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여덟 번째)
(안면도 백사장항→안흥항→천리포까지, 2014.9.27∼28)
瓦也 정유순
안면도 백사장항에서 ‘꽃게랑대하랑다리’를 건너 ‘드르니항’으로 간다. 드르니항은 “들르다”의 순 우리말로 뱃길을 이용할 때 이곳에 오면 누구든 처음 들리는 곳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드르니항을 지나 물 빠진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간다고 걸어가는데 태안바다의 특성상 우리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알 수 없다. 걸을 때 내 그림자를 보고 방향을 가늠한다.
<드르니항>
‘태안해변 길-솔 모래 길’을 지나 야트막한 산길을 넘으니 ‘곰섬’이 보인다. 섬모양이 곰을 닮아서 곰섬인가 보다. ‘마검포’ 쪽으로 조금 가니 솔밭 주변으로 ‘캠핑카’가 눈에 많이 보인다. 그리고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해안의 자갈밭은 걸음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데 인근의 경비행장에서는 날개 짓을 하며 이륙하는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친다. 마검포는 2개의 섬 모양 선착장에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조용하고 한적한 포구 같다.
<마검포갯바윗길>
<경비행장활주로>
북쪽으로 지척에 있는 ‘청포대’는 해수욕과 함께 독살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란다. 독살이란 남해의 죽방렴과 함께 우리 전통 어업 방식 중의 하나로 바닷가에 ‘V’자 모양으로 돌을 쌓아 놓은 후 물이 들어왔다 빠지면서 그 안에 갇힌 고기를 손이나 그물을 이용해 잡는 방법을 말한다.
<독살>
<독살체험>
옛날에 독살 하나 가지고 있으면 부자 소리를 들었다는데, 새로 집을 짓고 길을 놓으면서 필요한 돌을 이곳에서 가져가 대부분의 독살이 없어졌다고 한다. ‘달산포’해변을 지나 ‘몽산포’해변에 다다른다. 곰섬에서 몽산포까지의 13여km 해변은 해수욕과 독살 및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잘 갖추어 있는 것 같다.
<마검포해변>
‘몽산포’는 태안군의 남면 몽산리(夢山里)에 있는 포구로 몽대리(夢垈里)와 동산리(東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연유를 모르는 우리는 ‘몽대리항’으로 표시되어 있는 푯말을 보고 헷갈렸다.
모래 위에는 게들이 만들어 논 모래구슬들이 갖가지 모양의 형상을 만드는데 훌륭한 예술이다. 파도에 밀려온 조개껍질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가루가 된다. 콩보다 더 작은 게는 우리가 움직이는 진동이 지진이 일어난 듯 모래구멍을 들락거리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몽산포해변>
오후에는 안흥의 외항이 있는 신진도를 거쳐 ‘안흥내항’을 경유한다. 밀물이 밀려오는 모습은 마치 물이 서서 달려오는 것 같아 장관이고 낚시꾼들의 손길은 더 분주하다. 고삿 길을 휘돌아 ‘안흥산성’으로 간다. 조선 초 명나라 사신에게 잘 보이려고 고급저택 삼백 채를 지어 놓았던 성안은 전시행정(展示行政)의 호사함은 다 어디로 가고 초라한 스레트지붕 40여 채만 옛터를 지킨다. 길옆의 돼지감자는 뚱딴지 마냥 노란 꽃을 예쁘게 피웠고 구절초는 가을을 노래한다. 성문은 지붕이 없어져 초라하고 문루는 새로 단장을 하였는지 손댄 흔적이 있지만 아직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안흥내항>
<안흥성내 마을>
<안흥성수홍루>
‘갈음이해수욕장’은 송림 사이에 사구가 잘 발달되었고 주변의 야영장에는 가족단위 손님들이 주말을 즐긴다. 솔밭사이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묘(墓)만 나오고 해안으로 넘어가는 길은 안 나온다. 길을 이리저리 해매다 가 찾은 곳은 골프장이다. 다행이 라운딩하는 팀이 없어 골프장을 가로 질러 정문으로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갈음이해수욕장>
<길 잃고 들어간 골프장>
어제 푯말을 보지 못해서 해매였던가? 오늘은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거친 파도로 다니기가 힘들어 난행량(難行梁)이란 지명에서 연유한 ‘파도리’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발목이 반쯤 삐지는 콩 자갈밭을 지나 ‘망미산’ 해안을 굽이돌아 서니 걸 작품이 나온다. 파도와 바람의 손이 빚어놓은 자연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이다. 동굴 같은 모습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 절벽에 핀 해국은 진한 향을 풍긴다. 소나무는 뿌리를 길게 내려 붉은 바위를 보듬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 자연자원은 돌보는 이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파도리 콩자갈>
<파도리해안의 자연동굴>
‘어은돌(魚隱乭)’은 “고기가 숨을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한자 표기란다. 이곳 어민들은 꽃게잡이 통발 손질에 바쁘고, 주변에는 캠핑 나온 가족의 차위의 이층 텐트가 눈에 띈다. 어은돌항 방파제를 지나 해변으로 접어드니 그곳에 사시는 노인분이 길이 없다고 만류하시는데 ‘없는 길도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는 신념으로 진군했지만 조금 못가서 뒤로 돌이서야 했다. 그러나 날선 바위와 씨름하느라 한눈팔고 해찰할 여유가 없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잔머리를 많이 굴린 덕분에 치매 예방훈련은 열심히 한 것 같다.
