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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물

가장 비싼 물 瓦也 정유순 우리는 언제부터 물을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아마 의도적으로 이용했다 기 보다는 물은 생명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 땅에 생명이 수정되기 전부터 물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물은 생명이고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은 물이 풍부한 강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되었을 것이고, 물을 이용한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 즉 물을 이용했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선사시대 유적지에 가 보아도 가까운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다. 그래서 물은 말이 없지만 우리의 과거를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은 우리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가르쳐 주는 가 보다.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일어난 18세기 후반부터 불기 시작..

나의 이야기 2022.06.29

신비의 섬 굴업도

신비의 섬 굴업도 (2022년 6월 13일∼14일) 瓦也 정유순 대한민국의 자연 그대로의 신비를 간직한 굴업도!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서남방으로 90km 떨어진 굴업도를 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먼저 동인천역에서 택시로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이동하여 덕적도 진리항에 도착한 다음 약 1시간 정도 기다리다 굴업도 가는 배를 갈아탔다. 덕적도와 굴업도를 오가는 배는 문갑도에 잠깐 들렸다가 갈매기의 호위를 받으며 굴업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굴업도(掘業島)는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 거리에 있다. 이 섬의 옛 이름은 ‘구로읍도(鷗鷺泣島)’인데 나라 잃은 고려의 유신들이 이 섬으로 도망가자 갈매기와 백로조차 울고 갔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대동지지』덕적도진조에 “굴압도는 사야곶 서쪽에 있다..

나의 이야기 2022.06.21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5)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5)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영산대교를 지나 마주한 곳은 안창동 구진포나룻터 부근 강 건너편의 이라는 가야산 북측의 벼랑 바위다. 충남 부여의 낙화암 같기도 하지만 바위 아래 강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깊은 소를 만들어 영산강을 다니던 배들이 자주 침몰하여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 바위에는 삼국 시대부터 전해오는 아랑사와 아비사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바위 절벽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남아있어 그들의 모습이 눈에 잘 보이는 사람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발길은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 있는 영모정 앞에서 멈춘다. 전라남도기념물(제112호)로 지정된 영모정(永慕亭)은 나주임씨 종중..

나의 이야기 2022.06.08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4)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4)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나주시 교동의 나주향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나주읍성 영금문이 있다. 사적(제337호)으로 지정된 나주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축조되어 남북으로 약3.53㎞로 평지에 조성된 긴 타원형 형태의 규모로 쌓았다. 동쪽은 동점(東漸)문, 서쪽에 영금(映錦)문, 남쪽에 남고(南顧)문, 북쪽에 북망(北望)문을 두었다. 일제강점기 때 동서남북의 모든 성문과 성루가 철거된 후 대부분 민가가 들어섰고 밭으로 경작되었으나 1993년에 남고문, 2006년에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서성(西城)문으로도 불리는 영금문은 2007년 발굴조사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어 제 모습을 찾아 2011년에 복원하였다. 밖으로는 돌로 쌓은 옹성이 둘러있고..

나의 이야기 2022.06.07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밭에 와서 앉은 기러기나 글씨와 문장이 대단히 잘 써진 모습’을 표현할 때 쓰는 사자성어로 극락강과 황룡강 물길이 합류하여 흐르는 승촌보 일대의 넉넉한 경관을 비유한 말이지만, 미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남구 승촌동의 승촌보 공원에 내려앉은 기러기는 나주의 것이 아니어도 광주에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공원지역이 하중도로 광주 땅이 알박기식으로 나주 땅으로 파고들어 왔기 때문이다. 평사낙안은 원래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로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만종(煙寺晩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

나의 이야기 2022.06.06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우리는 가끔 ‘먹기 위해서 사는지? 살기 위해서 먹는지?’헷갈릴 때가 있다. 어찌했던 오전 내내 영산강 물길 따라 걸었더니 시장기가 전해와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모 흑두부집으로 이동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룬 한옥은 소나무로 조경을 하여 멋을 부렸으며, 들어가는 길은 맷돌을 깔아 징검다리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중국에서 모조품으로 들여온 병마용이 보초를 선다. 병마용(兵馬俑)은 중국 시안(西安) 진시황 무덤의 도제(陶製) 부장품이다. 병마용 옆에는 붉은 찔레꽃이 유난히 더 붉다. 혹시 장미인가 싶어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1940년대에 민중가요인 가사에 나오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 동기가 되어 전..

나의 이야기 2022.06.03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1)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1)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이른 아침부터 영산강 용산지구습지생태공원은 뭇 생명들의 맥박이 고동 친다. 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 내일도 흘러야 할 강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들을 보듬으며 세월이 함께 흐른다. 지난 달 영산강 1차 답사를 마감할 때는 옆으로 누운 오후 햇살이었으나 오늘은 머리 위로 솟구치는 찬란한 아침 햇살이다. 둔치에 마련된 용산야구장에서도 젊은 선수들의 기가 넘쳐흐른다. 용산교를 건너면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이다. 용강동(龍江洞)은 북구의 북쪽 끝에 자리하며, 영산강 줄기가 지나는 우치면 지역으로서 굽이쳐 흐르는 강가라 하여 용강(龍江)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입암리(立岩里)와 신평리(新坪里)..

나의 이야기 2022.06.02

우리가 산다는 것

우리가 산다는 것 瓦也 정유순 태초에 조물주께서 이 지구상에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주관하실 때에 ‘먹을 수 있는 능력’과 ‘종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따라서 그들은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먹이를 확보하고, 생식(生殖)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조건으로 우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던지 먹을 수 있도록 권리와 의무를 주었다. 그래서 식이위대(食而爲大)라 하였던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가장 크고 위대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먹는 것이 가장 큰일이다. 또한 섭생을 잘 해야 종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의 움직일 수 있는 요인은 ‘먹는 것’..

나의 이야기 2022.06.01

지구는 왜 더워지는가?

지구는 왜 더워지는가? 瓦也 정유순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이지만 중국대륙과 맞닿아 해양성기후 보다는 대륙의 영향을 받는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봄부터 여름이 오는 문턱까지는 비교적 비가 오지 않는 갈수기(渴水期)로 비가 오지 않아 농업용수(農業用水)는 물론 식수까지 위협받던 시절이 있었고, 여름이면 장마로 이어져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즉 가뭄과 장마가 매년 되풀이되어 가뭄대책과 장마대책을 매년 세워야 했다. 가을에는 비가 비교적 적게 내리고 맑은 하늘이 계속되어 붉게 물든 단풍과 어울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로 풍요를 만끽하는 전형적인 우리의 가을을 간직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특성으로 삼일은 몹시 춥다가 사일은 그런대로 ..

나의 이야기 2022.05.26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거닐며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거닐며 (2022. 5. 14) 瓦也 정유순 대관령(大關嶺 832m)은 백두대간의 중심 고개로 이곳을 기준하여 동쪽은 영동(또는 관동) 서쪽은 영서(또는 관서)로 구분된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대관령 길을 넘어 다녀야 했다. 오죽헌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도 어머니인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손을 잡고 함께 넘었을 것이고, 관동별곡을 쓴 송강 정철(松江 鄭澈)도 이 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물류의 주역인 보부상(褓負商)들도 대관령 옛길을 넘나들며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고개의 총연장이 13㎞이고, 고개가 아흔아홉 굽이에 이른다. 고개 마루를 넘어 영동고속도로가 지났으나 2002년 11월 ..

나의 이야기 2022.05.23