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희망볼랫길
(2019년 4월 2일)
瓦也 정유순
조석으로 좀 찬바람에 코끝이 시려도 봄기운은 하늘을 찌른다. 출근시간으로 붐비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양평 원덕역으로 향하는데 생업에 바쁜 젊은이들에게 버스와 전철 안의 입지를 비좁게 하여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수 시간 걸려 도착한 원덕역(元德驛)은 중앙선의 역(驛)으로 양평역과 용문역 사이에 있으며, 부역명(副驛名)은 추읍산이다. 1940년 4월 1일 역무원이 있는 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뒤 2009년 12월 국수∼용문간 복선전철이 개통되어 수도권전철 중앙선이 운행된다.
<원덕역>
원덕역에서 추읍산(583m)을 향해 잠수교를 건넌다. 추읍산은 양평군 개군면에 위치한 산이다. 개군면 주읍리·내리와 용문면 삼성리 경계에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주읍산(注邑山)으로 불려왔으나, 1995년 고유지명인 추읍산으로 변경되었다. 유명한 지관이 마을 뒷산에 올라보니 이 산이 ‘용문산을 뒤쫓는 형상’이므로 추읍산(趨揖山)이라 명명했다고도 전한다.
<흑천 잠수교>
오늘의 발걸음은 추읍산 정상이 아니라 이 산을 중심으로 길이 나 있는 ‘용문희망볼랫길’을 걷기 위해서다. ‘볼랫길’은 ‘본래 있던 길’이라는 의미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경기도의 희망근로사업으로 조성한 길이라 ‘희망’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였다. 볼랫길은 두 개의 코스로 되어 있는데, 1코스는 추읍산을 빙 둘러 걷는 18㎞의 거리고, 2코스는 양평의 진산인 용문산을 중심에 두고 걷는 36.47㎞다.
<원덕역에서 본 추읍산>
<용문산 원경>
원동역에서 흑천의 잠수교를 건너 두레마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간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올라갔건만 난데없는 철조망이 앞을 가린다. 처음에는 무슨 기상관측소 정도로 생각했는데 철조망은 길게 늘어서 있다. 갑자기 내용도 알 수 없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자세히 들어보니 군부대 옆으로 침입자가 접근한 양 경계방송이다. 그저 길도 없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저 아래 입구에서부터 표시를 해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철조망>
은행잎 모양의 ‘희망볼랫길’ 푯말도 마을 어귀 나무기둥에 붙여 놓은 것 말고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계속 경고방송을 들으면서 길이 아닌 길을 찾으며 겨우 개군면 부리 장고개를 넘어 불곡덕고갯길로 접어들어 개군면 내리 양평산수유마을로 들어선다. 이 마을은 수령 100년 이상 된 산수유나무 7천여 그루가 군집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매년 4월 초순경 산수유 꽃을 주제로 산수유축제를 개최하여 아름다운 산수유 꽃이 만발한 곳에 다양한 농촌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희망볼랫길 표지>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산수유(山茱萸)는 타원형의 핵과(核果)로서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8∼10월에 붉게 익는다. 종자는 긴 타원형이며, 약간의 단맛과 함께 떫고 강한 신맛이 난다. 10월 중순의 상강(霜降) 이후에 수확하는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봄소식을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이고, 붉은 열매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일 년에 두 번이나 기쁨을 전달하는 나무다. 겨우내 추운 날씨에도 얼음을 뒤집어 쓴 열매는 자수정처럼 강인함을 보여준다.
<산수유나무-이천시 백사면>
내리는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흑천의 남쪽 평야지대에 있으며 동쪽에는 추읍산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향리와 주읍리 일부를 합쳐 내리가 되었으며, 1963년 여주군에서 양평군으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에는 내동(內洞), 용머리, 절골 등이 있다. 내동은 개군산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안말, 내리라고도 부른다. 용머리는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골은 절이 있던 곳이다.
<산수우와 추읍산>
아직 봉오리로 입을 꾹 다문 산수유 길을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에서는 4월 6일과 7일에 열리는 ‘산수유한우축제’에 대비하는 것 같다. 한우농가에서도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정중동이다. 전답을 포함한 대지 위에서도 소생하는 만물의 움트는 소리에 분주하다. 산에는 진달래 꽃 멍울 터지는 소리가 감미롭다. 어머니 가슴 같은 볼록한 추읍산은 따뜻한 온기를 담아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내리와 추읍산>
<산수유 길>
야산 고갯길을 넘으면 주읍리다. 주읍리는 남한강 동쪽 평야지대에 있는 농촌마을로 북쪽으로 추읍산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주군 개군면 주읍리가 되었고, 1963년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에는 너러석거리, 언덕말 등이 있다. 너러석거리는 너럭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고, 언덕말은 언덕이 있는 마을이란다.
