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 길은 해피한 길(열 번째-1)
<경포대→양양설악해변, 2017.11.25∼26>
瓦也 정유순
11월 하순. 붉게 산하를 태우던 단풍은 추억의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고,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의 날씨로 끝은 옷을 뚫고 피부를 자극하지만 경포호(鏡浦湖) 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다. 경포호 북안 언덕에 자리한 경포대(鏡浦臺)는 경포해수욕장과 호수를 찾는 사람들이 선심 쓰듯 가끔 들러주는 신세지만 그래도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제일강산(第一江山)’으로 꼽히어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제6호)로 지정된 곳이다.
<경포대>
보름달이 환하게 뜨는 밤에 정자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면 달이 다섯 개로 보인다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 동해바다에 비친 달, 경포호수에 비친 달, 술잔 속에 있는 달 그리고 마주 앉은 그대의 눈 속에 비치는 달’이다. 혹여 정분(情分)이 두터운 사람은 ‘그대 두 눈 속에 비치는 두 개의 달이라며 여섯 개로 보인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낭만을 노래했던 옛 선비들의 모습이 부럽다.
<경포호>
바로 경포호(鏡浦湖)와 바다사이에 사빈(砂濱)이 형성되어 6㎞의 백사장이 펼쳐진 경포해변 길을 거닐며 북으로 향한다. 지난여름 그 많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가고 덧없이 파도만 출렁인다. 백사장 바다 쪽 가장자리는 왜 이리 경사가 급하게 패였을까? 행여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미끄럼이라도 타야할 것만 같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바람의 길을 막아 모래를 실어오지 못하고 오히려 쌓인 모래를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경포대해수욕장의 푹 꺼진 모래>
<경포대해수욕장>
경포해변의 우거진 솔밭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면 강릉시 사천면 신대월리에 있는 순포습지가 도로 건너에 자리한다. 순포습지는 2003년 환경부 전국내륙습지조사에서 규모는 작지만 전형적인 석호(潟湖)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고 교육 현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강릉시에서 습지복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순포마을은 순채(蓴菜)라는 순나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순포 또는 순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멸종위기종 이라고 한다.
<경포대해변 솔밭>
<순포습지>
순포해변을 지나면 사천해변이 나온다. 경포호 남안에 있는 허난설헌 공원을 그냥 지나와서 섭섭했는데 허균의 시비가 있는 사천면 교산으로 이동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외가인 애일당(愛日堂)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애일당 뒤편으로 이어진 가파른 능선에서부터 사천진리 앞바다를 이어주는 능선이 바로 교산(蛟山)이고, 허균은 자기 아호를 교산(蛟山) 으로 지었다.
<사천해변>
<애일당 가는길>
시문학에 소질이 뛰어났던 허균이나 누이 허난설헌 등은 시절을 잘못 만나 불우한 생을 살았던 것 같다. 허균은 자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국을 꿈꾸다가 역적으로 몰려 사지가 잘리는 거열형을 당했고, 누이 허난설헌은 8세부터 시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15세에 결혼하였으나 고된 시집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27세 꽃다운 나이에 능력을 채 피우기 전에 요절하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교산시비>
만약에 허균의 호나 태어난 곳이 이무기(蛟)가 아니고 용(龍)자가 들어 간 곳이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밥숟갈 뜨다 숭늉 마시듯 잠깐 허균시비에 들렀다가 사천해변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오대산에서 바다 쪽으로 뻗어 내리는 교산의 구릉과 사천의 시내가 나란히 바다로 들어가며 만나는 백사장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1501년(연산군 7년) 가을에 늙은 이무기가 바위를 깨뜨리고 바다로 나가면서 두 동강이 나 문(門)처럼 생긴 바위라 해서 ‘교문암(蛟門岩)’으로 이름 지어졌다.
<교문암>
금이 간 바위는 반쪽으로 갈라질 것처럼 보인다. 크지는 않지만 바위는 향단이 엉덩짝처럼 실하게 생겼다. 뒤 바위에 새겨진 ‘영락대(永樂臺)’는 옛날 강릉지방 선비들이 영락계(契)모임을 이곳에 자주 모여 풍류를 즐기면서 바위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영락대라는 큰 글씨 밑에는 계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문암-영락대-네이버캡쳐>
싱싱한 횟감으로 유명한 사천항에는 붉게 녹 슨 상어잡이 철상(鐵像)이 어항을 지키고, 향나무로 교룡(蛟龍)처럼 장식해 놓은 사천진해변의 넓은 백사장에는 갈매기들이 때를 지어 망중한을 즐긴다. 어렸을 적 개구쟁이 심산이었던지 백사장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더니 갈매기가 침입자를 먼저 알고 일제히 하늘로 비상했다가 우회하여 다시 백사장으로 돌아와 오히려 나를 희롱한다.