<어은돌해변>
<되 돌아서는 갯바윗길>
다시 산길로 방향을 잡고 솔밭 길을 걷는다. 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으니 수련(水蓮)이 가득한 ‘모항연못’이 나오고 옛날 사금(砂金)이 나왔던 ‘행굼이’ 쉼터를 지나 썰물로 물이 빠진 모항(茅項)항으로 간다. 모항항은 태안지역 어업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항구로 연근해에서 잡은 물고기와 각종 어패류가 이곳에 모여 유통 된다고 한다. 산길을 넘으니 ‘만리포 항’이다.
<모항연못>
<수련>
<모항항>
<만리포로 가는 고개>
자연의 혜택을 받은 만리포는 손색없는 자연 그대로이다. 맨발로 해변 모래 위를 자박자박 걸으며 세상의 온갖 시름 다 내려놓는다. 그러나 2007년 겨울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로 최대 피해 지역이었던 이곳이 표면상으로는 기름들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러나 그때 악몽은 쉬 가시질 않는다.
<만리포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비교적 맑고 모래 질이 고우며 경사가 완만하여 수심이 얕은 데다 해변에 담수(淡水)가 솟아난다고 하나, 모래가 유실되고 있어 인위적으로 모래를 공급해 주기도 한다고 하니 이 또한 안타깝다. 혹시 솔밭과 해안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는지 따져봐야 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천리포해수욕장’까지 걸으며 오전을 마감한다.
<만리포사랑비>
만리포와 천리포해수욕장 중간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은 벽안의 귀화인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 12. 24∼2002. 4. 8,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신)박사가 이 마을 노인의 부탁을 받고 1962년부터 일궈 논 사설 수목원이다. 수목원이란 ‘다양한 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여 종 다양성 확보와 유전자 보존을 담당하는 것이 참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민병갈 설명문>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천리포수목원에는 약 6,500여종의 식물들이 있는데 그중 목련종류가 약400여 품종, 호랑가시나무 종류가 약370여 품종으로 가장 많고 침엽수 매자나무 진달래 참나무 단풍나무 분꽃나무 녹나무 순으로 종류별로 수목관리대장에 기초자료가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환경부는 이곳을 ‘멸종위기야생동·식물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2006년 9월 21일에 지정하였다.
<천리포수목원 안내도>
<숨쉬는 뿌리 낙우송>
이번 걷기의 특징은 건너뛰기가 좀 있었다. 몽산포에서 굴혈포, 근흥의 원안해수욕장, 채석포항, 연포항 등을 포함하여 안흥항까지 건너뛰었고, 근흥면 정죽리에서 소원면 파도리까지는 주변의 여건과 시간상 걸을 수가 없었나 보다. 톱날 모양으로 굴곡이 심한 태안반도의 해안 연장거리는 아마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은 다음에 꼭 들러보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거짓말은 “다음에 보자”는 것으로 ‘다음’이란 것은 확실히 지킬 수 없는 공허한 것이지만…
<천리포 닭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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