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여덟 번째-1)

와야 정유순 2018. 9. 19. 11:48

낙동강 천 삼 백리 길을 따라(여덟 번째-1)

(201891516, 박석진교적포교)

瓦也 정유순

   우산을 받기도 그렇고 안 받기도 그런 어정쩡한 보슬비가 아침부터 길을 적신다. 출발점인 박석진교 풀 섶에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인 유홍초(留紅草)가 빗방울에 간지럼을 타는지 하얀 꽃술을 혀처럼 날름거리며 붉은 얼굴을 더 붉히며 활짝 웃는다. 박석진교(礡石津橋)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와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낙동강 변에 과거 박석나루[박석진]가 있어 박석진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홍초>


   박석나루[박석진(礡石津)]는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곳의 나루에서는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인근 대구, 창녕 등지로 쌀, 보리 등의 곡물과 소금, 어물 등이 운반되었으며, 또한 고령에서 현풍장에 수박과 참외를 싣고 건너 다녔는데, 박석진교가 1996년에 가설되면서 나루의 기능은 사라졌다. 총 길이 650m, 총 폭 9m로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으며 보행자의 통행을 위한 보도는 없다고 한다.

<박석진교>


   지금 낙동강이 흐르고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玄風)은 원래 지명이름이 현풍(玄豊)이었는데 사욕에 눈이 먼 아전(衙前)들의 가렴주구가 너무 심해 새로운 교화(敎化)의 땅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바람으로 1018(고려현종 9) 이후 현풍()풍성할 풍()’자를 바람 풍()’자로 바꾸어 고을의 곳곳마다 관리(官吏)의 교화(敎化)가 미치는 지역이 되라는 바람으로 지명을 바꾸었으며, 풍기확립(風紀確立)으로 새롭게 조성된 관아의 모습을 기리기 위해 앙풍루(仰風樓)를 세웠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현풍교차로>

<현풍을 지나는 낙동강>


   박석진교에서 보슬비 오는 낙동강변을 따라 하류로 발길을 옮기면 바로 현풍천이 나온다. 현풍천(玄風川)은 비슬산 조화봉(照華峰, 1058m)의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며 달성군 유가면 양리를 지나 양리 사효굴 남동쪽에서 쌍계천과 합류하여 달성군 유가면 음리·봉리·쌍계리와 달성군 현풍면 상리·중리·하리를 지나 11.62를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하천을 가로지르며 지난다.

<현풍천>

<중부내륙낙동대교>


   촉촉이 젖어 있는 강둑을 지나면 갈대는 이삭을 내놓고 가을을 부채질하고, 뚱딴지라 불리기도 하는 돼지감자의 노란 꽃은 무성한 풀밭을 한결 부드럽게 누그러트린다. 풀밭에 야생으로 잘 자라 먹거리가 적었던 어린 시절에는 군것질거리 외에는 별로 처다 보지도 안 했던 이 뚱딴지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당뇨와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에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사람이 사는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로다.

<돼지감자(뚱딴지)꽃>


   내리던 비는 잦아들었고 강변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간다. “여기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한 산등성이가 마치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라 불러왔다. 원래 강변 바람 쪽으로 치우친 오솔길을 버리고 산허리를 끼고 도는 새 길을 훤하게 닦고 나니 재 넘어 마을들이 이웃이 되면서 훈훈한 인정과 복지의 짐바리가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하략)” 1986년 당시 달성군수 신영식은 낙동강 푸른 물길에 상고선 줄을 잇고 흥청거리던 번영을 되찾자고 이곳 다람재에 올라 고향의 끝없는 영광을 기원했다.

<다람재>


   고갯마루에는 김굉필의 <로방송(路傍松)> 시비(詩碑)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굽어본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 가에 서있어

(一老蒼髥任路塵 일로창염임로진)

괴로워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勞勞迎送往來賓 노노영송왕래빈)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歲寒與汝同心事 세한여여동심사)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느냐

(經過人中見幾人 경과인중견기인)

<김굉필의 로방송 시비>


   김종직은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극형에 처해졌으나 중종반정 이후에 신원(伸寃)되어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1517년에는 정광필(鄭光弼) 등에 의해 우의정이 추증되었다. 학문경향은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로 이어지는 의리지학(義理之學)을 계승하였으며, 치인(治人)보다는 수기(修己)에 중점을 두었다.

<다람재정상에서 본 낙동강>


   다람재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은 명경(明鏡)이다. 고개 아래에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로 김굉필을 배향(配享)도동서원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 되지 않고 존속한 도동서원(道東書院)1605(선조38)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김굉필(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7道東(도동)’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678(숙종4) 정구(鄭逑, 15431620)를 추가 배향하였고, 1964년 전면 보수하였다.

