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암산 용늪에 가다

와야 정유순 2019. 9. 3. 06:44

대암산 용늪에 가다

(2019829)

瓦也 정유순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10829,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倂呑)된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다. 작금의 한·일 간 무역전쟁을 보면서 일본이 아직도 그 당시의 환상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극일(克日)!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라면 꼭 넘어야 하고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번 기회가 절호의 찬스가 아닌 가. 이 생각 저 생각 더듬다가 버스는 홍천군 화양강휴게소에 들어선다.

<홍천 화양강>


   인제읍과 원통을 경유하여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용늪생태학교 앞에서 안내를 해주실 마을 분과 함께 약30여분 산길로 올라가 대암산 용늪 생태탐방안내소(서흥리)’에서 하차하여 본격적인 용늪탐방 길에 나선다. 오늘의 탐방은 약 두 달 전 강원도 인제군에 인터넷으로 신청하여 이루어졌고, 양구코스를 포함하여 120명으로 1250명까지 입장이 허용되며, 516일부터 1031일까지 개방한다.

<용늪 생태탐방안내소>

<대암산 용늪 안내도>


   해발638인 생태탐방안네소 앞에서 가볍게 몸을 푼 다음 무지개나무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해발 1280인 큰 용늪까지는 약4.5. 조금 더 올라가면 대암폭포안내판이 나온다. 깊은 계곡 밑 대암폭포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자연의 모든 소리를 함창(含唱)한다. 대암산 정상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모여 흐르는 곳으로 맑은 물소리로 잡음이 들르지 않아 옛 무인들이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 이 대암폭포였다.

<무지개다리>

<대암폭포>


   간혹 치고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으나 산길은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어느 길은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경쾌한 구간도 있었다. 그리고 안내하시는 마을주민 두 분이 앞과 뒤에 서서 선두와 후미를 맡아 주시니 어느 산행보다 우선 마음이 놓이고 여유롭다. 그래서 그런지 대암산으로 나무를 하러 오던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너래바위가 더 넓은 바위로 보이고, 사방이 확 트인 채 쉬어가라 한다.

<너래바위>


   너래바위를 지나면 출렁다리를 건너며 산행은 더 깊이 들어간다. 안내하시는 마을주민께서는 이 다리가 약 60m 아래쪽으로 다리를 만들었으면 제법 보기 좋은 폭포를 볼 수 있었다며 아쉬워한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 없이 추진하다 보니 이런 졸속행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출렁다리를 설치한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출렁다리>


   쉬엄쉬엄 발걸음 세어가며 산길을 걷다보니 아주 재미있는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어주구리(魚走九里)’. 흔히 우리가 비속어로 사용하는 어쭈구리죽는 줄 모르고 까부네등 잘난 채 하는 말이나 행동을 비웃거나 비아냥거릴 때 쓴다. 그러나 이곳의 어주구리용늪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다가 나무꾼에게 잡혀 용늪에서 도망쳐 나온 거리를 재어보니 십리(十里)에서 조금 모자라는 구리(九里)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주구리 안내판>


   이 어주구리부터 대암산 용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승인 받은 자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으나 예보대로 비는 하늘을 가린 나뭇잎 위로 떨어지고, 용늪에 가까울수록 빗발은 쌔진다. 우장(雨裝)을 꾸리고 오늘의 주 목적지인 용늪에 도착하자마자 가던 길을 중단한다. 용늪 주변은 안개가 자욱하다. 안내하시는 분의 이야기는 천둥번개가 쳐 위험하다는 이유로 용늪관리소에서 급히 소식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라올 때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를 들은 것 같다.

