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탄강 얼음트레킹

와야 정유순 2019. 1. 20. 23:31

한탄강 얼음트레킹

<철원, 2019. 1. 19>

瓦也 정유순

   오늘은 한탄강 얼음트레킹을 하기 위해 강원도 철원으로 향한다. 예부터 철()이 많이 나와 쇠둘레라고 불렸던 철원은 궁예가 태봉(泰封)국을 세우고 도읍(都邑)으로 정했던 곳이다. 정치적 기반이었던 송악(松嶽, 지금의 개성)의 호족(豪族)들로부터 벗어나 미륵정토(彌勒淨土)를 꿈꿔왔고, 개혁군주로서 새로운 삼한일통(三韓一統) 계획하였으나 부하인 왕건을 비롯한 호족들에게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철원군 지도>


   그리고 한탄강(漢灘江)은 휴전선 넘어 강원도 평강군 추가령계곡에서 발원하여 한국전쟁 때 철의 삼각지로 동족 간에 격전을 벌였던 평강·김화·철원을 거쳐 포천 일부와 연천의 전곡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연장길이는 136이다.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추가령의 특성상 좁고 긴 골짜기를 지나면서 절벽과 협곡이 국내 어느 하천보다 잘 발달되어 있다.

<한탄강>


   한탄강(漢灘江)이란 이름의 유래는 궁예가 부하인 왕건에게 쫓기다 흘린 눈물이 흘러 되었다는 설과, 한국전쟁 때 철원펑야를 빼앗겨 김일성이 한없이 울어서 되었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현무암층과 주상절리대가 발달된 곳으로 여울이 깊어 한 여울’ ‘큰 여울로 불리다가 한탄강이 되었다고 한다. 소리 나는 말처럼 되어서 그런지 휴전선이 놓이고 동족이 원수처럼 맞대어 있는 한탄(恨歎)’스런 지역이 되었다는 자조(自嘲)도 있다.

<한탄강 협곡>


   오늘 일정은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軍炭里)에 있는 순담계곡(蓴潭溪谷)에서부터 시작한다. 한탄강이 크게 굽이지면서 협곡을 이루는 곳으로, 상류에 있는 고석정(孤石亭)까지의 1.5 km가 한탄강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깎아지른 단애(斷崖)의 호위를 받으며 꽁꽁 언 얼음을 밟다가 계곡 사이로 설치된 부교를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계곡 이름은 조선시대 정조 때 김관주(金觀柱)가 이곳에 연못을 파고 순약초(蓴藥草)를 재배하여 복용한 데서 유래한다.

<순담계곡>

<한탄강 지도>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을 한없이 경탄(敬歎)하며 사뿐히 밟는다. 얼음과 잔설(殘雪) 사이로 흘러내리는 여울소리는 새날을 여는 노래 소리이며, 바위틈을 넘나들며 세월을 조각(彫刻)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하모니다. 과연 누구의 솜씨련가? 떡 주무르듯 다듬어 놓은 형상들은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아! 소리 외에는 무슨 할 말이 소용 있을까. 옛날 장가갈 때 머리에 써보았던 사모(紗帽) 같은 바위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첫날밤을 떠오르게 한다.

<한탄강의 여울>

<사모?바위>


   풍뎅이처럼 달싹 붙어버린 바위, 작은 바위 위에 금방 미끄러질 것처럼 얹어 있는 큰 바위, 틈새로 각을 맞춰 들어앉은 짱돌바위, 그리고 억만년 버텨온 양 자태를 뽐내는 절벽의 고드름 등 자연이 안겨 주는 온갖 상상을 떠올리며 한탄강의 위대한 절벽 고석정(孤石亭, 지방기념물 제8) 앞에 선다.

<풍뎅이?바위>

<작은 바위 위에 얹혀진 큰 바위>

<한탄강의 고드름>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은 원래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 이름이었지만 우뚝 솟은 화강암바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노닐던 곳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임꺽정(林巨正, ?1562)이 의적활동 하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고석정을 꺽정바위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憙, 18881968)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게 아이러니 하다.

<고석정(우)과 고석정 바위(좌)>

 <고석정(바위)>


   한탄강(漢灘江) 중류 강변에 위치하는 정자(고석정)는 처음 10평정도 규모의 2층 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정자는 6·25전쟁 당시 소실되었던 것을 1971년 재건한 것으로 규모와 형태는 전과 비슷하다고 하나 재료는 콘크리트가 추가되어 옛 맛은 없어 보인다. 고석바위 정상에서 오른쪽 뒤로 돌아가면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있고, 또 높이 100, 40, 깊이 2040의 직사각형 감실(龕室)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진평왕이 세운 비가 있던 자리라고 하나 확인되지 않았다.

