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파랑 길은 해피한 길(열 번째-2)

와야 세상걷기 2017. 11. 29. 04:05

해파랑 길은 해피한 길(열 번째-2)

<경포대양양설악해변, 2017.11.2526>

瓦也 정유순

   밤새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아침에는 멎었다. 몹시 쌀쌀할 것으로 여겼던 날씨도 오히려 어제 아침보다 기온이 올랐다. 조반을 마치고 죽도가 보이는 양양군 현남면 인구해변으로 나간다. 인구해변에서 남으로 해송천을 건너가면 어제 마지막 지점 휴휴암이다. 휴휴암 머리 위로 막 떠오른 태양은 알 찬 오늘을 선물하는 양 바다를 물들인다.

<동해 일출>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에 있는 죽도(竹島)는 둘레 1, 해발 53로 옛날에는 섬이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육지와 이어졌고, 송죽(松竹)이 사시사철 울창하여 죽도라고 한다. 죽도의 장죽은 강인하고 전시용으로 적격이므로 조선조에는 매년 조정에 진상하였다고 한다. 정상에는 마을 부자들이 건립한 팔각정이 있다고 하나 올라가지 못했다.

<양양 죽도>


   성황당 앞으로 죽도를 지나치면 서핑하기 가장 좋은 곳죽도해변이 파도와 함께 펼쳐진다. 넓은 해변과 탁 트인 동해바다가 서퍼들을 유혹하는 곳이다. 더욱이 잔잔한 파도와 얕은 수심으로 초보자들이 안전하게 서핑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서퍼들은 보이지 않지만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조형물이 인사를 대신한다.

<죽도해변>

<서퍼 조형물>


   죽도해변 북단에는 지방어항인 동산항이 한가롭고 고개를 하나 넘으면 청정수역해변이라 물속에 들어가 발로 모래를 비비어 조개를 캘 수 있는 동산리 해변이다. 동산리 해변마을은 전통어촌마을로 조개 굽는 마을로 유명하다고 한다. 도로변에는 해난어업인위령탑이 하늘로 우뚝 솟아 있고, 한국전쟁 때 조국 수호를 위해 산화한 경찰들의 전적비가 무궁화동산에서 바다를 지킨다. 그리고 국토가 두 동강이 나고 민족이 남북으로 갈린 38°선이 나온다.

<조개굽는 마을>

<해난어업인위령탑>

<경찰전적비>


   38°선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독일처럼 일본 땅을 승전국이 분할 점령하여 통치를 해야 했으나 불행하게도 일본 대신 한반도가 북위 38°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현 러시아)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하여 통치하다가 남북에서 각각 독립정부를 세웠으며, 1950년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동족끼리 죽이고 죽이는 민족의 비극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1953년 휴전협정으로 38°선 대신 휴전선이 그어져 지금에 이르고, 일본이 겪어야할 패전의 책임을 고스란히 우리가 안고 간다.

<38선 표지석>


   또한 매년 101일이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대하게 열리는 국군의 날도 한국전쟁 때 제3사단 23연대가 양양지역에서 1950101일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56년 당시 정부에서는 이날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한국광복군이 창설(1940)917일을 국군의 날로 개정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하튼 자칫하면 갈 수 없었던 38°선 이북 수복지역을 두 발로 걸어간다는 것은 서글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38선에서>


   38°선을 넘으면 한 때 명태 잡이가 성행했던 기사문항에는 오징어를 잡으려 가는 배들이 때를 기다린다. 7호 국도에는 자동차가 질주를 하고 도로변 만세고개에는 31만세운동 유적비가 자주독립을 외친다. 191931일 점화된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 양양에서도 44양양장날에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이곳 만세고개를 넘어가던 만세행렬에 일경과 헌병이 발포하여 9명이 피살되었고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기사문항>

<삼일만세운동유적지>


   그 때의 만세 함성이 들리는 듯 뒤로하고 고개를 내려오면 양양군 현북면소재지가 있는 하광정리가 나오고 하조대 가는 방향이 선명하다. 명승 제68호로 지정된 양양 하조대(河趙臺)는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돌출해안으로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어울려 동해안의 절경을 이룬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 13471416)과 조준(趙浚, 13461405)이 은둔하여 혁명을 도모한 곳이라 하여 하조대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많은 설화와 전설이 서려 있는 역사문화의 경승지이다.

<하조대>

<하조대의 기암>


   하조대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내려와 좌측 길로 들어서 구름다리를 건너 절벽을 따라 들어가 새하얀 등대와 주변을 둘러보고 나와 광정천 하륜교를 건너 백사장 규모가 크고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피서지로 적합한 하조대해변과 모래 질이 뛰어난 동호해변을 지나 을지인력개발원까지 단숨에 당도하여 오전을 마감한다.

