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두 번째-2)

와야 정유순 2019. 3. 29. 20:37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두 번째-2)

(정선 임계-정선읍, 201932324)

瓦也 정유순

   199112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인 정선소수력은 1,920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나 하천점용허가 연장을 놓고 지역주민들이 허가취소를 주장하는 등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소수력발전소가 주민들의 먹는 물을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 150m 상류에 위치해 하천오염이 우려되고, 발전시설로 인한 하천생태계 파괴와 상수원수 공급 차질 등의 피해가 발생함은 물론 지역에 도움이 안 된다며 주민들과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고 한다.

<정선소수력>


   눈발이 잠시 멎었다가 다시 날린다. 여량면 여량리에 들어선다. 여량(餘糧)이라는 지명은 산수가 수려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돼 식량이 남아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9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라 하여 일명 가구미로도 불린다. 9가지의 아름다움이란 옥갑사 종소리, 마산봉 산책길, 고양산에 떠도는 구름, 곰바리 문산, 유문재 일출, 달뜬골 달맞이, 송천의 고기잡이, 갈금의 백사장, 삼투벼리의 험한 길을 일컫는다.

<골지천-여량리>


   눈발이 그친 후에 도착한 제1여량교 입구 쉼터에는 여량리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이 비석은 정선군에 선정을 베푸신 관찰사(觀察使)와 찰방(察訪) 및 군수(郡守)들의 애민선정(愛民善政)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로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어 태풍의 피해로 침수 되는 등 관리가 부실했던 것을 20045월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200812월에 여량면사무소에서 재정비하였다.

<여량리 비석군>


   물살도 빨라지지만 내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우라지가 바로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아우라지는 평창의 발왕산에서 발원한 송천(松川)과 골지천이 어우러져 만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함을 담은 정선아리랑의 가사 유래지로 잘 알려져 있는데, 녹은 눈은 애틋하게 기다리는 연인의 눈물이 되어 솔잎 끝으로 뚝뚝 떨어진다. 송천()과 골지천()의 만남은 자연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음양의 조화로움이로다.

<아우라지 보도교>

<솔잎의 눈물>


   “아우라지 뱃사공아/배 좀 건너 주게/싸리 골 옥동박이/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박은/낙엽에나 싸이지/잠시잠깐 님 그리워/나는 못 살겠네나룻배 아니면 건너지 못했던 아우라지를 지금은 보도교(步道橋)를 통해 쉽게 건너간다. 만약에 그 당시 이러한 교량이 있었더라면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버드내골[유천리(柳川里)]처녀와 여랑리의 총각이 노란 꽃을 피우는 올동백처럼 서로 그리워하는 정선아라리의 애절한 가사는 생겨나지 않았으리라.

<아우라지 표지석>


   다리 건너에는 여송정이라는 2층 정자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서있다. 여송정(餘松亭)은 아우라지 강변에 얽힌 송천의 처녀와 여량의 총각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기 위하여 송천과 여량, 두 마을의 이름을 따 여송정이라 붙였다. 처녀상은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에 빠진 처녀 총각은 만나기로 약속한 전날 큰비가 오는 바람에 만날 수 없었다. 이 일로 총각은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가 버리고, 처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아우라지 물속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표현한 것 같다.

<여송정>

<아우라지 처녀상>


   나룻배 대신 송천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아우라지 뱃사공은 정선아리랑 가사 중 아우라지 지장구아저씨 배를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이 가사의 지()장구는 장구를 잘 쳤던 사람의 성이 지씨였으며, 본명은 지유성으로 1960년대까지 살아있던 실존인물이다. 지장구는 20세부터 63세까지 40여 년 간 아우라지에서 뱃사공으로 있으면서 장구를 잘 치고 정선아리랑도 잘 부르는 명창이었다고 한다.

