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서해안을 걷다(아홉 번째)
<백리포→신두리 사구→이원면 만대, 2014. 10. 25∼26>
瓦也 정유순
벌써 태안 길에 접어들어 걷기 시작한지 세 번째이다. 톱날모양으로 굴곡이 심한 태안 해변 연장거리가 무려 천삼 백리에 이른다고 한다. 지형의 조건과 거리로 봐서는 이곳에서 열다섯 번 이상 걸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거리 같다. 이번에도 백리포 입구에서 의항해변 쪽으로 올라간다. 의항해변에서 ‘가르미끝 길’과 ‘구름포’와 ‘태배해안’을 비껴 ‘의항항’으로 가로 질러 간다.
<백리포해안>
‘의항리’는 지형이 개미의 목처럼 생겼다고 개미목, 또는 개목이라고 부르다가 ‘의항’ 이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한다. 다시 남쪽으로 산길을 타고 내려와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만리저수지’가 있는 ‘방근제’를 지나 ‘소근리포구’까지 간다. 마을을 지나 언덕 쪽으로 올라가니 ‘소근포진성’이 나온다. 세조 12년(1466년)에 소근포진을 두었던 곳으로, 조선 중종 9년에 돌로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성안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 위에 올라 밑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으나 길이 없어 다시 마을을 지나 큰길로 나와 다리를 건너 해안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물 빠진 바다 건너로 태배해안과 의항항이 가깝게 보이는데 당도한 곳이 해안사구로 유명한 ‘원북면 신두리’다.
<의항해수욕장>
<신두리해변>
원북면 방갈리에서 점심식사 후 ‘학암포 항’까지 가서 바위섬에 소나무가 우거진 ‘분점도’를 뒤로 하고 해변을 따라 다시 남으로 내려온다. 오늘의 종점은 ‘신두리해안사구’이기 때문이다. 고운 모래를 가볍게 밟고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고갯길로 오른다. 두 고개를 넘어 당도한 곳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구례포해수욕장’이다. 남북으로 경사지게 누워 있는 형국으로 양쪽 끝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갑자기 맨발로 뛰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참는다.
<구례포해변>
또 몇 구비 고개를 넘으니 ‘먼동’해수욕장과 해변이 펼쳐진다. 밀물이 밀려와 해변을 가득 채우고, 바위를 철석 때리는 파도소리는 삼십여 고개를 넘는 동안 발걸음에 맞추어 춤을 춘다. 마지막 쉼터에서는 ‘바우’님의 ‘청산에 살리라~♩♩’가 솔바람 타고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고 ‘잊혀 진 계절’과 ‘분교’ 노래가 분위기를 띠운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니 점심 전에 황촌리로 갈라진 삼거리가 나오고 제방 길을 따라 ‘신두리해안사구’에 다시 당도한다.
<먼동해변>
<잊혀진계절~~>
‘해안사구’는 오랜 세월동안 바람에 의해 모래가 운반되면서 쌓인 모래언덕이다. 이 모래언덕은 육지와 바다 사이의 퇴적물 양을 조절하여 해안을 보호하고 해안 고유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며 해안 식수원 저장기능, 아름다운 경관보호 등 다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자연환경을 원상대로 유지하여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신두리사구-버섯>
이번 서해안 걷기의 백미는 ‘신두리 해안사구’ 트레킹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으로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 되었다. 모래밭에 버섯이 자라고 뿌리로 모래를 끌어안아 사구를 형성해 주는 갯그렁 풀 이 ‘표범장지뱀’ ‘도룡농’ ‘개구리’ 등 동물들의 안식처를 만들어 준다. 각종 풀들이 자란 모래톱은 생명들의 최고의 보금자리이고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신두리사구>
모래언덕에서 썰매를 타는 어린이가 우리들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언덕정상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30여㎞의 해안 길 여독을 한순간에 다 날려 보낸다. 이 환상의 기분이 잠자리를 설레게 할 것 같다. 그러나 너무나 가까이에 금개구리가 살고 있는 ‘두웅습지’를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사구의 배후습지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인데…
<신두리사구>
<신두리사구의 석양>
아침 일직 일어나 조반을 기다렸으나 식당 사정으로 한 시간이 늦어 인근의 ‘만리포해변’에서 갯바람을 쐬고 가볍게 걸으니 아침밥 맛이 더 좋다. 버스로 이원반도의 북쪽 끝인 ‘만대항’으로 간다. ‘만대’라는 이름은 “만 채의 집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이지만, 가다가다 (그)만(둔)대라는 말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원반도 안내도>
<만대항>
‘솔향기 길’ 들머리로 올라서 숲길을 걷는가 싶더니 이내 환상적인 해변을 걷는다. 부드러운 모래밭도 있고 딱딱한 자갈밭도 있다. 해변의 바위에는 석화가 다닥다닥 붙어 꽃을 피운다. 주먹만 한 돌로 콕콕 찍어 짭짤한 맛을 보는데 독한 한잔 술이 생각난다. 보는 방향에 따라 하나로도 보이고 둘로도 보인다는 ‘삼형제 바위’를 지나 1코스 끝 지점인 ‘꾸지나무 골’로 향한다.
<삼형제바위>
‘장안여’는 섬돌 모양으로 길게 뻗어 물에 잠기고 드러나기 때문에 가로림만으로 오고가는 항해의 위험요소로 1938년 여객선 침몰로 80명 중 7명만 생존하고 모두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난후 60년이 지난 1998년에 ‘수인등표 등대’가 세워졌다고 한다.
<수인등표등대>
‘여섬’은 옛날에 나머지 섬이라는 뜻으로 남을 餘(여)자를 써서 여섬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원방조제 간척지로 서쪽의 섬들이 다 잠기고 유일하게 이 섬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이곳의 독살은 고기가 많이 잡혀 유명하고 일몰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한다.
<여섬>
그 밖에 용이 나왔다는 ‘용난굴’ 등이 있으나 ‘구매수둥’ ‘붉은앙땡이’ ‘헤먹쟁이’ ‘근욱골해변’ ‘수룽구지’ ‘벌쌍금약수터’ ‘차돌백이’ ‘와랑창’ ‘어리골’ ‘도투매기’ ‘꾸지나무골’ 등 분명 우리의 고유 언어이거나 이곳의 투박한 사투리 일진데 어느 곳 하나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답답하다.
<용난굴, 별쌍금약수터 안내문>
그러나 아흔 아홉 고개(?) 해안 산길을 걸으며 충청도의 진짜 속살을 여과 없이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여린 것 같으면서도 강하기가 그지없고, 물렁한 것 같으면서도 무쇠보다 더 단단하고, 순한 것 같으면서도 맹수보다 더 사납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가질 건 다 가진 것’처럼 이번 트레킹은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무엇이든 얕잡아 보지 말고 겸손하게 아주 겸손하게 세상을 살라고 부드럽게 타이른다.
<꾸지나무골 가는길>
아홉 번째 서해안 걷기를 마치고 가는 길에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개심사에 간다. ‘청단풍’은 가을이 온 줄 모르고 붉은 홍시만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 손길만 급하게 기다린다. 대웅전 저녁예불 목탁소리 낭랑하고 심검당 뒤틀린 기둥들도, 명부전 혼백들도 제자리 찾아간다.
상왕산(象王山) 단풍 보러/개심사 골자기에 들렀더니/단풍은 물들지 아니하고/막걸리 한사발로 마음만 씻고 가네~
<개심사대웅전>
아쉬운 마음에 ‘해미향교’에 들러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땅거미에 비춰본다.
<해미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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