<도동서원배치도>


   사적 제488(20071010)로 지정된 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과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공부하던 중정당(中正堂)이 중앙 상단에 위치하며, 서원의 정문 겸 낙동강을 바라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하던 수월루(水月樓)가 전면에 위치한다. 중정당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4개의 용머리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새겨져 있는데, 용머리는 낙동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비보(秘寶)책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환주문(喚主門내삼문(內三門장판각(藏板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당>

<중정당>

<용머리>

<다람쥐>

<수월루>


   서원 입구에 있는 수령(樹齡) 4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보호수로 19821029일 지정)1607(선조40)에 안동부시로 재직 중인 김종직의 외증손이며 퇴계 이황(李滉)선생의 고제(高弟)인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도동서원 중건기념으로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제(高弟)는 고족제자(高足弟子)의 준말로 학문이나 덕행이 뛰어난 제자를 일컫는다.

<도동서원 은행나무>


   우리나라의 3대 곰탕은 황해도의 해주곰탕, 전라도의 나주곰탕, 경상도의 현풍곰탕으로 손꼽히는데, 3대째 이어온다는 현풍의 그 곰탕집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온 김에 현풍석빙고로 이동한다. 곰탕은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음식으로 처음에는 고기물을 쿵탕으로 표기했고 쿵탕이 곰탕으로 불려 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 푹 고아서 기름기가 많은 탕으로 고음(膏飮)곰국곰탕으로 변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풍곰탕집>


   보물 제673(19800916)로 지정된 현풍석빙고(玄風石氷庫)는 빙실길이 9m, 높이 6m, 너비 5m로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었다. 외형은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나, 조선 때 화강암으로 만든 석제 얼음 창고다. 석빙고 입구는 북쪽을 향하며, 화강석을 직사각형으로 연석(鍊石)하여 4개의 홍예(虹霓)를 틀어 올리고, 홍예 사이에는 직사각의 판석을 걸쳐 천장과 측벽(側壁)을 만들었다.

<현풍석빙고>


   이 석빙고는 동네 바깥에 있는 소구릉과 그 옆을 흐르는 계천(溪川) 사이에 축조되었다. 입구에는 돌을 다듬어 네모난 문틀을 만들고 외부공기를 막기 위하여 강돌로 뒷벽을 채웠으며, 외부에는 돌을 쌓고 점토로 다진 후 흙을 쌓아올렸다. 석빙고의 천장에는 2개의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바깥에서 비가 스며들지 않게 뚜껑으로 덮고 있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그 옛날 계곡의 물이 얼게 되면 계곡의 얼음을 떠다가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석빙고의 환기구>


   다시 오전 끝 지점인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로 이동하여 낙동강을 따라간다. 강변으로 낙동강레포츠벨리의 오토캠핑장과 텐트촌이 줄을 잇더니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이 위치한다. 낙동강레포츠벨리는 구지오토캠핑장강변오토캠핑장이 함께 이루어져 가족단위의 야영객들이 방문하면 좋을 오토캠핑, 수상레저시설이 갖추어 졌다. 또한 대구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아도 다양한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무더웠던 지난여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낙동강레포츠벨리-텐트촌>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하여 대구광역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수련기관으로 20149월에 개원하였으며, 부지면적 77,134에 생활관과 다목적강당 등 연면적 9,650.76의 시설을 갖춘 대규모 학생수련원이다. 이곳에서는 낙동강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학생들의 특기·적성에 적합한 프로그램등을 개발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건물의 외벽에는 대한민국 교육수도 대구라고 크게 써 놓았다.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


   그리고 하류 쪽 가까운 곳에는 중앙119구조본부가 위치한다. 중앙119구조본부는 199512월 중앙소방학교 소속 기관으로 발대했으며, 1997년 항공대가 발대했고 19975월 행정자치부 직속기관으로 개편되었다. 같은 해에 119국제구조대가 발족했으며, 1999년 국제연합국제수색구조지휘단에 가입했다. 2014년 국민안전처의 직속기관으로 개편되었다가 2017년 소방청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201412월 이곳에 청사가 준공되어 이전하였다.

<중앙119구조본부>


  이곳을 지나면 조선의 대학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무오사화(戊午士禍)를 당해 시골로 내려와 풍류를 즐기면서 학문을 연구하던 이노정(二老亭)이 있다. ‘이노정이란 김굉필과 정여창을 두 노인네라 칭하여 붙인 이름이다. 1885(고종22)에 영남 유림들이 두 분을 추모하기 위해 고쳐지었고, 1904년에도 고쳤다. 이노정은 풍광이 아름다워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고도 한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