<송천 징검다리>


   송천과 합환(合歡)이 된 골지천 물살은 징검다리 디딤돌 사이를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흐른다. 임 그리워 하다가 어린 나이에 물귀신이 된 아우라지 처녀에 대한 애환이 기쁨의 노랫소리가 되어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홍수가 지던 날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떠난 총각은 나무 팔아 떼돈을 벌어 흥청망청 황홀하게 지내다가 고향처녀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처음 뗏목을 띄웠던 아우라지 물살이 지금도 이렇게 한을 담고 흐르는 것을 총각은 알고 있는지세월과 함께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흐른다.

<물에 띠우기 전의 뗏목>

<뗏목>

<골지천 징검다리>


   조선시대 남한강 일천리 물길 따라 충주 목계나루, 여주 이포나루를 거쳐 서울 마포나루까지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 시발점을 건너면 아우라지 기차역이다. 아우라지역은 처음에는 여량역(餘糧驛)이었으나 2000년에 아우라지역으로 이름을 바꾼다. 정선선을 운행하는 여객열차의 시종착역으로 아우라지구절리 구간은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레일바이크 구간으로 관광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역 구내에는 어름치를 모형으로 한 카페가 눈길을 끈다. 어름치는 천연기념물이며 환경부지정 특정보호어종으로 보호되고 있다.

<아우라지역사>

<어름치카페>


   곤한 잠을 자고 조반을 마친 다음 구절리역으로 이동한다. 여량면에 있는 구절리역(九切里驛)은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정선선의 철도역이다. 현재는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아우라지역까지 갈 수 있는 레일바이크만 운행하고 있다. 이 역에는 한국철도 디젤기관차가 몇 해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현재는 예쁘게 도색한 채 여치의 추억이란 카페로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구절(九切)’이란 명칭은 이곳을 흐르는 송천이 구절양장(九切羊腸)’의 형태로 흐른다는 뜻에서 구절이란 이름 붙여졌다.

<구절리역>

<레일바이크>

<카페-여치의 추억>


   버스를 이용하여 다시 여량리로 나와 마산재둘레길로 접어든다. 활짝 게인 날 여량(餘糧)의 아침은 한껏 여유롭다. 지금까지 강변을 따라 쭉 내려왔지만, 오늘은 산길을 따라 사행(蛇行)으로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멀리서 보기 위해서다. 송천을 받아들인 골지천도 더 큰 세상을 향해 흐른다. 초입 조금 가파른 언덕에 올라서니 정선군 북평면 장열리다.

<여량의 아침>


   북평면은 정선군 서북부에 있는 면으로 사방이 상원산(1421m)·가리왕산(1561m)·하봉(1380m)·옥갑산(1235m)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면내에도 백석봉(1170m)·갈미봉(1266m) 1000m 이상의 산들이 솟아 있어 면 전체가 높고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과 동쪽의 여량면에서 흘러든 골지천이 남평리 나전에서 합류하여 조양강이 되어 남쪽으로 흐르며, 이들 연안에는 약간의 농경지가 분포한다. 나전에는 아라리인형의집 인형극박물관이 있다.

<마산재 올라가는 길>

<아우라지 원경>


   어제 내린 눈이 길가로 쌓인 임도를 따라 아라리 고갯길로 들어선다. 길가에 쉬었다 가라고 정자도 꽃벼루란 예쁜 이름을 붙여 만들어 놓았다. ‘꽃벼루진달래가 가장 먼저 피는 벼랑을 의미 하는데, 이 길은 아우라지를 출발하여 나전(羅田)으로 이어지는 산소길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 때 정선알파인 경기가 열렸던 가리왕산(加里王山)도 북평리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꽃벼루 정자> 

<가리왕산과 북평리>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북평면 남평리다. 옛날에는 송석(松石)이라 하였으나 정선군 내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갖고 있으며 강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1779년경에 남평(南平)’이라는 지명이 주어졌다. 지금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서로 어우러져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로 가꾸어 자손만대에 물려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깔끔하고 예쁘게 단장된 남평초등학교가 대신 말해준다.

