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울 궁산과 겸재미술관

와야 정유순 2019. 3. 13. 01:30

서울 궁산과 겸재미술관

(201937)

瓦也 정유순

   옛날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공항대로를 달리다 보면 한강 쪽으로 들판이 펼쳐지던 곳! 옛날에 삼[()]을 많이 심어서 마곡동으로 부르던 곳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빌딩 숲이 되었다. 서울지하철 9호선과 인천국제공항철도의 전철역이자 환승역이 된 마곡나루역(麻谷나루)에서 하차하여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방향감각이 마비된다. 이 역은 공항을 오갈 때 지하로만 경유하였을 뿐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는 처음인지라 당연한 현상인지 모르겠다. 초청해 주신 지인을 만난 후에야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곡나루역 부근 지도>


   지하철 9호선 1단계가 개통된 20097월에는 역이 없었으나, 그 후 꾸준히 빌딩이 들어서고 개발이 되어 지하철역이 20145월에 개통되었으며, 20189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교차하게 되어 환승역이 되었고, 201812월부터는 9호선 3단계 구간이 개통되면서 급행열차도 정차하게 되었다. 2번 출구를 통해 서울식물원 쪽으로 나오자 아직도 개발의 열기는 한창이다.

<서울식물원>


   서울식물원은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이른바 보타닉공원으로서 면적은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한다고 한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서식지를 확대하고 번식이 어려운 종의 증식 연구, 품종개발 등 식물의 육성이라는 식물연구보전기관 본연의 역할은 물론, 도시 정원문화 확산의 교두보이자 평생교육 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식물원은 열린숲과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등 4개 공간으로 나뉘며 그 중 하이라이트는 식물문화센터와 야외정원 같다.

<식물문화센터>


   호수공원 등 너른 공간에 들어설 건물과 구조물이 앞으로 찾아올 손님을 위해 완공을 목전에 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지금은 무료이지만 설치하는 문()모양을 볼 때 입장료를 받을 것 같다. 초대형 온실로 이루어진 열대관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열기로 땀이 베어난다. 따뜻한 열기 속에 식물들은 천정이 낮을세라 키를 더 높인다.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

<열대식물관>

<열대식물관 내부>

<케이바초다티>


  식물문화센터 후문으로 나와 궁산 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겸재정선미술관(謙齋鄭敾美術館)이 바로 나온다. 이 미술관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풍을 완성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2009423일 서울시 강서구에 개관하였다. 이 미술관은 겸재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감으로 근무했던 양천현아(陽川懸衙)가 있던 자리에 건립하였다.

<겸재정선미술관>


   그 당시 이곳에 현령(縣令)으로 있으면서 겸재는 <경교명승첩 京郊名勝帖>·<양천팔경첩 陽川八景帖>·<연강임술첩 漣江壬戌帖> 등의 화첩을 남겼다. 처음 명칭은 겸재정선기념관이었으나, 2014214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면서 같은 해 4겸재정선미술관으로 변경하였다. 건물은 지하 1, 지상 3층으로 건축 총면적 3,305, 부지면적 4,065의 규모에 이른다. 지상1층은 기획전시실로, 2층은 경재정선기념실과 진경문화체험실 등이, 3층은 양천현아모형도와 카페테리아 등이 설치 되어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금강산>

<한강과 삼각산(북한산)>

<겸재선생과 함께>


   겸재미술관에서 뒷산인 궁산 중턱에는 일제가 파놓은 땅굴이 있다. 이 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굴착된 곳으로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이곳을 건설하기 위해 인근 지역주민을 보국대로 강제 동원하였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공사는 중지되었다. 이후 이곳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궁산땅굴>


   한강변에 있는 궁산(宮山, 74.4m)은 삼국시대 때 궁산의 이름은 부근의 지명에서 따와 파산(巴山)이라고 불렀고 산성(山城)이 있어 성산이라고도 했다. 궁산이라는 명칭은 산자락에 양천향교(陽川鄕校)가 있어 공자(孔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한편으로는 원래 이름이 관산(官山)이었는데 등재를 하면서 관자를 궁()자로 잘못 기재되었다는 설도 있다.

<궁산 안내도>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한강이 한 눈에 바로보이는 소악루(小岳樓)란 정자가 있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英祖) 때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지낸 이유(李楺)가 양천현아 뒷산 기슭 강변 악양루(岳陽樓) 터에 재건한 것이다. 당시 이곳에 오르면 안산(鞍山), 인왕산(仁王山), 남산(南山), 관악산(冠岳山) 등이 한눈에 보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한강 줄기가 진경(珍景)으로 당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겸재도 이곳 현령으로 있을 때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궁산 소악루>


   소악루의 원위치는 양천군읍지(陽川郡邑誌) 등 문헌과 정선의 그림 소악후월(小岳候月) 등을 볼 때 강서구 가양동 산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주변의 변화가 극심하고, 한강변의 경관 등을 고려하여 현위치에 1994년 신축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 측면 2칸으로 화강석 8각 주초(柱礎)에 겹처마구조로 팔작(八作)기와지붕이며 주위에 난간을 둘러 한강을 조망토록 했다. 겸재 정선(鄭敾)이 소악루에 올라 한강의 풍광에 취해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 후 소악루도 소실된 후 1994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소악루에서 본 한강과 노을공원>


   궁산 정상에 자리한 양천고성(陽川古城)은 한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던 삼국시대로부터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 군사거점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장군은 이곳 양천산성에 진을 치고 전쟁의 판세를 가늠한 후 군사를 행주산성으로 옮긴 뒤 행주대첩이라는 전공을 세웠다. 궁산은 이처럼 조선의 도성을 방비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군부대가 주둔하였다.

<궁산 정상>


   궁산은 서쪽의 개화산, 오른쪽의 탑산, 쥐산 등과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기에 선비들이 한강 뱃놀이의 풍류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였다. 양천산성(사적 제372)은 오랜 세월동안 행주산성(사적 제52), 오두산성(사적 제351)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는 요충지였다. 1977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된 궁산은 현재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마곡철교가 궁산 앞으로 지난다.

<겸재의 붓>


   지인의 초청으로 오늘 둘러 본 이곳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