<상어잡이 철상>
<교룡향나무>
<갈매기의 비상>
연곡해변과 오대산 소금강에서 흘러나오는 연곡천을 건너 영진항을 지나면 주문진항이 반긴다. 1940년 10월 읍으로 승격한 주문진(注文津)은 구 명주군에 속해 있다가 도농통합 때 강릉시로 편입된 곳이며 지금은 강릉시의 외항으로 오징어 청어 고등어 등의 집산지이다. 옛날에 그 많이 잡히던 명태는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눈에 띠질 않고 오징어 어장도 서해안으로 이동하여 보기 힘들다고 한다. 대신 주문진 수산시장에는 12월 초에 복어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주문진항>
<주문진수산시장 입구>
<수산시장의 복어>
주문진에서 약1.5km쯤 떨어진 소돌해안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소돌[우암(牛岩)]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주변에는 산책로, 전망대, 성황당, 아들바위 등 볼만한 기암괴석 들이 많이 있다. 입구에는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 배호의 ‘파도’라는 노래비가 구슬픈 노래 가락으로 불러 보게 하는데, 실제로 500원 동전을 주입구에 넣으면 배호의 노래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바다로 퍼진다.
<파도노래비>
노래비 옆으로 너럭바위를 지나 계단과 다리로 연결해 놓은 바위를 밟고 다니며 공원과 바닷가의 풍경을 만끽한다. 파도와 바람에 의한 해식작용(海蝕作用)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아들바위, 소바위 등 절묘한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아들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그 외 다른 바위들도 자연이 빚어낸 작품처럼 파도와 속삭이는 저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들바위>
또한 아들바위 앞 물속에는 기도에 의해 태어나는 아기모습의 동자상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 바위는 옛날 노부부가 백일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었다는 소문이 난 후 더 유명해져 자식을 원하는 부부들과 특히 신혼부부들이 자주 찾아와 득남을 원하는 기도를 많이 올린다고 한다.
<소바위>
소돌해안을 지나면 주문진을 벗어나 양양군이 시작되는 현남면 지경리다. 지경리부터 남애항까지는 해변을 따라 온전히 바다를 품에 안고 걸을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철조망으로 막혀있지만 남애항 근처부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남애항 끝에서 7번 국도를 올라타면 바로 휴휴암 진입로가 보인다.
<주문진해변>
<소돌해변 전망대>
소돌해변에는 양식장에 사용하는 거대한 가두리 구축물이 바다에 잠수할 기회를 기다린다. 한국해양소년단 강원연맹은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 독도) 복속 1,500주년 기념 ‘異斯夫(이사부) 東海(동해)를 열다’ 표지석이 동해를 지킨다. 이사부는 성은 김 씨이고, 내물왕의 4세손으로 가야국과 우산국을 병합시킨 정치가로 지혜로서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다. 울진을 지나 강원도 삼척부터는 이사부에 대한 기억들이 심심찮게 많이 보인다.
<양식장 가두리>
<이사부 동해를 열다>
강릉시청소년해양수련원을 지나면 양양군 현남면 지경리가 나오고 지경해변과 원포해변을 지나면 남애항이 나온다. 남애항은 삼척의 초고항, 강릉의 심곡항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꼽힌다고 한다. 남애항이 가까워질수록 이곳의 특산물인 송이(松栮)모양의 등대가 눈에 크게 띄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양양 땅이라는 확신이 간다. 멀리 보이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남애해변을 지나면 휴휴암이 나온다.
<강릉시청소년해양수련원>
<남애항>
<남해항 등대>
<남애항전망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휴휴암 경내로 막 들어가자 철조망을 쳐놓고 밖으로 돌아가라 이른다. 해변으로 나가는 중앙 길목에는 어느 대기업이 이 암자와 부동산 매입관계로 분쟁 중에 있는지 길을 막은 철조망과 관련 글귀가 볼썽사납다. 그래도 어쩌랴 철조망 밖으로 돌아 우측의 너럭바위로 간다. 높이 53척의 해수관음보살상은 연화대에 올라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이곳을 찾는 이들의 안녕을 발복하는 것 같다.
<휴휴암 불이문>
<해수관음보살 입상>
휴휴암(休休庵)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부처님, 즉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天眼觀世音菩薩)이 바닷가에 여유롭게 누워 계신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휴휴암에는 바다 속에 거북이 모양을 한 넓은 바위가 평상처럼 펼쳐져 있고,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의 바위가 보인다고 하는데, 업보가 많아서 그런지 잘 보이질 않는다.
<휴휴암>
해변의 너럭바위 위에는 동해해상용왕단에게 언제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이 차려져 있으며, 그 옆으로 큰 바위 3개는 가운데 바위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연화법당 고기바위 주변에는 수 백 마리의 황어 떼가 새까맣게 몰려와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나와 있어도 갈매기들이 잡아먹지 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고기밥을 주면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몰려나온다고 한다. 이것도 부처님의 자비인가? 아니면 기적인가?
<일그러진 얼굴>
<동해해상용왕단>
<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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