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열 번째-2)

와야 정유순 2019. 11. 28. 13:57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열 번째-2)

(팔당댐가양대교, 2019112324)

瓦也 정유순

   오후에는 남양주시 수석동 미음나루 터로 이동한다. 남양주시와 하남시(河南市) 미사리를 건너던 나루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미음진(渼音津)의 주위 동쪽 70리에 있어 광주로 통한다.’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남북 교통로의 요지로 추측되나 미음나루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경기도는 2006년 미음나루 자리를 음식문화 시범 거리로 지정하여 매운탕과 해물탕, 장어구이 등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미음나루 간판>

<미음나루 터>


  왕숙천을 지나면 경기도 구리시다. 구리시(九里市)는 조선 시대 양주목(楊州牧)에 속하였다. 구리(九里)라는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양주군 망우리면(忘憂里面)과 구지면(九旨面) 등을 통합하면서 유래한다. 1963년 망우리는 서울시에 편입되어 옛 구지면(九旨面) 지역으로 축소되었으며, 1973년 구리읍으로 되었다가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구리시 아파트 숲>


   왕숙천(王宿川)은 길이 37.34km, 유역면적 270.79이다. 포천시 내촌면(內村面) 신팔리(薪八里) 수원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남양주시를 지나 구리시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상왕(上王)으로 있을 때 팔야리(八夜里)에서 8일을 머물렀다고 해서 왕숙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밖에 세조를 광릉에 안장한 후 선왕(先王)이 길이 잠들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왕숙천>

<수석교-한강과 왕숙천 합류>


   왕숙천변으로 구리타워가 보인다. 이 타워는 혐오 시설로만 여겼던 쓰레기소각장의 굴뚝을 이용하여 전국 최초로 지상 100m 높이에 전망대와 회전식 식당을 마련하여 한강 등 주변 경관을 관망할 수 있고, 수영장 등 주민편의시설이 만들어졌다. 소각시설은 하루 140톤의 생활폐기물을 소각, 처리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소각시설로 소각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구리타워>


   구리시 인창동에는 동구릉(東九陵)이 있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1408년에 능지(陵地)로 정해진 곳이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순조(純祖)의 아들 문조(文祖, 처음에는 익종으로 추존)의 능인 수릉(綏陵)이 아홉 번째로 조성되었던 1855(철종6) 이후의 일이다. 동구릉은 조선 왕조 500년 능제(陵制)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동구릉 위치도>

<동구릉 홍살문>


   구리시 토평동에는 중부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강동대교는 하루 자동차 통행량이 8만 대가 넘는 교량이다. 강동대교(江東大橋)는 서울 강동구 강일동과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다리로 199112월에 준공되었다. 길이 1,126m, 너비 26.72m인 이 다리가 개통됨으로써 수도권 동부 지역의 교통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강동대교>


   강동대교를 지나면 한강 하천부지를 이용하여 구리한강시민공원을 조성하였다. 원래 경비행기 활공장으로 사용하던 넓은 부지에 조성된 꽃단지는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강바람에 싱그러움을 더하는 자연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누릴 수 있다. 5월에는 유채꽃, 9월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드넓은 꽃단지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인근의 서울시민들도 함께 와서 즐길 수 있는 수도권의 명소가 되었다.

<구리한강공원의 경비행기-2017년 3월>

<구리한강공원 안내도>


   구리시와 서울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가 아차산(峨嵯山)과 망우리(忘憂里)고개다. 망우리는 태조 이성계가 지금의 건원릉 자리를 결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 곳을 바라보니 과연 명당이었다. 이에 태조가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경탄한 데서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망우리-동구릉 지도>


   아차산(296m)은 야트막한 산으로 용마산(348m)과 망우봉 등 주변 산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조선 시대까지는 이 모두를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아차산에는 삼국시대의 고분, 고려 시대의 석탑, 절터 등 수많은 유적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능선을 따라 봉우리마다 보루(堡壘)’라고 하는 군사유적이 약 20여 개 있다. 아차산의 보루는 삼국시대 한강을 둘러싼 고구려·백제·신라의 긴장 관계를 보여준 중요한 유적으로 2004년에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로 되었다. 