<고석정(정자)>


   역시 얼음 위는 미끄럽다. 아이젠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서너 번은 엉덩방아를 쪘을 빙판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어릴 적 논에 물을 대어 빙판을 만들고 썰매를 타던 동심의 세계가 불현 듯 스쳐 지나가는 이유는 무슨 심사일까? 빙판 위를 걸으며 얼음이 금이 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릴 때는 본능적으로 오금이 저려온다. 빙판길이 끝나고 불규칙한 바위를 디딤돌 삼아 다다른 곳은 승일교 밑이다.

<엏음 꽃>

<한탄강의 얼음>


   승일교는 북한에서 건설하다 전쟁으로 중단한 것을 후에 우리군의 공병대가 완성한 아치형 승일교가 지금도 강을 가로 지른다. 승일교는 이승만의 자와 김일성의 자를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후에 한국전쟁 시 납북된 박승일연대장을 기념하기 위하여 승일교(昇日橋)’로 변경 하였다고 한다.

<승일교>

<승일교 상판>


   그러나 1952년 주한미군 미79공병대대에서 중위로 근무한 제임스 N 페터슨씨의 기록에 의하면 일제가 중단한 공사를 미군이 공사하여 1952815일에 완공했다고 한다. 19998월 바로 옆에 한탄대교를 건설하면서 차량통행이 금지되었고 지금은 사람만 통행하며 승일교는 20026월에 등록문화재(26)로 지정되었다.

<한탄대교와 승일교(뒤)>


   승일교를 지나면 바로 한탄강얼음축제본부다. 고드름으로 장식한 축제장 뒷산은 겨울왕국의 진산(鎭山)이다. 황금안경을 쓴 눈돼지 앞에는 소원을 적은 리본들이 펄럭인다. 예쁜 글씨는 아니지만 和致芳(화치방 : 서로 뜻이 맞아 사이가 좋으면 꽃 같은 향기가 난다)”이란 글씨를 써서 붙였다. 제발 각 가정부터 시작하여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 까지 화치방의 세계가 되기를 소원한다.

<한탄강 얼음축제장 뒷산>

<돼지 상>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게 걸었는데 벌써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동송읍에서 점심을 하고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한탄강 하류의 직탕폭포(直湯瀑布)에서부터 오후일정을 시작한다. 직탕폭포는 한탄강 양안에 장보(長洑)처럼 일직선으로 가로 놓인 높이 35, 길이 80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물이 거세게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이룬다. 덜 추운 겨울이라 거대한 빙벽(氷壁)은 기대할 수 없지만 하얀 눈과 얼음이 뒤섞여 체면을 유지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철원8경의 하나이고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고도 한다.

직탕폭포>


   직탕폭포 위에는 현무암(玄武巖)으로 놓은 섶다리를 지나 송대소로 향한다. 현무암은 모든 지질시대에 걸쳐서 유문암(流文岩)과 같이 광범위하게 산출된다. 오늘날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중에서 가장 많은 양의 암석으로 제주도에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철원에도 더 까맣고. 더 단단하고. 무거운 현무암이 기암절벽과 주상절리를 이루어 한탄강의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현무암이 늘어선 강변길은 좀처럼 평행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현무암 다리>


   송대소는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호수 같이 은은히 흐르는 한탄강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송대소 단애의 주상절리는 지표롤 분출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節理)를 말하는데, 송대소의 수직절벽은 30높이의 위용을 자랑하고, 그 절벽보다 더 깊어 보이는 송대소 위의 빙판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송대소>

<송대소의 주상절리>


   마당보다 더 넓은 마당바위는 지친다리를 쉬게 하는 쉼터로 약 1억 년 전에 만들어진 화강암이다. 송대소에서 얼음을 지치는 썰매는 한겨울의 낭만이로다. 절벽 움푹 파인 곳으로 기둥처럼 솟아난 고드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동지섣달 꽃 본 듯이반가운 마음으로 얼음 위로 걸어온 곳은 넓고 고요한 호수 같은 송대소가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절경을 이룬다. 넘어질까 봐 종종걸음으로 송대소 빙판을 건너오면 점심 때 잠깐 스쳐지나갔던 한탄강얼음축제본부다.

<마당바위>

<단애 안의 고드름>

<썰매타기>


   눈과 얼음을 정성들여 조각해 놓은 작품들이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늘을 향한 일곱 개의 얼음기둥, 미소가 아름다운 눈사람, 로마의 콜로세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등 세계 각지의 전설과 역사들을 모으는데 수고를 많이 했지만, 어느 것 하나라도 철원을 대표하는 전설이나 역사적 상징이 없는 것이 큰 오점(汚點)이다. 단군(檀君)이나 태봉국 도읍을 철원으로 정한 궁예(弓裔)의 화상이라도 있었으면

<7개의 얼음기둥>


<눈사람>

<아르테미스 신전>

<제우스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