울공원이 비오톱(Bio-top)을 형성한다.
<세교동에서 본 동탄신도시>
<은빛개울공원 Bio-top 일부>
세마동(洗馬洞)은 법정동인 외삼미동·세교동·양산동·지곶동·서랑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마(洗馬)>의 이름은 사적(제140호)인 세마대지(洗馬臺址)에서 유래했다. 세마대는 독산성(禿山城)과 함께 오산시의 대표적인 문화재다. 독산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이어져 오다가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 2만 명을 모아 북상하다가 이곳에 진을 쳐서 왜적을 물리친 곳이다. 1796년(정조 20)에 수원성 축조와 함께 개축(改築)하였다. 세마대는 독산성 정상에 있다.
<독산성-네이버캡쳐>
세마대(洗馬臺)는 물이 부족한 독산성이 낳은 또 하나의 이름이다. 1593년 권율이 이곳에 주둔하였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와서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보내며 조롱하였다. 이에 권율은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어 올리고서 목욕시키는 것처럼 흰쌀을 끼얹어 말을 씻길 만큼 산꼭대기에 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줘 물리쳤다고 한다. 세마대 누각은 1957년에 복원했는데, 이번 여정에서는 일정상 둘러보지 못했다.
<세마대-네이버캡쳐>
세마동을 지나면 금암동이다. 금암동(錦巖洞)은 신장동의 법정동으로 금암이라는 이름은 마을에 기묘한 바위가 많아서 금바위·검바위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구릉지와 논에 9기의 지석묘(경기기념물 112)가 분포하고 있다. 상석 아래가 흙 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기반식(碁盤式) 또는 개석식(蓋石式) 지석묘로 추정된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90∼600㎝, 너비 120∼334㎝, 두께 30∼145㎝이다. 자연마을로는 건너마을과 작은말이 있는데 상주인구는 극히 적다고 한다.
<금암동 지석묘-네이버캡쳐>
한적한 금암동 도로를 지나 수청동으로 들어서서 물향기수목원 앞을 지난다. 수청동(水淸洞)은 예부터 이 지역에 맑은 물이 흐르고, 늘 솟는 샘터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행정동인 신장동의 5개 법정동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아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경기도임업시험장이 있고, 시험장 안에는 2006년 5월 문을 연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이 있어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된다. 특히 물향기수목원은 33ha 규모의 부지 위에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조성되었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물향기수목원>
물향기수목원을 지나면 궐리사가 있는 궐동이다. 궐동(闕洞)은 위치상으로는 오산시 중심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분주하다. 거리에는 옛날식 다방의 간판도 자주 보인다. 궐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신장동(新場洞)과 남촌동(南村洞)이 나누어 관장한다. 지금도 궐동과 인근에 곡부공씨(曲阜孔氏)가 많은 것도 궐리사와 무관하지 않다. 옛 지명으로는 대호밭·궁터[宮基里]가 있다.
<궐리사 이정표>
경기도기념물(제147호)로 지정된 궐리사(闕里祠)는 본래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자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孔瑞麟)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1793년(정조 17)에 왕이 사당을 세우게 하고 공자가 살던 곳의 이름대로 지명을 궐리(闕里)로 고쳤다.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절(毁折)되었다가 1900년 사당이 중건되었고, 1993년 중국 산동성(山東省)이 기증한 공자의 석조상이 안치되었다고 한다.
<궐리사-네이버캡쳐>
오산천을 건너 중앙동으로 접어든다. 오산천(烏山川)은 길이 31㎞로 용인시 구성면 동백리 향린동산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흘러 신갈천을 이루고, 신갈저수지를 지나 남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화성시 동탄면을 흐른다. 오산시를 지난 뒤 평택시 서탄면과 진위면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서탄면 금암리 남쪽에서 진위천으로 유입된다. 유역 내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에는 한국민속촌이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오산천의 주류를 따라 지나고 있으며, 경부선이 오산시 오산동 일대에서 오산천 유역을 가로지른다.
<오산천>
중앙동은 오산시청과 도서관, 보건소가 소재한 행정·문화체육의 중심지이며,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공존한 경제의 중심지다. 특히 오색시장은 1792년(정조 16) 발간된 ‘화성궐리지’에 처음 등장하여 지금까지 오산시민과 함께하는 우리나라 대표 전통시장으로 소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을 예전에는 오매리(烏梅里), 천변동(川邊洞) 등으로 불린 것과 같이 오산천을 끼고 있고, 상가 지역이 많은 오산동의 남쪽 지역과 오산역 주변을 포함한다.
<오색시장>
오산역(烏山驛)은 오산시 오산동에 있는 경부선 철도역으로 1905년 1월 영업 개시하였다. 2005년 1월에는 수도권 전철이 운행되었고, 2008년 12월에는 장항선(천안~신창 간) 복선 전철화 개통으로 2009년 6월부터 서울~신창 간 누리로 운행을 개시하였으며, 2017년 11월에는 오산역 복합환승센터가 개통되어 오산역과 함께 경부선 선로 위에 있다.
<오산역 환승센터>
발걸음은 오산시 대원동으로 넘어간다. 대원동(大園洞)은 오산시 인구의 밀집지역이다. 이곳은 교통요충지이며(오산IC, 오산역, 시외버스터미널) 금융·상업·제조업이 발달해 있고, 인접 지역에 LG전자 등 중대형 공장이 위치한 도농복합 지역이며, 공동주택이 활발히 신축되어 급속한 도시화를 형성하였다. 법정동으로는 오산동(烏山洞)·부산동(釜山洞)·원동(園洞)·청호동(淸湖洞)·고현동(高峴洞)·갈곶동(葛串洞) 등 6개 동이 있다.
<원동 골목>
오산시 남부대로362번길을 따라 갈곶동을 지나면 평택시 진위면 갈곶리다. 아마 오산시 갈곶동과 진위면 갈곶리는 행정구역이 나누어지기 전에 한 마을이었다. 남동쪽에 무봉산(舞鳳山)이 위치하며, 북동쪽으로는 경부고속국도가 지난다. 갈곶리는 지형이 곶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갈고지라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가룻이가 있다. ‘가룻이’는 갈곶리의 우리말 이름이라고 하나 그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오산-평택시 경계>
엘지로(동∼서)와 동부대로(남∼북)가 교차하는 도로에서 새로 개설된 길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면 갑자기 ‘도로 끝’이라는 푯말이 나오고 길은 왼쪽으로 90도로 꺾인다. LG전자, 금호전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간판도 보인다. 곳곳에 새로 들어서는 공장과 새 공장으로 기존의 길을 잃은 주민들과의 갈등이 있는 것 같다. 봉황이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의 무봉산(舞鳳山, 208m)자락을 넘으면 진위면 봉남리다.
<신규도로>
<도로 끝>
봉남리(鳳南里)는 무봉산 남쪽에 위치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리고 진위면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진위면의 행정 중심지다. 마을 이름도 읍내골(邑內-), 동부말(東部-), 옥거리(獄巨里), 서문리(西門里), 아곡리(牙谷里), 아골, 명당거리(明堂--) 향교말(鄕校-)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관아가 있었던 것 같다. 진위면사무소 경내에서 5코스 완주 확인 소인(消印)을 마치고 진위역으로 이동하여 귀가를 서두른다.
<진위면행정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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