<구리한강공원과 아차산 능선>


   망우산을 바라보며 잠깐 딴생각을 하고 걷다가 20156월에 완공된 구리암사대교와 만난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과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사이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한강에 설치된 31번째 교량이다. 총 길이 2,740로 처음에는 암사대교로 다리 이름을 정했으나 경기도 구리시에서 구리대교로 해달라고 요구하여 마찰을 빚다가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구리암사대교로 조정(20088)하여 명명했다고 한다.

<구리암사대교-아차산에서 2017년 2월>


   드디어 서울특별시로 입경(入京)한다. 아차산 끝자락이 한강으로 빠져드는 길목이 구리시 아천동에서 서울 광진구 광장동으로 넘어오는 경계선이다. 구리암사대교 건너의 서울 강동구 암사동은 신라 시대 아홉 개의 사찰(寺刹)이 있어 구암사(九岩寺)라 하였고, 그중 속칭 바위 절 또는 암사로 불리는 백중사가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와 암사동(岩寺洞)이라는 이름이 유래 되었다. 암벽 아래 강가에 자리 잡고 하루 132만 톤을 취수하는 암사취수장은 멀리서 손짓한다.

<서울-구리경계>

<암사취수장>


   암사동에 있는 선사유적지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의 범람으로 유물들이 지상으로 드러난 유물들은 일본으로 빼냈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지금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유물과 유적들을 여러 번 발굴해 왔지만, 팔당댐에서 한남대교에 이르는 한강 변 좌우에 널려 있던 유물과 유적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사라지고 암사동 선사유적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암사동 선사문화유적지 전시관>


   광장동 아차산에는 워커힐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이 있다. 1961년 사단법인 워커힐이 창립되었고, 1962년 국제관광공사에 인수되어 19634월 호텔을 개관하였다. 한국에 마땅한 휴양지가 없어 일본으로 휴가를 떠나는 주한미군을 유치하기 위하여 세운 호텔이다. ‘워커힐(Walker-hill)’이라는 이름은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 때 활약한 W H. 워커(Wn H. Walker)를 기리는 의미이며, 19733SK그룹이 인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워커장군 동상-KBS화면 캡쳐>


   광나루가 있던 자리에 건설된 광진교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광진교(廣津橋)는 일제강점기인 193610월에 준공하여 한강대교 다음으로 한강의 두 번째 오래된 다리다. 한국전쟁 때에 폭파된 것을 1952년 미군에 의해 복구하였으나 노후 등으로 인해 1994년 철거되었다가, 19973월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량을 착공해 200311월에 길이 1,0564차선으로 개통하였다. 양쪽으로 자전거도로와 발코니형 돌출전망대가 눈길을 끌고, 공연장과 화랑 등을 갖춘 문화복합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천호대교-광진교 지도>

<광진교>


   천호대교는 천호지구의 개발과 천호대로의 건설에 따라 종래의 광진교(廣津橋)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19767월 준공되었다. 천호동이라는 지명은 풍수지리설에 수 천호가 살만한 지역이라는 예언에서 유래되었다. 한양 4대문에서는 동남쪽의 외진 곳으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曲橋里, 굽은다리)였으나, 1963년도에 서울시에 편입되어 천호동으로 되어 지금은 서울 동부권 중심지로 천호동문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천호대교-네이버두산백과 캡쳐>


   천호대교 하류에 건설된 올림픽대교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九宜洞)과 송파구 풍납동(風納洞)을 연결하는 다리로 길이 1,225m, 너비 32m(6차선)이며 19906월에 준공하였다. 천호대교와 잠실대교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강남과 강북의 교통소통에 도움을 주는 한편, 88서울올림픽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교량 본체 중 교각이 없는 사장교 구간은 300m이며, 한가운데 88올림픽을 뜻하는 높이 88m의 주탑 4개가 서 있다. 20015월 성화대 모형의 주탑을 설치하던 도중 동원된 육군 헬기가 추락하여 3명이 순직했다.

