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열 번째-1)
(팔당댐∼가양대교, 2019년 11월 23일∼24일)
瓦也 정유순
이른 아침부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 있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생가로 바삐 길을 나선다. ‘능내(陵內)’란 지명은 계유정란(癸酉靖亂) 때 수양대군(세조)을 도와 정난공신1등에 오르고 우의정과 명나라의 벼슬인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을 하사받은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 1403∼1456년)의 묘가 있어서 능안 또는 능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한확의 따님이고, 명(明)나라 성조(成祖)의 여비(麗妃)가 한확의 누이다.
<구 능내역>
너무 일찍 와서 그런지 생가 대문은 잠겨 있다. 들어가는 길옆에는 수원화성을 건축할 때 사용했던 거중기(擧重機)가 실물모형으로 자리한다. 옆의 실학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생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주택구조는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자형 한옥이다. 생가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으로 집 앞에는 강이 흐르고, 집 뒤로는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거중기>
이 집의 당호(堂號)는 여유당(與猶堂)으로 다산이 1800년(정조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여유(與猶)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의 한 대목인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자형 다산생가>
즉 “겨울 냇물은 무척 차갑고 뼛속까지 추위를 느낄 것이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냇물을 건너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세상이 두려운 사람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고,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항상 따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얻은 호이고, 여유당은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지은 호다.
<여유당>
집 뒤 언덕에는 다산부부의 합장묘가 있어 올라가 본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학자이다. 조선의 개국이념인 주자학을 신봉하던 당시에 조금이라도 사상적 이념에 어긋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서슬 퍼런 시기에 그는 오히려 유배지에서 뜻을 드높이고 학문을 완성하여 오늘의 시대에도 새겨들을 내용으로 광활한 학문의 세계를 이루었다.
<다산 정약용선생 상>
다산은 유배 기간 중 자신의 학문을 연마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하였고, 이 저술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리고 다산은 비록 남인의 가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이 당쟁의 중심인물이 되지 않았음을 자랑하였고, 그 아들들에게도 당쟁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문벌과 당색을 타파하고 고른 인재 등용을 주장했다.
<다산묘>
지나가는 바람처럼 다산의 유물과 생각들을 휙 돌아보고 나오는 게 좀 아쉽지만 어쩌랴∼ 지구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시간에 쫓겨 돌아 나와 팔당댐 공도 입구에서 열 번째 한강 시원(始原)을 따라 걷기를 시작한다. 수도권 2천만 명에게 공급되는 생명의 젖줄인 팔당호를 벗어난다. 검단산(黔丹山, 657m)자락에는 하남시 배알미동이 천지의 조화를 이룬다. 배알미동(拜謁尾洞)은 옛날에 관리가 낙향하거나 귀양 갈 때 한양을 향해 임금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리던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검단산과 배알미동>
예봉산(禮峯山, 683m) 아래의 팔당은 조선조까지 경기도 광주 땅이었으나, 일본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주 땅이 되었고, 넓은 나루가 있어 바댕이 또는 팔당(八堂)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예봉산이 수려하여 팔선녀가 내려와 놀았고, 그 놀던 자리에 여덟 당을 지어서 팔당(八堂)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 중앙선 철길 옹벽에는 사랑을 맹세하는 낙서들이 사랑을 갈구한다.
<예봉산과 팔당>
<사랑의 맹세-구 중앙선 옹벽>
팔당대교 밑을 지날 때는 언젠가 보았던 새벽 풍경이 스친다. 하늘의 선인의 수염 같은 물안개가 강물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불렀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공무도하)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공경도하)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타하이사)
장차 임을 어이할꼬.(當奈公何, 당내공하)
아마 하남시와 팔당을 연결하는 팔당대교가 없었다면 팔당의 선녀들이 공무도하가를 부르며 지금까지 전설 같은 비극적 사랑이 이어졌을까?
<하남시와 팔당대교>
팔당대교는 하남시 창우동과 남양주시 조안면을 잇는 총길이 935m, 너비 24m의 다리로 1995년 4월에 완공하였다. 팔당대교 부근 하중도(河中島) 사이의 여울에는 공무도하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가? 겨울의 진객 고니[백조(白鳥)]가 무리지어 유영을 한다. 언젠가 새벽에 고니의 새벽 울음소리를 들으려고 이곳을 찾아 왔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혹시 공무도하가를 부르는 부인 여옥(麗玉)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고니(백조)>
강건너 하남시(河南市)는 경기도의 중동부에 위치한 시로 1980년 동부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9년 광주군 동부읍·서부면·중부면 상산곡리를 합쳐 하남시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에 백제 건국과 관련하여 “북으로 한수(漢水)를 두루고 동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했으며, 남으로는 기름진 땅을 바라보고, 서로는 대해가 막혔으니 여기에 도읍을 정함이 좋겠다… 온조는 한수 남쪽(河南)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남시>
제6호 경강국도 변을 따라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접어든다. 와부(瓦阜)읍은 일제강점기 때 와공면(瓦孔面)과 초부면(草阜面)을 통합하여 생긴 이름이다. 한때는 모 사설 종교단체의 집단촌이었으나 지금은 고층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덕소(德沼)라는 지명은 ‘크고 깊은 못’에서 유래된 땅 이름이다.
<덕소의 빌딩 숲>
남·북한강이 양수리에서 합류하여 왕숙천과 만나기 바로 직전에, 곡류(曲流)를 이루는 곳이다. 강 건너 미사리 쪽은 완만한 퇴적 사면을 이루어 아름다운 모래의 벌판을 드러내는 데 반하여, 덕소 쪽은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 공격 사면으로, 크고 깊은 물줄기를 못으로 바라본 것이다.
<덕소 앞 한강>
덕소를 지나면 남양주시 삼패동이다. 삼패동(三牌洞)은 조선 시대 공문서를 말(馬)에 의존하던 시대 역참(驛站)이 있었던 곳이다. 삼패동을 지나 수석동 언덕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 조말생(趙末生, 1370~1447)의 유택을 한강을 굽어본다. 조말생은 함길도관찰사로 부임해서는 여진족 방어에 힘썼고, 경상·전라·충청 3도의 도순문사로 나가서는 축성 사업을 벌였다. 남양주시 수석동(水石洞)은 신석기~고구려 시대 유물이 분포되어있는 지역이다.
<조말생의 묘-네이버 두산백과>
삼패동과 하남시 망월동을 잇는 미사대교가 보인다. 미사대교는 길이 1,530m의 다리로 2009년 7월에 개통된 한강의 28번째 다리이며,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첫 구간이다. 교량 이름을 놓고 남양주시(구리대교 또는 덕소대교)와 하남시(미사대교)가 뜨거운 줄다리기를 하다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시설물명 선정위원회에서 3차에 걸친 회의 끝에 투표로 최종확정하였다.
<미사대교>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위해 하남시 미사동으로 이동한다. 이곳 미사동은 88서울올림픽 때 경기를 했던 조정경기장을 비롯하여 강변을 따라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섰고, 일부 지역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역사적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이다. 미사동(渼沙洞)은 한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래 하나의 큰 섬으로 이루어졌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지형이 바뀌어 각각의 섬으로 나누어졌는데, 한강 종합개발로 이마저도 사라져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사리>
<미사리유물 유적지 표지석>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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