<남평초등학교>


   남평초교에서 강변으로 내려오면 조양강이다. 조양강(朝陽江)은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여량에서 송천과 합류하고 북평면 나전에서 오대천과 합류함으로서 골지천의 임무는 끝나고 조양강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여 지장천이 만나는 정선읍 가수리(街水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검룡소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오대산 우통소(于筒水)가 한강발원지였고, 오대천이 한강의 본류였으나, 검룡소가 발견된 이후로는 골지천이 한강의 본류가 되었고, 오대천은 지천으로 입장이 완전 바뀌었다.

<오대천과 골지천의 합류 지도>


   여량에서 남평까지 산길로 걸은 다음 정선읍 덕송삼거리리까지 강변을 따라 걸은 후 나전역과 북평면사무소가 있는 나전으로 이동하여 나전역(羅田驛)을 둘러본다. 나전역은 1969년 역사 준공 이후 석탄이 국가기간산업이었던 시절 보통역으로 시작하여 나전광업소 폐광과 함께 1993년 무인차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11년부터는 여객 취급이 중지되었다. 주탄종유(主炭從油)시절에는 광부들이 이 역을 통해 들어왔고, 주유종탄(主油從炭)시절에는 그들이 이 역을 통해 민물처럼 빠져나갔다.

<나전역사>

<나전역>


   오후에는 덕송삼거리리로 다시 이동하여 조양강을 따라간다. 정선읍(旌善邑)은 정선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이다. 본래 고구려 때 삼봉(三鳳주진(朱陳도원(桃源침봉(沈鳳) 등으로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정선이라 개칭하였고, 1973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북쪽에 가리왕산(加里旺山, 1561m), 서쪽에 중왕산(中旺山, 1377m), 청옥산(靑玉山, 1256m) 등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평지는 남한강의 지류인 동강(東江)이 동대천(東大川)과 합류하는 애산리(愛山里)와 봉양리(鳳陽里)에 약간 분포한다.

<조양강>


   덕송삼거리리에서 문곡교까지 걸어와서 갈등 아닌 갈등에 빠진다. 문곡교에서 조양강을 따라 약10를 뺑 돌아야 하는데, 바로 앞에 약700의 기차터널이 있어서 자꾸 유혹하기 때문이다. 열차시간을 수소문하여 마침 운행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터널을 통과하기로 결심한다. 함께한 도반들도 모두 긴장하여 두런거리던 소리도 침묵한다. 휴대폰 손전등을 켜서 깜깜한 터널 속을 비추어 침목(枕木)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매진한다.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와 철교를 건넌 후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문곡교>

<기차터널>


   만약에 강변길을 따라 장등산을 중심으로 뺑 돌아왔다면 한반도지형을 바라보면서 물살이 바위에 부딪히며 휘돌아 가는 절경을 실컷 맛보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그네가 길을 걷는 것은 터널 속의 깜깜한 맛을 보려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가르쳐 주는 호연지기(浩然之氣) 일진데, 괜한 치기(稚氣)를 부린 것 같은 씁쓸한 뒷맛이 강하다. 언제 걷지 못한 그 길을 걸어 볼가?

<조양강-정선>


   아쉬움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며 정선읍 애산리 강둑을 따라 정선읍내 시가지로 들어선다. 조양강은 정선읍내 가운데로 흘러 고을을 동서로 나눈다. 정선은 오일장이 유명한데 2일과 7일에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24일 오늘은 장날이 아니다. 정선아리랑이 구슬프게 울려퍼지는 장날 무대도 오늘은 조용하다. 대신 시장 안 음식점에 들려 수수떡, 메밀전병, 배추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면서 정선아리랑 한 대목을 중얼거린다.

<정선읍내 전경>

<정선장터>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임자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배에 올랐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 -->  

<정선5일장 천하지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