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프면 남의 것 아프면 내 것
瓦也 정유순
언젠가부터 왼쪽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아픔이 간헐적으로 왔다가 잦아든다. 심하게 아프다가도 술 한 잔 걸치면 아픔도 사라진다. 그리고 노래방이라도 들어가면 기분은 상승되고 아팠던 기억은 싹 사라진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 뜨면 또 그러고… 계속 반복되면서 주기도 짧아진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주치의(主治醫)에게 설명을 했더니 우선 심전도부터 검사하고 심장에 대한 초음파 검사와 CT촬영을 하자고 한다. 심전도검사는 아주 정상이어서 우선 안심이다. 그리고 별도의 날을 잡아 실시한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내 주먹만 한 내 심장을 볼 수 있었다. 확장과 수축을 활발하게 하는 심장이 내 생명을 지탱해 주는 모습을 보고 숙연해 진다.
손목에 손가락을 대고 맥박을 재는 것도 저 심장의 확장과 수축작용의 횟수를 셈하는 것이다. 한번 수축할 때 심장의 피는 동맥을 통해 온 몸 구석구석까지 전달이 되어 신체의 모든 부분이 움직이게 하고, 이렇게 활용된 피는 확장할 때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 돌아와 폐에서 공급되는 산소와 결합하여 다시 새로운 피가 되어 또 품어져 나가고 돌아오는 작용을 반복한단다.
눈을 깜박거리고 손가락 끝의 움직임에서부터 아름다운 산천을 보며 호연지기하는 것까지 활기차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저 심장 때문이리라. 만약에 저 심장이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한다고 멈춰 버린다면 나의 모든 생명은 끝이란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주먹만 한 심장이 갑자기 내 몸 보다 더 크게 느껴지면서 큰 바위처럼 보인다.
초음파검사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나온다. 주기적으로 힘차게 움직여 주는 주먹만 한 심장이 새삼 경외(敬畏)롭다. 마지막으로 CT촬영 부분을 확인할 차례다. 담당의사와 마주 앉아 모니터 화면을 주시한다. 마음만은 심전도와 초음파에 아무 이상이 없으니 CT촬영 검사도 이상소견이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든다.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의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그러더니 나보고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한다. 화면에 시선 집중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꼭 다른 사람의 심장을 보는 것 같았으나, 화면 속의 심장은 틀림없는 내 것이다. 갑자기 숨이 콱 막힌다.
심장 주변으로 관상동맥이 그물처럼 감싸 있는데, 하얀 물질이 관상동맥을 덮고 있었다. 주치의 말씀이 ‘석회질이 끼어 있고, 관상동맥 3군데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시술을 해야 하므로 다음에 보호자와 꼭 같이 오라고 한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멍 때리는 기분이다. 집에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말머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 마음의 변화인지 몸의 변화인지 우선 식욕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 눈 감으면 생명이 멀리 달아날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힌다. 잠이 쏟아져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화들짝 놀라며 잠이 깬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마누라는 나의 이러한 행동에 왜 그러느냐며 자꾸 물어온다. ‘아! 이럴 때 술 한 잔하면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참는다. 원래 밖에서는 두주불사(斗酒不辭)지만 집에서는 있는 술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니 조금 안정이 된다. 조반을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가볍게 동네 산책을 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또 왼쪽 가슴에 통증이 밀려온다. 어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설하제(舌下劑)를 꺼내어 혀 밑으로 밀어 넣고 조금 기다리니 진정이 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응급실로 바로 가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라 택시를 탄다.
내 발로 걸어간 응급실에서는 피부터 뽑는 등 두 시간 넘게 각종 검사를 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중을 이야기하자 쏜 살같이 달려온다. 잔뜩 겁먹은 얼굴을 보는 순간 미리 이야기 하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검사결과는 심전도 등 별 이상이 없다. 응급실을 나와 주치의를 찾아가 오늘의 상황을 설명하며 문진(問診)을 받는다.
당장 내일 오후에 입원해서 모래 아침에 시술(施術)을 하기로 하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옆 지기의 얼굴은 소태 씹은 표정이다. 나보다도 걱정이 더 많은 가 보다. 그러고 보니 결혼해서 40년 이상 살아오면서 내 건강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 본적이 없고 갈 때까지 다가서 마지막에 깜짝쇼 하듯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게 나만의 특기인가? 아픈 모습을 보이자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어제와 똑같이 밤잠도 설치고 적당히 조반을 마치고 아침 산보를 나왔는데,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도중에 집에 들어가자 옆 지기는 더 놀랜다.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당장 서울도심의 큰 병원으로 가자고 독촉이 성화다. 부랴부랴 서둘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가자 어제와 거의 같은 검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순환기내과 중환자실로 입원한다.
중환자실(重患者室)! 겁이 덜컥 난다. 배정 받은 침대에 눕자마자 링거주사바늘이 피부를 파고 들어온다. 팔뚝에는 주기적으로 연속 자동측정 되는 혈압계가 부착이 되고, 가슴에도 심전도 측정 판이 부착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측정 판이 자유를 억압한다. 사지(四肢)를 활개 치던 몸은 갑자기 영어(囹圄)의 몸이 된다.
그러나 몸은 편안해 진다. 보호자로 꼼짝없이 나를 지켜야할 옆 지기는 나 때문에 생고생하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편히 눌 수 있지만 보호자는 접의자 하나뿐이다. 때가 되면 환자는 식사가 나오지만 보호자는 짬을 이용하여 요령 것 해야 한다. 외부인의 면회도 제한되고 정숙을 요하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전화하기도 힘들다.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시술도 잘 끝냈다. 몸도 마음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우선 밖을 바라볼 수 없는 중환자실이 답답해진다. 휠체어 타고 병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느냐고 물어 봤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저녁에 의사가 회진을 오더니 내일 오전에 퇴원하라고 한다. 귀가 뻥 뚫린다.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는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을 보내는데 세월이 왜 이렇게 더딘지…
식욕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고, 오랜만에 잠도 푹 잤다. 이러한 중환자실 생활이 4일 간 계속되었다. 그 사이 벚꽃이 만발했던 봄날은 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보이는 세상이 모두 새롭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게 큰 복이다. 나 때문에 함께 불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옆 지기도 밝은 표정이다. 그리고 퇴원하면서 나에게 한마디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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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아플 때는 남의 것이더니 아프니까 내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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