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아홉 번째-3)

와야 정유순 2019. 11. 2. 00:22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아홉 번째-3)

(이포보팔당댐, 2019102627)

瓦也 정유순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에서 어젯밤을 의탁하고 조반을 마치자마자 강하면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 있는 천진암으로 이동한다. 강하면(江下面)은 본래 양근군 지역으로 양근 읍내의 남쪽 중앙이 되므로 남중면(南中面)이라 하여 전의·수대 등 13개 리를 관할 하다가 1908년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남동쪽 강상면과 경계지점에 솟아 있는 양자산의 여맥이 면() 중앙 쪽으로 뻗어 있고, 산지 사이를 흐르는 영동천·성덕천·항금천 등이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강하면 전수리>


   강하면 왕창리에서 해협산(海峽山, 531m) 자락을 넘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우산천을 끼고 쭉 올라오면 천진암이 나온다. 천진암(天眞庵)은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鶯子峰)에 있었던 사찰인데 지금은 폐사(廢寺)되었다. 이곳은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發祥地)18세기 중엽 권철신(權哲身)을 중심으로 남인계 소장학자들은 이익(李瀷)의 서학(西學)을 이어받아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講學)을 가졌다. 이 강학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천진암이다.

<천진암의 아침-앵자봉>

<천진암 십자가상>


  당시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의 주도 아래 그의 아우 권일신과, 정약전·정약종·정약용 형제들, 이승훈·김원성·이총억·권상학 등 10여 명의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학과 서학의 강의를 거듭했다. 이때 당시 26세의 광암 이벽(曠庵 李檗, 17541786)이 가담함으로써 경학의 모임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강학의 내용이 당시 전래 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로 집중되어 학문적 수준에 있던 천학(天學)을 종교적 신앙 차원으로 승화(昇華)시켜 천주신앙으로 전개하였다.

<천진암 강학당지>


  그리고 젊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이벽을 웃어른으로 삼자, 이벽은 문하생들에게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지어 받아써서 배우게 하였고, 선비들은 천학총림(天學叢林), 즉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이루었으며, 1783년에는 새로 개종하여 입교한 선비들과 힘을 합하여, 이승훈(李承薰)을 대표자로 북경 천주교회에 파견하여, 1784년 봄 2월에 영세받고 귀국하자, 그해 4, 즉시 서울 수표동의 이벽 자택으로 본부를 옮겨, 집회소를 차렸으니, 천진암은 바로 한국천주교회 신앙 운동의 국내 최초 본거지(本據地)가 되었다.

<이벽>


   무반의 가문에서 태어나 경서 공부에 치중한 이벽은 차츰 서양 학문과 천주교에 깊이 심취하였다. 마침내 선교를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가 천진암 경학에 가담하자 모임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수련을 겸하게 되었다. 당시 23세였던 이승훈이 북경에 파견되어 영세를 받고 돌아온 것도 이 모임의 결실이다. 그러나 이들 정약종·이승훈·권철신 등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殉敎)한다.

<천진암 성지 조감도>

<천진암성당 건립 부지>


   1785년 봄에는 명례방 통역관 김범우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더욱 더 천주교를 발전시켰고, 1785년의 국내 첫 박해를 겪으면서 1885년 말까지 100년간에 잔혹한 박해를 이겨내어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로 발전하게 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천진암성지는 한국천주교회의 움이 트고 싹이 돋은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고향이며,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이, 한국천주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천주교회 발상지(發祥地). 따라서 이곳에 조성 중인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계획은 이와 관련이 깊은 것 같다.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터>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


   천진암 옛터에는 이벽, 이승훈, 권일신·권철신 형제, 복자 정약종 등 5위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묘가 있고, 조선교구 설립자 정하상, 유진길 성인과 복자 정철상의 묘와,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들의 가족들인, 이부만(이벽 부친), 이석(이벽 동생), 경주이씨(이벽 누님), 정지해(정약용 조부), 정재원(정약용 부친), 정약전(정약용 형님) 등의 묘소도 가까운 남쪽 등 너머 성역 내에 있다고 한다.

