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열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5. 8. 12. 17:41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열 번째)

(서산 구도항대산읍왜목마을함상공원, 2014.11.2223)

瓦也 정유순

  서산시 팔봉면 구도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가을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했던지 궂은비가 질퍽거린다. 한 걸음 내디딜 적마다 도()를 구()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여기며 열 번째 서해안 걷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 한 잎 낙엽은 외롭게 가지에 매달려 애처롭게 비바람과 맞선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이 가면 계절도 가고 나도 가고 추억만 남는 것을

  <구도항>

  구도항에서 호리종점쪽으로 서산아라메길을 따라 간다. 큰길로 호리보건진료소까지 가서 그곳에서 해안으로 가기 위해 논길과 산길을 따라 잡초가 무성한 길 같지 않은 길을 걸으며 첫걸음부터 옷을 적신다. ‘가로림만해안가 고부레라는 해변 모래밭에서 사시사철 똑 같은 온도로 솟아나는 옻샘이 반갑게 맞이하는데, 특히 이 샘물은 옛날부터 벌레 물린 곳, 습진, 땀띠, 옻 오른 피부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구도항에서 호리종점을 향해>

<옻샘>

  썰물로 물 빠진 해안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어느 길보다 비교적 순하다. 다른 해안 길은 울퉁불퉁한 큰 바위위에 크고 작은 자갈과 모래, 갯벌 등이 뒤 섞인 너덜길로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너덜길을 걸을 때는 다른 잡생각을 할 수 없다. 특히 남을 미워하거나 좋지 않은 생각을 할 때는 삐끗하여 사고 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빗속을 해매다 보니 시간개념과 거리 감각이 평소 같지 않다. 한참을 걷다 큰길로 나오니 팔봉산(362m)’이 아래로 굽어본다. ‘팔봉농협주유소를 지나 양길리삼거리에서 다시 소로로 접어들어 대황리쪽으로 간다. 동네 어귀에는 연화산 가는 곳이란 푯말도 보인다. 벌써 한나절을 걸었다. 오전 내내 팔봉면만 해맨 것 같다.


<팔봉산>

  오후에는 지곡면으로 넘어가 환성리 금박골마을앞에서 언덕 아래로 난 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간다. 논으로 길을 내어 걸을 때 추수로 나락이 잘린 포기를 보면서 어릴 적 농촌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던 기억들이 잠깐 스친다. 해안 초소가 있는 산길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니 큰 염전이 있다. 날씨가 추워지자 소금 생산은 하지 않는 것 같다. 해변의 어업면허간판을 보니 이곳부터 대산읍이다. 빗방울은 오전보다 약해지다가 점점 그친다.

<염전>

  다른 해안보다 덜 자연스러운 느낌은 나의 선입견인가? 충남 대산읍은 임해공업단지가 있어 대형 석유화학공장들이 즐비하여 해변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공단에 가까울수록 해안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 같다. 중장비와 자동차의 폐타이어들이 해안에 방치된 모습이 먼저 눈에 띤다.

<버려진 폐타이어>

  해안 길이 끝나고 자동차가 질주하는 큰 도로에 접어드니 걷기가 무척 불편하다. 도로에 인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자동차 위주로 건설 되었다. 자동차 소음이 혼란스럽고 대형차가 지나칠 때마다 몸통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 광경을 대산읍의 망월산이 걱정스럽게 내려 보는 것 같다.


<도로변 인공폭포>

  천수만수련원에서 아침에 눈을 뜨니 안개가 자욱하다. 해만 뜨면 날씨가 따뜻하려니 생각했으나 안개는 점심때가 지나도 가시질 않는다. 역시 대산읍부터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공업단지 등 인공구조물들이 많아 접근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대산항등 서산 쪽 해변을 건너뛰고 당진으로 넘어 간다. 아마 이제부터는 북으로 올라 갈수록 자연스러운 해변과 길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예감이 방정맞게 든다.

<서해안의 아침안개>

  대호방조제를 지나 당진화력부근에서 왜목마을로 향한다. 나뭇가지 위에는 참새 때들이 모여 앉아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해안으로 가기 위해 산길로 접어들었으나 막다른 곳에 해안절벽이 기다린다. 몇 번 해매이다가 바닷가로 나오니 걸음이 편하다. 음습한 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껏 걸으니 몸에 땀이 밴다. ‘석문산절벽 아래 바위에는 석화가 다닥다닥 붙어 꽃이 피었다. 주먹만 한 돌로 톡톡 두드려 석화를 따 먹는 재미도 괜찮다.

<참새의 망중한>

  굽이돌아 당도한 곳은 안개가 자욱한 왜목마을이다. 왜목마을은 왜가리 목처럼 길게 뻗어 나와서 붙여진 이름 같다. 그러나 이웃에 대호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이 형상이 사라진 것 같으나 서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왜목마을 조형물>

  이곳에서 다시 장고항까지 바위와 자갈과 모래가 뒤 섞인 너덜길을 걷는다. 멀리 보이는 장고항의 상징인 노적봉촛대봉사이로 해 뜨는 광경이 일품이란다. 그리고 해식작용으로 푹 파인 바위굴이 아름답다. 장구를 닮아 장고항이라고 한다는데 바닥엔 실치잡이를 위해 어구들이 늘어져 있고, 가게마다 실치회와 뱅어포 문구가 보인다. 실치회는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장고항 촛대봉>

  오후에는 장고항에서 석문국가산업단지입구까지 걷는다. 나무판자로 정비된 해안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자 밭에 쳐 놓은 그물에 산비둘기 한마리가 걸려 발버둥을 친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물 줄을 벗겨내는데 끈이 억새다. 도반 한분이 주머니칼로 줄을 끊으면서 새를 구해 공중에 날려 보낸다. 다른 생명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닌 가하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던 산비둘기의 체온이 지금도 손안에 남아 온기를 더해 간다.

<산비둘기 구조>

  석문방조제와 제철단지를 지나 송악IC까지 건너뛰어 음섬마을 입구에서 속해들을 건너 골망누리마을 남의 집 마당으로 가로 질러 해안 길로 찾아간다. 낯선 동네에 들어 설 때엔 놀란 개들이 짖어대고 동네 아낙들은 깜작 놀라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본다. 밀물이 들어찬 아산만에서는 갯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석문방조제길>

  제방 길 아래에는 사람들이 몰려 와 망둥어낚시에 열심이다. 바구니를 살짝 엿보니 어른 팔만한 것들이 들어 있다. 특히 아줌마들의 낚시는 더욱 눈길을 끈다. ‘맷돌포구를 지나 삽교호함상공원에 도착하여 서해안 걷기 열 번째 장정을 마무리 한다.

<함상공원 가는길>

  어제와 오늘 서해안 걷기를 하면서 궂은 날씨와 시야를 가린 안개 때문에 멀리 볼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스크랩 한다. 그래도 숨 쉬며 살아 있는 자의 특권을 맘껏 누리며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머지 구간은 내년에 다시 이어서 걷기로 하고 동면에 들어간다.

<함상공원>

<함상공원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