<주읍리 쉼터>
<진달래>
추읍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산수유사랑방’이란 현판이 걸린 가옥이 있다. 대문에는 문패 대신 종이에 부부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방수 코팅하여 걸어 놓았다. 대문 앞에는 추읍산을 올라가다 쉬어가라고 등 굽은 기둥으로 원두막 정자를 만들어 배려해놓았다. 길 주변에는 옹기로 멋을 부려 놓았고, 울안의 집 마당 한쪽은 작은 텃밭과 닭장 등이 있어 전원체험을 유혹한다.
<산수유사랑방>
<옹기조형물>
아직 철 이른 계절이라 객이 없는 산수유사랑방과 칠보캠핑장을 지나 추읍산 등산로를 우회하여 화전고개로 들어선다. 올라가는 산길 옆에는 산수유 대신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 ‘생강나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산지의 계곡이나 숲 속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는 3∼6m이고, 나무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매끄럽다. 열매에서는 기름을 짠다.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약재로 쓰는데, 타박상의 어혈과 산후에 몸이 붓고 팔다리가 아픈 증세에 효과가 있다.
<화전고갯길>
<생강나무>
8부 능선쯤 올라가면 두 바위가 붙어 사랑을 나누는 듯한 ‘사랑바위(?)’가 이정표처럼 서있다. 이 바위는 자연이 만든 걸작으로 올라갈 때만 보인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자연의 조화는 당할 재주가 없다. 무심하게 처다 보는 사람도 없어 외롭게 오랜 세월 길목을 지켜온 것 같은데 그래도 살짝 아는 척 했더니만 사랑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는 것만 같다.
<사랑바위?>
고갯마루를 지나면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다. 이 마을은 정상 가까이까지 전원주택들이 차있다. 집을 지키던 개들은 불청객의 출현으로 울어대고 이 소리에 양지바른 쪽의 홍매는 활짝 피었다. 이 마을에서는 추읍산을 “맑은 날 산 정상에서 일곱 고을이 내려다보인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 하여 칠읍산(七邑山)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화전리’라는 이름은 혹시 이 지역이 ‘화전을 일구던 지역’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화전고개>
<홍매>
그러나 풍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지역을 “칠보산(칠읍산)의 높고 험준한 봉우리가 남으로 십리나 뻗은 것이 기세는 하늘 둑과 같고, 겹말이 놀라 달아나듯 하구나. 산봉우리에 구름이 돌아간 자리에는 아지랑이 일고,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다운 산은 쪽빛 같이 푸르다.<겸재(謙齋) 양창석(梁昌錫) 작>”라고 읊으며 용문8경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칠보산 아지랑이(七寶山晴嵐:칠보산청람)’가 일품이라고 한다.
<칠읍산(추읍산)>
칠읍산의 호위를 받으며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면 용문면 삼성리 ‘섬실마을’이다. 섬실마을은 지형이 두꺼비[섬(蟾)]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금광을 캐던 굴이 있다하여 석실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곳에는 산수유나무가 많아 산수유열매를 수확하여 자녀들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이 마을을 지나 용문꼬부랑길을 가파르게 넘으면 흑천에 다다른다.
<섬실고개>
<흑천>
양평군 청운면에서 발원하는 흑천(黑川)은 항상 맑은 물이 흐른다. 이 하천에는 많은 어종들이 서식하여 물고기를 천렵(川獵)과 탐어(探魚)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징검다리 사이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산길 걸어 피곤한 육신을 풀어주는 청량제다. 제법 넓게 펼쳐진 들을 가로질러 용문역(龍門驛)에 도착하여 오늘 걸어온 여정을 되돌아본다. 본래 있었던 ‘희망볼랫길’은 관심과 관리의 소홀로 ‘희망없는길’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흑천 징검다리>
<용문역>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3·1운동만세길 걷기(2) (0) | 2019.04.14 |
---|---|
화성 3·1운동만세길 걷기(1) (0) | 2019.04.14 |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두 번째-2) (0) | 2019.03.29 |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두 번째-1) (0) | 2019.03.29 |
한국천주교 서울 순례길 1코스(2) (0) | 2019.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