<하조대 등대>

<하조대주변 기암괴석>

<을지인력개발원>

<동호해변>


   오후에는 양양국제공항 배후해변으로 수산항 입구를 지나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을 거쳐 양양 남대천에서 시작한다. 남대천은 오대산 두로봉(頭老峰)에서 발원하여 양양읍 남쪽을 지나 동해로 흘러간다. 우리나라로 회귀하는 연어70% 이상을 차지하는 장소로서, 이곳에서 산란한 연어는 동해를 거쳐 베링해에서 35년 간 성장한 후 11월쯤이면 하루 수 천 마리씩 다시 돌아온다. 둔치에서 10월 말부터 11월 초순 사이에 매년 연어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양양남대천 하구>

<남대천을 건너는 낙산대교>


   남대천 낙산대교를 건널 때 멀리 구름사이로 눈이 쌓인 설악산이 아른거린다. 남대천 하구는 우리나라에서는 몇 안 되는 기수역(汽水域)으로 많은 물새들이 한가로이 노닌다. 대부분의 큰 강들은 수자원 확보라는 명목 아래 하구 둑이나 방조제로 해수 유입을 막아버려 바닷물과 민물이 소통하는 곳을 없애버렸다. 더 넓은 곳을 향해 가려 하지만 스스로 막아버린 장벽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낙산대교-멀리 좌측이 설악산>

<남대천 하구의 기수역>


   낙산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낙산해수욕장이 나온다. 동해안 지역의 많은 해수욕장 중에서 경포대 해수욕장과 함께 명소로 꼽힌다. 이곳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명사십리가 펼쳐진다. 1963년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이래 수심이 얕고 안전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다. 부근에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낙산사가 있어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낙산 해수욕장>


   낙산사(洛山寺)는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五峰山)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이다.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다. 오봉산을 낙산이라고도 하는데 범어 보타락가(補陀落伽, Potalaka)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671(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낙산사 지도>


   의상대는 낙산사를 창건할 당시 의상이 좌선하였다는 자리에 세운 정자이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에서 나온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로, 관음굴이라고도 한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해안 절벽에 자리 잡고 있어 아름다운 주변 풍광과 일출 경관이 멋진 곳으로 이름나 있다또한 해안에는 촛대바위가 발달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의상대 주변>

   낙산사 매표소를 지나 의상기념관 앞으로 하여 의상대로 향한다. 의상대(義湘臺)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의 좌선(坐禪) 수행한 곳이라고 한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 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며, 지금도 낙산사를 찾는 사람이면 반드시 들러 보는 곳이다.

<낙산사 의상대>


   홍련암(紅蓮庵)은 낙산사의 부속암자이다.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이다. 676(문무왕16)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의 전각은 2002년에 중간된 것으로 관음굴이 있는 해안가 절벽에 세워진 흔치 않은 건물이다. 불전 내부의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다.

<홍련암>


   다시 돌아 나와 1500관음을 모신 보타전(寶陀壂)으로 향한다. 전각 아래로 사각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는 둥근 동산이 마련되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뜻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형은 동양의 오래된 우주관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神壇)이나 정원의 연못 등에 많이 쓰였다. 보타전 우측 높은 언덕에는 15높이의 해수관세음보살 입상이 우뚝하다.

<낙산사 보타전 전경>

<낙산사 보타전>

<보타전 연못>

<해수관세음보살>


   2005년 식목일에 일어난 산불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낙산사 원통보전 등 다른 전각들을 보지 못하고, 북쪽의 설악해변으로 빠져 나오기 위해 지름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아니다. 가시덩굴로 얽힌 길을 뚫어가며 생채기를 낸다. 그래도 붉은 명감열매는 때론 미끄럼 타듯 내려오고, 때론 절벽을 기어오르듯 네 발로 기며 악전고투 하는 우리를 위로한다. 힘든 고행 끝에 아래로 내려오니 마을 주민들이 놀랜다. 길도 없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귀신 같이 빠져 나오니 그럴 만도 하다.

<명감(망개)열매>


   낙산사에 들어가면 가운데 두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는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글귀가 큰 돌에 새겨져 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도 말고 묻지도 말라는 경고 같다. 또 잔꾀를 부리지 말고 정도를 걸으라는 부처님의 설법 같다. 설악해변에 도착하여 안도의 숨을 쉴 때 너무 편한 길을 가는 것도 좋지 않지만 무리하게 만용을 부리는 것이 더 나쁘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그래도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새 길을 찾는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길에서 길을 묻다>

<설악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