<용늪 표지석>

<안개 낀 용늪>


   웅성웅성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용늪관리소 관계자가 나와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사이 빗발은 잦아들어 데크 계단을 따라 용늪 아래로 내려간다. 대암산 용늪은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큰 용늪(30,820), 작은 용늪(11,500), 애기용늪으로 이루어진다. 하늘아래 맞닿아 있는 우리나라 유일한 고층습원(高層濕原)이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용늪>


   이 용늪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탄습지다. 이탄습지(泥炭濕地)는 낮은 온도로 인해 죽은 식물들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진 습지로 보통 1의 이탄층이 쌓이는데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탄층이란 식물이 죽어도 채 썩지 않고 쌓여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지층의 일종으로 이 용늪에는 평균 11.8정도 쌓여있다.

<물이 고인 이탄층>


   대암산 용늪은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1년 중 170일 이상이 안개에 싸여있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이 영하의 기온으로 춥고 적설기간이 길어 식물이 죽어도 잘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이탄층이 발달한 고층습원(高層濕原)이다. 습원은 습원식생을 유지하는 수분의 유입형태, 지하수와 지표수위와의 관계, 습원 내부의 이탄층을 구성하고 있는 상태와 식물군락의 종류에 따라 저층습원, 중간습원, 고층습원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고층습원은 오직 이탄층과 강우(降雨)에만 의존한다.

<안개가 걷히고 있는 용늪>

<참당귀>


   또한 대암산 용늪의 이탄층에는 약 4,500년 전부터 썩지 않고 쌓여온 식물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식생과 기후변화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동·식물의 남북한계와 동서구분의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으로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자연환경과 동·식물 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용늪의 서쪽능선인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과 펀치볼 등이 백두대간 지맥으로 우리나라 중부의 식물 상을 대표한다.

<마타리>


   용늪은 1966년 비무장지대 생태계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후 현재 천연기념물(246, 1973. 7), 습지보호지역(1999. 8), 산림유전자원보전림(2006. 10) 등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19973월 국내 처음으로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되었다. 197122일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처음 체결된 람사르협약은 생태·사회·경제·문화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습지를 보전하고 자연생태계로서의 습지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협약이다.

<물매화>


  그래도 우중(雨中)에도 데크길을 따라 동서로 270, 남북으로 210뻗은 용늪을 지나 관리사무소까지 올라와 대암산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흐린 날씨가 앞을 막는다. 그래서 관리사무소에 건의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큰 용늪으로 다시 발길을 되돌린다. 계단을 타고 밑으로 내려오자 빗방울은 멈춘다. 아직 8월의 끝자락이지만 찬바람이 불어와 몸이 몹시 춥다.

<산천궁>

<솔채꽃>


   비 때문에 가지 못한 대암산(大巖山, 1313)은 인근의 대우산(大愚山)과 함께 천연기념물(246)로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대암산의 또 다른 습지인 작은 용늪은 습지식물이 거의 사라지고 육지화 되었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만든 여지도 인제현(麟蹄縣)에 대암산은 큰가 아닌 돈대 를 쓴 臺岩山으로 기록되었다. 서화리 서흥리 마을에서는 오랫동안 대암산 정상을 대바우로 불렀다. 臺岩山와 대바우의 사방으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이란 뜻이다.

<인제현 여지도>


   용늪에는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닻꽃,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등 식물과 참매, 까막딱다구리, 산양, 삵 등 멸종위기 동식물을 포함하여 식물(514), 조류(44), 포유류(16), 양서·파충류(15), 곤충(516), 저서성무척추동물(75) 1,180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풍부지역이다. 특히 물이끼, 사초, 끈끈이주걱 등 습지식물과 한국 특산식물인 금강초롱, 모데미풀과 남한에서는 유일한 비로용담 등이 분포되어 있다.

<비로용담>


   산야의 수많은 꽃들을 보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꽃 이름을 외워서 활짝 웃으며 다가올 때 이름이라도 한번 다정하게 불러주어야 하는데, 도통 외웠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기억의 한계인가? 능력의 한계인가? 미안한 마음에 나태주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읊으며 스스로 위안을 준다.  ) --> 

<관중>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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