<정약종 이승훈 이벽 권철신 권일신(좌로부터) 묘역>


  천진암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과 이벽(李檗)의 기념비, 교황어록이 새겨진 기념비, 이벽의 천주공경가 비문, 또한, 세계평화의 성모상(동상높이 15m, 청동 25)과 함께, 천진암 강학당 기념표석 및 이벽의 독서처 천학도장 기념 표석이 있다. 특히 천진암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발상지의 고유한 특성에 필수적인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성모경당(1천여 명 수용), 광암성당(200여 명 수용) 등이 완공되어, 순례단들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계평화의 성모상>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8,017) 건축이 착공되어, 기둥 4개 기초와 4대문의 문틀이 서 있다. 더욱이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현장에는 축성된 통돌 100톤의 천진암대성당 제대석과, 통돌 30톤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친필 서명된 강복문(降福文) 머릿돌이 있다고 한다. 36만여 평 성역에 3만여 평의 대성당 건립터에서는 매년 수만 명의 신도가 모여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를 거행한다고 한다.

<천진성역 표지석>

<순례길 참여 신자들>


  천진암의 붉은 단풍에 잠시 취해 있다가 경안천의 광동교와 팔당대교를 거쳐 양서면 신원역이 있는 신원리로 바쁘게 이동한다. 신원리(新院里)는 남한강이 마을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흐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야곡리, 분점리를 합쳐 신원리가 되어 양서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동이점골, 묘골, 풀무골 등이 있다. 동이점골(분점)은 옹기점이 있었던 곳이고, 묘골(묘곡)은 함양 여씨의 선대 묘소가 있으며 몽양의 생가가 있다. 풀무골은 묘골 북쪽의 마을로, 야곡이라고도 불리며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천진암 단풍>


   신원역 앞에서 중앙선 구 철길에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따라 양수역으로 향하는데, 부용 1터널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양서면(楊西面)을 지키는 산이 부용산이다. 부용산(芙蓉山, 366m)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삼국시대 성()터가 있다고 하는데 전문가 아니면 찾기가 힘들다.

<부용산>


  이 산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고려 시대에 어떤 왕비가 시집간 첫날 밤에 왕 앞에서 방귀를 뀌자 왕이 크게 노하여 이곳으로 귀양을 보냈다. 쫓겨난 왕비는 이미 아들을 잉태한 몸이었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 왕자를 낳았으며, 총명한 왕자는 어른이 된 후 어미의 사정을 알고 도성으로 올라가서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는 오이씨를 사라면서 외치고 다녔다.

<부용1터널>


   소문을 들은 왕이 소년을 불렀고 이 오이씨는 밤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않아야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을 수 있습니다.”라는 소년의 말을 듣고서 잘못을 깨닫고 왕비를 불렀다. 하지만 왕비는 궁궐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산에 오르는 것이 금기시되어왔으며 산에서 땔감을 구하면 곧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남한강변 자전거길>


   터널과 터널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남한강의 아침 안개는 이미 사라졌고, 강가로 늘어선 제6호 경강국도는 바쁘게 많은 차량을 실어나른다. 4개의 부용터널과 마지막 양평용담아트터널을 지나면 양서면 용담리다. 용담리(龍潭里)는 남한강이 마을을 돌아 동서로 흐르며, 마을의 큰 늪에 용이 있다 하여 용담리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정리, 양수두리, 석장리, 벌리의 각 일부와 서시면의 월계리 일부를 합쳐 용담리가 되었으며, 양서면 소재지로 양수역이 이곳에 있다.

<남한강과 경강국도>

<용담>


   양서면(楊西面)본래 양근군 지역으로 양근읍내의 서쪽이 되므로 서시면(西始面)이라 하다가 1908년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서시면·서중면(西中面) 전체와 고읍면(古邑面) 기곡리(基谷里)의 일부가 합쳐져 용담·양수(兩水)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북쪽 경계에 청계산(淸溪山, 658m), 중서부에 부용산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향한다. 지리적으로 한강의 양 줄기를 동시에 품고 있는데 북한강이 서쪽 면계를, 남한강이 남쪽 면계를 따라 흐른다.

 

<양서면사무소>

<양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