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과 독립문의 진실
아리랑문화연구회 능현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 준 산물이다.
미국에 있는 서재필기념재단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박사(미국인 필립 제이슨. 864.1~1951.1)가 태어난지 1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기념우표를 2013년 11월 24일 발행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서재필이가 독립운동을 했는가? 그는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가 미국에서 당시 대한제국으로 1895년 12월 귀국하여 1896년 4월 창간했다. 놀랄 일은 당시 대한제국은 고종이 집권하는 분명한 황제국이었다. 1896년 4월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건재했다.
그런데 왜 독립을 했다고 독립신문을 만든 것인가? 대한제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르고 무력을 앞세워 1905년 11월 을사늑약 그리고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 그 다음 1910(대한제국 융희 4년) 비로소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국권을 빼앗겼다.
이상한 것은 나라를 잃지 않았는데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만들었다. 무슨 일인가? 서재필이 만든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이 500년 동안 명과 청나라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다는 기념 신문이었다.
이를 만들게 조정한 놈은 바로 일본 놈들이었다. 당시 친일파였던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사주를 받아 만든 신문이다. 지금까지 일재에 항거한 신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동안 독립운동을 위해 만든 신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독립협회는 1896년(건양 1) 7월 2일 당시 국민성금이라는 형식으로 3,825원을 거두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그리고 가운데 독립문이라는 글은 이완용의 글이다. 이 또 무슨 짓인가? 일재 식민지로 살았다가 광복을 맞아도 독립문을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황제가 지배한 나라가 1896년 독립협회는 무엇이며 독립문은 무엇인가. 요상한 일이 있었다.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일본의 사주를 받고 일본이 청나라를 몰아내어 독립을 시켜주었으니 이를 기념하여 프랑스 파리 개선문을 모방하여 일본의 입성을 환영하는 문이었다.
한마디로 대한제국의 토착왜구들이 당시 실제로 군립하든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 주었다는 요상한 논리로 만든 놀라운 기념물이요 신문이다. 천인공로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립문은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바로 잡아야 한다. 근대 역사가 이렇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서재필은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토착왜구였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역적이 애국자로 둔갑할 수는 없다.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 준 산물이다.
미국에 있는 서재필기념재단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박사(미국인 필립 제이슨. 864.1~1951.1)가 태어난지 1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기념우표를 2013년 11월 24일 발행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서재필이가 독립운동을 했는가? 그는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가 미국에서 당시 대한제국으로 1895년 12월 귀국하여 1896년 4월 창간했다. 놀랄 일은 당시 대한제국은 고종이 집권하는 분명한 황제국이었다. 1896년 4월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건재했다.
그런데 왜 독립을 했다고 독립신문을 만든 것인가? 대한제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을 치르고 무력을 앞세워 1905년 11월 을사늑약 그리고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 그 다음 1910(대한제국 융희 4년) 비로소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고 국권을 빼앗겼다.
이상한 것은 나라를 잃지 않았는데 독립신문을 1896년 4월 7일 만들었다. 무슨 일인가? 서재필이 만든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이 500년 동안 명과 청나라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다는 기념 신문이었다.
이를 만들게 조정한 놈은 바로 일본 놈들이었다. 당시 친일파였던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사주를 받아 만든 신문이다. 지금까지 일재에 항거한 신문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동안 독립운동을 위해 만든 신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독립협회는 1896년(건양 1) 7월 2일 당시 국민성금이라는 형식으로 3,825원을 거두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그리고 가운데 독립문이라는 글은 이완용의 글이다. 이 또 무슨 짓인가? 일재 식민지로 살았다가 광복을 맞아도 독립문을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황제가 지배한 나라가 1896년 독립협회는 무엇이며 독립문은 무엇인가. 요상한 일이 있었다. 서재필과 이완용 등이 일본의 사주를 받고 일본이 청나라를 몰아내어 독립을 시켜주었으니 이를 기념하여 프랑스 파리 개선문을 모방하여 일본의 입성을 환영하는 문이었다.
한마디로 대한제국의 토착왜구들이 당시 실제로 군립하든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 주었다는 요상한 논리로 만든 놀라운 기념물이요 신문이다. 천인공로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립문은 대한민국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바로 잡아야 한다. 근대 역사가 이렇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서재필은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토착왜구였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역적이 애국자로 둔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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