<올림픽대교>


   주탑을 중심으로, 지름 25cm의 케이블이 양측 각각 12가닥씩 모두 24개가 늘어뜨려 교량 상판을 떠받치고 있다. 여기서 주탑 4개는 연···시의 4주와 4계절·4방향을, 케이블 24개는 제24회 서울올림픽 경기대회를 의미한다. 올림픽대교 건설과 함께 남단 하천부지에는 도로공원이 조성되었고, 지구촌의 화합을 상징하는 지름 6m5륜과 24개의 주변 조형물로 구성된 기념조형물이 조성되었다. 풍납동에는 한성백제 초기의 풍납토성이 있다.

<풍납토성>


   잠실철교는 순환 지하철도 2호선이 개통되면서 건설한 복선 철교로 19791030일 준공하였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광진구 구의동(九宜洞)과 송파구 신천동(新川洞)을 연결하며, 철교 좌우에 소형 자동차 전용의 도로교를 함께 건설해 전동차와 자동차가 동시에 통행할 수 있도록 시도된 서울 최초의 교량이다. 그러나 현재 도로교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방향에만 진출입가 연결되어 있고, 도로 여건도 좋지 않아 차량 통행량은 적다.

<송파구 신천동>


  잠실대교(蠶室大橋)는 광진구 자양동(紫陽洞)과 송파구 신천동(新川洞)을 잇는 한강의 다리로서 길이 1,280m, 너비 25m, 6차선이며 19727월 준공했는데, 한강에 건설한 서울의 6번째 다리다. 잠실대교 하류 쪽 10m 지점에 있는 잠실수중보(蠶室水中洑)는 한강의 물길을 막아, 일정 수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보로 1985년에 완공하였다.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암사동(岩寺洞)과 김포(金浦)에 이르는 38km의 한강 수위를 평균 2.5m로 유지 시킴은 물론 팔당댐부터 잠실수중보까지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이용이 제한된다.

<잠실대교와 수중보>


   한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를 헤아리며 내려오다 보니 뚝섬한강공원에 당도한다. 옛날에는 여름에 피서를 가지 못하는 서울시민을 위해 3곳의 수영장을 개방하였다.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의 백사장, 뚝섬한강공원 이전의 뚝섬백사장 그리고 한강공원광나루지구 이전의 광나루수영장이다. 빛깔 고운 모래가 어느 해수욕장 보다 넓게 펼쳐진 자연 그대로의 수영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뚝섬한강공원>


   청담대교(淸潭大橋)는 광진구 자양동(紫陽洞)과 강남구 청담동(淸潭洞) 사이를 연결하는 한강의 복층교량으로 아래층에는 지하철 7호선 철교가, 위층에는 차량이 통행하는데, 본교는 19991223일에, 접속교는 20011월에 개통되었다. 한강의 18번째 다리로, 이 교량이 개통되면서 동·서부간선도로, 내부순환도로,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등 1단계 도시고속도로망 구축사업이 완료되었다.

<청담대교>


   뚝섬한강공원은 한강공원으로 단장하기 이전부터 강변유원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공원 내에는 수변광장, 장미정원, 자연학습장, 어린이 놀이터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몸은 가늘고 긴 원통형인 <자벌레> 모양의 복합 전망 문화공간(길이가 243m)이다. 뚝섬유원지역에서 연결되어 누구나 이곳을 통해 편리하게 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으며 자벌레 통로에는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감상할 수 있다.

<자벌레뚝섬전망복합문화센터>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