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충남 논산의 문화유적을 따라(3)

와야 정유순 2019. 8. 16. 11:12

충남 논산의 문화유적을 따라(3)

(201981011)

瓦也 정유순

  돈암서원 한옥마을은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단장이 한창이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계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솔바람길은 계백의 오천결사대의 혼을 담아 수락산(167.2)을 넘어 부적면 충곡서원과 계백의 묘와 백제 군사박물관을 거쳐 휴정서원까지 약6이어지는 길이다. 논산시 연산면(連山面)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지명이 황산(黃山)이었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오천결사대로 마지막 항전을 펼친 황산벌이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들녘이다

<돈암서원 한옥마을>

<솔바람길 코스>


   이글거리는 태양은 무쇠도 녹일 수 있는 용광로다. 수락산(167.2)을 접어들어 오르막길로 올라 갈 때는 땀이 온몸을 적신다. 수락산(首落山)계백장군과 5천결사대의 목이 떨어진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들의 충성심이 깊이 배어있어서 수락산 아래 마을 이름도 충곡리(忠谷里). 이곳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어서 그런지 낯선 침입자에게 모기는 무차별 공격한다.

<수락산이정표>


   수락산을 넘어 논산시 부적면에 있는 계백장군(階伯將軍)묘역으로 바삐 움직인다. 계백과 5천결사대는 5만의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백제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패전국의 장군으로 이곳 수락산 기슭에 오래전부터 계백장군 묘또는 백제의총으로 구전되어 오던 큰 무덤이었다. 그러다가 1965년 백제문화 되찾기 운동의 하나로 이 무덤을 계백장군의 무덤으로 인정하여 충남 지방기념물 제74호로 지정하고 정비하였다.

<계백장군 묘-2016년11월>


   백제 역사를 말할 때는 결국 계백(階白, ?660)으로 끝난다. 특히 계백장군이 최후를 맞은 때에 백제가 그 최후를 맞은 때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계백은 나당연합군의 노도와 같은 말발굽 아래에 온몸을 던져 백제를 지켜 내려 했고, 그 때문에 백제 멸망의 처절한 역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누구나 계백 장군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계백은 육로로는 탄현(옥천)을 넘지 말게 하고, 해로로는 덕물도(지금의 덕적도)에서 적병을 막으라고 하여 옥에 갇힌 장군 성충과 귀양 가서도 충언을 올린 흥수와 함께 백제 3충신이다.

<계백장군 영정>

 

   침략군의 공격에 방어의 기회를 놓친 백제의 계백장군은 자기목숨을 나라의 운명과 같이할 결사대 5천 명을 뽑았다. 최후의 저지선인 황산벌로 나아가기 전에 적병이 몰아닥쳤을 때에 욕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게 하느니 자신의 손으로 처자를 베고 그 시신마저 적병의 손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집에 불을 질렀다. 묘역에는 이러한 충정을 기려 매년 4월에 제향을 모시는 충장사(忠壯祠, 2005년 건립)가 있다.

<충장사-2016년11월>


   그리고 백제의 군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은 지하 1, 지상 2층의 규모로 20053월에 개관하여 3개의 전시실과 정보검색실, 실내체험실, 기획전시실, 야외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에는 백제의 군사 활동을 시대별로 정리한 연표와 풍납토성, 부소산성 등 백제 주요 성 모형을, 2전시실에는 당시의 의장, 복식, 무기 등을 제3전시실에는 선사 이래 논산 역사를 조명하여 집대성해 놓았다.

<백제군사박물관-2016년11월>


   쥐어짜듯 용출하는 땀으로 속옷까지 다 젖었을 때 백제군사박물관 앞의 매점에서 맛보는 빙과류는 천상의 감로수(甘露水). 간신히 더위를 수습하고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충곡서원으로 이동한다. 서원 앞에 당도했을 때에는 외삼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 갈 수 없겠거니 했는데 안에서 방문객의 인기척이 난다. 활짝 핀 배롱나무 꽃이 유혹하여 우측으로 담장을 끼고 돌아가 보니 측문이 있어 들어가 본다.

<충곡서원 배롱나무>


   충곡서원(忠谷書院)1688(숙종 14)에 계백(階伯)과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서원이었으나, 이현동(李賢童) 11명을 추가 배향하여 18분을 모셨다. 1871(고종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1935년 예전의 위치에 복원하였으나, 사우만 남고 소멸되었다. 1977년 서원을 다시 복원하여 사우(祠宇)에는 계백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17현의 위패가 좌우에 배향되어 있으며, 매년 3월과 9월 중정(두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곡서원 내삼문>

<충곡사>

<성삼문유허비>


   충곡서원을 돌아 나와 탑정호로 이동한다. 탑정호(塔亭湖)는 면적 152만여평, 제방길이 573m, 높이 17m1941년에 착공하여 1944년에 준공하였다. 논산천(論山川) 유역 평야를 관개(灌漑)하며, 저수지 남쪽으로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며 교통이 편리하다. 탑정호 수변생태공원은 논산시에서 2010년부터 탑정호 수변에 수생식물원, 자연학습원, 분수, 팔각정 등 산책코스를 조성하여 연중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매주 수요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오는 논산훈련소 면회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탑정호>

<탑정호 안내도>


   탑정호 생태공원 입구에는 꽃은 이미 지고 잎만 무성한 연못이 물레방아와 조화를 이룬다. 2017년에 조성된 수변데크 길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3길이다.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탑정호 수면 위를 걸어본다. 호숫가의 수변식물들의 식생은 백면서생의 눈으로 보아도 건강하게 보인다.

<생태공원 입구 연못>

<탑정호 수변산책로>

<탑정호 산책로>


   산책을 끝내고 주변의 식당에서 민물새우매운탕으로 저녁을 마치고 서산 너머로 기우는 태양을 따라 몸과 마음도 함께 한다. 붉게 물든 노을은 수락산 최후 결전에서 장열하게 산화한 5천결사대의 영령(英靈)들이다. 아침의 일출은 그 날의 화려한 출발이라면 저녁의 일몰은 희망찬 내일을 기약하는 저축이다.

<탑정호의 낙조>


   ‘계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솔바람길의 끝점은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이다. 아직 땅거미가 지기 전이라 휴정서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외삼문이 굳게 닫혀있다. 서원 입구 계단에 앉아 탑정호를 바라보며 허탈함을 달래는데, 이웃 주민이 나와 평소에 문을 열어 놓았는데 도둑들이 나타나 유물들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한 뒤로는 항상 닫아 놓았다고 하여 밖에서 눈요기만 한다.

<휴정서원>


   휴정서원(休亭書院)1700(숙종26)에 창건하였으며 1705(숙종31)에 준공하여 찰방을 지낸 류무(柳懋)를 봉안하였다. 이후 송익필(宋翼弼, 15341599), 김공휘 (金公輝, 15501615), 김호(金鎬), 이항길(李恒吉), 김상연(16891774), 김진일, 김우택(金禹澤)을 추가 배향하여 제향해 왔으나,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휴정서원 외삼문>


  1919년 중건하였으나 1944년 탑정저수지 완공으로 수몰될 처지에 몰려 현재의 위치에 단소(壇所)를 설치하여 단제(檀祭)를 지내왔다. 1984년 사우(祠宇)를 복설하였으며 1985320일 송익필을 주향으로 하여 총 8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해마다 음력 320일과 920일에 제사를 지낸다. 논산시 향토유적(16,19921028)으로 지정되었다.

<수국>

<탑정호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